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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업 : 진짜와 업자 사이

THINK TANK 최창규

2018.08.28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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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업 : 진짜와 업자 사이

돈 벌려면 진짜 아닌 업자가 되어야 하나

  

 

1/ 업자, 그들의 민폐

(광고) 대행업을 하다 보면 다양한 업종과 성격의 고객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간혹 프로젝트를 위해 사전 혹은 킥오프 미팅을 가면 다소 살벌(?)하고 민망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범인을 심문하는 형사를 연상케 하는 바짝 선 의심의 눈초리, 차가운 말투, 까칠함과 네거티브를 온몸으로 보여주며 저희를 취조(?) 하시고는 하는데요.


대게 이런 반응의 고객분들 대부분은 저희 업에 큰 ‘트라우마’를 겪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소위 업계의 ‘꾼’들, ‘업자’들의 사탕발림에 속아 터무니없는 비용만 지불하고 형편없는 수준의 결과물, 나쁜 서비스 경험을 겪은 경우인데요. 리소스를 엉뚱한 곳에 낭비하고 뒤늦게 바로잡고자 주변 분들의 소개로 저희를 찾아오신 분들이 많다 보니 이런 거부 반응이 어느 정도는 이해됐습니다.


다만 이 일을 오래 할수록 생각보다 ‘업자’들이 흐려놓는 생태계의 피해 정도가 심각하다는 걸 느낍니다. 고객 분들의 소중한 시간과 돈을 낭비할 뿐 아니라 저희 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까지 만들어내고, 이 일에 소명을 가지고 진정성 있게 하시는 동종업계 분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 관련 글 : 대행업에 대한 편견과 오해

  

 

2/ 매력적이고 영민한 사람들

업자(業者)의 사전적 의미는 해당 업을 수행하거나 경영하는 주체, 종사자를 일컫습니다. 맥락상으로는 정당한 실력이 아닌 꼼수, 편법을 통해 이득을 취하는 일부 종사자들을 부정적으로 표현할 때 많이 사용됩니다. 저 역시 이 일을 하면서 수많은 ‘업자’들과 마주쳤고 이들과 엮이고 경쟁하며 그들만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       


업자들은 외형상 매우 매력적이고 영민한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매력적으로 포장하고 판매하는데 매우 탁월합니다. (과도하게 높은 가치, 혹은 심한 박리다매로) 이 과정에서 고객의 심리, 두렵거나 가려운 부분을 잘 파악하는데 그 부분을 교묘하게 이용해 원하는 것을 얻어냅니다. 고객들은 업자들의 이런 확신에 찬 매력적인 모습에 끌리게 되고 지갑을 열게 됩니다. 



대행업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걷어내고 일을 의뢰하는 '갑'은 어떻게 외부 전문가를 활용하면 좋은지, 일을 의뢰받는 외부 전문가는 어떤 자세로 프로젝트에 임하고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 총 4가지 편견과 함께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을 적어 보았습니다. 


  

 

문제는 제대로 된 실력, 정당한 방법을 갖추지 않은 채 고객들을 미혹시킨다는 점입니다. 타고난 수완과 사탕발림으로 어떻게든 일을 만들어내고, 형편없는 결과물로 구색만 갖추고 이익을 철저하게 챙겨갑니다. 알레르기에 의한 가려움증 환자에게 보다 근본적인 치료가 필요함에도 빠르고 효과 좋은 방법이 있다고 현혹합니다. 당장 효과가 잘 듣는 독한 피부약으로 일시적으로 증상을 없앤 뒤 완치된 것처럼 속입니다. 이러한 치료는 머지않아 더 큰 병을 부르기 마련입니다.     


업자들은 자신들의 엉성한 실력, 형편없는 결과물로 발생한 고객의 피해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를 무지한 고객의 탓으로 돌리거나 무시, 잠적해버리는 경우도 더러 봤습니다. 본인들은 이미 이득을 했으니 고객의 문제 따위 안중에도 없습니다. 특유의 수완과 매력으로 다음 먹잇감을 찾는 사이코패스들의 전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업계에서 활개를 치다 보니 업의 생태계는 완전히 오염됩니다.


