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파는 식당들
최고의 식당 브랜딩, 문화
요즘은
어지간한 식당에 가더라도 네이버 리뷰나 인스타그램 인증 시 리워드 안내 문구가 붙어져 있습니다. 당연히
리뷰에 사진이 잘 나올 수 있도록 테이블에서 접시, 커트러리, 조명까지
어느 것 하나 신경 쓰지 않은 것이 없고요. 힙한 센스를 선보일 수 있는 essential 리스트 따위의 음악도 연신 흘러나옵니다. 여전히
유행하고 있는 레트로 컨셉이라면 역시 그 컨셉에 맞춰 가게의 문전성시를 만들기 위해 갖은 인테리어와 브랜딩으로 피력할 테고요. 그런데 이렇게 외형에 '최선'을
다한 식당이 아님에도 어느 식당에는 분명한 그 집의 분위기가 있는 곳이 있습니다. 나아가 분위기 정도가 아니라 이게 추구하고 선보이려는 '문화'임이 분명한 식당을 만날 때도 있죠. 그런 식당에서의 경험은 특별합니다.
alchemy bali 의 워크숍 세션.<출처 - @alchemybali>
어느
분야나 브랜드의 문화는 중요합니다. 브랜드의 본질을 가장 디퓨징 해주는 게 바로 문화이니만큼 그것보다
중요한 건 찾아보기 어렵죠. 그중에서도 식당은 '경험'의 최전선의 형태입니다. 식도로 영양소를 넘기고만 나오는 곳이 아니니까요. 총체적인 경험을 하는 곳이 식당입니다. 그러니까
식당이라는 형태에 있어 최고의 브랜딩은 바로 문화인 것이죠.
LA 외곽의 자전거 타는 힙스터들의 식당
팔당역에 있는 초계국수집은 한때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성지와 같은 식당이었습니다. 서울의 끝자락을 지나 구리에서 양평으로 가기 전, 이정표와 같은 곳이었죠. 서울에서 팔당댐까지 가면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이 열기를 식히기 위해 살얼음이 떠있는 시원한 초계국수를 먹곤 했습니다. 넓은 주차장 덕에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쉽게 세워두고 먹을 수 있는 장점도 크게 작용했죠. 하지만 이 초계국수집은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위해 특화한 것이라곤 여전히 무색한 식당입니다.
pedaler's fork 의 전경. <출처 - @pedalersfork>
LA 외곽 칼라바사스에 위치한 Pedaler's fork 레스토랑은 마치 팔당의 초계국수집처럼 LA를 벗어나 외곽으로 먼 사이클링을
하는 페달러들에게 유명한 식당입니다. 오래전부터 왜 서울의 가까운 외곽에 자전거 타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식당이 존재하지 않는지 의아했던 저에게 이 식당은 거의 모든 조건을 다 충족하는 장소였습니다. 주로
서울에서는 전문 자전거숍에서 커피를 파는 경우는 있어도 이렇게 제대로 자전거 문화를 이해하고 제대로 된 음식을 파는 식당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놀라울 따름이었죠. 자전거가 워낙에 준거집단 문화가 강해서 일반 손님이 소위 쫄쫄이 팬츠를 입은 라이더들의
분위기에 쉬 녹아들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 그 걱정에 대해 어느 정도 끄덕일 만도 합니다. 반대로 한국이나
미국이나 쫄쫄이 팬츠의 라이더들이 일반 사람들로 가득한 식당에 홀로 들어가서 먹는 게 어색한 건 마찬가지고요.
pedaler's
fork는 자전거 중에서도 Gravel Bike(자갈밭을 갈 수 있는, 로드와 MTB의 장점을 가진 자전거) 문화가 강합니다. 일단 칼라바사스 지역이 그레블 자전거를 타기에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죠. 그래블 바이크는 속도광인 로드 바이크와 좀 더 다이내믹한 도전 의식이 충만한 MTB 바이크와는 다소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필요하면 간단한
짐을 싣고 먼 거리를 여유롭게 떠나지만 모험은 기꺼이 즐기는, 소위 힙스터 문화에 가장 근접한 성향의
사람들이 이 그래블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죠. 한국에서도 그래블 바이크는 최근 자전거 브랜드들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합니다.
pedaler's fork 식당 테라스와 연결되어 있는 리페어숍 <출처 - @pedalersfork>
pedaler's fork는 바로 이 그래블 바이크를 타는 성향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과 커피, 그리고 수제 맥주를 팝니다. 페달러들을 위한
가게답게 아침(주로 11시까지) 메뉴가 주를 이룹니다. 음식은 말할 것도 없이 최상의 것들을 내놓고
자전거 대회나 요가, 공연 등 다양한 이벤트도 성황을 이루고요. 식당
이름에 걸맞게 자전거 리페어샵이나 직접 만든 자전거도 판매합니다. 그렇다고 라이더들만 가득한 곳은 아닙니다. 저녁은 외곽에 데이트를 나온 커플들에게 인기인데요. 건강하고
맛있는 것을 먹는 라이더들의 식당이, 그것도 멋지게 꾸며진 2층
목조 건물에서의 식사는 일반 손님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장소인 것이죠.
