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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기획자는 어디까지 중요해질 수 있을까?

클로이

2018.10.03 18:28 조회수 2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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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뒷북을 좀 쳤습니다. 링크드인이라는 서비스를 이용해 보기로 한 것입니다. 살짝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가입을 했지만, 신상정보를 등록하는 절차에서 급격하게 시무룩해졌습니다. '보유기술'을 '키워드'로 나열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다른 직군의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개발자는 자바스크립트, 루비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적으면 되었고, 디자이너도 포토샵, 일러스트처럼 사용하는 툴을 적었습니다. 보유기술이 뭔가 '있어 보였'습니다. 같은 맥락이라면 콘텐츠 기획자는 워드나 파워포인트를 써야 하는 것일까? 정말 '없어 보였'습니다. 짜증이 났습니다만 링크드인 서비스가 제공하는 다음 단계가 궁금하여 일단 빨리 칸을 채워야 했기 때문에 '콘텐츠 기획', '작문', '커머스 운영'이라는 두루뭉술한 키워드를 입력하면서 신상등록을 끝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아도 참 후졌네요. 기획, 작문, 운영이라니. 보유기술이 아무것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군요! 이대로 둔다면 링크드인을 통해 취업의 기회가 열릴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이런 일은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만듭니다. 나는 뭘 하는 사람일까? 내가 하는 일은 가치가 있을까? 고민을 거듭할수록 잊고 있었던 내 안의 빨갛고 적나라한 욕망도 정직하게 튀어나옵니다. 커머스에서 콘텐츠 기획자는 어디까지 중요해질 수 있을까? 만약 사업이 커지고 돈 버는 구조로 바뀌면 콘텐츠 기획자도 '운영진'이 될 수 있나? 그게 통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고 한다면 결국에는 디자이너, 마케터가 다 해 먹지(?) 않나? 

 

콘텐츠 기획자가 보유기술을 키워드로 정리하지 못하는 것은 개인 역량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일단 주어지는 업무 자체가 경계에 놓인 경우가 많습니다.  음... 일단 '글자'가 들어가면 다 합니다

▶ 상품페이지나 배너는 물론이고, 이벤트, 기획전, 회사 소개, 슬로건, 제안서, 서비스 안내, 공지사항, 각종 알럿 등 모든 보이는 것은 다 만지작거립니다. 

▶ 카테고리명,  탭명,  상품명 등 각종 '작명'은 물론이고

▶ 푸시, LMS, eDM, SNS, 각종 오프라인 판촉물, 인쇄물, 패키지 등등에 전부 관여합니다.

 

회사의 규모나 성격에 따라 주어지는 범위와 깊이가 조금씩 다를 것입니다. 6개의 회사를 거친 저는 매우 다양한 범위와 깊이로 일을 했는데,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깊게 관여할수록 일하는 맛이 납니다. 근데 매번 억울합니다. 저 많은 일들을 분명 굉장히 열심히 했는데 다 끝나고 나면 프론트 기획자, 마케터, 디자이너, MD가 공을 가져갑니다. 

거칠고 단편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를테면 콘텐츠 기획자가 기획전을 설계했다고 칩시다. 요즘 대세인 '00' 키워드로 기획전을 합시다! 짬이 찬 기획자라서 품목도 손댈 수 있다고 하네요. MD에게 부족한 상품을 좀 더 영업해달라거나, 가격과 할인율을 만져달라고 합니다. 마케팅에는 홍보를 요청합니다. 홍보용 콘텐츠를 직접 만드는 경우도 많습니다. 리소스 확보를 위해 촬영팀과도 협업하고 디자인 작업에도 초정밀로 따라붙습니다. 마지막으로 진열, 배열을 손 봅니다. 짠, 기획전이 대성공했습니다! 결과를 보고해야죠. 신규 유입은 마케팅에 잡히고, 매출은 MD에게 잡힙니다. 콘텐츠 기획팀은요? '예쁘게'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억울해 죽겠는데 그냥 '예쁘게' 만드는 것만 집중할까요? '예쁘게 촬영해야 하니까 콘셉트 고민하게 일주일만 주세요. 톤 앤 매너를 재정비할 수 있도록 한 달만 상품 론칭 멈춰주세요.' 받아들일 수 있는 회사가 있을까요? 그렇다면 콘텐츠 기획자의 업무 평가 역시 예쁘다/안 예쁘다로 접근해서는 안 되는 거겠죠. 

커머스는 기본적으로 '숫자'를 맞추는 업입니다. 그런데 콘텐츠는 수치화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수치화할 수 없는 영역이므로 적당히 '적극성', '인성', '협업 능력', '야근 시간' 같은 걸로 평가하면 될까요? 이 고민은 과연 누가 해야 하는 것일까요? 

