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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정의, 일의 거의 모든 것

브랜드컨설팅랩 AW

2025.04.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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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이 아닌 이해가 필요한 일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일을 수행한다.' 여러분이나 제가 하는 일이라고 하면 결국 이런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수행을 위해서는 누군가를 설득하고, 설득할만한 일을 기획해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20년 차 기획자로서, 기획하는 일에 대해 3편으로 나누어 공유하고자 합니다. 

 

기획자의 키노트

1. 문제정의, 일의 거의 모든 것

2. 수집과 분류, 기획자의 역량

3. 스토리텔링, 어쨌건 모든 건 이야기



문제정의가 일의 대부분이다

어떤 종류의 일이건 몇 년차의 기획자건 각자 자신에게 최적화된 기획의 방법론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20년이나 이 일을 하고 있음에도 기획의 방법론은 계속해서, 바라건대 나은 방향으로 변화합니다. 특히나 AI와 협업하면서는 더욱 다양하고 적합한 일의 방식을 저 자신도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기획의 뼈대와 같은 일들을 정리해볼까 합니다.
변하지 않는 일 중에서도 가장 단호하고 명징한 기획의 일은 바로 '문제정의'입니다. 문제정의가 일의 대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일의 대부분을 결정짓기도 하고요. 우리가 당연히 알고 있는 상식들이 있지요. 문제를 잘못 정의하면 잘못된 답을 낸다라는. 그런데 안타깝게도 문제를 정의하는 것은 일을 수행하는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문제를 잘못 정의 했다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조차 현실에서는 쉽지가 않지요. 에이전시에서라면 클라이언트로 부터 받은 소위 RFP(Request For Proposal) 같은 문서에 이미 '문제를 상정한' 문제 풀이 요청이 담겨 있습니다. 문제를 들고 왔고 이제 당신은 그저 문제를 푸는 사람이 되는 거죠. 

문제를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아서 생긴 문제들

우리는 누구나 문제를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을 어려워 합니다. 심리상담을 해본 적이 있나요? 환자의 십중팔구는 자신의 문제를 잘못 판단합니다. 테라피스트가 당신의 말을 유심히 듣는 이유는 당신이 말한 문제를 받아들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말한 것 뒤에 숨은 문제를 발견하기 위해서죠. 또 한가지, 테라피스트가 '진짜' 문제를 제시하면 역시나 환자 대부분의 첫 번째 반응은 그것을 부정하는 일입니다. 자신이 인식하지 못했거나 특정짓지 못했던 문제일수록 그럴리가 없다는 방어기제가 발동하기 마련입니다.

HBO 오리지널에 있는 in Treatment. 각 에피소드는 그저 상담사가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독특하지만 재미있는 드라마입니다. 상담사 역할의 배우가 출연료를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듣기만 하죠.<출처 - HBO>

문제를 다시 정의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입니다. 여기서부터 문제에 봉착하죠. 문제를 단정해서 온 클라이언트에게 다시 문제를 정의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사실은 고통스럽습니다. 먼저, 자신의 판단을 부정했고, 심지어 그걸 위해 시간을 다시 사용한다고 하는 것이니 반가울 리 없지요.

"시작하기 전에 이제부터 문제를 다시 정의하려고 합니다"라는 선언을 상대방에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시한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절차가 필요하다는 설득이면 충분합니다. 제시한 문제를 내가 정확히 파악해야 '더 나은' 답을 도출하지 않겠나라는 말에는 상대도 동의하기 쉬워지죠.

 

원인과 결과라는 계획된 명제

 

문제를 결과로 치면, 그 결과를 낸 원인이 있습니다. 조직이나 개인이 이러한 인과를 도출해 내는 것은 그 조직과 개인의 배경에 국한됩니다. 어떨 때는 터무니 없는 일반화인 경우도 있죠. 경험 보다 (좋은 의미로) 무서운 게 없지만, 저는 다른 의미로 경험만큼 (나쁜 의미로) 무서운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정의해 낸 즉, 그 결과와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야겠지요.

 

"문제를 다시 정의한다는 선언을 할 필요는 없다."

 

첫 번째 화두는, '왜 이 문제를 풀고자 하는가?' 입니다.

풀면 무슨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으며, 그것은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 일인지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정체된 매출 문제를 해결하고자 광고를 바꾸려고요.", "광고를 바꾸면 매출 정체를 해결하고, 하여 매출 증대를 이룰 수 있으니까요." 과도하게 축약해서 이런 대답이 나온다고 가정해 보면, 이제 우리는 기존 문제정의의 취약성에 벌써 다가가게 됩니다. 당연히 광고로 매출 증대를 꾀하는 것은 수많은 방법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광고가 그전에 이 조직에 어떤 의미와 결과를 낳았는지를 조명해 봐야겠지요. 심지어, 이 조직의 당장의 과제가 매출 증대가 아니라 왜곡된 이미지 개선일 때도 있습니다. 매출 증대가 아닌 다른 일이 해결되어야 할 수도 있는 것이죠.

 

 

명사의 quote가 대부분 그렇듯 진위 여부는 불분명하고, 정확한 멘트가 아니었을 확률은 높지만 어쨌거나 아인슈타인은 한 시간 중 55분은 문제를 파악하는데 쏟겠다고 합니다.

