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FP후배와의 글쓰기 코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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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드

2023.05.03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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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ENFP후배에게 글쓰기를 코칭하는 과정을 날것으로 담은 연재물입니다.  

 

 

 P님의 6번째 글 

 

가까워지려 하면 멀어지는


요즘 즐겨보는 넷플릭스 프로그램 중 하나는 솔로지옥2다. 지옥도라는 섬에서 게임에서 이긴 자가 마음에 드는 이성과 함께 초호화 호텔인 천국도에 다녀올 수 있다. 솔로지옥2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여자 등장인물은 슬기다. 서울대 피아노과 학생으로 눈망울이 커서 귀여우면서도 섹시한 매력을 가진 공주님 스타일의 인물이다. 슬기는 천국도를 처음 같이 다녀온 동우, 첫인상 선택부터 슬기만을 바라보며 구애하는 종우, 그리고 나중에 들어왔지만 자기도 모르게 반해버린 진영 이렇게 세 남자와 얽혀있다. 동우와 종우는 슬기에게 굉장한 달달한 눈빛을 보내며 자상하게 챙겨주지만 슬기는 부담스러워하는 느낌이고, 다른 여자와 천국도에 여러 번 다녀오며 얼굴 볼 기회가 줄어든 진영을 더 마음에 두고 있다. 8화의 참호전투에서 종우가 피 터지게 온몸이 시뻘게지면서 싸워 이겨서 슬기와의 천국도 데이트권을 따냈는데, 슬기의 표정이 왠지 모르게 씁쓸했던 이유다. 슬기는 부담스러운 남자가 아닌,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가는 사람을 좋아한다. 


나는 인간관계에서 ‘부담’이라는 단어가 인간관계를 맺고 끊는데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남녀 간의 관계에서 뿐 아니라 친구관계에서도 그렇다. 나에게는 인생에서 연을 끊은 유일한 사람, C라는 친구가 한 명 있다. C와 연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C와의 만남에서는 ‘부담’이 크게 작용했다. 

 

C를 처음 만난 장소는 내가 매주 나가는 성당이었다. 성당에는 동갑내기 친구가 없었는데, 새로 알게 된 친구가 바로 C였다. C는 날 보자마자 인사를 건넸다. “안녕! 너무 반가워. 너도 26살이라며? 나도!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새로운 사람을 보면 인사를 먼저 건네는 나보다 더 적극적인 친구였다. 나는 그런 C에게 친근감을 느꼈고, 그래 친하게 지내자고 대답했다. 그녀가 처음부터 부담스러웠던 건 아니었다. 성당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났고, 가볍게 인사하며 지나쳤기에 나는 C를 볼 때마다 반가운 인사를 건네기만 했다.


성당에서가 아니라 밖에서 C를 보게 된 건 그녀가 제안한 저녁 약속으로부터 시작됐다. “우리 같이 저녁 먹자! 성당에서만 보기에는 너무 아쉽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한 번의 저녁 약속은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다. 동네의 가까운 고깃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나눈 대화는 나름 재미있었다. 너무 어둡지도 너무 밝지도 않은 평범한 20대의 친구와의 대화였다. C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여러 사람과 친하게 지내고, 말도 잘하고, 회사도 열심히 다닌다며 자기에게 없는 장점을 많이 가졌다고 칭찬했다. 칭찬을 좋아하는 나는, 나에게 우호적으로 다가오는 C가 싫지 않았다. 사람을 긍정적으로 보는 친구구나 하고 생각했다. 집에 가는 길 C는 나에게 “다음에는 언제 만날까?” 하고 물었다.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엥? 한 번 만났는데, 다음 약속을 바로 정한다고?’ 내가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이었다. 친한 친구들과 만날 때는 “오늘 즐거웠다! 다음에 만나!”하고 헤어지지, 헤어지면서 바로 “다음엔 언제 만날까?”라고 묻지 않기 때문이다. 


그 후, 성당에서 C를 종종 만났고, 성당 회식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며 나는 C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가 되었다. 나는 내가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만큼, 남의 고민을 들어주고 최대한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있으면 지나치지 않은 선에서 이야기해 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C는 잘 들어주는 대상이 생겨서 좋았는지, 회사에서 있었던 고민을 나에게 자주 털어놓았다. 회사에서 사람이 힘들어 퇴사한 경험이 있는 C가 이번 회사에서도 힘들다고 하기에, 너는 잘할 수 있다고 다독여주었다. 자기 자신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C가 한편으로는 안타까웠고, 외국어실력도 있고 맞는 회사를 찾으면 잘 할거 같은 C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런 이야기가 오가는 만남이 한 번, 두 번 생겼고, 나는 잘하면 나의 격려 한 두 마디가 C에게 힘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두 번째 이직한 회사도 그만두고 취업준비를 다시 하게 된 C에게 카톡이 왔다. “나 너희 회사 서류합격 했어! 1차 면접이 있는데, 혹시… 조금 도와줄 수 있어?” 항상 풀이 죽어있는 C에게, 내가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알게 된 주력 제품에 대한 지식, 회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념과 태도 등 알려줄 수 있는 것들이 꽤 있었다. C는 예상질문과 답변을 써서 보여줄 테니 한 번 검토해 달라고 부탁했고, 나는 전화로 한 두 번 상담해 주었다. 그리고 C의 1차 면접 이틀 전, C는 한 번만 만나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했다. 간절해 보이는 C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동네에서 저녁 한 끼 정도는 함께할 수 있었다. 


