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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플레이스’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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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본질 

 



사진 제공: 박진배

 

공간은 설계한 사람의 본성과 문화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의 추억과 연륜을 품으며 서사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하나의 장소가 되는 것이다. 많은 경우 그런 장소는 새롭게 태어난다. 다른 기능으로 재생되고, 문학이나 영화의 배경이 되면서 뜻밖의 명소가 되곤 한다. 그래서 공간이 품고 있는 시간의 켜는 우리에게 사고의 순간으로 작용한다. 

 

 

 

공간의 기본은 공공 디자인

 

공간을 이야기할 때 가장 기본 개념은 공공 디자인의 영역에 있다. 대표적 예로 광장이나 공원, 미술관이나 도서관 그리고 기차역, 버스 정류장, 벤치 같은 공공 시설물이다. 공공 디자인은 유명 예술가의 값비싼 작품이 아니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관람할 때는 통제된 공간에서 의도된 동선에 따라 옮겨 다니게 된다. 하지만 공공 디자인은 예기치 못한 환경에서 마주한다. 특히 옥외 장소는 우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길을 걷다가 쉴 수 있는 곳, 일상의 흐름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곳이다. 그런 멈춤을 위해 계획한 디자인은 사람들과 교감하면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공공장소는 타인과 연결된 공간이다. 당연히 권리와 의무, 예의가 동반된다. 타인이 즐기는 시간과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며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무엇보다 개인 소유가 아닌 공동의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상호 배려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공공 디자인이 매력적이지 않은 공간은 사람을 끌어들이지 못한다. 도시의 문화적이고 민주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높은 시민 의식, 환경에 대한 존중, 사람에 대한 예의와 공중도덕이 필수적이다. 모두의 노력으로 그런 것들이 이루어졌을 때 그 장소는 선망의 대상이 되고, 그런 장소를 갖춘 도시는 문화적 슈퍼타운으로 등극하는 것이다.




나를 위한, 나만의 단골 카페


커피를 팔고 마시는 공간은 카페, 커피숍, 커피 하우스 등으로 일컫는다. 17세기 말 런던을 시작으로 파리, 베네치아, 빈 등에 커피 하우스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카페 문화에서 빠뜨릴 수 없는 도시가 파리다. 파리의 부유층은 집 안에 ‘팔러Parlor’와 같은 접객용 공간을 갖추지만, 대부분은 그러지 못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가까운 카페를 이용한다. 파리에만 1만 개가 넘는 카페가 있다. 카페는 파리 시민의 거실이자 응접실 역할을 한다. 이곳에선 냉난방을 제공하는 환경에서 책을 읽고 글도 쓸 수 있다. 커피 한잔은 사교의 매개이자 고독과 독서의 동반자다.





포르투갈 포르투(Porto)의 ‘카페 마제스티크(Café Majestic)’. 17세기 말 런던을 시작으로 유럽의 많은 도시에 커피 하우스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카페는 일반적으로 커피나 차‧디저트를 즐기는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간단한 식사를 위해서도 적합하다. 동네마다 카페가 있으며, 보통 하루 종일 영업을 한다. “내가 가고 싶을 때,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내가 원하는 곳에서 먹는다”는 문장으로 파리 시민의 라이프스타일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자신만의 단골 카페가 있고, 웨이터는 단골손님의 이름을 대부분 기억한다. 이곳의 서비스는 느리다. 하지만 여기서는 빨리 먹는 것보다 잘 먹는 것이 중요하다. 식사를 하다가 남은 와인을 마시기 위해 치즈를 주문하고, 또 그 치즈를 다 먹기 위해 와인을 더 주문한다.





파리의 카페는 소비하는 곳이 아니라 생각하는 곳으로 많은 작가와 예술가가 찾는다. 스스로 지식인이 될 권리를 추구하는 자들의 공간인 것이다.



파리의 유명한 카페들은 센Seine강의 남쪽에 많다. “북쪽La Rive Droite은 소비하고, 남쪽La Rive Gauche은 생각한다”는 표현처럼 남쪽에는 소르본 대학교를 비롯해 많은 도서관과 서점이 있다. 그리고 그런 철학과 문학, 예술적 분위기의 중심에 카페가 있다.


