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 + 웨이브 > 넷플릭스?
그간 지지부진했던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 소식이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웨이브의 주요 주주인 지상파 방송사들이 합병에 동의하면서 이제 KT의 승인만 남았다고 하는데요. 합병이 성사되면 이들은 국내 OTT 플랫폼 중에서는 단연 최대 규모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일각에서는 넷플릭스의 대항마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전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합병 후에도 넷플릭스를 넘어서기란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합병이 좋은 것은 맞습니다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을 논할 때 가장 많이 주목받는 지표는 MAU(Monthly Active Users, 월간 활성 사용자수)입니다. 2024년 9월 기준으로는 각 플랫폼의 MAU는 다음과 같습니다.
- 넷플릭스 : 1,167만 명
- 티빙 : 787만 명
- 웨이브 : 427만 명
단순 계산상 티빙과 웨이브가 합병하면 1,214만 명의 MAU를 확보하게 되어, 넷플릭스를 추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는 두 플랫폼의 중복 가입자를 고려하지 않은 수치로, 실제 합산 사용자 수는 이보다 적을 수밖에 없으며, 합병 후에도 넷플릭스의 국내 이용자 수를 넘어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로 남아있습니다.
이외에도 두 플랫폼 간의 주력 콘텐츠가 달라 시너지가 발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현재 티빙은 KBO 중계권을 비롯한 스포츠 콘텐츠와 종편의 드라마·예능을, 웨이브는 지상파 방송사 콘텐츠를 주력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분야가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중복을 최소화하면서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자본력이 확대된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최근 넷플릭스의 영향으로 배우 출연료가 크게 상승하면서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비용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티빙의 경우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수록 적자가 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인데요. 티빙과 웨이브가 합병할 경우 제작비 부담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럼에도 넷플릭스는 이기기 어렵습니다
두 플랫폼의 합병에 플러스 요인이 많아 시장 장악력을 높이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넷플릭스를 이기기는 어려울 전망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자본력의 한계
티빙과 웨이브가 합병해도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대기업과 자본력으로 경쟁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특히 두 플랫폼은 여전히 큰 적자폭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운영의 효율화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한 번 올라버린 배우들의 몸값은 떨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경쟁력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있어 재정적 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입니다.
2. 글로벌 진출의 한계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콘텐츠에 많은 제작비를 투자할 수 있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한 번의 투자로 전 세계 시장에 콘텐츠를 배포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 콘텐츠의 경우, 최근 제작비가 상승했다고는 하나 글로벌 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합리적인 수준입니다.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한국 콘텐츠 제작이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처인 셈입니다.
이런 넷플릭스에 맞서려면 티빙과 웨이브도 글로벌 시장 진출이 불가피하지만, 현재로서는 한계가 뚜렷합니다. 예를 들어, 티빙의 주력 콘텐츠인 KBO 중계의 경우 해외 수요가 크지 않고, 웨이브의 주력 콘텐츠인 지상파 콘텐츠 역시 내수 공략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물론 K-콘텐츠의 글로벌 인기가 높아진 지금, 티빙의 오리지널 콘텐츠나 웨이브의 지상파 콘텐츠가 지닌 잠재력을 무시할 순 없습니다. 다만, 이를 세계 시장에 효과적으로 배포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각국의 네트워크 환경에 맞는 스트리밍 서비스 구축은 물론, 자막보다 더빙을 선호하는 국가들을 위한 현지화 작업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결국, 좋은 콘텐츠 제작 역량만으로는 글로벌 진출에 한계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과 자원 투자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3. 넷플릭스의 굳히기
최근 넷플릭스의 전략 변화도 주목할 만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동안 넷플릭스는 강력한 오리지널 콘텐츠에 기반한 충성도 높은 구독자들 덕분에 특별한 마케팅 없이도 1위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하지만 KBO 중계권을 무기로 티빙이 조금씩 격차를 좁혀오자, 시장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넷플릭스는 11월 4주 차부터 네이버와 손잡고 네이버플러스 멤버십 회원들에게 광고형 스탠다드 요금제를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기존 네이버플러스 멤버십 콘텐츠 혜택 중에 티빙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현재 네이버플러스 멤버십 회원이 약 천만 명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이 중 한 명의 회원이 티빙 대신 넷플릭스를 선택할 경우, 티빙은 1명이 감소하고 넷플릭스는 1명이 증가하여 두 플랫폼 간 격차가 2명으로 벌어지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이러한 제로섬 구도 속에서 두 플랫폼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입니다.
더 나아가 지상파 콘텐츠를 독점으로 보유하고 있던 웨이브에게도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바로 넷플릭스가 지상파 콘텐츠 공급 확대를 제안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OTT 플랫폼의 성장으로 수익이 감소하고 있는 지상파 방송사 입장에서는 더 높은 단가를 제시하는 넷플릭스의 제안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지상파 콘텐츠마저 넷플릭스에 공급된다면, 웨이브는 유일했던 강점을 잃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합병 성공의 관건은 리더십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이 당장 넷플릭스를 넘어서기 어렵더라도,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합병 초기 단계에서 화제성은 최고조에 달할 것이며, 여기에 공격적인 마케팅까지 더해진다면 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다만 진정한 도전은 합병 그 이후부터입니다. 초기에 확보한 화제성과 사용자층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오리지널 콘텐츠를 강화하고 성공적인 해외 진출을 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로드맵과 함께 톱니바퀴처럼 이어지는 실행력이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합병 후 1~2년이 중요한 골든타임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 시기에 얼마나 신속하고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가 성공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중요할 것으로 보이며, 만약 합병 과정에서 드러났던 복잡한 투자 구조와 이해관계자들의 불협화음이 계속된다면, 합병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는 빠르게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과연 티빙과 웨이브가 합병 이후에 산적한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해결하고 넷플릭스의 진정한 경쟁자로 거듭날 수 있을지,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됩니다.
*위 글은 'Tech잇슈'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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