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기술 트렌드
Figure 03, ChatGPT Moment?
2025.10.13 09:00
- 한눈에 보는 핵심요약
- 1. 자체 AI를 탑재한 휴머노이드, Figure 03가 공개됐어요. 2. 산업 현장에 머물던 로봇이 이제 우리의 거실로 들어올 준비를 하고있어요. 3. Figure 03는 '로봇 대중화'의 문을 열 예정이에요.
한국이 추석 연휴로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미국에서는 미래를 뒤흔들 만한 소식들이 쉴 새 없이 쏟아졌습니다. OpenAI는 연례 개발자 행사 'Devday'를 통해 AI계의 OS가 되겠다는 야심을 드러냈고, 구글은 웹 브라우저를 사람처럼 조작하는 '제미나이 2.5 컴퓨트 유즈'와 코딩 없이 앱을 만드는 '오팔'을 선보이며 맞불을 놓았습니다.

출처 : Figure (2배속 편집)
그러나 수많은 기술 발표 중에서도 제 눈을 가장 사로잡은 건 따로 있었는데요. 바로 휴머노이드 스타트업 Figure가 공개한 단 6분짜리 영상이었습니다.
영상 속 'Figure 03'은 장난감을 정리하고, 음식물이 묻은 접시를 물에 헹궈 식기세척기에 넣었으며, 세탁물과 세제를 세탁기에 넣고 작동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과장일 수도 있지만, 저는 이 짧은 영상에서 ChatGPT가 처음 등장했을 때 충격을 다시 떠올렸는데요. 어떤 점에서 그런 느낌을 불러일으켰는지, 그 이유를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빌려 쓴 두뇌와의 이별
사실 Figure가 커피를 내리거나 쓰레기를 휴지통에 넣는 등 가사 노동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온전히 자신들만의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데요. 자신들이 만든 로봇에 ChatGPT를 탑재해 처리한 결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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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Figure 03은 다릅니다. 외부의 두뇌를 빌리는 대신, 자체적으로 개발한 AI 모델을 로봇의 심장부에 탑재해 세상에 나온 결과물입니다. 놀라운 건 그 독립의 속도입니다. Figure가 OpenAI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길을 걷겠다고 발표한 것이 불과 올해 2월입니다. 단 8개월 만에 단순한 하드웨어 제조사를 넘어, 신체와 두뇌를 모두 갖춘 완전한 'AI 로보틱스' 기업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이 놀라운 속도는 그들이 결별 이후 허둥지둥 대안을 찾은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들의 길을 준비해 왔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챗GPT의 빈자리를 채운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전혀 다른 청사진을 그리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청사진의 내용은, 바로 CEO 자신의 입을 통해 이미 예고된 바 있습니다.
말이 아닌 행동을 배우다
올해 2월, OpenAI와의 결별을 알리며 Figure의 CEO 브렛 애드콕은 이런 자신감 넘치는 트윗(X)을 남겼습니다.
"Figure made a major breakthrough on fully end-to-end robot AI, built entirely in-house."(Figure는 완전히 자체적으로 구축한, 완전한 엔드-투-엔드 로봇 AI에서 중대한 돌파구를 만들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이 선언의 진짜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번 Figure 03의 등장은 그의 말이 무엇을 향하고 있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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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는 단순히 챗GPT 같은 생성형 AI 기술을 모방하는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기술을 탑재하면 인간과의 상호작용은 더 쉬웠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가 대화 잘하는 ‘말벗 로봇’이 아니라, 일을 대신하는 ‘가사 노동 로봇’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사 노동 로봇의 핵심은 유창한 '대화'가 아니라, 정교하고 올바른 '신체 동작'에 있습니다.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갤 때 필요한 것은 철학적 대화가 아니라, 접시를 깨뜨리지 않고 옷을 망가뜨리지 않는 능력인 것이죠. 이에 따라 Figure는 '모방 학습(Imitation Learning)'에 집중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브렛 애드콕이 말한 '엔드-투-엔드 로봇 AI'의 핵심입니다. 인간의 행동을 데이터로 삼아, 로봇이 그 동작의 의도와 순서를 스스로 배우고 따라 하게 만드는 기술입니다.
