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의 이야기

인생에서 버리는 경험이란 게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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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버리는 경험이란 게 있을까요?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사람, 픽소 창업자 최한솔

 

오, 이걸 만든 게 한국 팀이었어? 디자인이든, 음악이든. 세련된 첫인상과 해외 팬들이 많다는 이유로 외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알고 있다가, 한국 팀이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반가움이 들 때가 있다. 아직도 아는 사람만 아는, 연남동에 위치한 글로벌 스타트업 '픽소(PIXO)'의 앱들을 보면 비슷한 반응이 나온다. "이 앱들이 한국 팀이 만든 거였어?"

 


 

 

지금까지 픽소가 만든 앱들

 

 

소수의 정예 멤버들로 구성된 픽소는 로고샵(Logo Maker Shop), 베이비 스토리(Baby Story), 포커스 키퍼(Focus Keeper) 등의 생산성과 그래픽 카테고리 앱을 개발한다. 사용자의 90% 이상이 해외 유저이며, 누적 다운로드 수는 1,000만을 넘었다. 더 놀라운 건, 외부 투자를 받지 않고 계속해서 쭉쭉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INSPIRE 카테고리의 첫 인터뷰이는 픽소를 공동 창업한 최한솔 대표다. 우리의 인연은 내가 퇴사 후 홀로서기 실험을 했던 2017년 봄에 시작됐다. 당시에 나는 디지털 노마드에 관심이 많았고, 한솔 언니는(그때부터 언니 동생 사이가 됐다.) 나보다 몇 발짝 앞서 성공적으로 디지털 노마드로 일하고 있었다. 지구 곳곳을 여행하고, 한 달씩 살기도 하며 돈도 잘 벌고 있었다.

 

나도 저곳으로 가고 싶은데, 어떻게 간 걸까? 처음 만난 날 여러 질문을 던졌다. 대화를 나누며 좋은 자극과 용기를 얻었고, '방법은 찾으면 있다'는 결론을 낼 수 있었다. 방법을 찾아보기도 전에 혼자 답변을 내리고 포기하는 일이 얼마나 많았나.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눈 때로부터 3년이 흘렀다. 자유롭게 지구를 돌아다니며 일하던 그는 연남동에 사무실을 얻어 어엿한 기업으로서 '픽소'를 키우고 있다. 회사의 대표는 어쩔 수 없이 다능인의 역할을 해야겠지만, 그는 이전부터 이것저것 도전해보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이번 대화 역시 기분 좋은 자극과 배움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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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ol & her room

 

 

인생에서 버리는 경험이란 게 있을까요?

 

융: 언니와 픽소 이야기가 이제야 많이 소개되고 있는 것 같아요. 처음 만났을 때는 '이렇게 멋진 곳과 이야기를 나만 알아도 되나?' 싶었거든요. 디자이너지만 세무회계 전공이었던 이야기도 그렇고요. 몇 번 소개되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 구독자들은 아예 이렇게 방향을 바꿔본 경험에서 희망을 얻을 것 같아요.  

 

솔: 저의 여정을 ‘희망’이라고 표현 해주신다니,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그동안의 고민과 선택의 과정에 대해 더 이야기 나누어보고 싶어요. 생각보다 풀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웃음) . 저는 평범하지는 않은 삶을 산 것 같거든요. 중학교땐 모범생이었는데, 고등학생때는 공부를 안했어요. 주변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열공하던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스스로 '난 문제아 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돌아보면 불량한 학생은 아니었는데, 단지 공부가 아닌 하고 싶었던 '딴짓'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융: 예를 들면요? 

 

솔: 18살 때, 좋아하는 남자아이에게 손으로 그림 그려서 주고 그랬어요. 다음 카페에 그림 그리고 글씨 쓴 걸 카페에 찍어서 올렸는데, '러브장 꾸미기'로 몇 천명이 들어온 거예요. ‘팔아달라'는 의뢰를 받고 처음 돈을 벌어봤어요. 고등학생 때. 제가 공부 안 하고 그림만 그리니까 엄마가 걱정하기도 했는데, 아마 그때부터 이것저것 하고싶은 일을 해보는것에 더 집중했던 것 같아요.

 

융: 하하. 추억의 러브장이네요. 저도 사실 중학교 때 동생이랑 포토샵 알려주는 다음 카페를 운영했거든요. 회원수 2,000명 정도 되는. 잘하지도 못하면서 그냥 재밌어서. 근데 그런 게 아직까지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솔: 공감해요! 

  

 

"인생에서 버리는 경험이란 게 있을까요?

