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들지 않은 물건을 잘 팔 방법은 없어요.
내가 불편해서 만들었어.
"이거 참 잘 만들었다.", "이거
정말 맛있다.", "이 경험 진짜 잊을 수 없다."
상품을 파는 사람으로서 이런 감탄사를 끌어 낼 수 있는 상품을 낸다면 더 바랄
게 없겠죠?
소비자로서 우리는 어떨 때 이러한 반응이 나오나요? 물성이 있는 상품으로 상상해보죠. 효용성, 편리함, 내구성, 적정 가격과 같은 요소들이 하나 혹은 여러 요소가 부합될 때 우리는 좋은 제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박리다매의 상품에서도 우리는 만족을 느낍니다. 가격으로 인한 만족이 강하기 때문이죠.
제품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런 상품을 어떻게 만들까요? 간혹 "내가 불편해서 만들었어." 라고 말씀하시는 사장님들도 있습니다. 물론 성공한 사장님만
매체에서 보게 되겠지만 이런 상품의 성공 확률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그나마의 성공 확률은
개발 동인이 확고해서 중간에 흔들리지 않고 불도저처럼 이를 개발에서 판매까지 끌고 나가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할 때입니다. 대부분 이 얘기, 저 얘기, 이 데이터, 저 데이터 보다가 이도저도 아닌 상품을 내놓는 경우가
허다하니까요.
영국의 다국적 화학 회사인 이네오스(Ineos)의 회장 제임스 래트클리프는 정통 오프로드 차량인 랜드로버의 1세대 디펜더 자동차의 마니아였는데요. 2015년에 단종된 1세대 디펜더를 재생산해달라고 렌드로버 측에 실질적인 '통사정'을 여러 차례 했다고 합니다. 랜드로버는 이에 매번 거절을 했고요. 디펜더 차량의 지적재산권까지 막아서 이네오스 회장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막았죠. 결국 레트클리프 회장은 이네오스 오토모티브(Ineos Automotive Ltd.)를 설립하고 자신이 사랑한 디펜더의 장점을 끌어모은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기까지 합니다.
제임스 레트클리프 회장과 이네오스의 첫 차인 그레나디어. Grenadier 이름 조차 회장이 좋아하는 런던 술집 이름을 따온 거라고 하죠. 2021년 첫 생산이 시작되었습니다.
글로벌 대기업 회장님의 개인적 사치 또는 일탈로 보이시나요?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엑스 우주 사업처럼 대의나 전 지구적 문제를 끌어안은 해결책도 아닌 거 같고요.
이네오스는 연 매출 75조가 넘는 자이언트
기업입니다. 개인의 취향이 작용했더라도 사업화에는 당연히 수많은 검증 단계를 거치지요. 기존 차량 시장에서 랜드로버나 메르세데스 또는 지프나 도요타가 채울 수 없는 가까운 미래의 블랭크 스팟을 분명히
바라보고 이 시장에 진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오네스의 그레나디어는 모든 내외부의 차체 매커니즘과 디자인을
의도적으로 십 수년 전으로 되돌려 놓은 듯이 보입니다. 누구에게 이것을 팔려고
하는지 분명해 보이는 상품을 내놓은 것이죠.
분명한 철학이 있거나, 누구에게 팔건지 명확하거나
유서깊은 식당이 오래도록 그 맛을 유지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습니다. 일하는 사람도 바뀌고 식당의 규모가 바뀔 수도 있고요. 무엇보다도
손님들의 입맛이 달라지기도 하지요. 전분 비율을 어떻게 쓰고, 까다로운
소스 제조 과정을 집요하게 지키는 일, 이 모든 일은 왠만한 고집과 철학이 아니고서는 유지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레시피를 유지하는 주방장 혹은 사장님의 이 확고한 철학은 비단
어떤 대상에게 직격하기 위해서임은 아닐 겁니다. 그야말로 그 맛에 대한 확고한 생각 때문이죠.
요즘 많이들 진입하는 SNS를 통한 소위 인플루언서 판매 방식을 한번 볼까요? 명료합니다.
이미 수많은 마케팅 이론에서 밝혔듯이 좋은 제품 냈으니까 사라고 멱살 붙잡아선 이제 별 소용 없다고 하지요. (사진 세스고딘)
당연히 기업은 개인 인플루언서와는 다릅니다. 하지만
저 인플루언서들이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에서 한 가지 힌트는 얻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첫 번째 단계
즉, 개인 브랜딩에 모든 사활을 건다는 겁니다. 그들에겐
그것만이 판매를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죠.
