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면서 인쇄매체들은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신문을 보던 사람들은 PC와 스마트폰으로 뉴스 콘텐츠를 소비하기 시작했고, 책과 잡지를 보던 사람들은 시의성을 더 갖추고 빠르게 소식을 접할 수 있는 SNS에서 정보를 습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신문과 잡지 발행 부수는 전 세계적으로 점차 줄어들게 되었고 신문보다 신속성이 더욱 떨어지는 잡지(매거진)의 경우는 심지어 폐간하는 사례들도 생겼습니다. 북미만 하더라도 2015년 한 해에만 591개의 잡지가 폐간했습니다. 신문은 그 다음날에라도 볼 수 있기에 시의성이 기본적으로 갖춰지지만 주간지, 월간지의 형태를 띤 매거진의 경우는 이미 소비된 콘텐츠를 '다시'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07년 발간 이후 4년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발행 부수 기준으로 매해 7% 이상 성장하고 있는 매거진이 있습니다. 바로 영국에서 발간하고 있는 트렌드 잡지이자 글로벌 매거진인 '모노클(Monocle)'입니다. 모노클은 디자인, 트렌드, 비즈니스, 문화, 여행, 패션 등 다양한 카테고리를 소화하고 있는 매거진입니다. 창업주 타일러 브륄레가 9명의 직원과 함께 2007년 2월에 첫 발행한 이 잡지는 10년이 지난 지금 '글로벌 매거진'으로 성장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1년 정기 구독자가 약 2만명에 육박하며 매달 8만부 이상의 잡지가 전 세계로 배달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라디오 방송국을 운영하고 책을 출판하며 브랜드 리테일샵을 운영하는 등 '미디어 브랜드'로서의 변화도 꿈꾸고 있습니다. 어떻게 디지털 시대에, 인쇄매체중에서도 가장 큰 타격을 받았던 매거진 산업에서 매해 성장하는 매거진이 나올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살펴봤습니다.
▲ 모노클 홍보 영상
# 모두를 만족시킬 필요는 없다
일반적으로 매거진은 '카테고리' 기준으로 나뉩니다. 패션 잡지, 여행 잡지, 디자인 잡지 같은 식이죠. 물론 타겟도 이 카테고리에 관심이 있는 독자인지, 아닌 독자인지로 나뉩니다. 하지만 모노클은 '카테고리' 기준의 잡지가 아니라 특정 타겟층을 먼저 정해두고 그 타겟층에 맞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모노클은 "평균 연봉 3억 이상의 1년에 해외 출장을 10번 이상 가며 MBA를 졸업하고 도시에 거주하는 금융, 정부기관, 디자인, 관광산업의 CEO"를 타겟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높은 위치에 있는 분들'이 모노클이 지향하는 독자 타켓입니다. 박리다매 방식으로 최대한 많은 독자를 커버해야 BEP(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는 매거진 업계에서 이렇게 마이너 계층만을 타겟으로 해서 발행하는 경우는 보기 드뭅니다. 이렇게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모두를 만족시키려다가 모두에게서 외면받는 매체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특히 모노클이 지향하는 '저널리즘'은 대중 다수가 알아야 하는 저널리즘이 아닙니다. '매스 저널리즘'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죠. 우리가 제공하는 정보를 모든 사람이 알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독자층에게만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식으로 '순서'가 바뀐 셈입니다. 그렇게 특정 타겟을 향해서만 움직였더니 잡지는 서서히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 독자 '유치'가 아니라 독자 '유지'에 집중하다
모노클은 신규 독자를 '유치'해 발행부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독자수는 적더라도 양질의 독자를 '유지'하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생각했습니다. 유치와 유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유치의 경우 다수를 끌어모으더라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확실하지 않지만, 유지를 목적으로 할 경우 운영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모노클은 유치가 아닌 유지를 그들의 목적으로 세웠습니다. 이를 위해 '발행 원칙'을 세웠습니다.
• 한 번 읽고 던져버리는 잡지가 아니라 다 읽는데 2주 넘게 걸리는 잡지를 발행하자.
• 언제든지 돌아가서 읽고 또 읽고 싶은 잡지를 발행하자.
