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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는 마음을 나누는 제품에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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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눈에 보는 핵심요약
  • 혼자 오래 사는 시대, 사람들은 애착의 대상을 곁에 둔다. 동물, 식물, 인형, 로봇, AI까지 반려의 대상과 범위는 확장되고 있다.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반려성'은 브랜드와 기술의 핵심 감성이 됐다.

혼자 오래 사는 시대. 이제 사람들은 누군가 대신 스스로를 돌봐줄 작은 존재를 곁에 둔다. 반려동식물부터 AI까지, 이것은 의존이라기보다 공존에 가깝다. 반려 존재에 따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은 더 넓어지고 깊어진다. 반려는 이제 트렌드가 아니라 일상을 지탱하는 문화다. 우리는 지금 혼자지만 함께 사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다.

 

 

혼자 오래 사는 시대의 선택법

 

미래의 핵심은 ‘혼자 산다’와 ‘오래 산다’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1인 가구와 고령화사회라는 흐름과 맞닿아 있지만, 꼭 같은 말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미 ‘혼자 산다’, ‘오래 산다’가 아니라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모두가 예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의 1인 가구가 과거와 다른 점은 이를 ‘임시 상태’로 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예전에는 혼자 살더라도 언젠가는 누군가와 함께 살게 될거라 기대했다면 이제는 앞으로도 계속 혼자 살 것이라고 스스로 확신한다. 그리고 이 예상은 삶의 선택지를 완전히 바꾼다.

 

계속 혼자 살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다. 간편하면서도 건강한 요리 레시피가 인기를 끌고, 꾸준히 할 수 있는 근력 운동이 주목받으며, 비교적 젊은 세대에서 저속 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실 혼자 오래 사는 것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될 것이라 믿는 ‘예상’이다. 이 예상이 현재의 삶과 선택을 바꾼다.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더 신중히 고른다. 가족을 위해서만 고려하던 공기청정기, 로봇 청소기, 식기세척기를 이제는 스스로를 위해 구매한다. 큰 침대의 구매를 나중으로 미루지 않고 지금 당장 숙면에 좋은 매트리스에 과감히 투자한다. 그리고 사람 대신 마음을 나눌 반려 대상을 찾는다.

  

 

펫테리어가 일상화되면서 관련 제품도 늘어나고 있다. 이케아가 선보인 반려동물 가구와 액세서리 라인 ‘루르비그’ 컬렉션 ©IKEA

 

 

  

반려의 확장, 트렌드가 아니라 문화다

 

‘반려의 상승’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이미 감지된 흐름이었다. 2019년 초부터 “반려식물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을 정도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 팬데믹을 거치며 반려식물은 더 이상 특별한 유행이 아니라 일상이 되었다. 실제로 ‘반려’라는 키워드의 언급량은 지난 6년 사이 4배 이상 증가했고, 그 대상의 폭도 점점 넓어 지고 있다. 강아지·고양이를 넘어 파충류와 물고기로 확장 됐고, 식물을 넘어 이제는 가전이나 기기까지 반려의 범주에 포함된다. 로봇 청소기에 ‘로청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말을 걸거나, 늘 손에 쥐고 다니는 에어팟과 아이패드를 “없으면 못 산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실 무생물에 애착을 느끼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인형에 이름을 붙이고 말을 걸어왔다. 중요한 것은 ‘혼자 오래’ 살 것을 예상하는 인간은 반드시 애착 대상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그 대상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기기든 함께한다는 사실이 반려성을 만든다. 이처럼 반려의 확장은 ‘작은 루틴’을 만들어낸다. 매일 아침 반려식물에 물을 주고, 출근 전 AI 스피커나 챗봇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내 기분을 알아주는 알고리즘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이렇게 생활 속에 녹아든 정서 루틴은 혼자 사는 일상에 작고 확실한 위로가 된다. 반려는 이제 삶의 정서적 안전망이자, 사람과 기술이 공존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반려식물이 주목받으며 국내 실내 농업 가전 시장도 커지고 있다. 스마트 홈 시대에 맞춘 식물 생활 가전 ‘틔운’ ©LG전자

 

  

