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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vs 리벨리온 x 사피온?

이재훈

2024.06.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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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전쟁이 반도체 전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글로벌과 국내에서 중요한 소식들이 잇따라 전해졌습니다. 엔비디아가 마이크로스프트와 애플을 제치고 시가총액 1위에 오른 소식과 국내 AI 반도체 3대 스타트업이라 불리는 리벨리온과 사피온의 합병 소식이 그것입니다. 오늘은 이 두 소식의 상관관계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골든타임?

"향후 2~3년을 대한민국이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에서 승기를 잡을 '골든타임'으로 보고, 빠른 합병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는 리벨리온과 사피온의 합병 소식을 알리면서 가장 먼저 내세운 이유입니다. 실제로도 마음이 많이 급했던 것인지 구체적인 당위성이나 합병 효과에 대한 분석 자료도 없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발표되었는데요. 투자자들과 직원들조차 사전에 합병 소식을 전달받지 못했다며, 이례적인 발표에 황당한 심경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일반적인 합병 발표 절차를 무시할 만큼 이들이 중요시했던 골든타임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일반적으로 새로운 기술이 발표되면 아래와 같은 5단계를 거칩니다. 'Hype Cycle'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그래프는 미국의 연구, 자문 및 정보 기술 회사인 가트너에서 정의한 이론을 시각화한 것으로, 기술 트렌드를 예측할 때 많이 활용되고 있는데요. 지난해 가트너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생성형 AI 기술은 'Peak of Inflated Expectations(기대정점)'에 다다른 것으로 발표됐습니다.  



Hype Cycle for Emerging Technologies, 2023 (출처 : 가트너)
 

다음 단계는 'Though of enlightenment(환상소멸)'으로 시장이 급격하게 하락하는 단계인데요. 'AI 반도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AI 기술에 의존도가 높은 만큼 리벨리온이 언급한 골든타임은 생성형 AI 기술이 정점에서 떨어지기 직전에 시장에 합류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 시장을 선도하지 못하면 'Slope of enlightenment(기술성숙)'까지 긴 기다림을 거쳐야 한다는 위기감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골든타임에 골드를 캐고 있는 엔비디아

엔비디아가 시가총액 1위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당연하게도 장사가 잘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엔비디아는 AI 가속기(AI 모델 및 개발에 필수적인 반도체)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으며, 제품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수요가 높습니다. 아무리 우수 고객이라도 최신 제품을 받기 위해서는 1년 이상 기다려야 합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제품의 가격은 급등하고 있으며, 엔비디아는 극강의 이윤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엔비디아가 시장을 독점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심플합니다. 제품이 좋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모든 기업이 AI에 뛰어들고 있는 환경이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작년까지 AI FOMO에 흔들리지 않았던 애플마저도 올해는 결국 백기를 들며 AI First 전략에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경쟁에서 밀리게 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모든 기업이 AI 개발에 힘을 쏟고 있으며,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가의 엔비디아 제품을 활용하여 경쟁에 뒤처지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드래곤은 말했죠. 영원한 건 절대 없다고. AI 반도체 역시 영원히 높은 가격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언젠간 떨어진다

많은 전문가들은 엔비디아의 상승세를 닷컴버블 시대의 시스코(Cisco)와 비교하곤 합니다. 네트워크 장비업체인 시스코는 인터넷 붐을 타고 2000년 3월 80달러를 찍었으나, 버블이 붕괴되자 2002년 10월 8달러까지 폭락했습니다. 엔비디아 역시 AI 버브링 터지면 시스와 마찬가지로 폭락할 것이라는 예상인데요. 개인적으로는 시스코와는 다른 양상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인터넷과 달리 AI는 범용적인 활용 가치가 높습니다. 이 때문에 AI를 전기에 비유하기도 하는데요. 즉, 일반적인 Hype Cycle처럼 쉽게 가라앉을 기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엔비디아의 시장 지위가 하락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먼저, 엔비디아의 독주가 시작되자 경쟁사들은 反엔비디아 연맹을 만들어 이에 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도체 시장의 전통적인 강자였던 인텔, AMD 등은 지난달 31일 '울트라 가속기 링크(UA링크) 프로모터 그룹'이라는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이 조직은 향후 AI 가속기 연결을 위한 기술 표준 개발을 함께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또한, 애플을 필두로 구글,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도 반도체를 자체 개발을 선언하기 시작했는데요.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은 상향 평준화 될 것이며, 경쟁의 심화를 통해 공급이 안정권에 들어서면 가격도 안정세로 접어들거나 하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시기가 언제 도래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며, 리벨리온과 사피온은 AI 반도체의 가치가 최고조에 이르고 있는 지금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엔비디아의 GPU는 근본적으로 게임을 위해 개발된 칩입니다. 현재로서 최적의 대안이지만, 한계도 분명히 존재하는 아키텍처라는 뜻입니다. 특히 전력소모가 매우 크다는 단점이 있는데요. 우리가 화석연료를 사용하면서도 핵융합 에너지와 같은 청정에너지를 연구하듯, AI에 특화된 완전히 새로운 아키텍처가 등장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게임체인저가 등장하는 순간 수요는 급감할 수 있다는 변수도 남아있습니다. 

 

골든타임, 잡을 수 있을까?

AI 반도체 스타트업의 경우 R&D와 상용 제품 출시까지 최소 수백억 원의 투자가 필요합니다. 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우면 이 부분에 대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합병을 통해 불필요한 경쟁 요소를 제거하고 인력 구성을 콤팩트하게 만들어 더 나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면 분명 좋은 소식이겠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엔비디아가 구축한 '쿠다(CUDA) 생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느냐입니다.

 


CUDA-X AI ECOSYSTEM (출처 : 엔비디아)

 
쿠다는 딥러닝 프레임워크인 Tensorflow, PyTorch 등과 통합되어 GPU의 병렬 처리 능력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딥러닝 연산을 가속화합니다. 이는 대규모 데이터 처리와 복잡한 모델 학습을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하며, 결과적으로 프레임워크의 성능을 크게 향상시킵니다. 이외에도 쿠다 소프트웨어가 제공하는 기능과 서비스는 굉장히 많은데요. 개발자와 연구자들은 오랜 기간 쿠다로 프로그래밍을 하고 코드가 축적되면서 거대한 쿠다 생태계가 만들어졌습니다. 기업은 이들의 편의를 위해서라도 엔비디아의 제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락인 효과가 생긴 것입니다. 

현재 리벨리온과 사피온의 제품이 '동급'의 엔비디아 제품 대비 성능과 효율 측면에서 우수하다고 발표하고 있으나, 단순히 칩 성능이 좋다고 해서는 살아날 수 없습니다. 쿠다 생태계에 대항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상 타도 엔비디아는 실패로 돌아갈 확률이 높습니다. 특히 반도체를 비롯한 AI 산업은 '인재 싸움'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갈수록 국내 스타트업으로 인재를 모셔오기 어려워지고 있는 환경도 두 기업에게는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골드(AI 반도체)의 매장량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지금 이대로는 엔비디아가 남김없이 다 채굴할 기세입니다. 여러모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한 한국의 AI 반도체 스타트업들이지만, 빠르게 장비를 정비하여 금광이 다 사라지기 전에 채굴을 시작했으면 하는 응원의 마음으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위 글은 'Tech잇슈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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