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창업하려 하나요? 이 질문은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답해야 할 첫 질문입니다. (직업상) 스타트업과 기업의 창업자를 많이 만납니다. 저는 자주 묻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스타트업을 하라고 권하나요?
돌아오는 반응은 안 좋습니다. 대부분 "아니!"라고 합니다. 창업은 할만한 게 아니라는 거죠. 경쟁자가 생기길 원하지 않기 때문일까요? 왜 그러냐고 물으면 "힘들어서"라고 답합니다. 솔직해집시다. 스타트업을 하고 싶은, 그래서 성공한 스타트업의 대표가 되고 싶은 대부분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고 싶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스터트업은 뭔가 빨리 성장한 이후 쏠쏠한 이익을 창업자에게 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왜 힘들까? 시행착오입니다. 창업을 두 번, 세 번 한 사람이 아니라면, 초보 창업자는 수많은 안 해본 일을 뚝딱뚝딱해내야 하죠. 채용도 처음이고, 영업도 처음이고, 사업 개발도 처음입니다. 시행착오는 일상이 됩니다. 그러는 사이 돈은 쭉쭉 빠져나갑니다. 직원은 내 맘 같지 않습니다. 화내는 것은 대표의 미덕이 아니기에 그러지도 못하고, 속을 끓이죠.
창업자들은 본의이던, 본의가 아니던 스스로에게 질문을 계속 던집니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어찌 됐건 이 '스스로에게 질문하기'는 시행착오를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이제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알아봅시다.
a. 나... 능력 있나?
자신감 넘칠 땐 모든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사업의 세계는 프로와 프로가 혼신의 힘을 다해 경쟁하는 냉혹한 곳입니다. "나에게 (진짜) 능력이 있나"라고 물어보세요. 전 멘붕 좀 왔습니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생각보다 한 개인이 갖출 수 있는 '객관적 능력'이 많지 않습니다. 영어와 중국어 등 외국어, 웹 개발, 디자인, 기획, 마케팅과 관련된 능력뿐만 아니라 요리, 목공, 예술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나의 능력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내가 하면 그래도 이건 남보단 괜찮겠다"란 걸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없다면 더 공부해야 합니다. 아직 창업 준비가 부족한 것일지도 몰라요.)
b. 나... 열정 넘치나?
창업은 힘들고 거친 긴 여정의 시작입니다. 스타트업은 대개 초기 몇 년 동안은 돈 버는 것 없이 쓰기만 합니다. (더러 창업 1개월부터 현금 버는 곳도 있습니다) 잘 될 거란 보장도 없죠. 남들이 "너넨 대박"이라고 말해도 창업 팀은 불안에 떱니다. 대개 스타트업의 일에 사람들의 관심은 크지 않습니다. 창업하면서 그렸던 비즈니스를 실제로 실행하기까지 수많은 거절을 경험해야만 합니다.
초기 팀 멤버가 회사가 성장할 때까지 모두 남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 일이 있다면 업계 신화로 남겠죠. 적지 않은 사람이 회사를 들어왔다가 나가죠. 스타트업 대표들이 가장 힘겹게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과 일에 대한 회의감, 내가 관계를 잘 맺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창업자의 머릿속을 맴돕니다.
이 모든 걸 뚫고 나가는 원동력은 열정입니다. 어느 한 스타트업의 대표는 "열정이 전부"라고까지 이야기합니다. 열정의 근원은 다양합니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열정, 젊을 때 무라도 썰겠다는 열정, 가족의 생계를 걸고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는 열정까지. 그런데 가장 강한 열정은 사업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나의 일이 의미가 있다는 믿음이죠. 사회에 기여한다는 열정은 힘든 일이 닥치더라도 버티게 하는 힘입니다.
c. 나... 얼마나 베팅 걸까?
스타트업 세계에 대한 가장 터무니없는 환상은 '돈 없이 시작할 수 있다'는 거다. 아이디어만 좋다면 외부에서 투자받고 빠르게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의 원천은 몇몇 성공한 스타트업 신화 때문입니다. 반복적으로 언론에 나오는 스타트업 성공 신화는 창업의 양면 중 밝은 곳만 비추죠.