 

 

두 번째 화두는, '왜 이런 문제에 봉착했을까?' 입니다.

첫 번째 화두가 결과에 집중했다면 두 번째 화두는 원인에 대해서입니다. 원인 파악의 내부적 근거들이 당연히 있었을 겁니다. 지표가 말해주는 것, 내부의 어떤 시스템이 내린 결론, 그것도 아니면 결정권자가 그것 때문이라고 못 박아서 일 수도 있고요. 원인을 특정할 수 있는 더 합리적인 접근, 더 객관적인 방법은 없는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그 고민을 상대방과 내가 공통분모 안에 수행할 수 있는 일의 수준에서 말이죠. '미국 CIA에 의뢰해 보면 더 직접적인 원인을 알 수 있습니다'같은 상대방도 나도 취할 수 없는 방법론이라면 제시해서는 안 되겠죠. 우리가 닿을 수 있는 선에서 아직 취하지 않은 원인 도출 방식이 없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분석이 아닌 이해가 필요한 일

 

제가 함께 일하는 팀원에게 부탁하는 가장 최우선의 일은 '분석하기 전에 이해하라'입니다. 우리는 고도로 훈련된 사람들입니다. 3년 차 된 기획자도 어떤 비즈니스의 어떤 문제를 보면 단번에 무엇이 문제인지 분석해 낼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분석을 뒤로하고, 이해를 우선시하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상대가 (아직까지 고수하고 있는) 생각하는 문제에 포커싱 해서 상대를 이해해야 합니다.

 

"분석을 뒤로 하고 이해를 먼저 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문제에 봉착했다'라고 말하는 그 문제의 내외부를 살펴보아야겠지요. 먼저 외부의 상황입니다. 외부의 상황은 당사자가 주장하는 것보다 더 객관적이거나 또는 다른 시각으로 접근 가능함을 논의하기 좋은 분야입니다. 이 문제가 트럼프의 대외 관세 정책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판단은 경쟁 과다로 인한 국내 시장에서의 인식 변화로 선회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외부 상황을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를 알아내고 이해하는 일이겠습니다.


비슷한 아인슈타인의 quote로, "나는 더 똑똑한 게 아니라, 단지 문제와 좀 더 오래 머무른다."는 말이 있죠.

외부 상황에 대한 인식을 확인하고 나면 이제 내부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이때는 테라피스트처럼 목적을 미리 밝히지 말고, 이해의 차원에서 이야기를 듣기 위함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목적을 밝히면 목적에 부합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죠. 파악해봐야 하는 주제는 이렇습니다. 실제로 그것을 문제로 인식하는 팀이나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팀)은 이 문제와 어떤 역학 관계에 있고, 그러한 문제정의로 어떤 실리가 있는지. 전반적인 문제 인식에 대해서 리더는 또, 실무자들은 어떤 온도 차이가 있는지, 실무자들은 리더가 생각하는 만큼의 문제를 풀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지, 없다면 무엇 때문인지, 다른 문제 인식이 있는지 등을 파악합니다.

문제정의, 가장 강력한 설득력을 필요

위의 일들이 진행되면서 상대방 스스로 기존 문제정의의 취약성에 대해 인지하도록 하는 것이 주효합니다. 물론 어떤 결정에 회의감이 있어도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회의감에 쌓인 일을 그저 추진합니다. 이제 여러분의 일은 그 대안을 그려 보이는 것입니다.

"문제를 함께 정의하면 답에 수긍하기 훨씬 수월해진다."

문제를 다시 정의하는 일은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설득을 필요로 합니다. 솔루션은 자신이 생각한 문제에 적합한 답을 찾는 수준의 일이라면, 문제를 다시 정의하는 일은 인식 구조 자체를 다시 조정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 일의 이점 역시 분명히 있습니다. 

첫째, 정말로 문제를 풀어낼 수 있습니다. 
이 전제는 문제를 정말 제대로 파악했을 경우입니다. 반대로 기존의 잘못된 문제의 풀이를 했다간 당장은 클라이언트가 만족할지 몰라도 그 효과가 미미함을 곧 파악하게 될 것이고, 그 연약한 효과의 책임은 본인의 잘못된 문제제시 때문이 아닌 당신의 문제 해결 때문이 됩니다.

둘째, 답을 내기도 전에 답에 수긍하기 쉬워집니다.
새로운 문제정의에 동의한다면 클라이언트는 답에 수긍하기 훨씬 수월해집니다. 클라이언트 측이 왜곡되게 쌓은 원인과 결과의 답이 아닌 함께 쌓은 논리의 설계물로 답을 유출하는 것이기에 솔루션은 훨씬 더 설득력을 가지게 되죠. 실제로 문제정의를 다시 조정해 보는 과정에서 우리는 답에 더 가까워집니다. 당신뿐 아니라 클라이언트도 말이죠.
사실 모든 실무자에게 문제를 다시 정의하는 가시밭 길을 가라고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실무자들은 더 큰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다 필요 없고, 그냥 일을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고 싶지 않죠. 하지만 당신이 십 년 후에도 기획자로서의 커리어를 쌓고 싶다면 문제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함은 분명합니다.
다음 주에는, 이제 본격적인 기획의 일인 '2. 수집과 분류, 기획자의 역량'을 전달합니다.
 
앤드류와이어스
김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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