기존 브랜드의 상품 전략
이미 대부분의 기업은 기존에 생성된 브랜드 아래 상품 카테고리가 존재합니다. 들어간 회사의 사명을 바꿀 수 없듯이 브랜드를 바꿀 수는 없으니 담당자라면 당장 눈 앞에 판매하는 제품에 모든
집중을 다 합니다. 맞아요, 그러면 됩니다.
기존 브랜드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장 눈 앞의 제품을 성공시키는 겁니다. 성공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 개발이 이미 끝난 제품이라면 무형의 가치를 더 상승시켜주세요. 아직 개발 전의 상품이나 고도화 할 수 있는 제품이라면 제품 자체를 조금 더 나은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수준의 나은 제품으로 가져가 주세요. 유형의 가치는 한계가 있습니다. 예컨대
자금과 시간의 문제가 뒤따르죠. 그렇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무형의 가치에 집중합니다. 무형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안 보이는 가치를 볼 수 있는 그 타깃에 집중해야함을
뜻합니다. 제품의 타깃에게만 줄 수 있는 가치에 집중합니다.
이어 해야 할 일은 브랜드의 충성도를 만드는 일입니다. 개인 인플루언서들이 모든 역량을 쏟아 붓는 바로 그 일이죠. 아이폰 구매자는
다음 버전의 아이폰을 구매할 때 몇 픽셀의 카메라나 몇 나노 뭐시기의 CPU 때문에 구매하는 게 아닙니다. 아이폰이니까, 애플이니까 구매하는 거죠.
제품의 브랜드화란 그 제품이 즉, 그 이름이
주는 신뢰를 뜻합니다. 신뢰는 내가 믿는 것을 그것이 지켜줄 때 이루어지죠. 그래서 아이폰은 제품이지만 브랜드로 작동합니다. 여기에 그
뒤에 애플이라는 병풍을 치고 가죠. 아이폰 자체의 브랜드력에 애플 브랜드력까지 신뢰가 천정부지로 올라갑니다. 브랜드 충성도를 만드는 것은 제품 판매에 허덕이며 뒤로 미뤄둬야 할 일이 아닙니다, 절대로.
신규 브랜드의 상품 전략
새로 브랜드를 세상에 내놓는다면 이제 개인 인플루언서가 했던 그것,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졌고 그래서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빌드업하는 과정을 시스템화하여 구축해야
합니다.
판매하려는 물건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하지만 판매할 상품과
시장을 바탕으로 브랜드를 단단하게 구축하는 일을 먼저 해주십시오. 혹여 상품을 잘 팔고나서 뒤에 이
일을 진행하려면 장담컨대 훨씬 다양한 난관을 거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뒤이어 판매할 상품도 첫 번째 상품과 똑같은 주사위를 던져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브랜드를 단단하게
구축하는 일은 대상 연구가 가장 주효한 요소가 됩니다. 브랜드의 가치를 분명히
하고, 그 가치를 교환할 대상을 규명하여 그에 맞는 메시지와 원칙을 가지는 일. 제품은 이 단호한 브랜드 전략에 맞추어 판매됩니다. 어느 하나 메시지와
원칙을 쉽게 위배하지 말아주세요.
하이브 계열의 아티스트는 그 누구 하나 BTS의 성공 공식을 DNA로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없습니다. 앨범 마다의 컨셉을 아우르는 아티스트 자체의 명확한 엄브렐러 컨셉, 팬덤을 만드는 프로세스, 메시지 전달 방식, 진정성을 표현하는 방식, (음악, 퍼포먼스, 캐릭터 등)요소들의 우선 순위와 밸런스. 변이는 있을지언정 방법론은 철저하게 따르죠. 하이브라는 브랜드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르세라핌의 다큐에서 보면 무려 '스토리텔링 팀장' 이라는 직함의 직원이 있습니다. 멤버들의 스토리와 욕망을 바탕으로 정체성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장면이 다큐멘터리에서 나오는데요. 앨범마다 여전사에서 미소녀 컨셉으로 바꾸는 여타의 여아이돌과 달리 그룹의 분명한 정체성과 메시지를 갖게 되죠. BTS가 십대를 대변해 세상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분명한 그룹의 그것과 같은 궤를 합니다. (출처 - 르세라핌 다큐 에피소드2 중에서)
제품을 이야기 했을 때 브랜드가 안 떠오른다면?
기존 브랜드가 출시 상품에 매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브랜드라면 상품에 부착될 로고 정도에서 잊고는 지금 시장에 통용되는 상품 개발에 집중한다던지 마케팅에 사활을
걸게 되죠. 브랜드를 굉장히 당연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만나
본 대부분의 기업 실무진이 어김 없었습니다. 브랜드에 대해서 철저하게 감안한다고요? 브랜드의 표기 방식, 키 컬러, 어플리케이션
적용 방식, 넘어서는 안 될 바운더리, 경쟁 브랜드의 견제... 지키고 있는 이것들은 브랜드의 규율이지 브랜드의 철학은 아닙니다. 브랜드와 상품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결착되어야 합니다.