 

(콘텐츠 기획이 확 도드라져 보이는 모델도 있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29cm입니다. 그렇다고 '그럼 너도 29cm 에디터처럼 우리 회사만의 목소리를 만들어봐' 하면 안 됩니다. 조건이 달라요. 일단 29cm는 가격과 볼륨으로 경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브랜드의 발굴, 콘텐츠 제작 쪽에 더 초점화 되어 있습니다. 인력 배치 자체도 콘텐츠팀에 과중되어 있다고 해요.

딴 얘기이지만 판매 수수료가 아닌 다른 형태로 수익모델을 만들지 않으면 돈을 벌기 어려울 것 같아요. 투자자가 무한하진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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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머스란? Product / Price / Promotion +a로 행하는 종합예술

 

보따리장수가 팔고 싶은 것을 떼다가 필요로 하는 곳에 파는 것이 유통의 시작이었습니다. 요즘 다들 기피하는 '매입'이 기본 포맷이네요! 그래도 마진이 남아요. 왜냐면 바닷가에서 소금을 싸게 사다가 산골짜기에서 비싸게 팔 수 있으니까요. 즉 과거에는 유통업자는 상품과 가격을 컨트롤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요즘은 어떨까요? 상품의 종류와 가격을 소비자가 더 잘 압니다. 판매자와 구매자를 구분 짓던 정보의 갭이 사라졌습니다. 가격 가지고 장난도 못 쳐요. 상품과 가격. 가장 중요한 두 개의 꼭지가 날아갔습니다.

판촉은 어떨까요. 사은행사, 증정 행사, 페이백, 친구 추천, 가입 이벤트... 뭐 새로운 거 있나요? 컨트롤할 수 있는 건 시의성뿐. 게다가 내가 하면 남들도 똑같이 따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꼭지가 또 날아갔습니다.

이제 커머스라는 업태 자체에 커다란 의구심이 듭니다. 

 

3p가 평준화되었으니 남은 구분자는 +a뿐입니다. 

 

어떤 접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할 것인가?

 

이걸 잘할 수 있는 기회가, 다른 어느 부서보다 콘텐츠 기획자에게 많이 열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이나 물류의 혁신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이 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저도 아직 잘 잘 모릅니다만 이상하게도 벌써부터 콘텐츠 기획자가 커머스의 Key가 될 것 이라는 청명한 예감이 드네요. 

 

정해진 상품, 가격, 프로모션을 '언어화', '이미지화' 하는 차원에서 벗어납시다. 서비스의 가치를 고민하고 판매 방식을 설계하는 역할을 내가 직접 해봅시다. 게다가 콘텐츠 기획자에게는 생각을 '직접' 가시화 할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이 있으니까요. 고민한 사람이 실행하는 것만큼 완벽성이 높아지는 것도 없습니다. 지금 회사가 나에게 그런 역할을 원하지 않아도 상관 없습니다. 

 

온라인으로 간편식품을 판다고 가정합시다. MD가 공급가를 조정하여 할인율을 만들 수 있고 마케팅이 제휴를 통해 사은품을 가져올 수 있어요. 모든 것이 다 정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때 콘텐츠 기획자가 할 일은 10가지 반찬을 어여쁘게 촬영하고, 글에서 맛이 느껴지도록 설명하고, 후킹 요소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겠습니다. 러프한 예시입니다만…. 중요한 건 서비스 전체의 맥락과 궤를 같이해야 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당신의 포기를 응원합니다> 

간편식품을 찾는 당신은 아마도 워킹맘이시군요. 일로 인정받기 위해, 아이에게 더 많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장 보는 시간, 요리하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지요? 괜찮아요. 충분히 잘 하고 있어요. 우리는 당신의 포기를 응원합니다. 

프로젝트 첫번째. 급식에 자주 안나오는 아이들 영양반찬 10선 할인 

이렇게 하면 MD가 공급가를 조정해야 할 상품 리스트도 바뀔 것이고, 사은품도 그 규모와 종류가 달라질 것입니다. 일을 콘텐츠 기획자가 주도할 수 있게 되는군요.

 

더 욕심이 난다면 여기에 '숫자' 입히는 것을 연습하면 좋을 것입니다. 상부에 숫자로 보고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하는 일을 숫자로 바꿔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위의 프로모션의 클릭률이 몇 프로였는지, 페이지뷰 대비 참여율이 얼만큼이었는지, 얼마의 매출로 이어졌는지를 놓치지 않는 것이죠. 이쪽 일을 하는 사람들은 감, 흔히들 센스라 일컫는 능력이 좋은 경우가 많은데, 슬프지만 센스는 보유기술이 될 수 없더라구요. 다시 말하지만 커머스는 결국 숫자를 맞추는 일이니까요.

 

 

열심히 고민했지만 아직은 생각이 많이 체계화되지 못했습니다. 링크드인에 입력할 보유기술 키워드를 수정하려면 조금 더 치열해져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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