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미의 매거진

있는 듯 없는 듯, 마케팅 카모플라쥬

남미미

2020.01.15 18:18 조회수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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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우리 앱의 신규 기능이 열렸습니다. 마케터인 여러분에게는 최대한 많은(이왕이면 모든) 사용자가 이 기능을 사용하게 만들라는 지상과제가 주어졌습니다.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떤 방법을 선택하실 건가요? 늘 그래 왔듯, 로그인과 동시에 등장하는 팝업을 띄워 볼까요? 번역글 ‘디자이너가 피해야 할 유저 온보딩 함정 ’에서 살펴본 것처럼, 어떤 일을 하는 도중에 나타나는 메시지는 아주 높은 확률로 무시당하곤 합니다. 이메일이나 카카오 알림 톡은 어떤가요? 물론 개인화된 메시지를 보낼 수 있어 조금 더 효과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당장 저만 해도 특정 서비스의 업데이트 공지 메일을 열어본 기억은 가물가물합니다. 앱의 업데이트 알림이나 문자를 무시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죠.

 

 

어찌하여 마케터의 몸으로 UX를 기웃거리게 되었는가

제가 UX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마케터인 제게는 종종 신규 기능의 어덥션율(Adoption rate)을 높여야 하는 과제가 주어집니다. 주어진 선택지는 다양합니다. 우선 그동안 갈고닦은 포토샵과 파워포인트 실력을 아낌없이 발휘해 30장짜리 아름다운 매뉴얼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아니면 꿈에 선들 잊힐리야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카피를 넣은 이메일을 보낼 수도 있고요. SMS, MMS, 카카오 알림 톡도 보내봤고, 팝업도 띄어봤고, 뱅글뱅글 돌아가는 캐러솔 형태의 알록달록한 공지를 띄어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어떤 활동은 효과가 있기도 했습니다만, 열에 아홉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수차례 시행착오 끝에 제가 내린 나름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첫째. 사용자는 신규 기능에 크게 관심이 없다, 둘째. 그러니 당연히 내가 쓴 매뉴얼과 이메일과 공지를 읽고 싶어 하지 않는다. 셋째. 결국 완성도 높은 매뉴얼을 만드는 것보다, 한 줄짜리 문장을 화면 위에 집어넣는 게 나을 수 있다. 아아. 한낱 파워포인트 기술로 먹고 살아온 저 같은 마케터에게는 억장이 무너지는 현실이지만, 어쩌겠습니까. 받아들여야죠.  

 

이렇게 시행착오를 겪은 뒤 눈을 돌린 곳이 바로 UX였습니다. 지난해 초, 회사 프로덕트 사용자의 User Journey(사용자 여정)를 그대로 따라가며 곳곳에 숨은 맹점(pain point)을 찾아내는 작업을 했습니다. 사용자 입장이 되어 사용해 보니, 내가 무슨 실수를 하고 있는지가 확연히 보이더군요. 막다른 곳에 다다르거나 기능 작동에 어려움을 느낄 때, 즉 막상 필요할 때 이놈의 매뉴얼이나 가이드가 나타나지 않아 여러 번 좌절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뼈 빠지게 만들어둔, 그것도 내가 직접 작업한 매뉴얼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매뉴얼은 도움말이나 메뉴에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지만, 이미 어려움에 봉착하여 짜증이 난 사용자(나)는 그곳을 찾아 들어갈 여력도 마음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결국 작업을 완료하지 못하고 이탈해버렸죠. 그렇게 우리 프로덕트는 실패하고 있었던 겁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기능을 설계하는 기획자, UX 디자이너, 개발자가 매뉴얼의 존재를 몰랐거나 알았다고 하더라도 사용자에게 어떤 방법으로 보여줘야 좋을지 생각해보지 못했고, 마케터는 매뉴얼이 있는 것도 알고 멋들어지게 안내할 수도 있지만 막상 사용자가 언제 필요로 할지를 몰랐던 겁니다(제대로 고민해보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하겠죠). 만약 프로덕트 설계 과정에, 하다 못해 목업 디자인 과정에 마케터가 처음부터 참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UT(User test)에 마케터가 참여해 실제 사용자들이 어려움을 느끼는 지점을 파악하고 그곳에 매뉴얼이나 마케팅 텍스트를 심었다면, 혹은 사용자들이 주목하는 시점이나 잠시 로딩을 기다리는 타이밍을 발견해 그곳에 훌륭한 CTA(Call to Action) 버튼을 심어두었다면? 우리 프로덕트의 성과는 지금과 꽤 달랐을 겁니다.