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안 하는 것만큼 억울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제가 공부를 안 해서 문제아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잉여 시간에 했던 게 나랑 연관이 되어 있거든요. 그때는 미약했으나 지금은 그 거친 줄기가 다듬어져서 더 괜찮은 것이 되어 있잖아요. 그게 '나'를 만들고요. 

 

융: 지금 미약하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겠네요. 언제 어떻게 연결될지 모르니까요. 디자인 전공을 한 건 아니지만 뭔가를 만드는 거에 대한 관심은 예전부터 있었나 봐요? 

 

솔: 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저희 아버지가 학벌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좋은 대학 가게 공부하란 말을 많이 듣고 자랐어요. 중학교 때는 그래야 하는 줄 알고 열심히 했는데, 고등학교 때는 적당히 해서는 상위권에 못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딴짓을 많이 한 것 같아요. 러브장 말고도 제가 PC방을 좋아해서 고등학교 내내 게임을 많이 해서 혼났죠.  

 

결국에는 세무회계를 전공했지만, 이후에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하고 웹 에이전시에 들어가면서 밤샘 작업을 진짜 많이 했어요. 근데 고등학교 때 게임한 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더라고요. 그 엄청난 체력과 집중력! 게임을 했던 게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웃음) 제가 리니지 2를 좋아했는데 캐릭터와 갑옷 디자인이 진짜 정교하거든요. 그때 감탄해서 갖고 싶은 세트가 생기고 그랬는데, 지금 제가 가구와 그림을 좋아하는 마음과 비슷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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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체성,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사람

 

융: 하하.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인데 재밌어요. 역시 다양한 정체성이 있네요! 게임 좋아하는 건 저도 처음 알았는데. 지금은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 내리나요? 

 

솔: '지금의 나'는 픽소의 창업자, 디자이너 출신의 창업자이죠. '내 인생을 통틀어 봤을 때의 나'는 하고 싶은 걸 잘하면서 사는 사람이에요. 다른 길로 가는 걸 스스로 인지할 때, 이 길이 부모님이 실망할 것 같다거나 사회적인 시선을 의식하긴 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부끄럽지 않게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있을 때 본격적으로 움직입니다. 그만큼 저에게 러브마크가 있는 일이여야겠죠? 저는 마음의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온 사람 같아요. 어떻게 보면 충동적이기도 하지만, 책임감이 있는 충동이에요. 

 

융: 책임감이 있는 충동. 너무 좋은 말이네요. 언니와 처음 만났을 때 제가 '알을 깨고 나온 순간'을 물어봤었더라고요. 그때의 제 메모를 보면, 디지털 노마드로 자유롭게 세상을 돌아다니며 픽소의 첫 앱들을 만들었던 2015년으로 되어 있어요. 지금은 그 연장선 상에서 발전하는 느낌인가요? 

 

솔: 사실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은 그보다 전이에요. 세무회계를 전공했지만, 디자이너로 전환을 하게 된 계기가 가장 큰 지렛대예요. 안 그러면 알을 깨기 전에 그 알도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죠.(웃음) 전혀 다른 전공이었어도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어요. 인터넷으로 독학하다가 교육비 지원이 되는 직업전문학교를 찾아 디자인을 배우고, 디자이너로서 에이전시에서 일했지만 1년 반을 다니고 나왔어요.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부딪히고, 다치고, 다시 스스로 치료하고 깨달으면서 방향을 찾다가 알을 깨고 나온 건 창업을 했을 때 같아요.  

 

서울에 사무실을 열기 전부터, 디지털 노마드로 일하면서 앱 만들었을 때부터 창업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픽소를 창업한 뒤로 성격도 많이 바뀌었어요. 자기 객관화도 하기 시작했고. 이전에는 충동, 책임으로 막연하게 살아왔다면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더 진지하게 생각하며 가치관을 단단히 하게 됐어요. 지금은 창업이란 전환점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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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노마드 시절

끊임없이 버그를 잡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융: 픽소는 국내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는 것 같아요. 투자를 받지 않고 글로벌 서비스를 만들고. 언니의 언어로 소개한다면 어떤 회사예요? 

 

솔: 투자를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작은 팀으로 좋은 매출을 내고, 실제로 그 제품이 전 세계가 마켓인 회사가 국내에 아직까지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해외에는 좋은 사례가 많거든요. 특히 기업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슈퍼셀(Supercell), 아사나(Asana)를 멋지게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픽소의 자랑은 모여있는 사람들과 다양성이에요. 외국인도 있고 성별도 연령대도 다양한데 모두 서로 존중하면서 일해요. 픽소 동료들은 일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200% 확신해요. 채용하면서 느낀 공통점은 정해지지 않은 거에 도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란 거예요. 인생에 일이 동반되어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어요. 독특한 스타트업이라고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고, 아직 갈길이 멀지만 팀 문화와 팀워크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요.  

