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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직군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클로이

2018.08.29 19:01 조회수 1044

우리의 직군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안녕하세요, 저는 모 온라인 커머스에서 콘텐츠 제작을 맡고 있는 클로이입니다. 회사에서 주로 하는 일은 상품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와 이야기들을 '보기 좋은 볼거리'로 바꿔주는 것입니다. 

 

온라인이 곧 인터넷인 줄 알던 시절, 멋모르고 들어간 첫 회사가 <그루폰코리아>라는 소셜 커머스였습니다. 국어국문학과 이야기창작을 전공하며 글쟁이의 꿈을 가지고 있던 제가, 개념 자체도 생소한 '소셜 커머스'에 지원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순전히 '에디터'라는 보직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Editor.  발음부터 세련된 느낌이잖아요.  때마침 패션 매거진의 피쳐 에디터에 지원하였다가 최종 면접에서 떨어진 직후였습니다. 최초의 구직 활동이었기에 상심이 크던 차였죠. 그래서 e커머스는 무엇이고, 그곳의 에디터는 무슨 일을 하는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은 채 덜컥 회사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이 일을 6년째 하고 있습니다. 얼떨결에 발을 들였고, 중간에 무려 여섯 번이나(!) 회사를 옮겨 다니며 방황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제 일에 많은 애착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e커머스에서 콘텐츠를 제작하는 저 같은 사람들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늘 같은 성격의 일을 해왔지만, 어떤 회사에서는 '에디터'였고, 어떤 회사에서는 '기획자'였으며 지금은 '콘텐츠 엠디'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을 마케터라고 부릅니다.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을 디자이너라고 부르지요. 호칭이 명확하다는 건, 하는 일이 분명하다는 뜻일 겁니다. 그런데 제가 하는 일은 매번 타이틀이 제각각입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 회사마다 저에게 기대하는 일의 범위가 조금씩 달랐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상품의 상세 페이지만을 다룰 때도 있었고,  판매 스트럭쳐는 물론 화면의 설계까지 맡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러한 직업이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에디터도, 기획자도, 콘텐츠 엠디도 제가 하는 일을 설명하기엔 조금씩 크거나 작은 옷이라는 느낌입니다.

 

도대체 제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중요하긴 한 걸까요?

 

콘텐츠 만드는 일을 하려면 콘텐츠가 주가 되는 업계에서 일해야 비전이 있는 거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저 역시 그런 고민을 수 없이 해왔습니다. e커머스에서 콘텐츠가 중요할까? 똑같은 상품을 판다면 결국엔 가격이 전부 아닐까? 하고 말이에요. 그렇지만 이제 더 이상 고민하지 않습니다. 지난 6년 간의 고군분투 속에서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렸으니까요.

 

전통적인 오프라인 시장에서는 똑같은 상품을 저마다 다른 가격으로 팔았습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동네마다 슈퍼에서 파는 과자 값이 다 달랐죠. 그래도 특별히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집 앞 슈퍼밖에 안 가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온라인 쇼핑이 생활화되고, 유통의 '채널'이 사실상 단일화되었습니다. 서울에 사는 유시진과 강원도 두메산골에 사는 서대영이 똑같은 곳에서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e커머스는 너무나 많습니다. 유통 채널이 단일화된 것과 또 다른 이야기이죠. 그래서 커머스들은 이제껏 '최저가'를 위해 무한경쟁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결과가 '유의미한'수준으로 동일 해지는 상황입니다.  

 

이제부터는 많은 e커머스가 지금까지 '비교적 소홀했던' 콘텐츠에 공을 들일 것입니다. 상품과 가격, 두 가지 조건이 동일할 때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콘텐츠입니다. 더하여 콘텐츠는 상품이나 가격과는 다르게 소비자를 충성고객화 할 수 있는 요소입니다. 쌓아가는 데 있어서 긴 호흡이 필요한 만큼, 경쟁업체에서 쉽게 따라 하기도 어려운 영역입니다.

 

차~암 중요한데 아직 꼭 맞는 타이틀이 없어요. 최근에 함께 일할 동료를 구하려고 구인광고를 내려는데, 타이틀은커녕 이 일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하더라고요.

제가 오픈애즈에서 연재를 시작하려는 이유입니다. 맞춤한 단어를 찾아내겠다기보다는,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하나씩 정리하여 뾰족하게 벼려보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이제 '웹디자이너'는 누구나 다 아는 직군입니다. 1세대 웹디자이너 하면 바로 떠오르는 이름도 있구요. (존경하는 한명수 이사님!) 그런데 웹디자이너라는 정확한 명칭이 생기기 전까지,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들이 그 바닥에 발 들이기가 얼마나 막연하고 어려웠을까요. 또 일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정체성의 혼란을 느꼈을까요.

 

제가, 그리고 저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보다 뚜렷한 자리를 찾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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