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은 2025년 04월 16일에 발행된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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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등장한 건 아닙니다
네이버가 컬리의 지분 일부 인수를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일단 네이버 측은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 없다'라고 선을 그었고, 곧이어 컬리 경영권에 변화가 있을 가능성도 낮다는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최대주주인 앵커PE가 김슬아 대표 등 기존 경영진을 신뢰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죠.
다소 의외로 느껴질 수 있는 소식이지만, 사실 업계에선 꽤 자주 거론되던 시나리오이기도 합니다. 한때 몸값이 4조 원에 달했던 컬리를 인수할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았고, 컬리가 가진 자산은 네이버 입장에선 충분히 매력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쿠팡과의 경쟁 속에서 네이버가 상대적으로 약한 영역이 ‘신선식품’과 ‘물류’인데요. 공교롭게도 이 두 가지는 컬리의 가장 큰 강점이기도 하죠. 그런 점에서 보면, 네이버가 컬리를 품을 경우 상당한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확실히 필요하긴 한데요
사실 네이버는 최근 커머스 사업에 다시 힘을 주고 있습니다. 네이버플러스 스토어를 선보인 데 이어, 이를 다시 단독 앱으로도 출시했고요. 배송 품질을 높이며 ‘네이버 배송’으로 리브랜딩도 진행했죠. 실제로 이런 변화들은 점차 성과로 이어지고 있기도 하죠.
하지만 이 정도로는 쿠팡을 추월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모든 영역을 내재화한 쿠팡에 비해, 네이버의 구조는 분산되어 있어 운영 효율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네이버 커머스의 핵심 강점은 낮은 수수료를 통해 다양한 셀러와 경쟁력 있는 가격을 확보하는 데 있었는데요. 물류 서비스 강화 과정에서 셀러에게 비용 부담이 늘어난다면 이 장점은 희석될 거고, 오히려 쿠팡과의 격차가 더 커질지도 모릅니다.
이런 맥락에서 컬리는 네이버에 매우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우선 규모가 적당합니다. 컬리의 2024년 연간 거래액은 약 3조 1천억 원으로, 네이버가 직접 운영하는 온플랫폼 거래액의 약 10% 수준이죠. 만약 직매입 비중을 확대해 쿠팡과 유사한 모델을 시도한다면, 컬리를 품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컬리는 신선식품 분야에서 높은 브랜드 신뢰도와 차별화된 큐레이션, 안정적인 PB 상품 성과를 갖춘 플랫폼입니다. 특히 신선식품은 반복 구매율이 높아 충성 고객 확보에 유리하고, 이는 곧 장기적 성장성과도 연결됩니다. 컬리는 쿠팡조차 갖지 못한 이 '상품력과 신뢰'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기에 네이버가 분명 탐낼 법합니다. '네이버 장보기'가 시장 내에서 그리 큰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더욱 그러할 거고요.
네이버는 오래전부터 장보기 시장에 진출하려 했지만, 자리 잡지 못하고 있기에 컬리가 더욱 탐났을 겁니다
다만 실제 인수나 지분 확보로 이어지기까지는 넘어야 할 장벽도 분명합니다. 가장 큰 변수는 여전히 높은 기업가치입니다. 2023년 앵커PE 투자 당시 컬리는 약 2조 8천억 원으로 평가됐으며, 단순 계산으로도 10% 지분 확보에 약 3천억 원이 필요합니다. 실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면 분명 이보다 낮은 수준으로 조정은 되겠지만, 적잖은 투자가 요구되는 건 분명하죠.
또 하나의 장벽은 복잡한 지분 구조입니다. 최대주주인 앵커PE의 지분율은 13.5%에 불과하고, 다수의 재무적 투자자들이 각각 7~10% 수준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단기적으로 네이버가 영향력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흩어지되, 더 날카로워야
문제는, 설령 이 모든 난관을 넘어 네이버가 컬리를 인수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쿠팡과 대등한 경쟁이 가능해지진 않는다는 점입니다. 쿠팡의 힘은 수조 원을 들여 만든 물류 인프라에 있습니다. 방대한 품목을, 경쟁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 구조로, 빠르게 배송할 수 있는 역량이죠. 컬리 역시 전국 단위 새벽배송망을 갖추고 있지만, 품목이 제한적이고 물류 효율도 쿠팡에 비해 열위입니다. 즉 지금 상태로는 전방위적인 정면 승부가 어렵다는 뜻이죠.
그래서 오히려 쿠팡을 위협할 수 있는 전략은 정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맞붙기보다, 전장을 정하고 거기서 우위를 확보하는 겁니다. 더 낮은 수수료와 빠른 정산을 앞세운 ‘마켓플레이스’는 네이버의 방식이고요. 프리미엄 식품이라는 특정 영역에서 확실한 경쟁력을 갖춘 컬리는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때론 하나로 뭉치는 것보다, 흩어진 채 각자의 강점을 날카롭게 다듬는 편이 더 강력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이런 전략이 통하려면, 각자의 무기를 더욱 뾰족하게 갈아야 합니다. 컬리는 큐레이션과 차별화된 상품에 집중하고, PB와 단독 상품 비중을 과감히 키워야 하고요. 네이버는 AI를 활용해 전혀 다른 차원의 쇼핑 경험을 제공해야 쿠팡의 입지를 흔들 수 있을 겁니다.
그동안 쿠팡을 견제하겠다며 등장한 연합은 대부분 별다른 성과 없이 사라졌습니다. 반면, 뷰티의 올리브영, 패션의 무신사처럼 각자의 영역에서 독보적인 강점을 가진 버티컬 플랫폼들은 꾸준히 성장해 왔고요. 쿠팡을 이길 방법 역시, 어쩌면 그 안에 이미 답이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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