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광화문 근처를 우연히 지나가다 눈에 띄는 광고를 본 적이 있다. 광복절을 맞아 빙그레에서 만든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캠페인이었다. '처음 입는 광복'이라는 이름의 이 캠페인은 옥중에서 순국하여 빛바랜 죄수복으로 남은 독립운동가의 모습을 AI 기술을 활용해 한복을 입혀준다는 취지의 캠페인이다. 이 캠페인의 연장선으로 빙그레 대표이사는 국가보훈부 장관과 함께 송파구에 거주하는 한 독립운동가를 찾아 한복을 전달하기도 했다.
사실 빙그레의 독립유공자 캠페인이 이슈가 된 것은 지난해 진행한 '세상에서 가장 늦은 졸업식'이라는 캠페인이 그 시작이었다. 이 캠페인은 학생의 신분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정학, 퇴학 등의 징계를 받아 아직도 졸업을 하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을 선정해, AI 기술을 활용해 늦은 졸업식을 열어주는 캠페인이다. '세상에서 가장 늦은 졸업식'은 미디어와 광고 업계에서 큰 화제가 되어 다양한 광고제에서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빙그레의 두 번의 독립유공자 캠페인은 AI 기술을 활용한 신선함과 잊혀진 독립운동가들을 조명하는 스토리텔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빙그레와 독립운동은 단어만 놓고 봤을 때는 다소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바나나우유나 요플레를 판매하는 회사가 왜 이렇게 독립운동에 진심인 모습을 보이는지 궁금했다.
빙그레는 홈페이지를 통해 "2011년 비영리 공익법인인 재단법인 빙그레공익재단을 설립하여 독립운동·국가유공자 후손 장학사업, 독립·애국지사 도서 보급사업 등을 통해 국가와 민족의 발전에 기여하는 인재를 육성하고 미래를 이끌어갈 학술연구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왜 굳이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대대적인 리소스를 투입해 홍보 캠페인까지 벌이는지 궁금했다.
이 궁금증에 대한 답은 언론 기사를 통해 찾을 수 있었다. '처음 입는 광복' 캠페인의 언론 기사를 찾아보면, 빙그레가 공익 재단을 통해 독립유공자를 지원하는 것은 창업주의 스토리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주경제의 기사에 따르면, 빙그레의 대주주 김호연 회장은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사위다. 김 회장의 부인인 김미 백범김구관장은 김구 선생의 손녀이자 안중근 의사의 조카를 큰어머니로 둔 인물이다.
김 회장은 2011년 빙그레공익재단 설립 전인 1993년에 사재를 출연해 김구재단을 설립해 독립유공자의 후손을 돕고 있다. 빙그레공익재단은 2018년부터 국가보훈부와 업무 협약을 맺고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 사업도 매년 진행하고 있다.
결국, 빙그레가 독립운동에 진심을 다하는 이유는 자사의 스토리에 기반했기 때문에 가능했고, 그렇기에 최고의 홍보 효과도 거둘 수 있었다.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ESG 경영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국내 대기업들은 물론 중소기업들까지 ESG라는 이름을 붙여 다양한 활동을 하며 기업 가치를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이 홍보하는 ESG 활동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업의 가치나 브랜드 스토리와는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캠페인의 기획이나 투자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대중들에게 인식되지 못한 채 끝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업의 스토리와 연결되지 않은 활동은 수많은 정보 속에서 금방 희석되고 만다. 좋은 브랜딩은 결국 기업의 스토리와 맥락을 활용해 홍보 활동을 이어갈 때 시너지가 날 수 있다. 기업의 스토리에서 출발한 ESG 활동은 브랜딩의 일환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보여주기식 활동보다는 더 많은 리소스를 투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홍보 담당자나 홍보 대행사 직원으로서 성공적인 ESG 캠페인을 만들고 싶다면, 맥락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신선한 기술과 좋은 스토리텔링도 캠페인의 성공에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캠페인의 지향점이 우리 기업이나 제품의 지향점과 일치하는지를 수시로 점검하는 것이다. 그래야 캠페인이 기대했던 홍보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브랜드 스토리와 맥락을 일치시켜 성공적인 ESG 캠페인을 만든 빙그레. 내년 광복절 주간에는 어떤 캠페인을 선보일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