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답시대에 Z세대가 나타났다

Z세대는 시대를 반영한다 (1)

심두보

2020.06.08 20:40 조회수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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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밀레니얼 세대다. 1984년생이니 구분하자면 '초기 밀레니얼 세대(Early-millenial generation)'이다. 두 차례 큰 경제적 사건을 겪었다. 이른바 외환위기(1997년)와 글로벌 금융위기(2007년~2008년)다. 이 두 사건은 우리나라를 송두리째 흔들었다. 수많은 기업이 도산했다. 근로자의 여건도 큰 변화를 맞이했다. 기업 내 행태 역시 크게 뒤집어졌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과 서거, 그리고 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란 정치적 대사건도 경험했다. 이 두 사건은 모든 국민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특히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의 기폭제가 되었다. 세월호 사건도 있었다. 안전 불감증과 부적절한 대응, 정치권의 무능 등이 도마에 올랐다. 모두가 분노했다.

 

세대는 사건을 공유한다. 10대와 20대에 겪은 여러 사건은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세대의 성격에 내재화된다. 즉, 경험은 세대의 일부 성격을 형성한다. 

 

Z세대는 무슨 일을 겪었을까? 그리고 어떤 일을 겪고 있을까? 우리는 시계를 돌려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세대와 세대를 구분 짓는 사건을 알아내고, 또 그것이 어떤 함의를 지니고 있는지 유추해볼 수 있다. 시간의 연속성 위에서 세대를 분절하는 사건은 무엇이 있었을까? 

 

 

2005년

황우석 박사팀의 배아줄기세포 논란

 

Z세대의 리더 격인 1995년생을 기준으로 생각해보자. 그들이 11살이 되던 2005년엔 '황우석 박사 팀의 배아줄기세포 논란'이 있었다. 이 논란은 아주 오랜 기간 우리나라의 화두였다. 누군가는 그를 영웅처럼 여겼다. 또 다른 많은 사람은 그를 희대의 사기꾼으로 간주했다. 영웅주의와 마녀사냥이 이처럼 첨예하게 드러난 사건은 드물었다. 

 

이 사건은 '애국'과 '공정'이란 가치가 충돌한 사례이기도 하다. 이 두 가치는 우리나라의 시니어 세대와 주니어 세대의 대립에도 연관된다. 

 

전 서울대학교 수의과 대학 교수였던 황우석 박사는 2004년 <사이언스>지에 인간 체세포를 이용한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일약 스타 연구자로 부상한 그는 언론플레이에도 능했다. 2005년 7월 26일 KBS 열린음악회에서 클론 공연 다음 차례에 등장해 "휠체어 댄스를 선보인 강원래를 벌떡 일으켜 과거의 화려한 몸놀림을 다음 열린음악회에서 볼 수 있길 바란다"는 발언을 던졌다. 또 고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 "당신을 치료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학교', '세계 최초', '불치병 치료법' 등 자극적인 수식어는 황우석 박사를 연구자가 아닌 영웅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5년 11월 의 폭로로 시작된 논문 조작 논란이 사실로 밝혀졌다. 그리고 서울대학교는 황우석 박사에게 파문 처분을 내렸다. 

 

황우석 박사가 국민의 영웅으로 떠오르며 수많은 책이 나왔다. 특히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도서는 인기를 끌었다. 당시 10대는 속칭 '황우석 위인전'을 접했다. 책의 내용은 형편없었다. 대부분 황우석을 우상화한 내용이었다. 논문 조작 사건이 터지기 전 한 초등학교에서 진행된 조사에서 황우석 박사와 같은 과학자가 되겠다는 응답이 가장 많이 나왔다. 2005년도와 2004년도 수의대 지원율도 대폭 상승했다. 그러나 출판사는 책을 급히 회수해야 했고, 수의대 지원율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Z세대는 더 이상 '영웅'을 쫓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 어떤 세대보다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능숙한 그들은 오염된 정보에 노출되기도 했지만, 또 모든 정보가 사실이 아님도 인지하고 있다. 정보를 찾아내는 일에 능숙한 Z세대는 시간에 지남에 따라 그들을 속이려는 정보를 걸러내는 능력이 강해지고 있다. 황우석 사태는 Z세대가 10대에 접어들며 겪은 첫 번째 전 국민적 광풍이었다. 일시적인 추종의 위험성을 직접 경험한 그들은 정보가 어떻게 조작될 수 있으며, 그리고 그 조작된 정보가 어른들과 언론마저 혼돈으로 밀어 넣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2006년

반기문 전 외교통상부 장관 UN 사무총장 당선

 

황우석 사태로 애국주의의 부작용이 우리나라를 할퀴었지만, 여전히 '국뽕'은 인기가 있는 카테고리였다. 국뽕은 국가의 '국'과 히로뽕의 '뽕'이 합쳐진 말이다. 국수주의 민족주의가 심하며 타민족에 배타적이고 자국만이 최고라고 여기는 행위나 사람을 일컫는다. 