 

처음에는 저도 좋은 사람이 모이면 좋은 문화가 생기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저절로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개인과 회사가 동반 성장하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이 중요해요. 저희 동료들도 그렇지만 저에게도 '성장' 키워드가 중요한데요. 새로운 누군가 들어오면 저에게 긴장감을 줘요. 루즈하지 않게 만들어요. 동료의 초고속 성장이 보이면 '내가 이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아요. 

 

융: 동료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져요. 동료의 성장에 자극을 받는다는 게 감동적이기도 하고요. 디지털 노마드로 일했던 경험이 픽소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을 것 같아요. 해외 사례도 더 많이 접하게 되고요. 저는 픽소를 보면서 '연남동의 작은 실리콘밸리' 같다고 생각한 적도 있거든요.(웃음) 모여서 일할 때도 있지만 원격 근무할 때도 있고.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당연히 이래야 한다'는 걸 벗어나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솔: 픽소 내부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주 이야기하는 게 "원래 그런 건 없다"는 말이에요.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원래도 결국 누군가 만들어낸 거잖아요? 우리는 뭔가를 만드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원래에 의존하지 않아요. 필요한 게 없으면 만들어내고, 잘 작동하는지 관찰하고, 어떻게 하면 더 낫게 만들지 고민해요. 실제로 작지만 단단한 팀이 되는 게 목표고, 조직문화와 제품을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픽소에서는 끊임없이 버그를 잡는다고 얘기해요. 컬처 버그도 잡고. 제품에서는 코드 버그를 잡고. 요즘 책이랑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살면서 무질서가 계속 증가하잖아요.

아름다운 상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만히 있으면 도태돼요.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불균형과 위험한 물질을 발견하고, 제거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좋은 사람이 모여서 일도 잘하고 있지만, 발생하는 문제를 계속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우리는 끊임없이 문제를 찾아서 해결하는 사람들이에요.

(픽소의 노션 페이지도 확인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픽소 사무실과 직원들

 

융: 앞으로의 픽소가 더 기대돼요.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일했어요? 

 

솔: 픽소 창업하기 전에 스토리가 조금 있어요. 에이전시에서는 처음에 한 달에 100만 원을 받으면서 일했는데, 프리랜서가 되니 한 달에 400만 원을 벌 수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그 희열이 컸어요. 받은 금액 이상으로 고객을 만족시키겠다는 걸로 동기 부여가 됐고, 그때 실력이 많이 늘었어요. 전 세계 디자이너 커뮤니티인 드리블(dribbble.com)에 포트폴리오를 올리면서 해외 클라이언트와 일을 시작했어요. "얼마까지 벌 수 있을까"가 그때는 중요해서 열심히 했는데, 1인 풀가동하니까 한 달에 1천만 원 넘게 벌 수 있더라고요. 그게 충족되니까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는지는 안 궁금해지더라고요.  

 

외국 클라이언트와 일을 하니 직접 나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영어 공부도 하고,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했어요. 가면 농장에서 일할 수 있다는 말만 있었는데, 도전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제 드리블 포트폴리오를 보고, 국내 스타트업에서 공동 창업자를 찾고 있다는 제안을 받았어요. 그때는 스타트업이 뭔지도 몰랐는데 사업 얘기를 듣는데 신세계더라고요. 클라이언트가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더 주체적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영향력 있는 제품을 만들 수도 있구나. 제가 아는 최고의 판타지는 해외에서 일하는 디자이너가 되는 거였는데, 이 세계를 보고 나니 호주에 가는 게 꿈이 작아 보였어요. 뭔가 다할 수 있을 것 같은 도파민이 분출하면서 합류했습니다. 그때의 스타트업은 실패했지만, 그때 닿은 인연으로 픽소의 첫 앱이 만들어졌어요. 

 

융: 언니가 디지털 노마드로 지낸 게 몇 년이었죠? 

 

솔: 3년 정도요.  

 

융: 제가 디지털 노마드에 관심이 많던 시기에 정보도 사람도 많이 찾아봤거든요. '디지털 노마드를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없나?'란 생각이 들었는데 언니는 느낌이 달랐어요. 탄탄한 수익을 내면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아서 더 궁금했거든요. 

