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 by 슝슝 (w/DALL-E)
아래 글은 2024년 08월 07일에 발행된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전체 뉴스레터를 보시려면 옆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뉴스레터 보러 가기]
수수료가 결국 답이었습니다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가 8월부터 운영 정책을 변경하며 중고거래에 대한 거래 중개 수수료를 도입했습니다. 바뀐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그동안 자유롭게 선택 가능했던 번개페이 사용을 모든 거래에서 의무화했고, 여기에 3.5%의 수수료를 부과하되, 이는 구매자가 아닌 판매자가 부담하도록 했습니다.
이는 5년 연속 적자의 늪에 빠진 번개장터가 흑자 전환을 목표로 내린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수수료 부담 대상을 판매자로 정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판매자들의 불만이 폭주하고 있는데요.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는 당근마켓이나 중고나라로 떠나겠다는 의견이나, 남더라도 번개장터에서만 수수료를 고려해 더 비싼 가격을 적용하겠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고객을 독점했기에 가능했습니다
번개장터가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수수료 부과에도 판매자들이 대거 이탈하기는 어렵다는 내부 판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고객들은 대체재가 있으면 언제든지 플랫폼을 떠날 수 있습니다. 반면, 판매자들은 쉽게 이탈하기 어려운데요. 기존 고객을 잃을 수 있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여러 채널에 동시에 입점하는 것이 매출을 늘리기엔 더 유리하기도 하고요. 메이저 중고 플랫폼이 당근, 번개장터, 중고나라 세 곳뿐인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번개장터는 적어도 '1020 연령대'의 '중고 패션 시장'에서는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자랑합니다
특히 번개장터는 중고 패션 카테고리와 1020 연령대에서 누구보다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근이 사용자 규모 면에서는 월등하지만, 앱을 사용하는 목적이 로컬과 패션으로 완전히 다르고요. 올해 7월 월간 활성 사용자 기준으로 번개장터 사용자 중 중고나라 동시 사용 비중이 13.1%에 불과할 정도로 두 플랫폼의 사용자는 거의 겹치지 않습니다. 결국, 10대와 20대를 타깃으로 패션 중고 상품을 팔고 싶은 판매자는 수수료를 내더라도 번개장터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거죠.
또한, 번개장터는 아예 패션 중고 거래 서비스를 표방하며 전문 판매업자들을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책적으로 이들을 배척하는 당근마켓과 차별화된 행보인데요. 번개장터는 전문 판매업자들에게 프로상점이라는 이름으로 장을 열어주고, 이들에게 5~10%의 별도 수수료를 부과해 수익성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 판매자들을 얼마나 플랫폼에 유지하고 강화하느냐가 향후 주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다만 명분도 실리도 뭔가 애매합니다
번개장터의 이번 결정으로 대규모 이탈은 발생하지 않겠지만, 판매자들의 여론이 상당히 돌아선 것은 사실입니다. 언론에서도 관련 기사가 연이어 나오며 이미지 하락도 피할 수 없었고요. 여기서 떠오르는 것은 C2C 플랫폼 크림입니다. 크림은 초기 2년간 수수료 없이 운영하다가 2022년부터 약 2년간 12번이나 수수료를 인상했습니다. 물론 인상 소식이 나올 때마다 반발이 있었지만, 크림은 단순한 판매 중개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했기 때문에 이를 밀어붙일 수 있었습니다. 크림의 모든 거래는 검수센터를 거쳐 이루어지며, 이는 크림만의 차별화된 역량입니다. 솔드아웃 등 경쟁사가 있지만, 크림만큼의 신뢰와 비용 효율을 단기간 내 확보하기는 어렵습니다. 고객과 판매자 모두 크림의 대체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인 거죠.
또한 크림은 핵심 이해 관계자들에게 확실한 이유를 제공하여 크림을 이용하도록 유도합니다. 지난 5월에 개편한 새로운 수수료 정책이 대표적인데요. 정산금액이 커질수록 수수료도 유리해지는 구조로, 사업자 회원들에게 확실한 혜택을 주었습니다. 이들이 크림에 남고 집중한다면 크림의 경제적 해자는 더욱 공고해질 거고요.
반면 번개장터의 서비스와 정책은 애매합니다. 최대 강점인 고객 트래픽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전반적인 이커머스 시장에서 단순 판매 중개를 하는 오픈마켓 모델의 한계가 드러난 상황이니까요. 더욱이 대형 판매자들이 번개장터에 집중하게 할 유인도 부족합니다. 오히려 이들에게 더 비싼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번개장터는 고객과 판매자를 붙잡을 어떠한 장치도 없는 상황에서, 수익화를 위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시작한 겁니다. 물론 당장은 빠른 손익 개선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급한 불만 끈 후에는, 더 확고한 차별성을 갖추기 위한 고민을 반드시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