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영의 브랜딩 법칙

CJ에서 햇반 김치볶음밥을 출시하지 않는 이유

21세기북스

2020.12.16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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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브랜드

없앨 것인가, 다시 살릴 것인가?

 

나는 CJ의 브랜드전략팀 고문으로 일하면서 CJ의 수많은 브랜드와 만났다. 신규 브랜드 기획, 기존 브랜드의 리뉴얼 작업, 브랜드 홍보 및 영업까지 CJ의 브랜드전략을 총괄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늘 하는 질문이 있다. 브랜드를 만드는 것과 리뉴얼하는 것 중 무엇이 더 어렵나요?” 브랜드를 새로 만드는 일은 당연히 어렵다. 하지만 기존에 브랜드를 새롭게 리뉴얼하는 것 역시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그 선은 넘으면 안 돼!”

콘셉팅의 기본은 교통정리부터

 

한 회사에 브랜드가 여러 개라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지점이 있다. 바로 브랜드별로 서로 넘지 말아야할 선을 정하는 일이다. 그러지 않으면 같은 회사의 여러 브랜드에서 비슷한 제품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사태가 발생한다.

 

CJ의 식품 브랜드만도 10개가 넘는다. 햇반, 행복한콩, 프레시안, 해찬들 등이 모두 단독 브랜드다. 백설의 정체성은 ‘요리의 기본을 책임지는 브랜드’여야 한다. 설탕과 올리고당 등의 당류, 밀가루와 홈베이킹 등의 분류, 식용유와 참기름 등의 유 소재, 양념장과 소스, 여기까지가 백설의 역할이다. 

 

CJ에서 햇반 김치볶음밥을

출시하지 않는 이유

 

브랜드를 키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일이다. 햇반이라는 브랜드의 정체성은 뽀얀 쌀밥이다. 뚜껑을 열었을 때 김이 나는 기름진 쌀밥이 햇반의 정체성인 것이다. 햇반에서 새로운 제품을 출시해야 한다면 현미밥, 오곡밥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김치볶음밥을 내놓는 것은 안 된다.

 

햇반이라는 브랜드는 조미한 밥이 아닌 어디까지나 밥 그자체로 승부해야 한다. 만약 햇반의 신제품으로 계속 조미한 밥이 나온다면 품질도 떨어지고 브랜드의 가치도 떨어질 것이다. 햇반은 햇반다워야 브랜드 가치를 지킬 수 있다. 그래야만 소비자의 선택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브랜드다움’이다.

 

 

‘어떻게 바꿀까’보다

‘무엇을 남길까’를 생각하라

 

나는 지금도 식음료 사업을 하는 브랜드 중 가장 훌륭했던 브랜드는 풀무원이라고 생각한다. 백설을 리뉴얼하기 전까지 CJ를 제외한 기타 브랜드. 예컨대 CJ의 행복한콩, 프레시안, 해찬들이 풀무원을 이겨본 적이 없었다.

 

지금도 두부 하면 풀무원 두부가 대세인데, 그 이유는 슬로건의 힘이다. 사실 눈 감고 먹어보면 풀무원 두부와 CJ 두부의 맛은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둘 다 손두부가 아니라 공장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신선도의 차이도 크지 않다.

 

그럼에도 풀무원 두부가 CJ의 ‘행복한콩’ 두부보다 우위를 점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슬로건과 브랜드 컬러가 주는 이미지 때문이다. ‘바른 먹거리, 풀무원’이 한 줄의 슬로건이 지금의 풀무원을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품 브랜드라고 하면 무조건 맛을 홍보하려고 하기 쉬운데 풀무원은 일찌감치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바르고 정직하게 식품을 만드는 기업 이미지를 선점한 것이다. 

 

리뉴얼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빼는 것이다.

 

어느 브랜드든 리뉴얼을 고민하는 시점이 온다. 이때 흔히 하는 실수는 트렌드에 맞게 새로워지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리뉴얼이란 나답지 않은 것들은 전부 잘라버리고, 다시 본질로 돌아가는 작업이다. 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빼야만 성공한다. 

 

브랜드 리뉴얼의 핵심은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심도 있게 파악하는 일에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껏 쌓아온 것조차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즉, 중요한 것만 남기고, 본질이 아닌 것은 과감하게 쳐내는 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리뉴얼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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