여기서 카페는 소비하는 곳이 아니라 생각하는 곳이다. 카페는 많은 작가와 예술가의 눈을 뜨게 해주었다. 스스로 지식인이 될 권리를 추구하는 자들의 공간인 것이다. 여기에는 고뇌, 유머, 슬픔, 낭만, 유혹 같은 인생의 언어가 존재한다. 지금도 카페를 사랑하던 사람들의 일화와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호텔이 하나의 마을이 된 이유


여행자에게 잠자리와 식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은 실제로 많은 사연과 스토리를 품게 마련이다. 마치 마을의 축소판 같다. “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로 시작하는,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 속 작은 마을을 생각해보자.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광장이 있고, 거리들이 나뉘며, 마을회관과 교회‧우체국‧법원 등의 건물이 거리에 따라 자리하고 있다. 외곽 쪽으로는 주택들이 줄지어 있다.

 

 


런던 리츠(Ritz) 호텔. ‘어떤 호텔인가?’는 ‘어떤 마을인가?’라는 은유적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호텔의 공간 구성



호텔 역시 이런 배치를 따른다. 마을의 중심 광장은 로비, 길거리는 복도, 기타 공공건물은 영업장인 식이다. 마을의 공원이나 텃밭은 호텔의 정원과 허브 가든, 도서관 및 미술관과 공연장은 호텔의 서재나 갤러리, 그리고 로비에 놓인 피아노로 축소해 만든다. 호텔의 미팅 룸은 마을 회관이고, 주택은 객실에 해당한다. 마을 광장처럼 호텔 로비에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교류가 이루어진다. 어두운 거리에 늦게까지 불을 밝히며 사람들을 반기는 작은 마을의 술집처럼 호텔 구석에 위치한 바는 외로운 손님을 위한 자리를 비워놓고 기다린다. 그래서 ‘어떤 호텔인가?’는 ‘어떤 마을인가?’라는 은유적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예쁘고 깨끗하며 사람들이 친절한 마을을 좋아한다.




동네의 작은 공원이 주는 위안


흔히 “살아 있는 오아시스”라고 말하는 공원은 도심 속 자연이자 시민의 휴식 공간이다. ‘포켓공원Pocket Park’으로 불리는 뉴욕의 공원들은 빌딩 숲의 틈새 곳곳에 숨어 있다. 센트럴 파크 같은 대규모 공원이 아니라, 아주 작은 규모로 만들어진다. 일반적으로는 자연과 함께 숨 쉬는 장소로 물, 나무, 조각, 벤치 같은 환경 요소가 첨가된다. 포켓공원에서 사람들은 이른 아침 비즈니스 미팅을 하고, 밤에는 파티도 연다. 연인들이 만나고 사랑을 나눈다. 정보를 교환하는 사회적 소통의 장소 또는 각종 이벤트가 펼쳐지는 문화 공간으로도 이용되면서 도시의 많은 이야기가 살아 숨 쉰다.


포켓공원의 규모는 매우 작지만 물리적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가슴에서 느끼는 크기다. 이용자에게 포켓공원은 아주 큰 마음의 공간이 된다. 소중한 것을 간직하고 겨울에는 차가운 손을 녹일 수 있는 곳이 주머니, 포켓이다. “뉴욕의 모든 심각한 문제는 공원에서 숨을 쉰다”는 표현처럼 공원은 뉴욕 시민의 영원한 안식처다.



 


 

뉴욕의 그린에이커 공원(Greenacre Park). “살아 있는 오아시스”라고 말하는 작은 포켓공원은 도시의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곳이다.



긍정적 태도로 어느 장소가 들려주는 서사에 귀 기울이면 그 기억은 추억이 된다. 그런 경험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건 다양한 장소가 제공하는 스토리와 정서를 이해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이 공간이 가진 힘인 ‘공간력’이다. 그런 공간을 존중하고 공간과 대화할 때 우리는 많은 걸 느끼고 경험한다. 그리고 익숙하지 않던 생소함은 곧 친밀함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보내는 하루는 보통의 여느 하루보다 훨씬 의미가 크다.

 

 

글. 박진배(뉴욕FIT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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