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에서 영수증을 사고판다
연말 혹은 백화점에서 VIP 산정을 하는 시기가 오면 백화점의 최상위 우수고객인 VIP들이 몇십, 몇백만원이 모자라서 VIP 등급에서 탈락할까봐 꼼수를 부리는 경우가 발견됩니다.
바로 ‘영수증 거래’ 부정행위인데요.
구매 금액에 따라 VIP 등급 여부가 결정되다 보니, 등급 산정시 모자라는 금액을 메우기 위해 영수증을 구매해 남이 쌓은 백화점 거래 실적을 자기 실적에 스리슬쩍 끼워 넣는 행위를 하는 겁니다.
지난 연말에도 중고나라, 시계거래소 등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백화점 실적 거래 관련 게시글이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기사에 나온 자료를 보면 16만명 이상 어느 회원 가입 커뮤니티에는 백화점 실적을 사고파는 글이 하루 평균 50여건이 올라오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VIP 등급에 선정되기 위해 영수증이 필요한 사람들은 실제 커뮤니티를 통해 결제금액의 3% 정도의 비용을 지불해 영수증을 구매합니다.
예를 들어 100만원짜리 구매금액이 찍힌 영수증은 3만원, 500만원 짜리는 15만원에 거래가 되는 것이죠.
(출처: 노컷뉴스)
이들은 타인의 영수증을 구매한 뒤 백화점 고객센터나 앱을 통해 해당 영수증 번호를 입력할 경우 자신의 실적으로 사후 적립되는 형식을 활용해, 영수증을 모아 적립하고 VIP 타이틀을 얻게 됩니다.
문제는 이처럼 백화점의 실적거래가 최근 몇 년사이에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이를 악용한 사기수법도 등장하고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커뮤니티에서 구매 영수증을 보내준다고 하면서 돈을 입금받은 뒤 영수증을 보내지 않거나, 실적 구매자의 계정으로 직접 등록해준 뒤 다시 취소하는 수법을 사용하는 모습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어떤 고객은 3,400만원짜리 영수증을 64만원에 사기로 했는데 돈만 받고 먹튀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커뮤니티에서 박모씨는 20여명에게 먹튀하는 수법으로 고소장이 접수되어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먹튀를 당해도 사용자들은 본인들이 영수증을 구매한 부정행위를 했기 때문에 쉽게 고소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사기범들이 기승을 부릴 수 있는 겁니다.
백화점의 VIP 등급
그렇다면 도대체 백화점 VIP 등급에 목을 매는 걸까요?
(출처: 뉴스투데이)
이는 백화점들이 VIP만을 위한 다양한 혜택 증정 및 편의를 제공하는 데에 기인합니다. 일반적으로 20:80의 법칙이라고 하여, 전체 고객 중 20%에 해당하는 고객이 전체 매출의 80%를 견인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만큼 상위 고객이 매출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화점은 VIP 고객들을 특별히 관리하면서 이들이 지속적으로 해당 백화점의 VIP로 오랫동안 남아있을 수 있게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하는 겁니다.
(출처: 노컷뉴스)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VIP 등급이 레드, 블랙, 골드, 플래티넘, 다이아몬드, 트리니티 등급으로 분류됩니다.
최소 구매실적은 연간 400만원 이상 최대 1억원 이상 등으로 나뉘어 관리가 됩니다. 이 중 트리니티 등급의 경우 상위 999명만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연간 실적 1억원 이상 조건 외에도 백화점 자체의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 트리니티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밖에 VIP 등급에 선정된 고객들은 세일리지 혜택, 멤버스바 이용, 전용주차 서비스, 백화점 문화센터 할인, 생일 세일리즈 증정 등 수많은 혜택을 받게 됩니다.
현대 백화점의 경우 VIP 등급이 자스민 블랙, 블루,세이지 등으로 분류해 관리되고 있습니다. 자스민 블랙은 연간 1.2억원 이상, 자스민 블루는 8천만원 이상, 일반 자스민 등급은 5500만원 이상, 세이지 등급은 3천만원 이상의 구매실적으로 등급이 나뉩니다.
현대백화점에서는 VIP 등급을 대상으로 쇼핑시 상시 할인을 적용한다든지 플러스포인트 지급, 무료 주차 서비스, 카페H무료 음료 제공, 6개월 무이자 할부 서비스, 더현대닷컴VIP 연동 등의 혜택을 제공합니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에비뉴엘 그린, 오렌지, 퍼플, 에메랄드, 블랙 등급으로 VIP, VVIP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최저 400만원 이상부터 VIP 등급이 부여됩니다.
롯데백화점에서는 VP 등급을 대상으로 무료주차, 무료 음료 및 발렛파킹 서비스, 전용 라운지 이용, 퍼스널 쇼핑 서비스, 문화센터 할인, 제휴 할인 등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마케터의 시선
이와 관련하여 마케터의 시각에서 크게 3가지 이야기로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1] VIP 혜택을 노리는 고객들
고객들은 VIP 등급에 따라 백화점에서 누리는 혜택이 다양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기본적인 혜택 외에도 등급별로 명절 선물을 받고 패션잡화, 식품관 등 이용하는 카테고리에 따라 쿠폰북도 받게 됩니다.
