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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만에 375조가 사라진다면?

이재훈

2024.09.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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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90억 달러

처음에는 환율을 잘못 계산해 0이 하나 더 붙은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확인해 보니 사실이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구요? 지난 화요일, 엔비디아의 주가가 약 10% 하락하며 시가총액이 무려 2,790억 달러(약 375조 원)나 증발했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기록은 메타가 2022년에 세운 이전 기록인 2,400억 달러를 이기고 당당히(?) 1위에 올랐습니다. 

 

하루 만에 9.5%가 급락한 엔비디아 주가 (출처 : Bloomberg)

 
엔비디아가 하루 만에 날린 금액이 얼마나 큰지 감이 안 오시는 분들을 위해 한국 주식으로 비유로 들자면, 한국 시가총액 순위 2위 SK하이닉스, 3위 LG에너지솔루션, 4위 삼성바이오로직스, 5위 현대차, 7위 셀트리온의 모든 시가총액을 더한 값(약 365조 원)과 유사한 수준입니다. 이번 폭락으로 개인 최대 주주인 젠슨 황 CEO는 약 13조 원의 손실을 입었는데요. 과연 엔비디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 AI 거품론

엔비디아 주가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역시 AI 거품론에 기인합니다. AI에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졌지만, 그에 비해 실질적인 성과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회의론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에 미국 경제 침체 조짐을 보이면서, 상대적으로 미래가 불확실한 AI 분야가 가장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특히 AI 분야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었던 엔비디아는 그만큼 충격이 컸던 것입니다. 비슷한 사례로 마이크로소프트와 TSMC 등도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요. 반면, 애플은 AI 시대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며 큰 수혜를 받지 못했던 덕분에(?) AI 거품론에도 영향을 비교적 덜 받은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 반독점 조사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AI 거품론도 골치가 아픈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미 정부로부터 반독점 행위 조사를 위한 소환장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엔비디아는 자사 AI 가속기를 쓰는 기업들이 다른 AI 가속기 공급업체 제품을 이용하기 어렵게 만들고, 자사 AI 가속기를 독점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준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프랑스 반독점 규제 기관의 엔비디아 조사 소식 (출처 : CNBC)


엔비디아 대변인은 아직까지 받은 소환장이 없다고 반박했지만, 프랑스 반독점 규제기관 역시 위반 여부를 조사를 예고한 만큼 리스크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특히, 최근 구글이 애플 사파리에 기본 검색 엔진으로 설정된 것이 반독점 행위로 간주되어 1심에서 패소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반독점 행위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이기에 엔비디아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 블랙웰 연기

엔비디아가 AI 칩 분야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항상 경쟁사보다 앞선 기술력을 선보였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이른바 괴물칩이라고 명명한 '블랙웰' 출시를 예고하며 그 격차를 유지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는데요. 지난 8월부터 출시 연기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더니, 결국 2분기 콘퍼런스 콜에서 디자인 결함을 인정하며 블랙웰 생산을 기존 3분기에서 4분기로 연기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블랙웰을 소개하고 있는 젠슨 황 CEO (출처 : Forbes)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블랙웰이 전작보다 크고 부품 수가 늘어나면서 복잡성으로 인한 결함이나 발열 문제로 인해 수율에 악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부품이라도 수율이 충분치 않으면 전체 제품의 성능이 낮아질 우려가 있는데요. 현재로서는 더 높은 성능을 위해 부품의 증가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초격차를 만들어 내기 위한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엔비디아의 주가가 고속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당분간 AI 칩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 컸는데, 그 기대가 약화되면서 투자 심리도 위축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 속단은 금물

이처럼 엔비디아가 삼중고를 겪고 있지만,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각각의 문제를 조금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평가할 수 있습니다.

- AI 거품론 : 현재 실질적인 성과가 크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AI 스마트폰, AI PC 등 활용처가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특히, 소문만 무성했던 OpenAI의 GPT-5 출시가 임박하면서 AI 분야는 다시금 활기를 되찾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 반독점 조사 : 반독점 조사는 분명 큰 리스크이지만, 현재로서는 단순 조사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설령 반독점 행위가 있었더라도, 과거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법적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있으며, 적절한 대응이 이어진다면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 블랙웰 연기 : 엔비디아는 과거에도 종종 신제품 출시를 연기한 사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기대 성능을 충족시키거나 오히려 초과시키면서 시장의 신뢰를 회복했습니다. 특히 엔비디아는 AI 칩 외에도 쿠다 소프트웨어에 기반한 락인 효과가 큰 만큼 고객의 이탈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입니다. 

 
주목을 많이 받는 기업들은 하나의 이슈가 터지면 다른 이슈도 크게 확대되어 해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번 엔비디아의 상황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는데요. 여전히 기업의 기술력이 뛰어나고 시장 내 위치가 확고한 만큼, 다시 반전을 이끌어낼 가능성도 충분히 열려 있습니다. 

과연 엔비디아가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질주를 시작할 수 있게 될지 흥미롭게 지켜보아야겠습니다.

 

*위 글은 'Tech잇슈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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