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농업 환경에 직면해 있다. 기후변화로 작물 재배의 기본 조건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 예컨대, 유럽 와인의 주요 생산지가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독일과 영국으로 옮겨간다는 전망은 농업이 더 이상 자연의 리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계절은 불규칙해지고, 작물 생육은 예측이 어려워졌다. 경험과 직관만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농업은 점차 기술과 데이터 기반 산업으로 전환되고 있다.
스마트 팜, AI로 진화하다
오늘날 인류는 역사상 가장 많은 식량을 생산하고 있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FAO는 개발도상국의 인구 증가와 생활수준 향상으로 2050년까지 농산물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농업이 기후 위기와 자원 한계를 동시에 돌파해야 하는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AI 기반 스마트 농업이다. 수많은 스마트 농업 기술 가운데 대표적 예가 스마트 팜Smart Farm이다. 스마트 팜은 온도·습도·조도·이산화탄소 농도 등의 환경 요인을 실시간으로 제어해 작물의 생육을 최적화하는 시스템이다. 특히 수직 농장은 LED 조명을 이용해 계절에 관계없이 연중 작물 생산이 가능하며, 자동화 장치를 통해 최소한의 인력으로 운영할 수 있다.
스마트 팜의 핵심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정확한 의사 결정에 있다. 다양한 센서를 통해 수집된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난방 시점, 비료 공급량, 급수 주기 등 재배 전략을 정밀하게 설정할 수 있다. 과거 농업이 농부의 오랜 경험과 직관에 의존했다면, 스마트 농업은 데이터가 경쟁력의 중심이 되는 시대를 열고 있다.

국내에서는 대동이 AI 기반 농업 로봇과 스마트 재배기를 개발하며 스마트 농업의 적용 가능성을 넓혀가고 있다. 이 로봇은 작물 상태를 분석하고 병해를 감지해 자율적으로 농작업을 수행하며, 재배기는 조도와 수분을 자동으로 조절해 도심에서도 안정적 작물 재배가 가능하다.
해외에서는 존 디어John Deere가 자율주행 트랙터와 AI 기반 잡초 식별·제거 시스템을 상용화했다. 이 시스템은 작물과 잡초를 실시간으로 구분해 잡초에만 제초제를 정밀하게 살포함으로써 자원 낭비를 줄이고 환경오염 부담을 완화한다. 일본의 구보타Kubota는 드론과 센서를 이용해 작물 생육을 모니터링하고, 수확 시기와 병충해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는 플랫폼을 제공해 농가의 의사 결정을 지원하고 있다.

정교한 해석이 필요한 스마트 팜 데이터
AI를 통한 농업 혁신의 가장 핵심적 요소는 ‘데이터’다. 하지만 농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데이터 수집과 활용에서 근본적 한계를 지닌다. 작물의 재배 주기가 길어 반복 실험이 어렵고, 동일한 조건을 재현하기도 힘들다. 강우·일조·토양·병충해·재배 방식 등 수많은 변수가 상호작용하며 생육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데이터를 표준화하기가 쉽지 않다.
데이터의 종류도 문제다. 드론이나 위성으로 얻는 시각 데이터의 경우, 접근은 쉽지만 실제 수확량이나 품질과의 연관성은 낮다. 반면 유전정보나 미세 생물군 정보 같은 정밀 데이터는 수집 자체가 어렵고, 전문 장비와 시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작물은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생명체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으면 일시적으로 수확량이 증가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공 수 감소와 같은 예기치 못한 생리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이처럼 비선형적이고 복잡한 반응은 AI가 인과관계를 해석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 더불어 농업 현장의 데이터는 종종 결측값Missing Value이 많고, 노이즈가 심하며, 지역·작물별로 편차도 크다. 결과적으로 AI가 안정적으로 학습하고 예측하기에는 신뢰성과 일관성이 부족하다. 따라서 농업 분야에서는 단순히 데이터의 양이 아닌 질과 해석 가능성이 중요하다. 자동화된 장비와 장기 관측 시스템, 정확히 검증된 데이터와 농업 특화 알고리즘 개발이 병행되어야 AI가 농가에서 실질적 의사 결정 도구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농업 전용 인공지능이 필요한 이유
기존 인공지능은 대량의 구조화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높은 성능을 발휘해왔다. 그러나 농업은 데이터가 부족하고 복잡하며 지역 차도 커서 일반 AI 모델을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많다. 농업 전용 AI 모델의 필요성이 대두하는 이유다. 이러한 방향성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가 네덜란드 바헤닝언 대학교 & 리서치Wageningen University & Research의 연구다. 이들은 로봇과 자동화 시스템으로 다양한 환경 조건에서 장기 데이터를 축적하고, 가상 시뮬레이션 기반의 AI 학습 모델을 도입해 현실의 제약을 뛰어넘는 실험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병해 예측, 급수 자동화 등을 중심으로 스마트 팜 전용 AI가 개발되고 있으나, 아직은 데이터 인프라나 모델 정교화 측면에서 초기 단계다. 결국 농업에서 AI는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농업을 이해하는 알고리즘 설계라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정밀한 예측보다 중요한 것은 복잡한 현실에서 실질적 판단을 도울 현장형 AI다. AI가 농업에 온전히 뿌리내리기 위해선 기술 중심이 아니라 현장 중심이어야 한다.

AI 농업은 여전히 진행 중인 미래
최근 글로벌 스마트 팜 연구 기관들은 농업 AI의 실질적 정착을 위해 데이터의 품질과 신뢰성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작물 육종 분야는 수많은 품종을 장기간 시험 재배해야 하는 고난도 영역이다.
이를 단축하기 위한 시도로, 네덜란드의 식물 생태·표준형 분석 센터Netherlands Plant Eco-phenotyping Centre, NPEC는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술을 접목해 다양한 환경 조건에서 작물의 생육 데이터를 정밀하게 수집하고 있다. 로봇과 최첨단 센서를 활용한 이 시스템은 빅데이터를 일관되게 구축하며, 기후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품종 개발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NPEC는 “급변하는 기후 환경 속에서 다양한 조건을 시뮬레이션하고, 작물 반응을 체계적으로 관찰하는 능력이 앞으로의 농업에 필수”라고 강조한다.
결국 미래의 농업은 기술적 낙관론과 현실적 도전 과제를 함께 직시할 때 실현 가능하다. 스마트 팜의 완전 자동화나 식량 생산의 획기적 효율화는 인프라와 기술적 정교화가 여전히 필요하며, AI의 가능성은 현실적 토대 위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명확한 목표 설정과 고품질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맞춤형 접근을 병행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필요한 인프라를 준비하고, 데이터를 쌓고, 현장을 이해하는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것이다. 이러한 준비를 갖춰야 비로소 AI가 스마트 팜이라는 공간에서 생성형 인공지능처럼 기하급수적 혁신을 촉발할 수 있을 것이다. 농업은 마침내 공기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한 시스템으로 다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지금, 우리가 어디까지 준비하는가에 달려 있다.

농업은 단순한 기술 적용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을 다루는 복잡하고 정교한 산업이다. AI가 농업의 본질을 바꿀 수 있을까? 지금의 변화는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의 농업은 분명 지금보다 더 정밀하고 똑똑해질 것이다. 하지만 진정 중요한 것은 기술이 얼마나 인간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농업 현장에 뿌리내릴 수 있는지이다. 기술이 농지를 이해하고, 농민의 손발이 되며, 생명의 흐름을 존중할 때 AI는 비로소 농업의 진정한 파트너가 될 것이다.
글. 문태원(KIST 스마트팜융합연구센터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