퇴근하고 순댓국집에 갔더니, C는 간절하고 초조한 얼굴로 앉아 나를 맞이했다. 그날은 일이 많아 굉장히 피곤한 날이었는데, 배는 더 고팠다. 순댓국을 시키고 한 입 뜨려는 순간, C가 말했다. “자 여기 내가 준비한 질문이랑 답변이야. 한 번 내용이 어떤지 먼저 봐줄래?” 밥을 중요시하는 나는 잠깐 기분이 상했다. “미안한데, 밥 한술이라도 뜨고 봐주면 안 될까?” 면접 대비도 식후경. 나는 순댓국을 3분의 1 정도 먹고 C의 면접대비노트를 보기 시작했다. 내용의 적절성과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등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C의 답변을 들었다. 본격적인 수정이 필요할 것 같아서, 카페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2시간이 넘게 C의 답변을 수정하고 모의 면접을 해보며 밤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갔다. ‘C가 군대문화인 우리 회사에 들어오면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그래도 붙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붙으면 매일 밥이라도 먹자고 하는 거 아니야?’하는 걱정도 앞섰다. 


“나 떨어졌어...! 그래도 네가 말해준 좋은 정보들 덕에 이건 어떻게 알았냐며 조사 많이 하고 면접 준비 많이 한 것 같다는 칭찬도 들었어. 나 진짜 다음에는 어디든 붙을 수 있을 것 같아!” C의 카톡을 보고 매일 같이 밥 먹을 일은 없겠다는 안도감과 함께 또 어떤 상담을 해주어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C가 부담스러워진 건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하지만 면접을 도와줘서 고맙다며 밥을 꼭 사야겠다는 C의 제안을 거절하기도 애매했다. 한 달 정도 지나고, 우리는 그렇게 동네 곱창집에서 또 한 번 만났다. 


끝이 보이지 않는 취업시장에서 혼자만의 싸움을 하며 취업 준비를 하는 C의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 같다. 피부가 다 뒤집어져서 피부과를 다니고 있었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머리카락을 뜯는 버릇이 있던 C의 머리숱은 지난번보다 많이 줄어 있었다. 서류만 수십 번 떨어지며 인내했던 취업 준비의 외로움을 나도 잘 알기에, 나는 그런 C에게 모질어지지 못했다. 이번에는 가죽제품을 수출입하는 회사에 관심이 생겼다며, 무역 관련 직종으로 취업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아는 건 없고 너무 막막하다고 했다. 무역에 관해 책까지 내신 아빠가 떠올랐지만 과연 아빠까지 만나게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생각을 멈추었다. 집에 왔는데 아빠가 어떤 친구를 만나고 왔냐고 물어보셔서 C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는 흔쾌히 C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말해줄 수 있으니 동네 카페에서 한 번 만나보겠다고 했다. 고민이 되었지만, 그날 C의 얼굴을 잊을 수 없던 나는 아빠와의 취업 컨설팅도 주선해 주게 되었다. 


아빠와 나와 C, 이렇게 셋이서 동네 카페에서 만났다. 친구는 준비해 온 질문지를 꺼내 들고 아빠에게 열심히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말씀하시는 걸 열심히 받아 적으며 C는 눈을 반짝였다. 약 한 시간 반 정도가 지나고 만남을 마무리했다. C는 아빠에게 추가질문이 생기면 여쭈어봐도 되냐고 물었고, 아빠는 메일 주소를 적어주시며, 질문이 있을 때는 여기에 보내놓으라고 하셨다. 집에 도착한 후 카톡이 왔다. “정말 정말 고마워. 질문 생기면 아버님께 이메일 보내도 되는 거지~?” “응~ 메일로 보내놓으면 아빠가 읽고 답 주실 거야.” 그런데 다음 날 저녁, 회사에 다녀와 곯아떨어져서 잠들어 있던 사이, C에게서 부재중전화 3통이 와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괜한 걱정을 하게 만들며 카톡을 보냈다. 내 카톡을 읽자마자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무슨 일이야? 전화를 못 받았는데, 왜 3통이나 했어~?” “아 아버님께 메일을 보내려는데, 실례되는 말은 없을지 내용이 이상하지 않을지 걱정이 돼서… 너한테 한 번 봐달라고 하려고 했어…!” “아… 그냥 보내면 되지. 뭘 그렇게 신경을 써… 그냥 보내 놓으면 아빠가 보실 거야!” 그때 생각했다. 

 

‘아, 나 잘못 걸렸구나.’

