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와 유연근무는 그저 집에서 편하게 일하기 위한 직장인들이 원하는 근무 조건일까요? 어떻게 일하느냐는 개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모두가 주 6일 출근하던 때를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주 5일 출근이 일반적인 지금의 삶을 비교해서 생각해 보면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오늘은 일하는 방식이 바뀌었을 때 우리의 삶이, 사회가 얼마나 바뀔 수 있는지 좀 더 상상해 볼 수 있는 일본의 사례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아이가 3살이 안 되었나요? 재택근무 하세요
우리나라보다 먼저 저출산 문제를 겪고 있는 일본은 최근 새로운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정부 차원에서 근로자들의 육아 시간을 보장하는 형태로 저출산 대책을 재정비하겠다는 건데요. 2016년부터 재택근무 및 근무일수 단축 시행 등을 기업들에게 장려했지만 육아 중인 근로자들이 더 넓게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입니다.
내년 중으로 육아·간병휴직법 및 관련 시행령을 개정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일본 정부의 정책을 살펴보면 간략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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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 이하 자녀를 둔 근로자들은 재택근무 가능 (현재는 1일 6시간 단축 근무 제도 의무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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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학 전 자녀를 둔 근로자들은 야근 면제권 적용 (현재는 3세 미만 자녀인 경우에만 해당)
현재 시행 중인 ‘1일 6시간 단축 근무’에서 ‘재택근무’라는 선택지를 추가로 제공하면서 근로자들이 출퇴근에 쓰는 시간을 육아에 더 신경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입니다. 거기에 취학 전까지 손이 많이 가는 아이가 있는 부모라면 야근에서 제외하여 육아 시간을 보장하는 형태로 출산을 장려하겠다는 의지를 더합니다.
육아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일본 정부와 기업이 적극적으로 정책을 정비하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재택근무가 활성화되어 직장인 부모의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거나 없어지면 육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일본 정부의 판단이 그 배경이라고 보입니다.
여러가지 저출산 대책 중 일과 육아가 양립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지원책은 핵심 정책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습니다. 육아 휴직이 정착되더라도 휴직이 끝나고 업무에 복귀하여 육아할 시간이 부족하다면 둘째, 셋째 출산을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니까요.
물론 모든 근로자들이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재택근무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중소기업에는 부담이 커지게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고요. 하지만 정부와 기업 차원에서 보이는 변화의 움직임은 분명 많은 이들의 삶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합니다.
저출산과 회사 운영의 상관 관계?
저출산 문제는 이제 우리에게도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죠. 2022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역대 최저 수준인 0.78명이었다고 합니다. 정부는 그렇다치고 왜 일부 기업들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렇게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걸까요?
사실 저출산 문제는 기업으로서 심각한 문제입니다. 인구가 줄어들면 상품 개발과 연구를 위한 인력이 줄어들고 소비자도 줄어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출산율이 줄어들면서 우유 생산 기업 등의 매출에 타격을 입고 있는 것을 하나의 예로 들 수 있어요. 국내 시장이 작아지면서 자연히 국가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요.
아이가 어릴 수록 부모가 자녀에게 쏟아야 하는 시간은 줄일 수 없는 절대적인 양이 있습니다. 하지만 법적으로 보장된 육아휴직도 온전히 쓰기 쉽지 않은 우리나라 분위기는 통계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한국의 출생아 100명당 육아휴직자 수는 겨우 29.3명이라고 합니다. 육아 휴직을 쪼개서 쓸 수 있는 핀란드, 덴마크, 헝가리, 등 국가의 육아휴직자 수가 100명이 넘는 것을 보면 그 간극은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당장 육아 현실을 맞딱드린 나에게는 휴직이 절실하지만 동료들에게는 달갑지 않을 수 있는 육아 휴직. 회사와 동료의 눈치를 보느라 마음대로 육아 휴직을 쓰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습니다.
이에 일본에서는 육아 휴직으로 생긴 업무 공백을 메우는 동료에게 이른바 '응원 수당'을 지급하는 회사도 등장했다고 합니다. 보험사 미쓰이 스미토모 해상화재보험은 올해부터 육아휴직을 쓰는 직원의 팀 동료에게 최대 10만엔(약 98만원)을 응원 수당으로 지급하는 제도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거기에 더해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 을 85%까지 올리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2021년 기준으로는 14% 수준으로 아빠들의 육아 휴직 사용이 저조하지만 그만큼 부모가 공동 육아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여 여성의 경력 단절을 줄이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재택 근무는 인재 유치 전략
일본의 야마구치 신타로 도쿄대 교수는 “재택근무로 부부가 함께 유연하게 일하고, 가사와 육아를 평등하게 분담하게 하는 것이 저출산 대책에서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합니다.
닛케이 신문은 재택근무나 육아 휴직 제도 도입이 늦어지는 기업은 인재 유치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일본 최대 자동차기업 도요타는 일주일에 2시간만 회사에서 일가고 나머지는 집에서 일할 수 있게 하는 상당히 파격적인 재택근무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출산과 육아 때문에 인재들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근무 제도를 과감하게 손 본 것이죠.
우리나라 기업들 역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곳들이 있습니다. 포스코는 자녀가 만 8세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인 직원은 전일(8시가) 혹은 반일(4시간) 재택근무를 선택할 수 있고, LG 디스플레이는 초등학교 6학년 이하 자녀가 있는 직원은 근무 시간과 장소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육아기 자율 근무제'를 도입해서 경력 단절 없이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재택근무는 그저 복지혜택의 하나가 아닌, 근본적으로 육아나 가족 돌봄 등 일과 가정 양립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육아 의무가 없는 더 젊은 세대나 미혼 직원들에게 역시 일과 삶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업무 분위기를 제시하여 인재 영입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근무 시간과 장소에 대한 생각을 유연하게 바꿔 직원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업무 생산성까지 높이는 기업이 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요? 정부가 적극적으로 정책을 만들어 기업과 근로자들이 일하는 방식을 유연하게 바꿀 수 있는 바탕을 만들고, 기업도 적극적으로 동참한다면 아이가 있는 근로자들의 삶은 얼마나 바뀔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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