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NE의 매거진

당신의 아하 순간 (a-ha moment)

STONE

2019.01.25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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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3GS를 처음 산 날, 케이스를 뜯는 그 경험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누런 박스에 포장되어 있지도, 누런 박스테잎에 칭칭 감겨 있지도 않은 그 박스를 앞에 두고 한참을 보고 있었지 않겠어요? 대단원의 박스를 열고 안에 든 내용물을 꺼내려는데 왠걸, 새크라멘토에 사는 패키징 박사 학위를 지닌 20여 명의 연구진들이 집요하게 고민한 듯한 박스 퍼즐이 하나씩 나오고 그 퍼즐을 다 열었을 때, 비로소 아이폰 3GS라는 신문물이 지문 하나 찍히지 않은 채 당신만을 위해 고귀하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표정으로 제게 모습을 내비쳤습니다.

 

그 전까지 모토로라의 휴대폰을 사용했는데요, 기억하는 한 휴대폰 포장을 제 손으로 뜯어 본 기억은 그 전까지 없었습니다. 통신사 직원이 ‘찍’하고 뜯어서 ‘턱’하고 건내주었죠.

 

 단 한 번 왔던 바에 1년 여 만에 다시 가서 진토닉을 시켰는데, “손님, 핸드릭스 맞죠?” 하고 이미 핸드릭스 진을 따르면서 저를 바라보며 물어봅니다. 즉, 물어본 게 아니라 기억하고 있음을 주지시켜주는 멘트였을 뿐. 하지만 바텐더는 그 말을 할 때 조차 잘난 체는 커녕 무던히 사려깊었습니다.

 

 

 

 

<“a-ha” 이렇게까지 입을 벌리진 않습니다만>

 

가끔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저는 잠시 멍해집니다. 여러가지 표현도 많지만 이러한 사용자 경험을 ‘아하 순간’ 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로열오디언스는 바로 이런 a-ha moment 를 지나는 순간 체결됩니다. 파우스트가 체결하는 약속보다 더 무섭지요. 이 a-ha moment는 바로 로열 오디언스로 가는 초단축 지름길이자 변곡점이 됩니다.

 

 

제가 기꺼이 당신의 물건을 팔아주겠습니다

지난해 많은 강연에서, 많은 강사분들이 카카오뱅크의 콘텐트 마케팅 사례를 언급했습니다. ‘듣보잡’ 인터넷 전문 은행인 카카오뱅크에 어렵게 유치한 고객들의 마음을 빼앗긴 기존 은행의 운영자들로부터 카카오뱅크의 고객유치 요인을 분석해서 보고하라는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다각도로 그 요인을 찾던 사람들이 “카카오 캐릭터가 예뻐서”,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직불카드를 갖고 싶어서” 와 같은 황당한 결론에 도달해 도저히 윗분들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는 웃픈 에피소드들이 카카오뱅크 이야기의 주를 이루었죠.

 

물론, 카카오 캐릭터는 카카오뱅크 고객 유치의 일등공신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카카오뱅크의 어플리케이션을 써봤다면 카카오 캐릭터를 no. 1의 이유로 꼽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네, 솔직히 가지고 싶습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욜로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적금과 같은 금융 상품과 그리 친숙하지 않습니다. 평소 적금을 권유하거나 적금 상품 추천이 되어 있던 수 많은 은행들의 설명이 제 눈에는 온갖 알 수 없는 숫자들을 들이밀면서 “끝내 실은 너님에게 요런 이율 밖에는 못 주지만 10년 정도 저희 은행에 적금이라는 것을 부어보지 않겠습니까?”로 보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카카오뱅크의 적금은 2년 만기의 프로그래스 바를 두고 게임을 하듯 적금을 할 수 있게끔 인터페이스를 선보였습니다. 불필요한 정보를 빼고 기간과 이율을 한 눈에 직관적으로 알아볼 수 있도록 디자인했죠. 적금액을 많이 붓게 하지도 않습니다. 마치 “너의 순간의 라이프는 소중하니까. 적은 돈으로 적금 넣되, 적금의 재미를 깨달을 수만 있다면 나로서는 기쁘기 그지 없어.” 라고 (라이언)이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이율은 적알못인 제가 봐도 명료하게 시중 은행과 차별화를 두었습니다. 넣을 때 마다 응원의 메시지도 보내줍니다. “(프로도가) 너는 할 수 있다. 프로그래스 바에서 벌써 이 만큼 왔어. 너 몇 개월 뒤에 이 만큼 가져간다”