(한솔 언니의 디지털 노마드 스토리 >)

 

 

지구를 돌아다니며 일하던 디지털 노마드 시절

 

솔: 맞아요. 유튜브에서도 검색해보면 '디지털 노마드가 환상과 다른 이유' 이런 콘텐츠가 훨씬 많죠. 그런데 저는 그때가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을 때예요. 픽소 전에 창업했을 때는 2년 동안 돈을 못 벌어서 그때 에어비앤비를 시작해서 수익을 냈어요. 좀 더 자유롭게 살고 싶다면 수익은 무조건 가지고 가야 해요. 큰 금액이 아니더라도 꾸준히 수익을 낼 수 있는 건 염두를 해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어요.  

 

덜 먹고, 덜 즐길 수도 있지만 캐시 카우가 있으면 더 풍요롭게 즐길 수 있어요. 사실 테두리를 좀 벗어나 생각해보면 방법은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셔터 스톡에 사진 올려서 돈을 버는 게 쉬운 건 아니지만, 지금부터라도 평소에 수십 장 수백 장 올려보고 매달 올라가는 수익금을 늘려볼 수도 있겠죠?  

 

결국에는 모두가 자유를 원하는데 크게 시간적, 금전적 자유가 있잖아요. 디지털 노마드가 그런 거잖아요. 내가 원하는 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그런데 아까 말한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처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위해서 더 많은 노력과 치열한 고민을 해야지만 내 것을 만들고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언니의 취향을 느낄 수 있는 언니의 공간

구석구석 취향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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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행동하게 만드는 원천과 불안함을 극복하는 방법

 

융: 안 해봤던 일을 해보고,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언니가 일을 계속하게 만들고, 새로운 도전을 하게 만드는 언니의 WHY는 무엇인가요? 

 

솔: 저를 도전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첫째는 상상력. 저는 상상을 잘해요. 예를 들면 어떤 앱을 만들고 싶은데 잘될 것 같은 데이터를 봤어요. 

 

그럼 이걸 끝까지 상상을 해봐요.

멀리 점을 찍어두면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건 좀 더 쉽거든요.

상상을 구체적이고 깊게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럼 들떠 있는 상태가 되고, 실행하면 여행 가는 느낌이 들어요. 여행 떠나기 전 공항 가면 피곤해도 안지치잖아요. 들떠서요. 구체적이고 긍정적인 상상력이 저를 움직이게 합니다. 부정적인 걸 잊는 게 단점이지만, 현실적으로 그래도 리스크는 염두에 두고 상상해야겠죠? 

 

두 번째는 잘 답답해해요. 예를 들면 세상에 뭐가 없거나 안 되는 게 있어요. 근데 전 이게 갖고 싶고, 원해요. 그럼 답답해해요. 이게 왜 안돼? 내가 보여줄게! 내가 해볼게! 이런 게 좀 있어요. 내가 직접 만들고 싶고,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 때 실행에 옮겨요. 에어비앤비는 서울에는 이미 많아서 안 된다고 해도, 기다려봐 내가 보여줄게! 하고 운영했고요. 포토 앱은 이미 시장이 포화됐어!라고 해도, 아냐 이런 게 있잖아. 내가 한 번 해볼게! 이런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융: 그럼 시작하고, 불안해질 때는 어떻게 하세요? 어려운 순간이 오면 극복하는 방법이 있나요?

 

솔: 불안함이 1차적 감정이잖아요. 예전에는 회피를 했어요. 최근에는 개인적으로나 일적으로 불안함을 감지하면, 너무 이성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요. 왜 불안한 지를 끝까지 질문을 해봐요. 그럼 크게 두 가지 결론이 나요. 

 

해결할 수 있는 불안함인가? 아니면 불안해봤자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불안해 해도 내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구나' 라고 생각이 들면 인지만으로도 막연했던 불안함이 많이 사라져요.전자면 지혜롭게 불안하려고 노력해요. 그때 책을 많이 읽어요. 책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책 한 권에 세상의 지혜와 한 명의 평생의 삶이 담겨있잖아요. 창업을 하면서 불안이 잦게 찾아왔어요. 사람 문제도 있고, 사업 막연함에 대한 불안함도 있고. 내 감정이 스스로 걱정이 될 때도 있었어요. 그때마다 상황에 맞는 책을 찾아 읽었어요. 심리학, 뇌 과학 책도 많이 읽고, 좋은 브랜드와 기업 문화 스토리도 찾아보고요. 