 

 

마케팅 카모플라쥬(Camouflage)

자 이제 마케터의 할 일이 정해졌습니다. 사용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사용자가 필요한 순간에, 아주 자연스럽게 마케팅 의도나 가이드를 살짝 집어넣는 것입니다. 마케터의 흑심을 UX에 섞어 두는, 이른바 UX 속 마케팅 위장 전술(카모플라쥬, Camouflage)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여기 제가 아주 애정해 마지않는 앱, 왓챠(WHATCHA)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왓챠 헤비 유저들은 아마도 다른 콘텐츠 앱과는 차원이 다른 추천 퀄리티에 매료되었을 겁니다. 저도 그렇거든요. 왓챠는 엄마도 모르고 남편도 모르는 나의 은밀한 취향을 용케 알아냅니다. 추천해주는 작품들을 안 보고 배길 수 없게 만들죠.

 

 

 보이시나요. 이 덕후의 취향을 저격하는 훌륭한 추천 리스트가

 

사용자가 좋아라 할 만한(높은 평점을 줄 만한) 콘텐츠를 콕 집어 보여주는 추천 시스템은 왓챠 서비스의 핵심 가치(Core Value)입니다. 이 추천 시스템이 얼마나 정교 한 지에 왓챠 서비스의 사활이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왓챠는 사용자들에게 작품에 평점 매기는 것을 적극 장려합니다. 그래야 수많은 사용자들의 평점 데이터가 쌓이고, 그것을 기준으로 정교하게 그룹핑된 유사 취향 사용자 그룹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왓챠는 쌓인 추천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용자 A가 속한 유사 취향 사용자들의 플레이리스트를 참고하여 A가 좋아할 확률이 높은 영화를 골라낼 수 있는 겁니다. 자 이제 왓챠의 마케터에게 무슨 과제가 주어질지, 눈에 보이지 않습니까? 추천 시스템을 더 정교하게 만들 수 있도록, 사용자들이 가급적 많은 작품에 평점을 매기게 만들어야 겠죠.


왓챠의 마케터는 이 지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아주 똑똑한 카모플라쥬 전술을 구사합니다. 우선 앱을 처음 설치하면 그 어떤 단계도 이전에, 심지어 이용권 구매보다 먼저, 최소 10개의 관람작에 대한 별점을 매겨야 합니다.

 

 

 카피라이팅 센스가 빛나는 칭찬 멘트들.

 

이게 하다 보면 은근히 재밌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별점을 매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죠. 더 재밌는 건 별점 매긴 수가 늘어갈수록 시기적절하게 칭찬도 해준다는 겁니다. 33개 쯤하고 나면 우리 엄마도 잘 안 해주던 칭찬도 해주고…그래서 더 신나고….

 

이렇게 별점 매기기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앱 홈으로 들어가기 직전, 그 잠깐의 로딩타임도 왓챠는 놓치지 않습니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로딩 이미지 아래에 ‘취향 분석 중’이라는 안내 멘트가 뜹니다. 이걸 본 사용자는 무의식 중에 ‘아, 왓챠는 취향을 최우선으로 콘텐츠를 큐레이션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죠. 앱 하단 메인 메뉴바에는 ‘평가하기’가 주요 메뉴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기를 누르면 언제든 작품에 별점을 메기는 즐거운 작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요.

 

 

 

왓챠의 마케터는 사용자의 추천 참여도를 늘려야 한다는 골을, 오버레이 팝업 같이 사용 흐름을 방해하는 도구를 쓰지 않고도 훌륭히 달성하고 있습니다. 앱 기획 단계에서부터 마케터 혹은 카피라이터, 그도 아니라면 무지막지 센스가 좋은 기획자가 참여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멋진 카모플라쥬입니다.