• 보관 가치가 있는 잡지를 발행하자.
이 원칙 모두 '유치'가 아닌 '유지'를 위한 원칙이었습니다.
또한 '팔아 치우기'식 마케팅을 지양했습니다. 모노클은 연간 구독 할인과 같이 일반적인 잡지들이 활용하는 마케팅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1년 정기 구독 가격이 더 비쌉니다. 1권 가격은 7파운드(한화 약 13,000원)이지만 1년 정기 구독을 하게 되면 12개월 동안 매달 잡지를 구매하는 것보다 더 비싼 100파운드(한화 약 180,000원)를 지불해야 합니다. 정기 구독을 하게 되면 통상적으로 할인을 해주는 일반적인 마케팅과는 확연히 다르죠. 대신 모노클은 1년 정기구독을 하게 되면 모노클 웹사이트에서 기사를 볼 수 있고 구독 기간에 따라 선물을 받을수 있으며 모노클에서 주최하는 비즈니스 클럽과 정기적인 이벤트에 초대 받을 수 있습니다.
▲ 모노클 정기 구독의 혜택 (출처:모노클 홈페이지)
모노클 독자들은 대부분 1년 정기 구독을 합니다. 잡지가 담는 고퀄리티의 콘텐츠도 물론 선호하지만 하이 레벨의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선물과 이벤트 초대권을 나도 누릴 수 있다는 점을 더 선호합니다. 이를 통해 모노클에 대한 강한 심리적 소속감을 느끼게 되고 모노클 독자임을 '인증'하고 대우 받는 느낌을 받게 되는 거죠. 어디가서, "나 모노클 정기구독해!"라고 말했을 때 선망의 눈빛을 겨냥하는 것도 없지 않습니다. 결국, 내가 읽는 미디어가 나를 나타낼 수 있다는 점을 모노클은 100% 활용하고 있습니다.
# 전통 매체도 달라지면 매력적일 수 있다
모노클의 탄생 일화는 유명합니다. 타이럴 브륄레가 공항에서 목격한 일화로 오늘날의 모노클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습ㄴ다. 공항을 가게 보면 서점이 꼭 하나씩 있는데 어느날 공항에 있던 브륄레는 이 곳에서 사람들이 어떤 잡지를 구매하는지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이코노미스트를 구매한 사람도 있었고, GQ를 구매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직도 잡지가 누군가에게는 매력적인 매체일 수 있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든 생각은,
"이코노미스트(비즈니스 경제잡지)와 GQ(패션&문화잡지)를 섞어서
매거진을 발행하면 이 잡지도 매력적이겠다!"
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별거 아닌 발상일지도 모르지만 카테고리 기준으로 나눠지고 있던 매거진 시장에서 카테고리를 병합해 여러 카테고리를 동시에 다루는 일은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일명 '짬뽕 매거진'이 될 수 있는 확률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타겟층을 '하이레벨의 독자'로 정하면서 이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이 타겟층은 사회에 관심이 많고 정보의 습득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여러 분야를 '전문가' 같이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덕분에 여러 주제를 다루고 있어도 '선택'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의 주제를 다루는 전문 잡지보다 여러 주제를 동시에 다루는 전문 잡지를 이 타겟층은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혁신은 1년 정기 구독을 할 경우 '해외 배송료가 없다는 점' 입니다. 같은 잡지를 나라, 도시에 따라 차별적인 가격으로 받아봐야 한다는 것을 타이럴 브륄레는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영국과 가까운 독자들은 저렴하게, 영국과 멀리 있는 독자들은 비싸게 같은 잡지를 봐야 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죠. 그래서 과감하게 정기 구독 시 해외 배송료를 폐지했습니다.