결론적으로 챗GPT가 인간의 '언어'를 학습했다면, Figure의 AI는 인간의 '행동'을 학습한 것입니다.
전문가의 손에서 대중의 품으로
지금까지 우리가 '로봇' 하면 떠올리던 풍경은 명확했습니다. 자동차 공장의 용접 로봇, 물류 창고의 운반 로봇 등 대부분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수천 번이고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산업 장비'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로봇들에게 새로운 임무를 주려면, 전문가가 복잡한 코드로 모든 움직임을 다시 설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Figure 03은 '행동'이라는 가장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로 로봇의 장벽을 허물고 있습니다. 더 이상 로봇을 움직이기 위해 전문가의 코드를 공부할 필요 없이, 그저 우리가 먼저 행동으로 보여주기만 하면 됩니다. 이는 곧, 일반인 누구나 로봇의 '선생님'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는 뜻입니다. 이는 로봇의 무대를 공장을 넘어 우리의 집으로 넓혀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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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ChatGPT가 일으켰던 혁명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ChatGPT가 생성형 AI의 대명사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뛰어난 기술력도 있지만 결국 AI를 대중의 손에 직접 쥐여줬기 때문입니다. 소수 전문가의 전유물 같았던 AI 기술을 누구나 직접 활용해 볼 수 있다는 경험은, 마치 마법상자를 쥐어준 느낌이었습니다.
Figure 03가 보여준 미래도 이와 유사합니다. '모방 학습'이라는 기술로 소수의 전문가를 위한 산업 장비였던 로봇을, 모두를 위한 로봇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현실이라는 이름의 문턱
물론 저의 이런 해석이 과도한 흥분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일각에서는 냉정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가장 먼저 지적되는 것은 속도입니다. 영상 속 Figure 03의 움직임은 인간에 비해 현저히 느립니다. 접시 한 장을 헹구는 데도, 빨래를 세탁기에 넣는 데도 우리보다 몇 배의 시간이 걸립니다. 실제 가정에서 이 속도로 작동한다면, 오히려 답답함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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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촬영 환경에 대한 의구심도 존재합니다. 영상은 통제된 실험실에서, 미리 정해진 물체들로, 계획된 시나리오대로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 가정은 훨씬 복잡합니다. 예상치 못한 위치에 놓인 물건들, 다양한 형태와 재질의 그릇들, 순간순간 달라지는 상황들. 과연 Figure 03가 이런 '현실의 무질서함'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경쟁사 비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테슬라의 옵티머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 등 다른 휴머노이드 로봇들도 이미 비슷하거나 더 인상적인 작업 능력을 선보인 바 있습니다. Figure 03만의 차별화된 우위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가능성을 연 것으로 충분하다
이 모든 비판은 기술적으로 타당하고 중요한 지적입니다. 그러나 ChatGPT 역시 완벽한 모습이진 않았습니다. 환각(hallucination) 현상으로 엉뚱한 정보를 내놓았고, 맥락을 오해하거나, 단순한 산수도 틀리곤 했습니다. 당시에도 비슷한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이건 그저 그럴싸한 말을 지어내는 앵무새일 뿐"이라고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가능성의 증명'이었습니다. ChatGPT는 비록 불완전했지만, AI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대중에게 직접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전 세계 수억 명의 사용자가 실제로 사용하고, 피드백하고, 함께 발전시키는 선순환으로 이어졌습니다. 불과 2년 만에 AI는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었습니다.

출처 : Figure (2배속 편집)
Figure 03도 마찬가지입니다. 느린 속도, 제한된 환경, 경쟁사와의 차이는 현재 시점의 기술적 한계일 뿐입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Figure가 로봇을 '공장'에서 '집'으로 가져오겠다는 명확한 비전을 제시했고, 모방 학습이라는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그 가능성을 실제로 구현해 냈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내년 추석에는 전을 부치고 있는 Figure의 모습을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
기술은 완벽할 때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가능성이 증명되는 순간, 그때부터 변화는 시작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 시작점일지도 모릅니다.
*위 글은 '테크잇슈'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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