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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성비, 요즘 사람들이 영화 대신 숏폼을 보는 이유

로지켓

2024.01.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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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비’라는 말, 알고 계신가요? ‘가격 대비 성능’을 일컫는 이 신조어가 널리 쓰이면서 동아일보 지면 기사에까지 등장한 게 2012년부터인데요.

이 가성비의 원조는 1990년대 후반 경기침체에 빠진 일본에서 등장한 신조어 ‘코스파(Cost Performance의 약자)’였습니다.

 

일본에선 요즘 코스파 못지않게 주목받는 트렌드가 ‘타이파’입니다. ‘Time Performance’의 줄임말로, 번역하자면 ‘시성비(시간 대비 성능)’정도로 쓸 수 있습니다.

지난해 생긴 이 신조어를 두고 최근까지도 심층 분석 기사와 서적 출간이 이어집니다. 이러한 현상은 그냥 유행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알고 보면 우리에게도 이미 일상으로 자리 잡은 ‘타이파’ 현상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에디터 3줄 요약

1. 시성비는 '시간 대비 성능'의 약자로 일본의 '타이파'(Time Performance)와 같은 말임!

2. 대표적인 시성비(타이파)현상은 동영상 빨리 감기와 영화·드라마의 요약본 시청!

3. 기업은 시간 효율을 극대화하는 소비자에 맞추려면 고객마다 ‘시간의 가치’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함!

 

 

 

'시성비' 위해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볼 때 혹시 1.2배속, 1.5배속으로 빨리 감기를 한 적이 있으신가요? 보다가 중간 부분을 건너뛴 경험, 아니면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대신 유튜브의 요약 영상으로 줄거리를 대강 파악해본 적이 있나요? 아마 ‘그렇다’라고 답할 사람이 꽤 많을 겁니다. 얼마 전 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9.9%가 ‘영상 콘텐츠를 빨리 감기로 시청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일본 칼럼니스트 이나다 도요시가 지난해 출간한 책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여기서 꼽은 빨리 감기의 이유가 ‘타이파’ 죠.

유튜브나 넷플릭스의 등장으로 추가 비용 없이 볼 수 있는 콘텐츠 양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남들과의 대화에 끼어들려면 SNS에서 인기 끄는 콘텐츠의 기본 내용쯤은 웬만큼 파악해둬야 하는데요. 이를 따라잡기엔 시간이 부족합니다. 

‘세상에 콘텐츠가 넘치는 가운데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많은 걸 보고 싶다’는 생각, 즉 타이파를 추구하게 된 이유입니다.

 

 

사진출처=마크로밀 엠브레인

 

디지털화로 ‘전환’이 너무나 쉬워진 게 그 배경입니다. 

 

음악을 예로 들자면 LP판 시절엔 곡을 뛰어넘으며 듣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물론 이후 CD의 등장으로 곡을 건너뛰는 건 한층 쉬워졌지만, 앨범을 바꾸기 위해 CD를 갈아 끼우는 건 여전히 귀찮은 일이었는데요.

 

지금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해 곡도, 앨범도, 아티스트도 아주 손쉬운 터치로 한순간에 바꿀 수 있습니다.

디지털 도구로 생긴 ‘유연한 소비 능력’이 타이파형 소비를 부추깁니다.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그런데 이쯤에서 하나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사실 합리와 효율은 인류가 늘 추구하던 바입니다.

그래서 언뜻 생각하기에 타이파는 너무 평범한(또는 당연한) 개념입니다.

 

다양한 곳에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다보니 간결하게 정리 된 아오야마대학의 쿠보타 진히코 교수(마케팅학)가 제시한 기준을 참고할 만한데요.

그는 타이파를 추구하는 사람은 크게 두종류로 나뉜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시간이 정말 없어서, 즉 육아나 직장생활로 너무 바빠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려는 사람이고요.

다른 하나는 시간에 쫓기진 않지만 ‘일정 시간 안에 더 많은 것을 소비하고 즐기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후자, 즉 시간이 있는데도 타이파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고 있는 현상입니다.