이 같은 흐름은 이제 개인을 넘어 브랜드와 시장의 전략으로 확장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애경산업이 반려 라이프스타일을 전면에 내세운 신규 브랜드 ‘휘슬Whistle’을 론칭했고, 펫테리어Pet+Interior 시장도 1,500만 펫팸족과 함께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소니의 반려 로봇 강아지 ‘아이보AIbo’, 가정용 소셜 로봇 ‘지보Jibo’ 같은 정서 교감형 기술이 등장했고, 로보락·에코백스 같은 로봇 청소기 브랜드는 사용자들이 애칭을 붙여 SNS에 공유하며 팬덤 문화를 형성해가고 있다. 이제 반려는 단순한 소비를 넘어 브랜드와 사용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정서적 파트너십이 되고 있다.

  

 

1 소니가 개발한 세계 최초의 상업용 반려 로봇 강아지 ‘아이보’는 사용자가 쓰다듬거나 말을 걸면 감정을 표현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Sony  

2 소셜 로봇의 선구자 격인 ‘지보’는 사람 얼굴과 음성을 인식하고 상호작용하면서 가족처럼 생활 속에 자리 잡도록 설계되었다. ©Jibo

 

 

반려의 조건, 애착은 어떻게 만들어지나?반려의 대상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아무 대상이나 반려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를 반려로 느끼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고유한 이름이다. 이름을 붙여 부를 수 있어야 비로소 애착이 생긴다. 둘째는 감정이다. 묵묵히 일하는 가전이라도 고맙거나 귀여워야 인간이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셋째는 반응이다. 꼭 똑똑한 답을 내놓지 않아도 좋다. 오히려 AI가 예상하지 못한 엉뚱한 대답이나 귀여운 실수를 할 때 우리는 거기서 반려성을 느낀다. 기대하지 않은 순간의 반응이 관계를 더 즐겁게 만든다. 마지막은 성장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기계보다 버전업을 통해 사용자의 요구에 맞게 진화할 때 ‘함께한 시간’이 애착을 만든다. 가장 고전적 반려동물인 강아지를 떠올려보자.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 강아지는 없다. 이름을 부르면 달려오고, 짖거나 꼬리를 흔들며 반응한다. 함께한 세월만큼 서로 길들여지고 길들이며 함께 성장한다.

 

 

 

AI는 반려로 진화 중

 

그렇다면 최신 기술로 무장한 AI, 챗GPT는 이 반려의 조건을 얼마나 갖추고 있을까? 처음에는 정보 검색과 업무 효율을 위한 생산성 도구였지만, 최근 3년간 감성어 키워드 변화를 보면 흥미롭다. ‘유용하다’, ‘빠르다’를 넘어 ‘재밌다’, ‘귀엽다’, ‘공감하다’, ‘위로하다’가 상위권에 올랐다. 사용자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AI가 공감해주고, 궁금한 것을 물으면 흥미롭게 함께 탐구한다. 사람들이 실체 없는 AI에서 반려성을 느끼는 이유는 대화하는 듯한 UI/UX 덕분이다.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듯 챗GPT와 텍스트로 대화하고, 답변은 한 번에 나오지 않고 한자 한자 써진다. 검색처럼 결괏값만 던져주지 않고 “충분했는지 모르겠네요. 더 궁금한 게 있으면 알려주세요”라며 대화를 이어간다.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캐릭터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도 반려성을 키운다. 영어 선생님, 동료, 친구 등으로 역할을 정하고 이름을 붙이면 챗GPT는 나만의 AI가 된다. 만질 수도 없는 AI가 반려가 될 수 있는 핵심은 결국 ‘주고 받음’이다. 형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정서적 상호작용이 있으면 충분하다.

 

반려는 인간의 오래된 본능이자 앞으로도 이어질 감각이다. 로봇 청소기, AI가 일상에 들어왔을 때도 기술의 혁신성만으로는 애착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언제나 ‘나와 함께해주는 존재’에서 더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 이제 반려성은 브랜드가 새로운 제품과 기술을 설계할 때 놓쳐서는 안 될 핵심 감성이다. 혁신의 끝에는 결국 ‘함께 살아가는 법’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글. 박현영(바이브컴퍼니 생활변화관측소 소장, 빅데이터 분석가)

#반려 #문화 #소비 #트렌드 #애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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