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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세계에서 두괄식만이 최선일까?

브랜드부스터

2019.02.19 02:37 조회수 1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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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세계에서 두괄식만이 최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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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논술에서 본인의 주장을 펼치는 두 가지 방식을 배운다. 두괄식과 미괄식이다. 머리 두(頭)자를 쓰는 두괄식은 주장을 먼저 이야기하고 그 뒤에 근거로 뒷받침하는 방식이다. 이와 반대로 꼬리 미(尾)자를 쓰는 미괄식은 근거를 먼저 이야기하고 마지막에 결론을 내린다(두괄식과 미괄식을 섞은 양괄식도 있는데 일종의 절충법이라 여기서는 제외한다). 비즈니스에서는 흔히 두괄식을 선호하며, 심지어 미괄식은 배척당하기까지 한다.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님의 두괄식 사랑. (출처: 정태영 트위터)

 

 

2.

바쁜 현대인은 남의 말을 끝까지 들어줄 여유 따위 없다. 아니, 애초에 인간은 남의 말을 잘 안 듣는다. 우리의 뇌는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많은 정보가 입력될 수록 뇌에 과부하가 걸리기 때문에 자신에게 가치 있는 정보가 아니면 가차없이 한 귀로 흘려버리는 게 인간의 본능이다. 남의 말에 신경쓰는 행동은 본능을 거스르는 행동이고, 나아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방이 내 말을 경청하면 존중받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다.

 

 

3.

비즈니스에서 두괄식이 각광받는 이유는 남의 말을 안 듣는 인간이 그나마 주의를 집중하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기업 의사소통의 대부분은 '보고'와 '지시'다. 이 중에서 상급자에서 하급자로 흐르는 '지시'는 설득이 필요없기 때문에 필요한 말만 할 수 있다(물론 하급자의 공감과 설득을 얻으면 지시의 효과는 배가된다). 하지만 현황과 이에 대한 하급자의 견해도 같이 밝혀야 하는 '보고'는 구두로 하든 문서로 하든 소통방식에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상급자를 납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보고 받는 입장인 상급자는 두괄식을 선호한다. 회의도 많고 바빠 죽겠는데 보고자가 중얼중얼거리는 걸 언제 다 듣고 있나. 당연히 '그래서 결론이 뭐야?',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자네 주장을 한 마디로 뭐라고 할 수 있겠나?' 라고 물으며 보고자를 압박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상급자는 명확하고 심플한 보고를 받고 싶어한다. (출처: 마진콜)

 

보고하는 하급자 입장에서도 두괄식이 유용하다. 특히 근거를 쌓으면서 나중에 결론을 내리는 미괄식 화법은 사전에 정리가 되어 있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나오기 힘든 고급 화법이다.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은 처음에 배경상황을 설명하다가 장황해지거나 논리가 꼬이거나 막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역효과다. 차라리 먼저 주장을 내세우고 이에 따라 근거를 대면 말이 중언부언하거나 미사여구가 생길 가능성이 줄어든다. 상급자 입장에서도 이 양반이 무슨 주장을 하고 싶은지 의도를 파악했기 때문에 '어디 들어봅시다.' 라는 태도를 취할 수 있다. 의사결정을 명확하고 빠르게 낼 수 있는 게 두괄식의 장점이다.

 

두괄식의 아쉬운 점은 듣는 사람 입장에서 보고자의 주장이 자기 생각과 다를 경우 그 뒤에 마음을 닫아버릴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근거를 이야기하는 동안 속으로 반대의견을 준비하기도 하고 심하면 말허리를 잘라버릴 수도 있다. 한 마디로 듣기 싫은 거다(쓸데 없는 정보라고 뇌에서 신호를 받은 것이다). 이런 과정이 반복될 경우 실무자는 트라우마에 휩싸여 보고를 미괄식으로 바꿀 것이고 상급자는 더 답답해하겠지. 악순환이다.

 

보고 받는 상급자는 열린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현장을 더 잘 아는 실무자를 존중하고, 실무자의 주장이 자기 생각과 다르더라도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볼 필요가 있다. 보고를 끝까지 경청해주고 질의응답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 후에 실무자와 논의를 통해서 결론을 도출한다면, 설사 결론이 실무자의 의견과 다르더라도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거쳤기 때문에 실무자는 만족하며 그 결정을 진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다. 

 

 

4.

이에 반해 미괄식이 많이 쓰이는 대표 분야는 예술 영역이다. 대표적인 예가 영화다. 사람들이 영화 스포일러를 싫어하는 이유는 결론을 알면 앞부분부터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영화 뿐만 아니라 소설, 만화, 연극 등 스토리형 컨텐츠는 대부분 미괄식이다. 가려진 결말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 자체가 소비하는 입장에서는 기대감이 증폭되기 때문에 결말에 대한 만족도도 높아진다.

