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유 노 브랜드 네이밍?
서문 아닌 포문
브랜드 네이밍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중에 하나다. 현대 브랜드의 이론을 정립한 데이비드 아커는 ‘브랜드 네이밍은 주방 식탁에 앉아 몇몇 사람들이 모여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포지셔닝으로 유명한 잭 트라우트 역시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은 포지셔닝이라고 하지 않고 브랜드 네임이라고 했다.
브랜딩, 마케팅 영역에서 올타임 레전드 두 대가가 ‘브랜드 네임’에 대해 강조한 이유는 진짜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의미보다는 오히려 서두에서 언급했던 이유 때문일 것이다.
즉,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이나 개발은 전문 영역이라고 생각하지만 유독 네이밍만큼은 자신들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을 그릴 줄 안다고, 프로그래밍을 좀 안다고 디자이너가 되고 개발자가 될 수 없듯 네이밍도 단어 좀 안다고, 언어유희(라고 쓰고 아재 개그라 읽는다) 좀 한다고 버벌리스트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처럼 이러한 경향은 브랜딩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적을수록 더 강하게 나타난다. 어쩌면 여기에 속하는 대부분의 스타트업이나 소상공인은 비용이나 리소스 때문에 어쩔수 없이 본인들이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일부 동의한다.
하지만 본인이 네이밍을 해야 하는 상황인 것과 그것을 쉽게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그러면 어쩌란 말이냐? 서두가 다소 장황했다.
아재 개그 잘하는 게 언어를 잘하는 건 아니듯
필자는 10년간 브랜드 컨설팅을 해 왔고 그중 버벌 브랜딩이 주특기이다. 버벌 브랜딩은 말 그대로 Verbal, 브랜드를 언어화하는 작업이다. 브랜드 네이밍을 비롯한 컨셉션, 슬로건, 카피라이팅, 브랜드 스토리, 커뮤니케이션 메시지 등 조사분석이나 디자인 영역을 제외한 영역을 담당한다. 버벌 브랜딩의 전문가를 ‘버벌리스트’라고 부른다. 이전에는 네이미스트, 버벌 브랜드 컨설턴트 등 여러 호칭들이 있었지만 최근에 와서는 이와 같이 통칭되고 있다.
이번 시리즈는 상기한 스타트업과 소상공인이 직접 브랜드 네이밍을 하는 경우, 최대한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기획하였다. 따라서 앞으로 제시할 방법론은 공식이나 정답이 아니며,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 참고할 수는 있겠으나 그다지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철저히 스타트업과 소상공인 그리고 아마추어를 위해 쉽게 풀어쓴 글이라는 점을 밝혀 둔다. (전문가들의 태클은 사양한다는 뜻!)
이름 1. 존재의 인식
브랜드 네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름>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왜 우리는 이름이라는 것을 짓는 것일까? 이름이 대체 어떠한 역할과 기능을 하고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다시 말해 이름의 쓸모에 대해 이해하면 이름의 한 부분인 브랜드 네임도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유추해 볼 수 있다. 본질적인 방향성을 고민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기록된 자료를 토대로 인류 역사에서 가장 먼저 이름을 지은 사람은 누구일까? <성경>의 창세기에 보면 나온다. 바로 인류의 조상이라는 아담이다. 신은 인간보다 만물을 먼저 창조했지만 아담에게 그것들의 이름을 짓게 한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세상을 창조하고 신과 인간의 관계가 시작되는 기록에 굳이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왜 기록했을까? 신의 창조적 역사에 인간이 동참하고 마무리를 했다는 의미를 부여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바꿔 생각해 보자. 내가 어떤 제품을 만들었는데 그것의 이름은 짓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제품은 세상에 아직 완전히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불러주었을 때 그것은 하나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김춘수 시인의 꽃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즉, 이름은 1) 존재를 인식케 한다.