진지하게 자전거 라이더들을 위한 식당이지만 당연하게도 전문적인 레스토랑 <출처 - @pedalersfork>
자전거족들이
충성을 다해 줄 테니 음식은 대충 칼로리를 채우면 된다? 또는 맛있는 것을 잔뜩 준비했으니 자전거 문화를
어떻게 접목해서 자전거족들을 끌어들이자? 둘 중 어떤 형태로도
pedaler's fork는 지금의 인기와 명성을 얻기 힘들었을 테죠. 예컨대 이곳에 주로
오는 그래블 바이커들은 로드 레이서들처럼 주행 중 칼로리바를 먹으며 케이던스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아마도 '자전거를 타면 맛있는 걸 먹어야 한다!'라는 분명한 생각이 이 장소의
바이브를 넘어 문화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핵심 대상에게 적확했고요.
요가 마을의 비건 식당
발리의
우붓은 쿠타나 캉구와 같은 유명 해변에서 떨어진, 섬의 내부에 위치한 곳으로 요가의 메카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해안 지역에 비해 숙소가 저렴해 유럽의 젊은이들이 장기간 머무는 곳으로도 유명하죠. Alchemy
Bali는 이런 젊은이들과 yogi(요가수행자)들에게
인기 있는 비건 식당입니다. 이곳은 Alchemy(연금술)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깜짝 놀랄만한 비건 메뉴가 가득한 곳입니다.
특히나 비건 초콜릿과 디저트류는 새로운 맛의 세계를 선사하는 수준입니다.
손님들이 밝고 건강한 기운을 잔뜩 받는 분위기는 단지 오픈 에어의 인테리어 때문만은 아닙니다. alchemy bali가 견고히 쌓아온 문화의 발현이었죠. <출처 - @alchemybali>
Alchemy
Bali에서 선보이는 비건 메뉴들은 버섯과 구황작물을 잘 쓰는 북미나 해산물과 올리브오일을 잘 쓰는 유럽의 지중해식은 물론이고
채식 전문 식당이 아니라 일반 식당에서는 푸른 것만 올리면 샐러드라고 주장하는 아직은 미성숙한 한국의 그것과는 많은 것이 달랐습니다. 저도 우붓에 머무는 기간 동안 최소 3,4일은 이곳에서 식사를 했는데요. 그쯤 되니 그 연금술을 익히고 싶어 졌습니다. Alchemy Bali의
쿠킹클래스는 정말 부킹이 힘든 인기 프로그램인데요. 오일과 곡류,
raw food를 다루는 방법들에 대해서 다양한 식견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그를 통해, 오일과 소스류의 식자재 사용이 다른 동아시아에 비해 협소한 한국의 식문화가 아쉬울 지경이었죠.
alchemy bali가 제시하는 인도네시아의 비건은 색다른 미식의 세계더군요. 비건 라이프를 심각하게 고민해보기도. <출처 - @alchemybali>
Alchemy Bali가 철저한 비건 철학으로 조금이라도 권위나 당위의 분위기를 풍겼다면 아마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외면했을 겁니다. 일단 맛있는 것으로 제안하고 맛과 재료의
스펙트럼을 확장시키는 경험을 자연스럽게 경험하도록 유도한 것이 주요했던 것이죠. 식당은 언제나 사랑과
평화로 가득한 요기들의 에너지가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만 일단 맛에 굴복하여 그 문화에 융화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Alchemy에서는 요가는 물론이고 이 행성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와 커뮤니티 활동도 다양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해서 어색할 건 하나도 없는 것들 뿐이죠. 그 점이 중요했습니다. 그 장소의 오너나 스탭들이 그 활동에 이니셔티브를
가지는가 아닌가. 그것은 접객에서부터 당연히 묻어나지요.
불을 경험하는 식사
포틀랜드의
Farmer's Market에서 만난 Jaret과
Mona는 'Farm to fire cooking'이라는 주제로 포틀랜드를 위시한 오레곤
주의 자연을 식당 삼아 예약된 손님들에게만 특별한 야외 식사 경험을 제공합니다. 말 그대로 따로 식당이
없이 호수와 해안, 숲 속의 야외가 이들의 식당인 셈입니다.
tournant의 인스타그램을
한번 구경해보세요. 불냄새가 난답니다. <출처 - @tournantpdx>
카우보이
모자를 쓴 두 사람은 화염 장갑을 끼고 거대한 불과 숯을 만들어 거친 주물식 냄비와 팬에 자연에서 가져온 그대로의 제철 음식을 요리합니다. 2,30명부터 500명까지 다양한 정규 코스와 비스포크 이벤트로
요리를 선사하는데요. 한 겨울의 눈밭에서부터 깊은 숲의 한가운데나 달빛 호숫가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긴
테이블에 앉아 하염없이 불의 요리들을 구경하다가 준비된 코스의 식사를 받게 됩니다. 음식이 모두 준비되면
호스트들은 야생의 전통 요리들과 불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하죠. 그렇습니다. tournant에서의
식사는 식사라고 부르기는 아까습니다. 경험이라고 해야 옳겠습니다.