극히 제한적인 경우만 아이디어만으로 투자를 받습니다. 몇 차례 창업을 경험했거나 특정 분야에 독보적인 능력을 지닌 경우에 한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초짜 창업자에겐 일어나지 않을 일입니다. 99%의 창업자는 투자자를 찾아 헤맵니다. 엔젤 투자자는 천사처럼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만 "투자하겠습니다"란 말은 지옥에서 천사를 찾기보다 어렵습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합시다. 내 능력을 '증명'하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시제품을 만들던 특허 출원을 하던 멤버를 모아 MVP를 만들던 보여줄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내 돈 얼마를 쓸까요? 천차만별이라 어려운 질문입니다만, "모든 것을 건다!"는 대답은 최악 중 하납니다. 스타트업의 3년 뒤 생존율은 약 40% 수준. 대학생 창업으로 범위를 좁히면 생존율은 20%까지 떨어집니다. 생존이 성공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훌륭한 아이디어와 최적의 팀이 모여도 실패하는 게 스타트업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외부 변수가 있습니다. 급변하는 트렌드, 제도 변화, 대기업의 진입 등은 건실한 스타트업을 한방이 무너뜨립니다.
d. 나... 어떤 생활을 기대할까
자율적인 출퇴근 문화, 생산성을 높이는 쾌적한 사무공간, 수평적인 임직원 관계 등은 성공적인 스타트업의 수식어입니다. 만약 이런 것을 꿈꾸고 창업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면, 그 꿈은 잠시 내려놓고 창업자가 초기에 어떤 일을 겪는지 봐야 합니다.
스타트업의 성장 단계가 어찌 되었던 창업자에겐 워라벨(Work-life-balance)는 없습니다. 그건 직원들에게만 허용되는 단어일지 모릅니다. 창업자가 워라벨을 강조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직원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다른 하나는 유능한 직원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오히려 창업자는 훌륭한 워라벨 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자신의 워라벨을 무너뜨려야 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창업자에게 일과 여가의 경계란 사치이기도 합니다. 안정적인 직장 대신 선택한 창업의 길은 위험이 큰 만큼 짧은 기간 내에 집중력을 발휘해야만 합니다. 시간과의 승부인 셈이죠.
치열한 일상 속에 성취감을 느끼는 라이프사이클은 직장인이 아닌 창업자가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성취감을 느끼는 빈도가 높지 않습니다. 회사 일은 본질적으로 남의 일이므로 성과가 곧 성취감으로 연결되기도 쉽지 않죠. 반대로 창업자는 연속적인 실패와 좌절을 겪기도 하지만, 그만큼 성취의 순간도 많습니다. 첫 직원을 채용했을 때,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 제품 납품 계약을 체결했을 때, 무사히 1년을 넘겼을 때, 창업자들은 치열함 속의 성취감을 얻습니다. ()하지만 그 성취감을 느끼는 순간은 아주 짧다고...
Check list!
스타트업은 ‘한 번 해보고 안 되면 취업해야지’란 마음으론 도무지 사업을 성공시키기 어렵습니다. 의미 있는 성과를 내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창업 초기는 마라토너가 마치 100m 달리기의 속도로 박차고 나가는 시기입니다. 결승점은 저 멀리 보이지 않는다. (결승점이 없을 수도 있다)
여기 체크 리스트가 있습니다.
1. 당신의 창업 아이템은 시장에서 유일하다
2. 누구보다 창업 주제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으며, 충분한 시장 조사가 이뤄졌다
3. 사업을 위한 충분한 인적 네트워크가 있다
4. 이미 사업 경험이 있다
5. 압박감이 있어도 당황하지 않는다
6. 스스로 동기부여가 충분히 이뤄진다
7. 망하더라도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있다
위 일곱 가지 중 해당하는 게 네 가지 이상이라면 최소한의 준비는 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사항이 네 개 밑이라면 초기 1년을 버텨내기 어려울지 모릅니다. 좋은 아이디어와 준비, 인적 네트워크와 같이 사업적으로 준비가 되었는지, 그리고 긴 싸움을 버티어 낼 감정 준비가 되었는지 스스로에게 냉정하게 물어야 합니다.
사업 준비와 감정 준비는 서로를 강화합니다.
탄탄한 준비는 안정적인 감정 유지를 돕고, 담대한 마음은 꼼꼼한 사업 준비가 가능하게 하죠.
소심하다고 ‘난 창업자 체질이 아니야’라고 단정 짓지 마세요.
성공한 창업자 중 상당수는 내향적 성향을 타고났습니다. 세상을 조용히 움직이는 내향적 리더십의 소유자는 오히려 외향적 성향의 창업자보다 강한 지구력을 보입니다. 대부분의 사업은 창업자가 전면에 나서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시간보단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는 사유의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심리학자 칼 융(Carl G. Jung)은 저서 ‘심리유형(Psychological Types)’를 통해 ‘내향성’과 ‘외향성’에 대해 처음 언급했다. 그는 ‘100% 외향적인 사람도, 100% 내향적인 사람도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오히려 두 가지 성격이 융화된 양형적 리더십의 소유자가 이상적인 리더로 꼽힙니다. 워런 버핏, 빌 게이츠, 버락 오바마 등은 양형적 리더십의 소유자로 거론됩니다. 어쩌면 외향성은 학습될 수 있는 반면, 내향성은 타고나야 하는 측면이 더 강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