 

반기문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2006년 10월 14일 뉴욕 UN 본부에서 열린 UN 총회에서 2007년 1월 임기가 시작되는 제8대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되었다. 직후 반기문은 우리나라의 영웅이 되었다. 황우석 박사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책이 쏟아졌다. 역시나 초등학생을 위한 '위인전'에 반기문에 대한 내용이 올랐다. 

 

많은 부모 세대는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을 '롤 모델'로 이야기했다. 가난한 시절을 거친 그가 세계 최대의 조직의 수장을 맡았기 때문이다. 이런 성공 신화는 베이비 붐 세대에 익숙하다. 고도성장기엔 개천에서 용이 났다.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은 공기관, 사기업, 비영리기구 등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 그들도 나름 어려운 여건을 노력으로 극복했지만, 지금 시대와 비교하면 바늘구멍 통과하기는 그때가 더 나았다. 

 

 

그러나 반기문은 청소년의 영웅으로 거듭날 순 없었다. 부모 세대의 성공 신화가 더 이상 그들의 것이 아니란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직에서의 성공은 그들의 선망의 대상도 아니었다. 오랜 시간 공들인 반복적인 노력보다 개성과 창의력 등이 Z세대에게 더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2007년

신정아 가짜 학위 파문

 

'미술계의 신데렐라'로 불리던 신정아 동국대 조교수 겸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의 대학 학위가 모두 가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건은 밀레니얼과 Z세대가 '사회적 증명 세스템'을 불신하게 된 결정적 계기 중 하나로 거론된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우리나라는 각종 '맥'이 거미줄처럼 얽혀있었다. 어느 중학교와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를 나왔는지, 그리고 어느 지역 출신인지는 의례 묻는 질문이었다. 

 

채용 과정에서도 '맥'을 파악하기 위한 여러 절차가 너무도 당연했다. 은행은 부모가 하는 일을 적게 했다. 부모가 자산가이거나 기업의 임원 혹은 대표라면, 암묵적인 가산점을 부여했다. 공기업 채용 과정에서도 낙하산 채용은 비일비재했다. 이런 일이 일어나도 당시 인사 담당자는 으례 일어나는 일처럼 여겼다. 실제 그랬다. 

 

Z세대는 이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부잣집 자녀로 태어난 누군가를 부러워는 해도 비난하지 않는 Z세대는 불공정한 행태에 대해선 단호한 태도를 보인다. 신정아 사건을 계기로 학력검증 열풍이 분 것도 이런 세대 변화를 반영한 결과다. 주로 연예인들이 학력 위조 사실을 스스로 밝혔다. 불공정한 행위를 한 게 들킨다면 이들은 영영 주니어 세대의 공감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오히려 스스로 밝히는 편이 나을 것이라 그들이 판단한 셈이다.  

 

 

한화 김승연 회장 보복 폭행


재벌과 Z세대는 상극이다. 특히 지금의 재벌을 지배하는 사람들은 창업주가 아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2세, 3세 후계자들이다. 재벌 시대를 온몸으로 겪었던 베이비 붐 세대는 재벌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에도 우호적이다. 그들이 경제 성장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Z세대가 보기에 재벌은 너무 낙후된 개념이며, 지금의 2세, 3세오너는 그저 운이 좋은 누군가일뿐이다.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의 아들이 술집에서 시비가 붙어 다치는 사건이 일어났다. 김승연 회장은 2007년 3월 8일 경호원과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가해자에게 보복 폭행을 저질렀다. 김 회장은 북창동 클럽의 종업원들을 청계산으로 끌고 갔으며, 쇠 파이프와 전기 충격기로 고통을 가했다. 이런 일을 저지르고도 김 회장은 징역 1년 6월과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명령 200시간이란 솜 방망이 처벌만 받았다. 또 경찰은 한화의 청탁으로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했다. 

 

자녀의 일에 불법적인 방식으로 대응한 금수저 부모의 행태는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또한 이 사건은 공권력에 대한 밀레니얼과 Z세대의 불신에 기름을 부었다. 

 

 

2008년

미국 쇠고기 파동과 촛불집회

 

2008년, Z세대의 가장 앞선 1995년생이 14살 중학생이 되던 해다. 4월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었고, 시민단체와 야당은 '졸속 협상'이라고 비판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쇠고기 협상에 대한 불만이 터졌다. 급기야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왔다. 전국적으로 촛불집회는 무려 100일 넘게 이어졌다. 당시 중학생과 고등학생도 시위에 대거 참여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는 억압적이고 진부한 충고는 힘을 잃었다. 일부 언론에선 학생의 시위 참여가 선동에서 비롯된 것이란 지적을 내놓았지만, 동조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인터넷 세대인 그들은 누구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접하고 있었다.

 

결국 정부는 미국과 추가 협상에 나섰다. 정부는 조건을 수입 연령을 30개월 미만으로 제한하고, 소의 머리뼈와 척수는 수입금지 품목에 넣는 등의 양보를 얻어냈다. 

 

하지만 촛불시위에는 명백한 오점도 있었다. 바로 정보의 불확실성이다. 인터넷에선 수많은 정보가 쏟아졌지만, 어느 게 맞는건지 가려내긴 힘들었다. 언론은 인터넷에게 밀렸다. 신뢰를 잃은 언론은 게이트기퍼(Gate keeper)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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