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키의 매거진

양말이 넥타이를 이겼고, 레깅스가 청바지를 이겼다.

부키

2020.11.03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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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것은 나뿐이다’라는 극단적 개인주의자들에게는 건강관리와 운동도 필수다. 자기 계발을 통해 능력만 쌓는 것이 아니라 외모, 건강, 스타일도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다이어트를 통해 건강한 몸매와 매력적인 스타일을 가지려는 것뿐이다. 당연히 패션과 뷰티, 몸매 관리에도 적극적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레깅스가 더 확산된다. 


 



패션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편하고 멋져지려고 선택하는 것이다. 레깅스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 또한 금방 지나갈 일이다. 낯선 것도 잠시, 이미 보편적 문화로 자리를 잡는 중이기 때문이다. 레깅스가 청바지를 이기는 구도는 2010년대 후반부터 만들어졌다. 

 


 

청바지는 전 세계인이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가장 많이, 보편적으로 입은 옷이고 2000년대에 스키니진 열풍을 통해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 일상에서 입는 운동복인 애슬레저룩(Athleisure Look) 열풍으로 인해 청바지는 레깅스에게 추월을 당했다. 뜨는 레깅스, 지는 청바지 구도였던 셈이다. 2010년대 후반 베트멍, 캘빈클라인, 오프화이트 등의 브랜드가 스마트하고 멋진 데님을 선보이며 청바지는 다시 부활하는 듯했다.  


그런데 레깅스도 가만있지 않았다. 요가와 피트니스 운동복을 시작으로 등산복과 일상복으로 확산되며 그 세력이 거침없이 커졌다. 코로나19 팬데믹도 레깅스 확산에 일조했다. 사람들이 거리 두기를 위해서 서로 멀리하는 대신 자연과 운동에 더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2030세대 등산객이 급격하게 늘었는데 이들이 선택한 것은 레깅스였다. 21세기 레깅스는 20세기 청바지의 포지션이다. 남녀 모두 일상에서 가장 편하게 입을 수 있고, 실용성과 패션 모두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패션에서 일상복, 운동복, 출근복의 경계는 이미 사라졌다. 이너웨어인지 아우터인지 그 경계도 점점 사라진다. 가장 큰 변화는 ‘패션은 이래야 해’라는 관성이 지워진 것으로 이 자체가 개인주의적 산물이다. 패션의 한계가 사라진 시대다. 모든 분야에서 우리가 기존에 가졌던 사회적 관성, 장벽, 선입견 등이 무너지고 있는데 패션에도 적용된 것이다. 젠더 뉴트럴(Gender Neutral)이 패션의 기본이 되었고, 남자용 레깅스도 거침없이 성장 중이다. 


 


 

남의 시선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의 이견이 존재하기 때문에 레깅스 열풍에 대한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대세는 바뀌지 않는다.‘함께 땀 흘려요(Sweat with us)’는 레깅스 열풍의 수혜자이자 주도 기업 중 하나인 룰루레몬(Lululemon)이 펼치는 캠페인이다. 요가와 레깅스의 대명사처럼 인식되는 룰루레몬은 스스로를 단순히 요가복 회사가 아니라, 땀 흘리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을 전파하는 회사라고 강조한다.  


물건이 아닌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비즈니스라는 것은, 취향 심화 시대에 효과적인 마케팅 메시지이기는 하다. 땀 흘리는 라이프, 스웻 라이프(Sweat Life)가 레깅스 열풍의 핵심 배경일 텐데 이는 우리에게 건강과 몸매 관리가 중요한 욕망이자 취미, 사교의 방법이 되었기 때문이다. 갑갑함과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서 우리는 운동을 해야 하고 또 어울려야 한다. 


운동이 사람들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새로운 취향이 되었다. 함께 운동하는 사람끼리 어울리는, 말 그대로 함께 땀 흘리는 사이끼리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한다. 이것 또한 개인주의 트렌드와 연결된다. 역시 믿을 것은 나 자신뿐이고 내 건강과 몸을 가꾸는 것은 필수가 되었다. 고립되지 않고 즐겁게 연결되는 것은 팬데믹을 겪으면서 더 커진 욕망이다. 


 


 

우리는 2010년대 들어 양말이 넥타이를 이기는 것도 목격했다. 남자에게 넥타이는 패션 포인트로서 중요했지만 출근 복장이 자유로워지면서 수트를 입을 기회가 줄었고 여름에는 노(No) 타이가 보편적으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넥타이를 버린 남자들이 선택한 패션 포인트는 양말이다. 화려하고 멋진 양말에 주목하는 남자들이 급증한 것이다.  


사실 양말에‘만’ 멋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양말에‘도’ 멋을 부린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이다. 양말에 신경을 쓰면 당연히 신발, 옷에도 신경을 쓰기 마련이다. 출근 복장이 자율로 바뀌면 패션 소비는 더 늘어난다. 4050세대마저 넥타이 대신 양말을 받아들였을 정도니 2030세대는 오죽할까. 그동안 패션 소비에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역할을 했다면 2010년대에 들어서 남성들의 역할도 커졌다. 명품 시장에서도 남성 소비자의 비중이 커졌고, 화장품과 피부 관리에서도 남성 소비자를 겨냥한 시장은 거침없이 성장 중이다. 


2020년대에도 이런 흐름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또한 개인주의 확산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가 가진 관계는 선택적 관계 지향, 즉 느슨한 연대이다. 우리가 선택한 이들에 대해서만 더 집중하는 문화와 연결되는 것이다. 뷰티, 패션, 건강, 몸매 관리 모두 ‘관계’를 위한 중요한 욕망이다. 관계에서 자신이 주도권을 가지며,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관계라는 점이 포인트다. 남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시선으로 관계를 주도하고 그러기 위해서 자신을 가꾸고 꾸미는 것이 당연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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