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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용 수통 납품하던 '스탠리'의 텀블러가 어떻게 핫템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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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 있어야 채울 수 있다.” 노자의 말이다. 새로운 것을 채우려면 그 자리가 비어 있어야 가능하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면 기존에 알고 있던 사고방식과 성공 공식을 과감히 버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MS가 1위를 재탈환할 수 있었던 힘 

 

2000년대 PC 시대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시장을 선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0년대에는 애플이 스마트폰을 시작으로 혁신·생태계·플랫폼이라는 키워드로 시장뿐 아니라 학계와 문화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애플은 계속해서 비즈니스 영역을 IT에서 자동차와 금융으로까지 확대하고 팬층을 두껍게 형성시켰지만, MS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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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스티븐 발머의 뒤를 이어 MS의 세 번째 CEO가 된 사티아 나델라(가운데)는 취임 후 10년 만에 회사를 1위로 끌어올렸다. 

 

침체 속의 MS를 재기에 성공시킨 것은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 CEO였다. MS는 지난 1월 시가총액에서 애플을 제친 뒤 두 달 만에 시총 차이를 550조 원 넘게 벌리며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테크 기업으로 올라섰다. 나델라는 2014년 취임하면서 MS의 핵심 역량을 점검하고 방향성을 재정립했다. 시장과 고객이 MS와 윈도를 동의어로 규정하고 있었지만 나델라는 윈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애플이 장악한 모바일 패권 경쟁에서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해 회사 내부에서 숱한 이견과 논란을 유발했다. 2010년대를 관통한 모바일이라는 메가 패러다임을 역행하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델라는 MS의 역량이 PC에 있었기에 이를 모바일에 억지로 맞추면 충성 고객마저 놓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IT 패권을 놓고 구글과 애플이 경쟁하던 사이, 1990년대에 IT 역사를 써 내려간 MS는 사실 흑역사만 남겼다. <손자병법>에 의하면 지략가는 상대와 대결할 때 유리한 영역을 선점해서 대결한다. 애플이 장악한 모바일 부문에서 MS는 경쟁했지만 결과는 백전백패였다. 이 때문에 2014년 CEO에 오른 나델라가 10년 만에 MS를 다시 시가총액 1위에 올려놓으리라고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나델라는 <손자병법>의 격언대로 유리한 영역을 만들어나갔다. 취임 후 링크드인LinkedIn과 블리자드Blizzard 등 기존 사업과 무관한 기업을 인수했고, 애플이 자동차 부문에 주력한 사이 AI에 집중하며 전력을 재정비해 나갔다.

 

애플은 향후 IT 패권을 좌우할 키워드로 자율주행을 외치며 10년간 ‘애플카’ 프로젝트에 13조 원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올해 실패를 인정하며 AI로 방향성을 선회한다고 밝혔다. 반면 2014년 MS는 AI와 플랫폼에 주력하면서 오픈AI와 협력을 구축하고, AI 패러다임을 선제적으로 거머쥐었다.

 

 

경계를 넘나드는 혁신 

 

MS와 애플 등 전 세계 시가총액 1위를 놓고 대립하는 기업 스토리는 거대하게 들린다. 혁신은 그런 초일류 기업만 가능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한계를 정하지 않고 그 경계선을 자체적으로 허물 수 있다면 누구나 혁신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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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풀한 디자인과 고객과의 적극적인 대화로 또 한 번 전성기를 맞고 있는 100년 기업 스탠리 ©Stanley 

 

미국 전역을 강타하고 있는 스탠리 텀블러가 대표적 사례다. 스탠리Stanley는 올해로 설립 111년째를 맞는 역사 깊은 브랜드다. 애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군수품으로 ‘수통’을 납품하던 회사다. 이 회사는 최근 여러 여성 인플루언서와 협업해 기존의 클래식한 이미지를 버리고 패션 아이템을 추가했다. 무채색과 튼튼함이라는 기존의 디자인에서 벗어나 파스텔 톤의 알록달록한 컬러를 입히며 ‘귀엽고 깜찍한’ 이미지로 쇄신한 것이다. 이는 스탠리 텀블러를 애용하는 여성들의 틱톡 영상과 함께 제품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의 오픈 런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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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훼미리마트는 편의점에서도 옷을 판매한다는 콘셉트로 ‘컨비니언스 웨어’ 브랜드를 론칭하는 등 꾸준히 기존 상식을 버리고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FamilyMart 