 

 

 

결말 알고 볼지 말지 정한다

이런 타이파 현상의 예를 좀 더 들어보겠습니다. 일본의 플라이어(Flier)는 모바일 독서 앱입니다. 

 

책 한권을 10분 만에 읽을 수 있도록 요약해서 제공합니다. 주로 경제·경영 관련 서적이나 직장인을 위한 교양서적을 요약해서 텍스트와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6시간 걸릴 독서 시간을 10분으로 줄여준다’는 컨셉입니다. 누적 이용자 수가 110만명에 달할 정도로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죠.

직원 복리후생의 일환으로 플라이어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고객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타이파를 추구하는 30~40대가 메인 유저로, 일반적인 비즈니스 서적 독자층인 40~50대보다 10세 정도 젊다”는 게 플라이어측 설명입니다.

 

 

사진출처=플라이어

 

유튜브에 넘쳐나는 영화·드라마 리뷰 영상도 타이파 트렌드의 전형입니다. 보통 영상을 따서 자막과 나레이션을 붙여 10분 정도로 정리하곤 합니다.

특히 ‘결말 포함’이라고 밝힌 리뷰 영상이 꽤 높은 조회수를 올리는 경우 종종 보는데요. 이런 영상에 저작권 승인을 받았다는 별도 표시가 없다면 그건 저작권을 침해한 영상이라는 거, 알고 계신가요?

 

아마도 저작권을 침해한 걸 알면서도 보는 시청자도 상당수일 걸로 추정됩니다. 다만 아직까진 콘텐츠 홍보 차원에서 나쁘지 않다고 보고 저작권자가 그냥 두는 경우도 많다는데요.

지난해 일본에선 이런 영상을 제작한 20대 유튜버에게 피해보상금 5억엔을 영화사에 지급하라고 판결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책이나 영상 요약본은 일종의 ‘스포일러 소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약을 보고 괜찮으면, 그때 그 책을 사거나 드라마를 정주행하는 식입니다.

유튜브 영상 중에서도 1분 이내인 ‘쇼츠’도 비슷합니다. 쇼츠에선 일반 동영상의 흥미로운 포인트만 잘라놓은 게 많은데요. ‘이 영상이 지루해서 시간 낭비일까봐’ 걱정하는 사람들도 쇼츠를 본 뒤 안심하고 원본 영상을 즐기곤 합니다.

 

 

 

손해 보지 않기 위한 소비 전략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도대체 왜 요즘 소비자들은 스포일러를 피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찾아볼까요?

 

닛세이기초연구소의 히로세 료 연구원이 지난 9월 낸 책 ‘타이파의 경제학’은 이를 자세히 분석해서 공유드립니다.

 

일단 가성비(코스파)와 타이파는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가성비는 돈에 여유가 없어서, 돈을 유익하게 쓰려고 추구하는 건데요.

그에 반해 타이파는 시간이 없어서도 아니고, 절약한 시간을 유용하게 쓰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그럼 도대체 무슨 심리인가 하면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요.

 

① 손해를 회피하기 위한 소비

요즘 소비자들은 돈도, 시간도 손해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만약 기껏 시간을 들였는데 지루하고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 시간에 다른 재미있는 걸 소비할 기회를 잃었으니 손해인 겁니다.

바로 이 점에서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는 건 상당히 리스크가 큰일입니다. 재미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영화에 시간과 돈을 모두 걸어야 하니까요.

특히 영화를 보면서 다른 일(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찾는다거나)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예기치 않은 감정의 기복을 겪어야 한다는 점도 스트레스 요인입니다.

 

그래서 미리 줄거리를 다 알아본 뒤에 영화를 볼지 말지를 정합니다. 책도 요약된 내용을 보고 나서야 읽습니다.