우리가 처음 사람을 만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 중 하나가 ‘통성명’이다. 이름을 알려줌으로써 서로의 존재를 비로소 인식하는 것이다. 최근에 이를 잘 나타낸 영화가 있었다. 제목에서부터 이름의 중요성이 물씬 묻어나는 <너의 이름은>이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남녀 주인공은 서로를 존재로 인식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름을 기억하고자 한다. 그 사람은 분명 존재하지만 이름을 잊게 되면 그 존재도 더 이상 내게는 존재로서 잊히는 것이다.
존재의 인식과 이름
이름 2. 정체성 함축
이름은 존재를 대변하는 것인데 이 때문에 이름은 주술적으로도 활용되었다. 엑소시즘(퇴마의식) 중 하나가 바로 악마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멀리는 <엑소시스트>, 가까이는 <컨저링>, <검은 사제들>과 같은 관련 영화를 보면 후반부에 주인공이 악마의 이름을 알게 되고 그 이름을 부르면 악마(에 들린 자)가 괴로워 몸부림치는 것이 나온다. 아무리 강력한 악마라도 이름이 불리면 뛰쳐나온다. 숨어 있었지만 이름을 통해 어떠한 존재인지 알게 됐기 때문에 그에 대한 퇴치도 가능해진 것이다. 그래서 이름은 2) 존재의 정체성을 함축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름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다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부모는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본인의 가치관, 자녀의 미래에 대한 기원 등을 담고자 한다. 그것은 대개 의미적으로 해석을 가능케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이미지일 수도 있다. 이것은 설명하기 굉장히 어려운 부분인데 어감에서도 존재의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다.
영화 <파운더>에서 레이 크록이 맥도널드라는 이름 때문에 반드시 갖겠다고 결심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맥도널드는 햄버거와 의미적인 연결성이 없지만 어감에서 정체성을 전달할 수도 있다. (어감과 의미에 대한 부분은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설립자 파운더가 아니라 사업 가능성을 발견한 파운더인 듯
이름 3. 세계관 반영
다시 성경을 살펴보면, 이름과 관련된 언급이 많이 나온다. 신이 대대손손 복을 주겠다 약속하면서 ‘큰아버지’라는 의미를 가진 아브람의 이름을 ‘열국의 아버지’라는 의미의 아브라함으로 바꾼다던가, 쌍둥이 동생으로 태어나 형의 복을 가로챈 야곱(발꿈치를 잡다)을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뤄 이기다)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거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고 하는 등 결정적인 사건들에 이름이 반드시 언급이 되곤 한다. 그리고 이 이름은 신의 계획과 연결되어 있다. 성경이 유독 이름에 대해 각별한(?) 것은 매우 특징적이다.
서양 문화의 또 다른 축인 그리스 로마 신화에도 많은 의미를 가진 신들이 나오지만 그들이 어떤 세계관을 반영하여 이름을 바꾼다거나 이름을 통해 세계관을 전달하는 내용은 전혀 없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을 우리나라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은 가장 훌륭한 버벌리스트이기도 했다.
유학의 오행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사대문 등의 이름에 넣었다.(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홍지문, 보신각). 성리학자로서 자신의 국가관을 이름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사대문뿐만 아니라 경복궁도 <시경>의 구절에서 가져온 것이고 근정전과 사정전도 <서경> 등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름은 이렇듯 3) 존재를 둘러싼 세계관을 반영하기도 한다. 정리해 보면, 이름은 존재를 인식하게 하고 정체성을 전달하며, 그 존재를 둘러싼 세계관을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정도전의 유교관 아래 설계된 한양 지도
그렇다면 브랜드 네임은?