 

편의점이라는 고착화된 영역의 한계를 뛰어넘은 일본 훼미리마트FamilyMart의 사례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연말 훼미리마트는 편의점 업계 최초로 패션쇼를 개최하고 의류 브랜드 ‘컨비니언스 웨어Convenience Wear’를 선보였다. 편의점 판매 품목의 제한을 없애고 옷도 판매 가능하다는 기준을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다.

 

편의점에서 내놓은 의류 브랜드가 과연 인기를 끌었을까? 해당 브랜드는 첫 컬렉션 론칭 후 1년 만에 매출이 60%가량 급증했고, 그들이 보여준 런웨이는 주요 언론의 해외 토픽에 소개됐다. 소셜 미디어에서도 MZ세대의 폭발적 관심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훼미리마트는 편의점의 패션 매장이라는 혁신적 패러다임을 창출해냈다.

 

 

먼저 버리는 자가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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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는 저서 <최고의 질문>에서 효과적인 계획을 위해서는 제대로 된 ‘폐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혁신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새것을 배우는 학습만이 아니라 낡은 것을 버리는 폐기 학습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피터 드러커는 “기업은 시기를 정해 ‘폐기 학습Unlearning’을 정기적으로 시행해야 혁신할 수 있다”며 ‘계획된 폐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폐기 학습이란 새로운 지식의 학습 효과를 높이기 위해 과거의 사고방식을 미련없이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학습이 새로운 대안의 가치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이라면, 폐기 학습은 오랫동안 굳어진 타성에 안주하지 않고 기존에 학습된 사고의 틀을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다.

 

‘성공의 역설Paradox of Success’이란 말이 있다. 과거의 성공 방식을 되풀이하면 안 된다는 의미다. 과거에 성공했던 경험을 현재와 미래에 반복적으로 적용하면 또다시 성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오히려 실패를 유발한다는 점을 알려준다.

 

폐기 학습은 조직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필요한 과정이다. 비효율적이고 쓸모없는 지식 또는 오랜 신념과 가정 및 생각에 적극적으로 의문을 제기해 실수를 줄이고, 목표를 성취해내도록 한다. MS는 모바일을 따라가야 한다는 관념을 과감히 폐기해 AI의 흐름을 창출했고, 스탠리는 아웃도어와 튼튼함, 훼미리마트는 편의점에 관한 오랜 관행에 의문을 품고 폐기 학습을 진행해 신드롬을 일으켰다.

 

혁신과 변화 관리의 출발점은 이제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기존 업계의 정형화된 패러다임과 오랜 기간 당연하다고 생각한 관행에 스스로 의문을 제기할 것, 둘째는 극심한 경쟁 상황에서 혁신은 상대의 패러다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와 전혀 다른 흐름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기존 관행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폐기 학습의 교훈은 기존의 정형화된 사고와 생각에 젖어 있으면 새로운 시도와 학습을 원활히 진행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우리 옛말에 “비우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다”는 격언이 있다. 성공의 경험과 노하우에 안일하게 머물면 자신이 쌓은 핵심 역량과 노하우가 강제로 폐기당할 수 있다. 먼저 버려야 살 수 있다. 상대보다 과감히 먼저 버리고 내려놓은 지점에 무엇을 채울지 고민해야 혁신이라는 성과를 거머쥘 수 있다. 다음 시대의 혁신은 ‘폐기 학습을 누가 선제적으로 하느냐’가 좌우할 것이다.

 

 

글. 권상집(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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