▲ 모노클은 비즈니스 경제 잡지 '이코노미스트'와 패션 잡지 'GQ'를 섞은 형태로 선보여졌다. (출처:http://www.lambtoslaughter.co.uk)
모노클은 매거진뿐만 아니라 전통 매체 중에 하나인 '라디오'도 2011년부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명 '모노클 24 라디오' 입니다. 24시간 동안 라디오 방송이 송출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죠. 모노클 24 라디오 채널이 만들어진 계기가 재밌습니다. 높은 분들이 자동차 또는 비행기로 이동하면서 즐길만한 콘텐츠가 없다는 점에서 라디오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이동하는 공간에서 시각적인 콘텐츠를 즐기는 것이 힘드니 차분하게 눈을 감고서도 들을 수 있는 '오디오 콘텐츠'에 대한 니즈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노클 라디오에서는 팟캐스트와 같이 다양한 호스트들이 오디오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데일리 브리핑부터 시작해서 시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고퀄리티의 오디오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모노클 24 라디오'는 이 팟캐스트 프로그램들을 엮어 24시간 편성표를 만들어 송출하는 식입니다. 지금 라디오를 켜면 어떤 프로그램이 나올지 모르지만 언제든지 들어도 '도움'이 되는 오디오 콘텐츠가 나온다는 확신이 있기에 선택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피할 수있습니다.
▲ 모노클이 운영하고 있는 팟캐스트 서비스 (출처:모노클 홈페이지)
▲ 모노클은 하이레벨 사람들이 선호할만한 주제로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있다. (출처:모노클 아이폰 앱)
# 잡지를 넘어 하나의 브랜드가 된 '모노클'
오늘날의 모노클은 매거진 사업뿐만 아니라 단행본 출판(ex.더 나은 삶을 위한 모노클 가이드), 컨퍼런스 (ex.삶의 질 컨퍼런스), 가이드북(ex.모노클 도쿄 여행 가이드북), 리테일샵(ex.MONOCLE SHOP)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거진 회사가 별 걸 다 한다며, 문어발 사업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모노클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모노클은 독자들로 하여금 잡지를 구매하게큼 하려면 '브랜드' 파워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나의 '선택'이 나의 취향과 수준을 간접적으로 알려주기에 브랜드력이 있을 경우 '미디어'도 나를 설명해줄 수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보는 것이 나를 설명해준다, 이 원칙을 모노클은 지향했습니다.
런던, 뉴욕, 토론토, 도쿄,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만날 수 있는 '모노클샵'과 '모노클카페'는 각 도시별로 모노클 매니아들을 불러모으는 커뮤니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새로운 고객들에게 모노클이 무엇인지, 모노클의 브랜드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홍보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죠. 또한 기존 독자들과 의견을 교환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 곳에서 지역 주민들은 커피를 마시면서 모노클 잡지 뿐만 아니라 모노클이 큐레이션한 책들도 둘러볼 수 있고 모노클의 디자인 상품들도 이 곳에서 만나볼 수 있죠. 이 곳의 BGM은 모두 모노클이 운영하고 있는 '모노클 24 라디오'입니다. 모노클이 가지고 있는 모든 콘텐츠를 오프라인에서 경험할 수 있게 해놓은 '집약체' 같은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모노클 카페에서 만날 수 있는 모노클 굿즈 (출처:http://retaildesignblog.net)
▲ 모노콜은 매거진 회사를 넘어 하나의 브랜드가 되고 있다 (출처:https://s-media-cache-ak0.pinimg.com/)
매거진 회사가 이런 오프라인샵을 만든 배경을 두고 창업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매거진 회사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매거진 소비 환경을 바꿔보고 싶었고,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 마치며
Keeping an eye and an ear on the world, 바로 모노클의 슬로건입니다. 세상에 대한 눈과 귀를 유지하라고 요구합니다. 모노클은 전통 매체에서 계속 새로움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올해 8월부터는 첫 주간 신문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잡지, 신문, 라디오, 오프라인샵 등 전통적이고 아날로그 적인 매체와 공간에서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는 모노클. 디지털 시대에 무조건적으로 우린 졌다, 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디지털 시대에서 아날로그, 그리고 전통적인 매체가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깊게 고민해보고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해당 글은 네이버 오디오클립 '중앙일보 언니들의 듣다 보면 똑똑해지는 라디오'의 E03 사표를 고민하는 신입사원을 위한 모노클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1] http://yeoinhae.com/220346714841
^2] http://blog.naver.com/jobarajob/220870286714
^3] http://news.donga.com/3/all/20110526/37566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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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