길다면 긴 분량 동안 이름의 역할을 고찰했다. 브랜드 네임도 이를 반영하여 역할을 정리해 볼 수 있다. 브랜드 네임은 브랜드를 인식하게 하고,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전달하며, 나아가 브랜드가 그 세계관을 확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되어야 한다. 이는 브랜드 네임도 이름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서는 가치를 갖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브랜드라는 존재에 기반하여 기능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브랜드 네이밍을 하게 되면 실수를 하는 ‘단어 놀이’로는 좋은 네임을 짓기 어렵다. 단어는 도구이고 그것이 어떤 목적성을 가졌을 때 가치를 발한다. 어떠한 단어가 네임에 사용하기에 적합한지 판단할 기준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재료라도 하고자 하는 요리에 적합한지 판단하는 것과 같다. 김치찌개를 만드는 데 스파게티면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정리해 보면 브랜드 네임은 브랜드의 전략과 아이덴티티 또는 콘셉트가 명확해진 다음에야 제대로 된 개발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그냥 하나의 단어 따위일 뿐이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주관적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이 좋은 네임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렵고 그래서 ‘백인백색(百人百色)’이라는 말이 나온다.
나는 분명 좋은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은 싫어하거나, 내가 전달하고자 한 의미를 고객이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을 하게 된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언어가 가지는 본질적인 특성에 기인한다. 소쉬르라는 언어학자에 따르면 언어는 두 가지로 나뉘는데 언어활동의 사회적이고 체계적인 ‘랑그(Langue)’와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파롤(Parole)’이다. 쉽게 말해, ‘엄마’라는 단어에 대해 모성애, 따뜻함을 연상하면 랑그이지만 엄마에 대해 좋은 기억이 없다면 파롤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에게는 ‘맘스터치’라는 브랜드 네임에 대해 부정적으로 여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극단의 사례지만 각각의 경험에 따라 네임의 호불호가 달라지는 것을 숱하게 본다.
또 하나의 재미있는 사례가 하나 있다. ‘미니언’이라는 단어가 게임을 많이 하는 사람들에게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캐릭터 이름으로,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노란 외계인 캐릭터 이름으로 인식된다.
즉, 단어 자체만으로는 발화자와 수신자의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근본적인 해결책은 브랜드 전략에 달려 있는 것이다.
브랜드 네임과 브랜드 전략의 관계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명제가 똑같이 적용된다. 브랜드 네임을 집으로 비유하면 브랜드 전략은 주거의 목적이자 라이프스타일이고 가정의 구조이다.
집을 지을 때 왜 사는지, 어떤 삶을 사는지, 몇 식구가 사는지 등을 파악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집을 지을 수 없다. 네이밍도 마찬가지다. 브랜드 네이밍은 철저하게 브랜드 전략을 따라가야 한다. 아무리 멋진 표현이라도 전략에 부합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예전에 LG전자는 웨어러블 제품을 개발하면서 G Watch라는 브랜드 네임을 붙였다. 스마트폰인 G와의 연계성을 갖게 해서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과 스마트 이미지의 전이 효과를 고려한 것이었겠지. 하지만 초창기 시장이라 크게 부각되지는 못했고 이후 후속 모델을 론칭했다. 그때 그들은 콘셉트를 스마트 디바이스가 아닌 ‘패션 시계’로 가져갔다. 당시 애플 워치가 나오기 전이었으니 통찰력 있는 접근이었다. 하지만 네임은 그렇지 못했다. 콘셉트를 ‘디바이스가 아닌 시계’로 정리했다면 네임도 ‘시계’의 이미지를 부각해야 했는데 여전히 G Watch를 고수하고 있었다.
이는 전략적이지 않은 네임이다. 스마트폰 브랜드와 단절하지 않는 이상 여전히 스마트폰의 서브이자 스마트 디바이스로 인식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전략과 네임이 따로 노는 모습이다.
이후에 다행히 문제를 인식하여 LG Watch로 네임을 변경했고 필자가 당시 소속되어 있던 팀에서 새로운 라인업에 Urbane(세련된)이라는 패셔너블하고 스타일리시한 수식어를 네이밍 해주었다. 이 네임 자체가 어떠냐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략과 네임의 연결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네임은 반드시 전략을 따라가야 한다.