신라면의 새로운 TVC 모델을 기용해
광고를 만드는데 농심에 대해서 장황하게 언급하며 광고를 하자는 게 아닙니다. 농심을 모르는 국민이 있을까요? 하지만 농심이 라면을 만들 때 어떤 기조와 원칙을 중요시 하는지 희미하게나마 아는 소비자가 있나요? 오뚜기 라면은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인스턴스 식품이지만 그렇게(?) 나쁜 재료는 없을거야' 라는 대중 없는 신뢰를 가집니다. 또는 이 기업의 제품을 사면 왠지 똑같은 소비라도 아주 조금은 착한 소비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오뚜기가 정직하고 착한 기업이라고 기업 광고를 하나요? 하지만 꽤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신뢰합니다. 여러분이 소문으로
들었건, 어떤 짧은 근거 영상이나 자료를 봤건, 아니면 오너
일가의 어떤 면모로 판단했건,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뚜기에서 신제품을 낼 때면 이 효과가 얼마나 클까요?
치열한 상품 경쟁에서 브랜드의 가치는 마법 가루와 같은 효과를 냅니다. 소비자로 하여금 효용성과 편리함과 내구성, 적정 가격 위에 "역시"라는 부사를 붙이게 되는 거죠. 이는 매대에서 해당 상품을 집어 올리느냐 마느냐의 거의 대부분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샌들 브랜드에서 만든 스킨케어
브랜드에서 카테고리가 다른 상품군을 출시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브랜드가 쌓아 온 카테고리의 신뢰를 상쇄, 최악에는 상실할 수도 있지요. 이때 카테고리 확장이란 자동차 명가에서 자전거를 만들었다와는 다른 수준의 카테고리를 이릅니다.
버켄스탁에서는 스킨케어 제품을 출시했습니다. 네, 그 코르크 힙스터 샌들 브랜드 말입니다.
코르크는 재생가능한 원료로 코르크 추출물은 노화방지와 탄력성 유지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버켄스탁은 뿐만 아니라 건강한 수면을 위한 침대 매트리스도 만들고 있죠.
1774년 설립됐다는 독일의 버켄스탁은 미국 시장에 진출한 것만 해도 50년이 된 유서깊은 브랜드입니다. 오랜 시간 자연주의와 편안함 그리고 건강함에 대한 브랜드 가치를 단단하게 지켜왔죠. 50년을 지켜왔더니 타깃이라는 게 생겨버렸습니다. 거추장스러운 것보다 자연스러운 것, 자유로움과 건강함을 우선시 하는 사람들이 바로 버켄스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크록스가 외과 의사들의 슈즈라면 버켄스탁은 실리콘벨리 개발자들의 슈즈였습니다. (우리야 힙스터를 뭔가 멋진 사람들로 칭하지만 미국에서는 남들 시선 개의치 않는 찐따?의 의미로 쓰였는데요) 패션이라곤 전혀 신경쓰지 않던 스티브 잡스가 그 힙스터(찐다)의 대표적인 표상으로, 버켄스탁의 마니아였다고 하죠.
평소 맨발로 생활하는 것을 좋아했던 스티브 잡스의 버켄스탁은 주택 관리인이 수거했고 이후 2022년 경매에서 2억 9천 만원에 낙찰됐다고 하죠. (사진-줄리언스 옥션)
버켄스탁이 스킨케어를 낸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또 합당한 이유는 바로 브랜드 가치
때문입니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가 오랜 세월 확고했고 그에 따라 팬과 소비 계층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들에게 버켄스탁의 브랜드 가치를 조금도 해치지 않고 낼 수 있는 제품이 스킨케어라는 데는 고개를 갸우뚱 할
이유가 없습니다. 버켄스탁에 사용되는 코르크의 괄목할만한 피부 효과를 그대로 스킨케어 제품에 적용했습니다. 브랜드의 자연주의 가치를 존속하는데도 유효했습니다. 버켄스탁을 신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스킨케어를 사용하는 게 추호도 이상할 게 없죠. 이는 브랜드와 상품이 절묘하게 결착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를 통해 각 상품이 다른 카테고리의 상품으로 연계 구매가 이어지고요.
잘 만들지 않은 물건을 잘 팔 방법은 없습니다. 잘 만들었다는 정의는
위에서 설명했듯이 브랜드 철학과 신뢰를 효율적으로 제품에 이식하거나 상품이 판매 대상에 적합할 때만 성립됩니다.
앤드류와이어스 김해경
“리브랜딩이 필요한 당신에게 보내는 브랜드 컨설턴트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