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이의 매거진

맘에 안 드는 상품은 어떻게 소개하나?

클로이

2018.09.05 18:54 조회수 1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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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안 드는 상품은 어떻게 소개할까요?
처음엔 너무 쓰기 싫어서 막 울었습니다.

일을 갓 시작했을 때 저는 소셜커머스에서 로컬 딜을 담당하였습니다. 하루에 두 곳은 기본으로 촬영을 나갔고, 돌아와서는 새벽까지 상품 페이지를 기획해야 했어요. 그런데 그 상품이라는 것이 어린 마음에 참 후져 보였습니다. 네일숍, 식당, 에스테틱, 한국민속촌, 과천과학관... 심지어 찜질방까지! 이러려고 내가 문학을 전공했던가, 하루하루가 우울함의 연속이었습니다.

'한글 맞춤법만 알아도 할 수 있는 일 아냐?'
하찮은 일을 한다는 생각에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졌어요.

어느 날인가는, 이틀 사이에 무한리필 고기뷔페 세 곳을 촬영하게 되었어요. 한쪽에서는 손님들이 고기를 구워 먹고 있는데, 저는 포토그래퍼를 도와서 끝없이 고기 접시를 나르고 반사판을 들었죠. 촬영 보조도 아니고 내가 왜 반사판을 들고 있어야 되지? 사람들이 고기뷔페를 모르는 것도 아닌데 왜 사진을 수백 컷씩 찍어야 되지? 갑자기 설움이 북받치면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포토그래퍼도 당황하고 사장님도 당황했어요.
사무실로 복귀하고 나서는 설움이 울화통으로 바뀌었습니다. 가격도 성격도 비슷한 무한리필 고기뷔페 세 개를 저마다 다르게 쓰려니까 죽겠는 거예요.

 

찜질방 이용권도 팔고,  선상 레스토랑 이용권도 팔고...

바야흐로 2011년, 스크롤이 끝날 것 같지 않은 길고 긴 상품 페이지가 마치 교과서처럼 유행하던 때입니다. (누군가는 그 폼을 두고 사용자가 스크롤을 내리면서 살까 말까 고민하는 동안 사진을 계속 보여주면서 유혹하는 스킬이라고 합디다...) 더하여, 소셜커머스라는 서비스가 국내에 처음 생겼을 때라, 구매자들이 사진과 실물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허위 과장광고가 아니냐고 컴플레인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보여준다'가 기본자세였습니다. 고기뷔페 이용권을 팔면, 그 가게에서 먹을 수 있는 고기란 고기 사진은 다 보여주는 것이죠. 시뻘건 생고기 사진이 끝없이 펼쳐지는 상품 페이지는 지금 생각해도 혐오스럽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오직 때려치울 생각만 했어요.
어디서 거지 같은 것만 영업해온다면서 담당 MD를 막 욕했습니다.

정말 담당 MD가 잘못한 걸까요? 고기뷔페는 또 무슨 잘못이었을까요?
열심히 찾아보면 장점이 왜 없겠습니까. 나머지는 별로인데 그래도 삼겹살 하나만 맛있으면 그것도 장점이고, 고기는 딱 무한리필집 수준이지만 쌈채소가 싱싱하면 그것도 나름 장점이었을 테고, 하다못해 가게가 버스정류장에서 가까우면 그 마저도 장점이었을 것을요. '키 메시지'를 뽑지 못한 저의 기획력이 문제였습니다. 가이드라는 틀에 갇혀서 모든 걸 주저리주저리 다 설명하려고 했던 미숙함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상품과 나의 가치관 자체가 충돌할 때는 어떻게 할까요?

럭셔리 브랜드를 취급하던 커머스에 다니던 시절입니다. '명품 = 사치품'이라는 선입견이 머릿속을 지배하던 때였죠. (지금은 없어서 못 들고 다닙니다.) 명품을 백화점이 아닌 온라인으로 사는 사람들은 이미 자기가 무엇을 살 지 어느 정도 정해놓고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자세하게 말로 설득하지 않고 상품 스펙만 안내해도 괜찮았죠. (물론 친절한 설명이 있으면 당연히 더 좋겠지만, 기업이란 정해진 리소스를 가지고 최고 효율을 찾아야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 회사에서는 블로그와 페이스북 운영도 맡게 되었습니다.

이놈의 페이스북에 도대체 뭘 써야 될지 모르겠는 거예요. 하루에 하나씩 꼬박꼬박 상품을 소개해야 한다는데,  "하나쯤은 소장해야 할 잇 아이템" "여자들의 로망 샤넬" 이런 말을 하자니 스스로가 싫었습니다. 가방 따위가 한 사람의 로망이라고? 인문학을 전공한 내가 할 말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딴 얘기를 계속했습니다. 상품 말고 상품 뒤에 있는 디자이너 이야기를 하고, 그 뒤에 있는 기업 이야기를 하고... 그러다 보니 이상하게도 상품이 좋아지더군요.

이 세상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상품은 없습니다. 다 사람이 만든 거예요. 누군가가 본인의 시간을, 인생을 투자하여 만든 겁니다. 값이 싸든 비싸든 말이에요.

그런데 브랜드 끝장나는 샤넬만 파나요. 듣지도 보지도 못한 공장에서 팍팍 찍어낸 것 같은 애매한 브랜드도 있지요. 그럴 땐 차라리 아주 솔직하게 굴고, 대신 거짓말을 살짝만 보탰습니다.
"아직 명품백을 한 번도 안 사봤다면, 이 가방은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더 오래도록 유행에 상관없이 들고 다닐 가방을 찾는다면 차라리 조금 더 보태서 xxx를 사겠어요. (진심) 대신 이 제품은 나 좀 세련되지 않나? 하시는 분들의 세컨드 백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답니다. (거짓)"

사기 범죄를 저지르라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속이기가 괴롭다면 그냥 솔직해지는 것도 나름 괜찮아요. 하지만 일기를 쓰라는 건 아닙니다. 상품이 가진 장점을 최소한 하나라도 끄집어 내주면 됩니다. 상품 그 자체만 보지 말고 꼬리를 물듯이 이런저런 연상을 해 보면 큰 도움이 됩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간 건 사과, 사과는 맛있어 ~

ex) 내 입에는 영 달기만 한  전주의 모 초코파이


가격, 품질, 생산자 등등등 모든 면에서 완벽한 상품은 내가 굳이 애를 쓰지 않아도 사람들이 귀신같이 알고 삽니다. 유저가 얼마나 스마트한데요.
그리고 완벽한 상품만 취급하는 커머스라면 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굳이 안 쓰겠죠!


TIP.
자기소개서를 쓸 때를 떠올려봅니다. 나는 완벽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가진 장점을 몇 가지 뽑아서 그 걸로 한 바닥을 채워 나가요. 마음에 안 드는 상품 소개도 그런 마음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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