 

  

<이 숫자들을 봤을 때 기존 은행들이 가졌을 충격이란… 이렇다할 광고 하나 없이 말이죠> 출처 – 이투데이

 

 

어느 날은 “(피치가) 그거 알어? 우리 해외 송금도 짱인데?” 하고 제게 말을 겁니다. 해외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할 일이 많은 만큼 거부감 없이 캐나다에 있는 가족에게 해외 송금을 해보았죠. 단 2페이지 화면 전환으로 송금이 완료될 찰나, 적합한 은행 코드가 아니라는 에러 메시지가 떴습니다. 기존 금융관련 ARS를 통해 제 핸드폰에 0부터 9까지 숫자가 어디에 박혀 있는지를 수차례 경험해 본 저로서는 다이렉트로 연결되는 카카오뱅크의 상담 전화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차 저차의 이유로 코드를 잘못 넣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넣어보시면 해결 될 거에요. 지금 말씀해드린 내용은 지금 고객님 카톡으로 보내드렸습니다. 다시한번 확인하실 수 있어요.” 그리고는 통화중에 까똑 하고 울린다.

 

기존 은행들이 해외 은행에 송금하는 시스템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간소한 프로세스를 제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아서 상담원에게 물어봤습니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 송금이 가능하지요?” “그 어려운 걸 저희가 해냈습니다.” – A-ha

 

해외 송금 수수료가 터무니없이 저렴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혹자는, 그런 제 살 깎아먹기 수수료 정책으로는 건강한 운영을 기대하기 어렵다고도 하지만 어디 요즘 비즈니스에서 목숨 걸지 않고 할 수 있는 게 있나요? 그런 재정적인 모험을 하고도 바로 저 위에서 열 다섯 개쯤 나열한 카카오뱅크의 디테일들, 그런 걸 챙기지 못해 정말로 제 살만 깎아 먹다 쓰러진 기업들이 많지요.

 

저는 이 에피소드들을 아마 6,7명의 친구들에게 들려줬습니다. 어느 기업인지 몰라도 저를 판촉 직원으로 쓰려면 만만치 않으리라 생각되지만, 카카오뱅크는 저 같이 영업 사원을 마다 않는 고객을 얼마나 확보했을까요? 그런 고객을 한 명 만드는데 드는 비용을 계산해 보신 적 있나요? 카카오뱅크는 바로 궁극의 목표인 로열오디언스를 만든 것입니다.

 

카카오뱅크는 고객의 언어가 아닌 금융인의 언어에 두 손 들어 버렸거나, 액티브엑스와 공인인증서의 개미지옥에서 영혼이 탈곡된 자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디테일에 대해서라면 집문서를 팔 수도 있어요

미국 아마존에서 물건을 구매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아마존 패킹에 붙은 주소 스티커지는 정말 실크처럼 부드럽게 뜯어집니다. 테잎이 부드럽게 뜯어지는 게 왜 중요할까요? 저 같이 성격이 모난 희귀병에 걸린 소수의 사람들을 배려해서일까요?

 

일단, 한번에 개인 정보가 깔끔하게 뜯겨져 나옵니다. 두 번 세 번 미처 뜯겨지지 않은 주소의 마지막 부분을 손톱으로 뜯어내지 않아도 됩니다. 깔끔하게 뜯어진 박스는 재활용 처리는 물론이고 새로이 박스를 쓰기에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스티커지 뿐 아니라 박스 테잎도 깔끔하게 뜯겨 집니다. 먼지 하나 날리지 않죠. 주문한 상품을 손에 쥐기 전에 그 어떤 스트레스도 받을 여지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그 스트레스를 가하지 않겠다고 작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패킹입니다.