포틀랜드의 숲과 해변, 시애틀의 호수. 오레곤 지역의 다양한 자연에서 이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tournantpdx>
제철 음식을 잘 요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tournant에서는 아무래도 불이 가장 중요한 콘텐츠입니다. tournant의 셰프 중 한 명인 Joe의 직함은 심지어 CFO, Chief Fire Officer입니다. 이런 야생에서의 식사는 파인다이닝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또 기억하게 됩니다. 모든 스탭들이 퍼포먼스가 아닌 원시의 방법으로 불을 사용해 자연의 식자재를 그대로 요리해 내는 '전통'의 일부에 있다는 것이 명백히 느껴집니다.
제가
처음 tournant를 알았을 때만 해도 알만한 사람들만 알고 부킹 하는, 또는 러시아의 부호 같은 이들의 요청으로 세계 곳곳으로 불려 가 비스포크 이벤트를 제공하느라 정작 포틀랜드에서
식사 예약을 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이후
이들은 이 독특한 '경험'이 흔한 경험이 아니며 많은 사람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다면 사업을 자신들에게 더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할 수 있다고 판단한 거 같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전문 포토그래퍼가 이들의 사진을 공들여 찍었고 이는 단순히 인스타그램에서 부킹이 늘어나는 것을 넘어 요식업계로부터
극찬을 받으며 자리 잡기 시작했죠. 지금은 포틀랜드와 시애틀 등지에서 자리를 잡고 barebones라는 주물 식기구 업체와도 성공적인 콜라보레이션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포틀랜드나 시애틀에 갈 기회가 생기면 이들의 파이어 이벤트 날짜를 한번 확인해 보고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식당이라는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는 일
기억에
남을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은 하나같이 명확한 그 식당만의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식당 안은 하나의 완전한 세계를 이루어야겠죠. 음식은 말할 것도 없고
식당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세계를 구성합니다. 그 구성은
대게 잘 형성된 문화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우리는 그 문화 또는 분위기를 통해 그 질서를 인지하죠.
비건 연금술을 배워볼 수 있는 alchemy bali의 쿠킹클래스<출처 - @alchemybali>
문화를
만드는 일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일단 그 장소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한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Alchemy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하는 한 명 한 명이 이니셔티브를 가지고 있어야겠죠. 그것이 직원의 과적한 노동 강요인지 아니면 오너십인지는 어쩌면 종이 한 장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종이 수백만
장처럼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알바가 자리를 대체해도 바로 일관된 약속과 형식을 지키면 유지되는
맥도날드와 같은 식당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맥도날드는 규모의 비즈니스이고 하여 효율이라는 시스템을
채택했습니다. 그 합리성이 맥도날드의 문화이고요. 이니셔티브는
예컨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무슨 의미인지 아는 것이고, 스스로 자부심을 생성해 낼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브랜드의
오너인 당신이 업장에 문화를 만들고 싶다면 최저임금의 알바로 해결할 일만은 아니지만 단지 임금을 많이 주고 직책을 달아준다고만 해결될 일도 아닌
것이죠.
식당이건
다른 업종이건 소비자와 스킨십을 가지는 업장을 준비하면서 선정한 컨셉 맞추기를 해서는 금방 바닥이 드러나고 맙니다. 철거 업체와 인테리어 업체만 바쁜 상권의 흥망성쇠들을 우리는 매일 보고 있지 않나요? 문화는 내가 추구하는 걸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형태로 내어야 통하는 것일 테죠. 교촌치킨이나 파리바게뜨와 같은 프랜차이즈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자기 것, 자기 브랜드를 한다고 했을 때 이게 대중적으로 맞을지 안 맞을지 보다
이게 진짜에 가까운 일인지 아닌지를 고민하는 게 중요합니다. 더 많은 고객, 넓은 고객층에 맞을까 아무리 고민해 봤자 대중의 취향을 반영한
결과물일 뿐이죠. 거기에서는 오너나 브랜드의 영혼이 부재합니다. 영혼이
들어가 있는 문화에는 사람들이 진중하게 또는 흥미롭게 발을 디디기 마련입니다. "너무 낯선 컨셉이어서(대중성이
떨어져서) 그 집은 망했어."라는 말은 잘 걸러
들어야 할 말일 것입니다.
Pedaler's
fork에 자전거를 타지 않는 사람도 그 식당에서의 경험이 즐겁습니다. 자전거를
타지 않고 그 문화를 몰라도 사람들은 그것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기가 막히게 안다는 거 여러분도 알고 있지 않나요?
앤드류와이어스 김해경
“리브랜딩이 필요한 당신에게 보내는 브랜드 컨설턴트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