(출처: 매일경제)
또한 백화점 VIP의 경우 백화점 외에도 계열사 아울렛, 면세점, 패션기업에도 등급이 적용되어 VIP 혜택을 누릴 수 있죠. 이처럼 백화점 VIP 등급이 되면 누릴 수 있는 혜택의 범위가 넓기 때문에 중고거래사이트에서 영수증 거래 행위가 성행하게 된 것입니다.
코로나 보복 소비 등으로 인해 백화점 VIP 고객이 실제 증가했고, 이미 백화점 VIP 실적을 채운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영수증을 팔면서 부수입을 올릴 수 있어서 손해볼 게 없죠. 또한 실적이 다소 부족한 사람들은 현금으로 영수증을 구매해 VIP 등급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은 서로 윈윈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백화점 VIP 등급이 될 경우 스티커만 붙이면 사실상 전국 점포에서 무제한 주차가 가능하기 때문에 백화점 주차권을 별도로 적게는 60만원 많게는 100만원 선에서 팔기도 합니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최상위 등급은 주차권을 3장 증정, 2-3등급은 2장을 발급하고 있기 때문에 주차권 스티커의 판매만으로도 부수입을 올릴 수 있다 생각하는 거죠.
[2] VIP 고객에 대한 혜택 집중
더불어 각 백화점들은 상위 20% VIP 고객이 전체 매출 실적을 견인하다보니, 이들을 위한 혜택에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백화점에서 제공하는 무료 주차, 무료 음료, 라운지, 문화센터 할인 및 상품 할인 혜택 외에도 차별화된 마케팅을 통해 VIP 고객을 지속적으로 유치하려고 합니다.
(출처: 매일경제 )
신세계 백화점의 경우 신세계 클래식 페스티벌, 토요 콘서트 등 문화 행사에 VIP 고객을 우선 초청하면서 문화 마케팅을 펼치고 있습니다. 또한 영국 런던의 헤롯, 뉴욕, LA에 있는 삭스 피프스 에비뉴, 프랑스의 봉마르셰의 퍼스널 쇼핑도 지원하면서 차별화된 서비스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현대 백화점은 VIP 고객을 대상으로 각 분야의 명사가 추천한 책을 집으로 보내주는 등 북 큐레이팅 정기 배송 서비스를 운영하기도 하며 공기 정화 식물, 난, 꽃 등을 정기 배송하는 서비스 역시 진행하고 있습니다.
백화점 관계자는 “VIP 고객수가 곧 백화점의 매출 증대와 연관이 크기 때문에 VIP수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죠. 그렇기 때문에 다른 백화점 VIP 고객을 빼앗기 위해서도 타사와 차별화된 혜택을 꾸준히 줘야 한다는 겁니다.
[3] 영수증 부정거래 행위
이렇게 백화점이 발벗고 나서 VIP들을 유치하다보니 자연스레 영수증 거래 행위가 반대급부로 등장하게 된 겁니다. 그러나 VIP관리는 백화점의 평판과 직결되기 때문에 영수증의 부정거래 행위는 백화점 평판에 오점을 남기는 행위입니다.
브랜드 이미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업계에서 누구나 영수증 거래를 통해 VIP가 될 수 있다는 인식 자체를 준다면 평판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겠죠. 또한 이를 통해 백화점 VIP 문턱이 낮아졌다고 생각을 하면 기존 VIP 고객들의 이탈 사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결과 각 백화점에서는 부정 영수증 거래를 면밀히 주시하고 공지를 올리기도 했죠. 예를 들어 롯데백화점의 경우 “VIP 선정 기준, 혜택과 관련해 비정상 매출로 우수고객이 될 경우에는 VIP 선정에 즉각 제외된다”고 명시했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을 구체적으로 타인의 구매실적을 대리해 적립하거나 타인의 구매실적(영수증)을 구매해 매출을 적립했을 때 부정행위라고 간주한다고 이야기했죠.
이 외에도 구매 취소 또는 취소 후 재결제 금액이 과다한 경우나 특정 브랜드에 구매 혹은 적립 편중이 심할 경우에도 VIP 고객 선정에서 제외된다고 했습니다. 현대백화점도 비슷하게 공지하면서 남이 산 영수증의 가격은 당연히 0원이라고 했죠.
사실 영수증 거래 행위 자체와 백화점 실적 거래는 사기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판매자, 구매자 모두 업무 방해 혐의가 될 수 있고 범법자가 될 리스크가 있습니다.
경찰은 이와 관련된 사건을 수사하면서 속여서 구매 영수증을 판매한 판매자나 구매자 모두 백화점 측에 업무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실제 사기 피해자들은 적극적으로 피해사실을 알리는 부분을 망설이고 있죠. 피해 금액이 소액인데 괜히 VIP에서 제외되거나 불이익을 받을까봐 주저하는 겁니다.
참고로 업무방해가 인정될 경우 민사적 책임 뿐만 아니라 5년 이하의 징역,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습니다.
VIP 고객이 되었을 때 받는 혜택도 좋겠지만, 가짜 VIP놀이를 하면서 백화점 평판을 훼손한다는 점도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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