그 작품을 사전 정보 없이 처음 접하면서 받게 될 감동 따위는 포기한 겁니다. 그래서 히로세 료 연구원은 “콘텐츠가 감상의 대상이 아닌 소비의 대상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② 소비는 목적이 아닌 수단

영화를 2배속으로 보거나 요약본으로 보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히로세 료 연구원에 따르면 이를 소비(시청)함으로써 즐거움과 감동을 얻는 게 진짜 목적이 아닙니다.

바로 주위와의 커뮤니케이션, 즉 대화에 낄 수 있도록 ‘영화를 본 상태’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소비는 도구일 뿐이고 ‘소비한 상태가 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겁니다. 어차피 SNS 트렌드는 너무 빠르게 바뀌니까요.

 

이것은 ‘남에게 ~한 상태로 인식되고 싶다’는 욕구가 본질인 건데요. 그래서 심지어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조차 타이파로 소비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가 있어도 그의 모든 음악을 다 듣거나 그가 과거에 출연한 작품을 정주행하지 않습니다.

대신 남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추천 리스트’를 보고 쏙쏙 골라서 보거나 듣습니다. 진짜 팬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그들의 목적은 ‘○○○의 팬’이라는 정체성으로 남들에게 인식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충성도 낮고 변덕스런 소비자들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그런 건 ‘디지털 네이티브’인 Z세대 특징 아니냐고요? 타이파는 젊은 세대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미쓰비시UFJ신탁은행이 고객 1만7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2023년 2월)에 따르면, 동영상을 빨리 감기해서 보느냐는 질문에 20대 남성(56.5%) 못지않게 50대 남성(46.9%)도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사실상 전 세대에 퍼진 현상입니다.

 

따라서 타이파를 일부 Z세대 얘기로만 치부하고 방심하는 기업은 위험합니다.

그렇다면 시간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소비자들에 맞추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본의 어느 한 교수는 타이파 추구현상을 ‘리퀴드(Liquid) 소비’와 연결 지어 설명합니다. 시간 효율적으로 여러가지를 즐기고 싶어 하는 변덕스러운 소비자 집단이라는 겁니다.

좋은 브랜드 물건을 사서 오래 보유하는 걸 추구했던 전통적인 ‘솔리드 소비’와는 정반대 트렌드라 할 수 있습니다.

보통 기업들은 고객에게 계속 사랑받는 것을 목표로 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충성도 낮고 빠르게 변화하고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런 소비자들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는 “고객을 도망칠 수 없게 하려는 ‘락인 효과’는 위험합니다. 그들이 선호하는 건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관계입니다.”라고 조언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고객과 밀당에 능숙하고 ‘치고 빠지기’를 잘해야 하는 셈입니다.

 

고객마다 생각하는 ‘시간의 가치’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제품과 서비스에 반영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옵니다.

같은 콘텐츠라도 시간을 최소로만 쓰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차분히 마주하는 시간에서 가치를 얻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유튜브의 경우엔 재생속도를 8단계(0.25배속부터 2배속까지)로 나눠놓았습니다. 이것은 유저의 다양한 감상 스타일에 맞춰 대응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현대사회의 변화 속도는 '빠름' 그 자체입니다. 유한한 인생,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가능한 빠르게, 효율적으로 보고싶은 것만 보는 것. 마냥 안좋게만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시성비 대표적인 사례

유튜브 프리미엄 서비스

 

사진출처=유튜브 홈페이지

 

광고 제거, 백그라운드 감상 등으로 시간을 효율적으로 중첩해서 쓸 수 있음

 

 

온라인쇼핑몰 ‘퀸잇’의 옷 추천

 

사진출처=퀸잇 홈페이지

 

내 사이즈 재고 있는 옷만 추천 상품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시간 단축

 

 

아카이브 채널 유행

 

사진출처=올끌유튜브채널

 

재미있을지 알 수 없는 새로운 영상을 시도했다가 괜히 아까운 시간을 버리는 것보다는 오래된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과 같이 꾸준히 사랑받 실패 할리 없는 콘텐츠를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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