 

비즈니스에서도 예술 분야처럼 미괄식 화법을 많이 쓰는 업종이 하나 있는데, 바로 광고다. 광고 크리에이티브는 인간의 주의를 끌어야 하기 때문에 예술적 기법을 많이 차용하는 편이다. 광고는 광고수용자와 감성적인 공감대를 쌓아야 하기 때문에 미괄식이 적합하다. (TV광고에서 핵심 메시지가 주로 나오는 부분이 앞인지 뒤인지 살펴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광고대행사는 이러한 크리에이티브를 클라이언트에게 설득하는 과정도 미괄식을 많이 쓰는 편이다. 특히 여러 광고대행사가 모여서 프레젠테이션 경합을 벌이는 경쟁PT는 하나의 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두컴컴한 회의실 안, 프레젠터는 무대 위의 배우처럼 청중의 주목을 한 몸에 받으며 화면에 띄운 기획서와 세치 혀 하나로 승부를 봐야 한다.

 

경쟁PT를 할 때 전통적인 종합광고대행사의 제안서 순서는 다음과 같다.

  

▶전략기획        : 보통 시장 분석-->문제점 파악-->목표 설정-->컨셉 도출의 순서로 진행한다.

▶크리에이티브 : 광고 컨셉을 영상, 이미지 등의 광고제작물로 표현하는 단계. 영상일 경우 콘티로 표현한다.

▶매체 계획       : 어떤 광고매체를 언제까지, 얼마나 돈을 써서 운영할지를 설명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크리에이티브'다. '전략기획'이 우리가 왜 이런 광고를 생각했는지 청중과 교감하고 공감대를 쌓아가는 사전 단계라면, '크리에이티브'에서는 이때까지 쌓아 놓은 기대감을 터뜨려 최대한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야 한다. 청중이 '저절로 이 광고를 해야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한다. 드라마의 1부와 2부, 영화의 초반 10분을 보고 그 뒤를 기대했던 기억이 있다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광고대행사는 크리에이티브를 보여주기 전에 클라이언트와의 공감대를 최대한 쌓아야 광고 아이디어를 설득하기 쉽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미괄식을 애용한다. 최소한의 제안으로 광고를 온에어시켜야 수익이 극대화되는 상황에서 리스크가 있는 두괄식은 지양하는 편이다. 처음에 아이디어를 보여줬다가 클라이언트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뒤에 어떤 이야기를 해도 소용 없기 때문이다.

 

극적인 효과를 위한 미괄식은 광고 뿐만 아니라 신제품 발표회, 또는 런칭쇼에서도 많이 쓰인다. 스티브 잡스가 무대에 오르자마자 아이폰을 바로 보여주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매력이 아마 뚝 떨어질 것이다. 우리가 선물박스의 포장을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여는 것도, 애인이 눈을 가렸다가 멋진 바다 앞에서 짠! 하고 보여주는 것도, 우리가 영화 스포일러를 극혐하는 것도 다 미괄식 소통의 연장이다.

 

 

 

 스티브 잡스는 신제품을 발표할 때 처음부터 보여주지 않는다. 기대감을 쌓고 쌓아서 한번에 터트려버린다.

 


5.

 

 

 영업3팀은 비리 때문에 좋은 사업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논리로 요르단 사업진행을 정당화시켰다. (출처: 드라마 미생)

 

미괄식은 기존의 생각, 관습, 개념을 뒤집는데 효과적이다. 물론 앞부분부터 청중의 감정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 강력한 논리가 있어야 한다. 미생의 영업3팀은 욕 먹을 각오를 하고 먼저 회사가 감추고 싶어하는 온갖 비리를 나열하여 임원들의 멘탈을 뒤집어 놓았다. 그 뒤에 제시한 비리를 이유로 놓친 사업이 실제로 수익성이 좋았다는 데이터는 청중이 비리와 사업을 분리하여 생각하게끔 만드는 단초가 되었다. 그리고 프레젠터 오 차장은 청중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죄를 처벌했으니, 그 일은 잊혀져야 맞습니까?”

 

비리를 명분으로 요르단 사업을 반대할 여지를 처음부터 남겨놓지 않은 것이다. 그 뒤에 팩트와 숫자를 근거로 요르단 중고차 사업의 가치를 이야기하여 청중을 설득시킬 수 있었다(물론 장그래의 마지막 한 마디가 쐐기를 박는 효과도 있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두괄식이 효율적인 방식인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당신이 직장인이라면, 당연히 두괄식으로 보고하고 보고 받는게 빠르고 정확하다. 당신이 기업에 혁신적인 제안을 하고 싶은 마케터나 브랜더라면, 그래서 자신의 새로운 생각을 관철하고 싶다면 때로는 두괄식이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마케팅과 브랜딩은 이성이 지배하는 기업에서 유일하게 감성을 언급할 수 있는 분야다. 뭔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면 상급자의 생각을 바꾸고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미괄식을 시도해보시라. 물론 역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로 얻어지는 게 있던가.

 

No pain, No gain이다.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랜드 부스터

- 가끔 요리하고 글 쓰고 노래하고 운동하는 남자

- 본능적인 욕망을 추구하며 날것의 언어를 사랑하는 기획자

- 종합광고대행사의 AE였다가 브랜드 마케터로 전향한 직장인

- 세상을 브랜드로 이해하며, 브랜드 부스팅 전략을 탐구하는 마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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