 

불안함을 이성적으로 타파하고 나면 엄청나게 성장할 수 있어요. 돌아보니 그래요. '3년 전의 나였으면 잠도 못 잤을 텐데,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구나' 느껴지는 순간이 와요. 불안이 찾아오면 성장의 기회로 삼고, 이성적으로 대하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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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해보는 경험은 시작의 점을 찍기 위한 단계

 

융: 예전에 언니가 저에게 뭐가 됐든 시작하고 팔아보는 건 좋은 경험 같다고 했었잖아요. 그 이유가 뭐였어요? 사이드에는 뭔가를 시작하고, 내 것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있거든요. 그러고 보면 언니도 학생 때부터 쇼핑몰도 해보고, 러브장도 팔아보고 그랬네요.  

 

솔: 무언가 꼭 해보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면, 내가 잘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치밀어 오른다면, 마음속에 그 강한 직감을 따라갔으면 좋겠어요. 실패해도 상관없어요. 누구나 실패하거든요. 처음부터 잘 되면 실패하고 일어나는 방법을 모르잖아요. 제가 쇼핑몰로 돈을 벌기 전에도 그게 처음이 아니었어요. 운동화도 팔아보고, 하다가 흐지부지 되고. 자괴감도 느끼고. 계속 실패를 했어요. 근데 실패하더라도 내가 뭔가를 시작해보고 팔아봤을 때 남는 감정이 내 자산이 돼요. 그 경험에서 쌓인 게 언젠가 제대로 일어설 때 근육이 돼요.  

 

이 과정에서 처음에는 나를 위로하며 부풀리게 돼요. '그래, 이 정도면 잘했지.' 근데 이게 답은 아니에요. 초라해도 정말 있는 나를 받아들여야 발전해요. 실패를 계속하면, '나 이 정도밖에 안됐구나' 인정하게 되더라고요. 그때부터가 저는 진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생각보다 작아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가고자 하는 목표가 구체적이고 확실하고, 내가 있는 위치를 부풀리거나 너무 작게 인지하지 않고,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면, 그 사이를 메우는 건 남은 시간과 노력의 차이예요.  

 

뭔가를 직접 해보는 경험은 시작의 점을 찍기 위한 단계예요.

안 해보면 시작의 점도 없어요.

한 걸음씩 시행착오를 거치면 언젠가는

목표로 찍은 점 근처에 가 있을 거라고 믿어요. 

저는 제 인생에서 경쟁을 하면서 뭔가를 뛰어나게 한 경험은 없어요. 1등을 한 기억은 없지만, 제가 원하는 삶을 살게 되는 건 제 의지에 달려있더라고요. 

 

융: 지금의 한솔이가 알을 깨고 나오기 전, 그러니까 5년 전의 한솔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솔: 저도 이 상상을 가끔 해요. 옛날의 나한테 가면 내가 뭘 해주고 싶지? 그때는 한 치 앞도 안 보일 때가 있었거든요. 그냥 응원해주고 싶어요. 아등바등 하는 그 모습을요. "잘 하고 있어.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생각과 다르고 힘들어도 지금처럼 계속 하면 돼.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에 흔들리지 않고 네가 선택한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면 좋겠어" 라고 얘기 해주고 싶어요.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엄청 좋아할거 같아요. 그 노력이 동력이 되어 얼만큼 걸어왔는지, 그토록 이루고 싶었던 어떤 목표를 성취해왔는지. 그때도 매일같이 '5년 뒤엔 난 어떤모습일까?' 를 궁금해 했거든요. 지금의 나로선 수직 성장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목표를 달성해 왔기 때문에 드라마틱한 변화는 못 느끼지만요. 아마도 제 성격에 미리 미래를 보여주면 안 좋아할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그냥 용기를 주고 싶어요.

 

 

 

SIDER를 위한 손 그림

 

 

일 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 스스로의 성장에 관한 고민이 생기면 찾아갈 수 있는 좋은 친구가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한솔 언니를 만날 때면 나는 반쯤 놀러 가는 기분으로, 반쯤은 배우는 심정으로 머릿속에 꽉 차 있던 생각을 비워두고 나간다. 그리고 수다를 떨다 보면 어느새 내가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조금 더 가닥이 잡혀있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평생 아무것도 안 할 게 아니라면, 가끔은 게을러져도 좋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게으르게 사는 게 성공과 절대적인 반비례는 아니라고. 공감했다. 언니는 올빼미 스타일이라 새벽에 영감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주말에는 오후 1-2시에 일어나고, 그런 삶이 나쁘지 않다고. 나 역시 게으른 면이 있어 놀 거 다 놀고, 미루고 미루다가 벼락치기를 하는 스타일에 가깝다. 중요한 건 내 스타일을 파악하고 그 속도에 맞게 계속해보는 게 아닐까.

 

언니와 나눈 대화 끝에도 다시 한번 생각했다. 멀리 있는 점을 구체적으로 찍고, 그곳으로 가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어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응원해주고 있다고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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