 

 

아주 간단한 마케팅 카모플라쥬 방법론

자, 이제는 마케팅 카모플라쥬를 직접 구사해 볼 차례입니다. 이 방법은 제가 주로 쓰는 건데요, 솔직히 방법론이라 칭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간단한 겁니다.

 

하나. 마케팅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생각하기: CTA 찾기

마케터는 항상 마음에 CTA(Call to Action)라는 시들지 않는 꽃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본디 마케터란 다양한 목표를 가슴 가득 품고 있는 욕심쟁이거든요. 사용자가 내가 만들어둔 매뉴얼을 봐주었으면 좋겠다던가, 이왕 우리 앱을 설치했으면 뉴스레터도 구독해줬으면 한다던가 하는 식이죠. 우리는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골, 즉 CTA가 무엇인지를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플러스알파의 욕심들은 잠시 백로그에 넣어두기로 합시다.

 

둘. 사용자의 최종 액션으로 가는 여정 탐험하기

사용자가 되어 프로덕트를 사용해봅시다. 이때 중요한 건 정말 사용자의 관점으로, UT의 참여자가 된 듯 사용해 보는 겁니다. 동시에 마케터의 입장에서 아래와 같은 질문들에 대해서도 답해봐야 합니다.

 

첫 랜딩 시 가장 먼저 하는 액션은 무엇인가?

계속해서 사용하게 되거나 기억에 남는 영역/기능은 무엇인가?

아예 사용하지 않거나 주목하지 않게 되는 영역/기능은 무엇인가?

인지는 했지만 그냥 지나쳐버린 영역/기능은 무엇인가?

사용하려고 했으나 실패하게 되는 기능이 있는가?

문제에 봉착했을 때 가장 먼저 시선이 가는 곳이나 가장 먼저 취하게 되는 액션은 무엇인가?

 

위 질문들은 CTA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변주해볼 수 있을 겁니다. 가령 왓챠의 경우, 마케팅 CTA는 ‘추천하기’라는 사용자의 능동적인 액션이므로 ‘첫 랜딩 시 가장 먼저 하는 액션은 무엇인가’나 ‘계속해서 사용하게 되거나 기억에 남는 영역/기능은 무엇인가’ 등 사용자의 눈길을 끌면서도 액션 하기 용이한 지점에 집중해서 UT 하면 좋습니다. 만약 CTA가 ‘카드 정보 등록’이고 마케터는 이 등록 단계에서의 이탈을 막아야 한다면, 실제 이탈하게 되었던 지점을 찾아서 그곳에 이탈을 방지하는 마케팅 문구나 장치를 심을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사용자 여정 탐험 단계를 거치다보면, 메시지를 심어야 할 최적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셋. 하고 싶은 말 자연스럽게 심어두기

이제 본격적으로 마케터가 나설 차례입니다. 수년간 갈고닦은 카피라이팅 실력을 발휘해 액션을 유도하는 결정타를 날리면 됩니다. 왓챠가 ‘로딩 중’을 ‘취향 분석 중’으로 변주한 것처럼, 프로덕트의 핵심 가치에 기반한 멋진 멘트를 날려보세요. 사용자가 실제 걸려 넘어지는 허들을 발견했다면, 그 지점에서 기다렸다는 듯 사용 가이드를 내밀 수도 있습니다. 이때 명심해야 할 것은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가이드를 내밀어 준답시고 10분짜리 튜토리얼 비디오를, 그것도 아예 아웃 링크로 보내버리는 건 오히려 이탈을 장려하는 꼴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항상 CTA를 마음의 이정표 삼아 그 목표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사용자의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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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터 동지 여러분. 오픈율 0.1%를 위해 밤낮으로 이메일 제목을 고민하는 것도 좋지만, 사용자가 언제 내 얘기를 집중해 들어줄 것인지를 먼저 고민해 봅시다. 할 수만 있다면 개발자와 기획자 사이로 혈혈단신 뛰어들어가 프로덕트 기획 단계에 동참해보세요. 우리가 놓치고 있던 오픈율 100%의 효과를 가진 노다지 영역이 프로덕트 여기저기에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 남미미 작가님,

UX 공부하는 마케터. 마케팅, UX, 서비스 기획에 대한 글을 쓰고 번역합니다. 생각하는 대로 살아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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