 

몇 해 전, 교보문고의 배송 서비스가 서비스 만족도 1위에 올랐습니다. 교보문고는 책의 포장을 박스 안에 단단한 골판지를 넣고 그 골판지에 진공 테잎으로 책을 밀착시켜 배송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밀봉이 왜 중요했을까요? 쓰레기를 최소화 하면서도 배송 중 어떤 상황에서도 책의 모서리 부분이 상할 염려가 없습니다.

 

 

 

<2015년 인터넷교보문고 패키지 디자인 대상을 받은 디자인. 무려 당시 여대생 4명이 고안한 디자인>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예컨대 교보문고에서 상품 반송의 상당수가 책 모서리의 작은 구겨짐 같은 것임을 알지 않았을까요? 그 반송의 추가 비용으로 잃게 되는 비즈니스 손실에 대해서 계산해 보지 않았을까요? 완벽하고 뜯기 쉬운 패킹으로 배송 고객의 만족도까지 배가 시켰다면? 그러한 패킹을 선택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겁니다. 배송 박스는 더이상 최대한 비용을 절감해야 할 ‘단순한’ 박스가 아니었던 것이죠.

 

 

디테일에 대한 근거(데이터)를 어디에서 얻을까?

이러한 아하의 순간을 만들어내는 디테일들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기업 마케팅팀에 사용자 경험에 초극단적으로 빙의할 수 있는 담당자를 둬야 할까요?

 

웹사이트 트래픽의 98%는 전환 고객이 되지 않으며, 대부분의 모바일 앱은 3일 내에 사용자의 80%를 잃습니다. 그 짦은 한 순간에 ‘a-ha moment’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오디언스는 커녕 다시 그 사람에게 해당 서비스를, 상품을 보여줄 기회조차 잃게 됩니다, 영원히요. 즉, 모든 브랜드는 바로 이 ‘아하순간’을 만들어 내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야 된다는 뜻이죠.

  

<당신이 원하는 웹사이트에서 원하는 페이지를 찾지 못했을 때조차 ‘아하’를 줄 수 있습니다. “Hello, is it me you’re looking for?”  Go home Lionel. Your’re drunk>

 

마케팅팀에 직관의 천재가 있어서 이러한 a-ha moment를 쉽게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현실엔 그러한 위대한 분이 여러분의 마케팅팀에 존재할 확률은 대게 희박하지요. 그리고, 그런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혁신적인 아하순간을 제안하더라도 조직은 그것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대부분의 아하순간은 극도의 디테일들에서 나오는 탄성입니다. 그 작디 작은 디테일들은 운영의 입장에서는 사실 별 거 아닌데 제작(집행) 비용만 상승시키는 일이거든요. 상품과 비즈니스 모델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느냐는 포인트로 생각하면 변방의 문제로 치부될 수 밖에 없습니다.

 

 

데이터가 너희를 자유케 할지니

콘텐트 마케팅에서 완성된 제품이라는 건, 완벽한 서비스라는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실험하고, 분석하고, 병목 지점을 확인하고, 그 지점을 완화시킬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는 일을 병행해야 합니다. 다행히 우리는 디지털의 자식들이고 그 수혜를 인류 역사상 가장 톡톡히 보고 있지요. 적은 비용으로 수 많은 실험들을 진행할 수 있고 그 실험들로 쌓이는 데이터를 유연하게 캠페인과 시스템 운영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개발자님, 저를 가지세요)

 

  

 

그러니 봉준호 감독의 눈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구글 애널리틱스의 데이터라도 유심히 보는 겁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팀에 물어보세요. 고객 설문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디테일을 가질 수 없다면, 아하의 순간은 자신의 서비스가 아닌 다른 서비스에서만 느껴야 할지도 모릅니다.

 

 

김해경

 

Content Marketing Lab Director

 

hara@stoneb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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