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하반기에 하얏트의 5성급 부티크 호텔인 안다즈(Andaz) 강남이 압구정쪽에 오픈 될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 3월부터 공식 채용을 시작하며 공식 오픈을 알렸다. 네델란드에 있는 안다즈 호텔은 오래된 도서관 건물을 마르셀 반더스(Marcel Wanders)의 과감하고 독특한 공간 디자인으로 탈바꿈 시킨 곳이다.
네덜란드의 천재적인 산업 디자이너 '마르셀 반더스'는 확실히 자기만의 세계관이 있다. 뉴욕 타임스에서는 그를 디자인계의 레이디 가가라고 했지만 그건 미국 관점인 것 같고 굳이 누가 누구랑 비슷하다는 말은 맞지 않는 것 같다. 네덜란드 출신인 반더스는 그만의 확실한 세계들이 있다. 그 뿌리는 네덜란드의 역사와 문화에 있고 그가 만든 세계는 그의 언어로 재해석된 디자인 결과물들이 아닐까 싶다. 호텔에서부터 여러 브랜드를 종횡무진하며 다양한 창조물을 쏟아내는 그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가구 브랜드 Moooi(무이, 네덜란드어로는 '모오이'라고 하는 듯)의 공동 창립자이고 하다.
지금도 깊이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가 마르셀 반더스를 잘 모르던 시절 운이 좋게도 그가 만든 마이애미 '몬드리안' 호텔에서 일주일 정도 머문 적이 있다. 2009년 봄 미국에서 눈물겨운 MBA 졸업을 앞두고 함께 오래 고생했던 친한 동생과 둘 만의 졸업 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 친구의 추천으로 당시 힙하다는 마이애미 '몬드리안' 호텔로 가게 되었다. 필리(필라델피아)까지 장거리 운전을 하고 아는 동생과 합류하여 마이애미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우연하게 와튼 MBA 단체 졸업 여행팀과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가게 되었는데 비행기 기장이 '졸업'을 축하한다며 특별 기내 방송까지 보내줬었다. 오래되어 기억이 흐릿한데 아마도 '몬드리안' 호텔에서 그 단체 졸업 여행팀을 또 만났던 것 같다. 나중에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여러 자료와 논문에서 언급되는 그 '몬드리안' 호텔이 바로 마르셀 반더스가 창조한 공간 중 하나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동화 세계
내가 그 호텔에서 짧게 머물면서 느낀 것들을 나중에 공부하면서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그 공간에서는 '마르셀 반더스' 스러운 재미있게 뒤틀린 역동성이 있었다. 그 힘이 호텔 일부가 아니라 모든 방마다 큰 호텔 전반에 꽉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선명한 색감 대비 속에 동화 같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아마 천국이라면 이런 느낌일까 싶은 비현실적으로 깨끗하고 선명한 색감, 생뚱맞을 정도로 아주 큰데 뭔가 공간의 중심점을 잡아주는 것 같은 초 대형 종 조명 (oversized bell)과 벽에 걸린 엄청 큰 크기의 사람 얼굴이라든가 독특한 오브제들은 마르셀 반더스만의 스타일인 듯하다.
그때 호텔에 있으면서 느꼈던 것은 파란 하늘에 늘 구름이 낮게 걸려 있는 마이애미 특유의 쨍한 날씨를 호텔 인테리어에 한껏 끌어들인 것 같았다. 강렬한 빨강 빨강의 야외 소파들과 하늘색이 쨍하게 어울리던 풍경이 거의 십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로비에 있었던 저 큰 계단은 나중에 찾아보니 잠자는 숲 속의 공주의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을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동화를 실제 호텔 공간 전체에 그렇게 과감하고 큼직 큼직하게 펼칠 수 있다니.
마이애미 몬드리안 호텔 수영장
“나의 세계를 쌓으려면 나 자신에게 끔찍하게 솔직해져야 한다.”
천재적인 그에게 당연히 자주 하는 질문은 어떻게 디자인하는지, 어디서 디자인 영감을 얻는지 인데. 여러 인터뷰 기사에서 일관되게 하는 그의 답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로울 만큼 혼자서 온전하게 자신과 직면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곳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 그리고 가능한 사람들과 많이 이야기하고 공부하는 것이 첫 시작이라고 했다.
마르셀 반더스는 오래가는 디자인이란 친숙한 것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완전히 없었던 것에서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친숙한 것을 다시 뒤집고 크기를 변형하고 새롭게 뒤틀어서 낯설면서도 오랫동안 지속되는 힘을 가지고 간다.
네덜란드의 안다즈 Andaz 호텔은 오래된 도서관을 호텔로 만든 곳인데 네덜란드 황금기 시대의 포르셀린 타일과 탐험의 역사를 상징하는 큰 종, 튤립 모양의 푹신한 소파들 모두 네덜란드 고유의 문화를 반더스 방식으로 재미있게 풀어낸 거라고 한다. 2017년 카타르 도하에 반더스의 새로운 호텔이 문을 열었다. 극도로 화려한 아라비안 나이트나 천일야화가 생각나는 디자인이다. 새로운 지역에서 디자인을 맡아 진행할 때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이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라고 한다. 그래서 가능한 지역 사람들과 많이 이야기를 하고 역사를 공부하면서 디자인을 했다고 하는데 같은 몬드리안 호텔이라도 마이애미와 카타르 도하가 확연히 다른 것이 그 이유인 듯하다.
새로움은 낯익고 오래된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지도 높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는 그에게 '마르셀 반더스'는 우상 같은 존재라고 했다. 양태오 디자이너도 가장 한국적인 건축과 디자인에 집중해서 그 위에 모던한 인테리어 디자인을 정말 잘 입힌다. 실제 그가 살고 있는 100년 넘은 고택 인테리어, 태오홈 도자기 인테리어 소품에 이어 얼마 전 영국 프리미엄 침대 브랜드 사보이어와 협업하여 만든 침대 Moon (달)을 보면 왠지 영국 제품인데 양태오만의 한국적인 미가 진하게 느껴진다.
암스테르담 Andaz 호텔
몬드리안 호텔 도하
나에 대한 질문으로 브랜드는 만들어진다.
나는 작년에 작은 책방에서 '프리미엄 마케팅' 주제로 소규모 강의를 하며 브랜딩과 마케팅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독자들과 만난 적이 있다. 마지막에 따로 받은 질문 중 하나가 '나에 대한 브랜딩'은 어떻게 하는가였는데 그 계기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 일단 바로 답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들에 집중하는 게 어떨까요?' 하는 내용의 답변이었다. 근데 나도 뒤집어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고 집중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거창한 세계관이나 철학까지는 아니어도 '정작 나는 내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을 얼마나 선명하게 알고 있나?' 싶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 메뉴 딱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쉽게 답이 떨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