 

나에게 C라는 친구의 존재는 ‘도움을 주고 격려해주고 싶은 친구’에서 ‘부담스러운 친구’로 서서히 굳혀지고 있었고, 그때부터 핸드폰에 뜨는 그녀의 이름은 받기 싫어지는 이름이 되었다.




P : 이 글은 1편이에요. 쓰다가 너무 길어져서 나머지 내용은 2편에 쓰기로 했어요. 


J : 네 참고할게요. 이 글 좋은데요? 일어난 일에 대해 생동감 있고 관심가게 쓰인 것 같아요. 최소 몇 개월간 이 친구와의 사건이 있었을 텐데 많은 사건들 중에서 캐릭터와 사건 파악에 필요한 정보들을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확실히 에피소드를 쓰는 글에 소질이 있네요. 


그리고 문장이 꽤 좋다고 느꼈어요. 글을 전혀 못 쓰는 분들은 이 정도 문장으로 전혀 써 내려가지 못해요. 얼마 전에 맛집 리뷰 잘 써서 조회수 1만 올라갔다고 했죠? 충분히 글쓰기를 P님의 강점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P : 아 그런가요? 칭찬을 해 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평소에는 칭찬을 잘 못 들었는데.. 


J : 저도 칭찬할 것이 있으면 할 줄 알아요..ㅎㅎㅎ P님의 장점은 업무에서 좀처럼 발현되기 어려운 영역이었네요. ㅋㅋㅋ 발전 가능성이 보이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P : 네, 제가 보고서 부분이 약한 이유를 알겠어요. 길게 풀어서 쓰는 것은 할 수 있겠는데 요약, 간단명료, 정리 이 부분이 안 되는 것 같아요. 


J : 강점이 분명하게 보이면서 약점까지 분명해졌네요. 정말 좋은 발견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을 잘 알아야 발전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강점은 살리고 약점은 보완하면 성장으로 가는 길이죠 ㅎㅎ 


이 글은 잘 썼는데 아쉬운 점을 말하자면 메시지 부분입니다. 2편에 그런 내용이 나올 것 같기는 하지만요. 글이 더 많은 사람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거나 글로써 어떤 일을 도모하고 싶다면 읽는 사람이 얻는 게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얻는 건 뭘 까요? 


P : 공감 아닐까요? 예전에 재미있게 본 웹툰에서도 메시지는 없었는데 공감된다는 댓글이 엄청 많았어요. 


J : 맞아요. 그런데 공감이 엄청나게 되지 않는 이상 많은 사람에게 인상을 남기기는 어렵죠. 글이 일기 수준을 뛰어넘으려면 글쓴이의 생각이나 메시지가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요. 

아마 2편에서 그것이 나올 차례이긴 할 것 같아요. 


P : 네 맞아요. 


J : 그럼 그건 2편에서 기대해 볼게요. 2편을 우선 생각했던 대로 써보세요. 그리고 그다음에 1편과 2편이 유기적으로 버무려지면 기존에 썼던 글을 뛰어넘고 발전한 글이 나올 것 같아요. 


유기적으로 버무려진다는 말이 어려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말은 에피소드와 생각이 따로 노는 게 아니라 에피소드를 읽으면 글쓴이의 의도가 읽히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 마지막 문단에서 C에 대한 부담을 나타낼 때 ‘부담스럽다’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C에게서 부재중전화가 1분 단위로 3통이나 와 있었다.’ P님이 원래 쓴 버전에서 ‘1분 단위’라는 단어가 추가됐죠. 집착 정도를 더 드러낼 수 있는 표현을 추가해 봤어요.


그리고 그런 표현이 더해졌을 때 C가 부담스러운 이유가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올 것 같아요.


P : 그런데 2편을 쓴다고 해도 메시지가 특별히 생길 것 같지는 않아요.

 

J : 맞아요. 메시지를 만드는 게 제일 어려운 부분 중 하나예요. 그래서 제가 그것을 도울 수 있는 교재를 준비했습니다… #내돈내산입니다. 제가 글쓰기 학원에 천만 원 쓰면서 느낀 인사이트를 가지고 찾은 책이에요.

‘생각 글쓰기’라는 책입니다. 초등학생을 위한 교재이지만 글쓰기에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서 선정했어요. 


회사 안에서든 밖에서든 나만의 생각과 주관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할 때 주관이 생겼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이후로 글쓰기가 많이 늘었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의 생각이 아닌 내 생각을 썼을 때 글이 큰 힘을 받았어요. 주제들이 의외로 쓰기 어려워요. 저도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아요.


P : 매일매일 해서 60일짜리네요. 3월 중까지 한번 해보도록 할게요.


J : 네 매일 학습지처럼 할 수도 있고 이런 소소한 활동을 P님이 좋아할 것 같아서(?) 골라본 책이에요. 저도 이 책에 나온 활동들 해보려고요. 다음 시간에는 첫 번째로 한 내용을 가져와서 나눠보면 좋겠네요. 그럼 다음 주 2편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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