3/ 이익에만 집착하는 천박한 인식과 태도 

제가 업자들을 혐오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업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실력과 본질, 업에 대한 이해와 소명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콘텐츠를 만들고 이를 통해 커뮤니케이션하는 저희 업 종사자들 대부분은 (비용과 대가도 중요하지만) 주어진 미션에 맞는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깊이 몰입합니다. 이를 통한 자아실현 욕구 역시 강한 사람들이다 보니 자신의 뼈와 살, 영혼을 통째로 갈아 넣기도 합니다. 때문에 업에 책임감과 자부심과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업자들에게는 이 업은 그저 좋은 돈벌이 수단이자 도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비즈니스, 효율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하찮은 결과물로 구색만 맞추고 최대 이익을 얻어내는 데만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상황이야 어찌 됐든 내 이익만 취하면 아무 상관이 없다는 천박한 인식과 태도는 이 업을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분노가 치밀 때가 많습니다. 사업 초기 본의 아니게 ‘업자’ 분들과 우리 업에 대한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대부분 자신은 매우 영리하게 사업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더군요. 심지어 정도를 걷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융통성 없고 꽉 막힌 사람들이라며 조롱하는 언사도 서슴지 않더군요.

 



업자들이 판치는 이유에는 특히 지식산업, 무형의 콘텐츠 분야가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기 힘든 분위기 역시 한몫한다고 봅니다. 고객의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는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제공해도 그 가치와 수준을 크게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죠.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 외연의 화려함과 눈속임에 끌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심리를 누구보다 잘 이용하는 업자들이 시장에서 잘 팔리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제대로 된 방법으로 본질과 정도를 추구하면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고, 실력은 없어도 술수와 티를 잘 내면 잘 팔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물론 이들에게 배울 점도 분명 있습니다. 얄미울 정도로 영리하게 자신들의 가치를 잘 팔고 포장하는 영민함과 부지런함,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이익을 추구하는 전략은 비즈니스의 미덕이자 필수 요소이기에 참고할 만합니다. 다만 제 상식에서 비즈니스의 본질은 자신의 실력과 제품으로 고객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것입니다. 꼼수와 눈속임이 아닌 실력과 정도가 우선적으로 갖춰져야 합니다. 업자들은 비즈니스, 효율성이라는 명분 뒤에 숨어 속임수로 돈을 벌고 있는 것이지요. 업을 대하는 태도와 전제부터 이미 잘못된 겁니다.     



4/ 돈 벌려면 진짜 아닌 업자가 되어야 하나

이러한 시장 분위기 속에 저 역시 심한 내적 갈등에 시달리고는 합니다. 돈 잘 벌고 실속 챙기려면 진짜 실력과 본질에 집중하는 것을 내려놓고 화려한 외연과 포장에 더 신경 쓰는 약삭빠른 업자가 되어야 하는지. 하지만 위태롭게 쌓은 모래성은 언젠가 무너지기 마련이고 존엄과 격이 없다면 욕망에만 집착하는 짐승과 다를 바 없다 생각합니다. 거기에 타고난 천성 또한 굼떠 재빠른 이들을 흉내 내는 것도 제게는 잘 맞지 않더라고요.


업자들이 매우 싫고 얄밉지만 이런 상황일수록 실력뿐 아니라 영리함을 갖춘 밸런스가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실력을 우선적으로 갖춘 후 내가 가진 가치를 정직하고 당당하게 판매하고 대가를 요구하는 것.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저 역시 언젠가 닳고 닳아서 언젠가 업자로 변모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될 때까지 미련하게 이 자세를 견지해 볼 생각입니다. 

  

 



요즘 업자들과 시장에서 부딪히고 경쟁하다 보니 생각이 많아졌는데요. 이 글을 쓰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오히려 본질에 집중한 정직한 방식이 속도는 느려도 좋은 평판과 새로운 기회를 불러왔던 것 같습니다.  저희 업에 대한 가치와 인식이 조금 더 좋아지고 묵묵히 제대로 하는 사람들이 인정받는 날이 왔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ps. 입추 아닌 여름 날씨 건강 조심하며 일하십시오 :)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대행업에 대한 편견과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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