예전에는 브랜드 네이밍 자체가 특이하거나 돋보이면 그 자체로도 인정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브랜드도 하나의 공해가 되어 가고 있다. 너무 많은 브랜드가 난무하면서 고객의 선택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혼란스럽게 하고 있고 본질을 잃고 그저 포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전략적인 네이밍에 공을 들여야 한다.
집을 짓는 것과 네임을 짓는 것
실전은 간단하지가 않다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당신이 배달어플을 개발했다고 하자. 며칠 동안 네이밍을 고민해서 세 개의 후보 안을 추렸다. 1번 배달의 민족, 2번 배달통, 3번 요기요 이다. 저 브랜드에 대한 기존 인식을 깨고 완전히 새로운 상태에서 이름만 보자. 무엇이 좋은 브랜드 네임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가? 인터넷에 보면 ‘브랜드 네임의 기준’이라는 이름으로 누가 썼는지 모를 글들이 나돌아 다니고 있다. 그 기준으로 보면 “직관적이면서 쉬워야 되고, 짧아야 되고,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어야 되고, 카테고리와 연관성이 높아야 된다” 등이 있다.
그러한 기준을 볼 때 위의 3가지 중 어떤 네임이 가장 좋은 것인가? 배달의 민족은 길어서 탈락, 요기요는 카테고리 연관성이 낮아서 탈락, 그러면 배달통이 가장 좋은 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 다른 문제를 풀어 보자. 내가 부동산 어플을 개발했다. 3가지 후보 안이 또 나왔다. 1번은 직방, 2번은 다방, 3번은 방콜이다. 나는 어떤 네임을 선택해야 하는가? 당신이 내게 명확히 말해줄 수 있는가? 이번에는 글자 수도 같고 셋 다 카테고리 단어인 ‘방’을 포함하고 있다. 이번에는 어떤 기준으로 골라야 할까? 결코 쉽지 않다.
아무런 전략적인 정보 없이 브랜드 네임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고 무모한 짓이다.
하다못해 내가 검색부터 계약까지 책임지는 원스탑 서비스를 차별화 요소로 삼고 있는지, 압도적인 물량으로 승부를 할 것인지 전략과 콘셉트 정리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전자라면 원스탑 서비스 ‘직방’, 후자라면 세상 어떤 방도 다 있는 ‘다방’과 같은 네임, 나아가 커뮤니케이션 메시지 수립까지 가능한 것이다.
좋은 브랜드 네임은 뭘까?
이 정도면, 나우 유 노 브랜드 네이밍
브랜드 네임은 브랜드를 인식하게 하고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반영하고 브랜드 확장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 브랜드를 인식하게 한다는 것은, 통성명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고객에게 존재를 알리는 것이다. 아무리 멋진 서비스를 제공해도 브랜드 네임을 기억하지 못하면 의미가 반감된다. 브랜드의 가장 첫 단계는 인식인데 그 포문을 여는 열쇠가 브랜드 네임이 된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반영하는 것은 이름이 존재를 규정하듯 브랜드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어떠한 브랜드인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브랜드 확장의 토대가 되는 것은 추후 브랜드가 다양한 비즈니스로 확장을 하거나, 다른 브랜드를 추가 개발하거나, 커뮤니케이션을 다양하게 해 나가는 상황이 발생할 때 준거로 작용을 하는 것이다.
즉, 현재 브랜드 네임을 계속 사용할 것인지, 변형하거나 연계해서 사용할 것인지, 파생할 것인지 다양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브랜드 전략이 기반되어야 한다. <2탄에서 계속>
Next: 2탄에서는 브랜드 네임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해 살펴보고 전략적인 상황에 따라 어떻게 브랜드 네이밍을 접근해야 하는지 사례와 함께 정리해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