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낵은 밥을 대신할 수 있을까?
- 한눈에 보는 핵심요약
- 스낵으로 식사를 대신하는 '스낵키피케이션’이 새로운 식문화로 주목받고 있다. 단순히 허기를 달래기 위해 '때우는 식사'가 아닌 영양과 균형, 품질, 합리성, 만족감을 모두 고려한 전략이다.
시간은 빠르고, 삶은 복잡하다. 정해진 시간에 앉아 정찬을 즐기기보다 작은 한 입으로 삶을 설계하는 시대. 아침·점심·저녁의 경계는 흐려졌고, 그 자리를 대신하는 건 언제 어디서든 빠르고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스낵’이다. 지금 전 세계 식문화의 판을 흔들고 있는 키워드 ‘스낵키피케이션Snackification’. 이제 식사는 형식이 아니라 선택이며, 나를 위한 전략이다.
정해진 시간에 여유롭게 식사를 챙기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세대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전통적인 아침·점심·저녁의 삼식 체계가 흔들리며 이를 보완하는 새로운 식문화로 스낵키피케이션Snackification이 부상하고 있다. 이 용어는 ‘스낵Snack’과 ‘~화-ification’의 결합어로, 정규 식사 대신 짧은 시간에 소량의 음식을 여러 번 나눠 섭취하는 식사의 간식화를 의미한다.
이 현상은 세계적으로도 뚜렷하다. 유로모니터의 ‘2024년 글로벌 스낵 시장 주요 트렌드’에 따르면 미국 성인 6명 중 1명17%이, 영국과 브라질은 8명 중 1명13%이, 싱가포르와 홍콩은 9명 중 1명11%이 식사를 스낵으로 대체하고 있다. 한국 역시 8명 중 1명 수준으로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스낵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3.7% 증가한 6,800억 달러약 965조 원에 달했으며, 올해는 7,000억 달러약 993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5.10.15 환율 1,419원 기준
혼밥과 런치플레이션이 불러온 작은 한 끼
“밥은 먹고 다니냐”는 인사가 무색할 만큼 한국인의 식사 풍경은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하루 세끼의 정해진 시간과 형식을 따르기보다 자신만의 리듬에 따라 작고 유연한 식사를 택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인구구조와 라이프스타일, 경제 환경의 변화가 함께 만들어낸 식문화의 전환이다.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의 증가는 식사의 간소화를 이끌었다. 현재 국내 전체 가구 중 약 33%가 1인 가구로, 혼밥은 이제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일상이 되었다. 소포장 식품과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스낵형 식사에 대한 수요는 자연스럽게 증가했다. 맞벌이 부부 또한 요리보다는 빠르고 간편한 선택을 선호하며, 식사의 목적이 ‘포만감’보다는 ‘효율과 회복’으로 바뀌고 있다.
여기에 개인주의적 성향이 더해지며 자신만의 시간표와 건강 목표에 맞춘 맞춤형 식사가 중요해졌다. 간편하고 유연한 스낵형 식사는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최소화하며,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는 장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도 이러한 변화에 일조하고 있다. 영상이나 콘텐츠를 시청하면서 식사하는 ‘1인 미디어 식사’가 일상화됨에 따라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다른 손에는 간편식을 든 모습이 도시의 일상 풍경이 되었다.
식사는 이제 더 이상 ‘함께 앉아 먹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 고물가와 외식비 상승이라는 경제적 현실도 영향을 미쳤다. ‘런치플레이션Lunchflation’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점심 한 끼의 가격 부담이 커졌고, 이에따라 실속을 중시하는 ‘절약형 소비’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소비자는 합리적 가격에 건강과 편의성을 모두 갖춘 식사를 원하며, 이러한 니즈는 간편식 시장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연한 식사 시간, 나를 위한 한끼, 경제적 부담까지 고려한 선택인 스낵키피케이션은 그렇게 우리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건강한 스낵, 삶을 설계하다
이제는 ‘무엇을 먹느냐’뿐 아니라 ‘어떻게 먹느냐’도 중요해졌다. 평균수명의 연장, 건강 정보의 대중화, 라이프스타일 공유 등의 영향으로 식사의 의미는 생존을 넘어 삶의 질과 직결된다. 과거 허기를 달래는 고열량 저영양 간식에서 지금은 영양 균형과 건강을 고려한 ‘웰니스 스낵’으로 진화하고 있다.
소비자는 단순한 효율보다 제대로 된 경험과 질적 만족을 추구하며, 지속 가능성과 심리적 안정까지 고려한다. ‘저속 노화Slow Aging’나 ‘혈당 관리’ 같은 키워드도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소식좌’로 불리는 식습관과 짧은 식사 전략은 단순한 체중 감량을 넘어 대사 건강과 혈당 변동 관리에 주안점을 둔 현대인의 식사 방식이다. 식사 간격을 줄이거나 일정한 리듬으로 섭취하는 식사 방식은 장 건강, 에너지 유지, 집중력 유지 등 다양한 웰니스 목표와 연결된다. 이는 곧 스낵형 식사가 단순히 편의성 중심을 넘어 건강과 성과 중심의 라이프스타일을 위한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식품 및 외식산업도 이 트렌드에 발맞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글로벌 브랜드들은 제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언제, 어디서, 어떻게’ 먹을지를 설계하고, 저당·고단백·이동성·지속 가능성을 핵심 키워드로 삼는다. 국내 기업도 소비자의 건강 관심사를 반영해 저당 간편식, 고단백 요구르트, 식물성 단백질 간편식, 착즙 주스 등 다양한 웰니스 스낵 제품을 확대하고 있다. 유산균 함량이 높은 요구르트, 식이 섬유를 강화한 견과류 바, 글루텐프리 곡물 볼 등도 대표적 사례다.

작지만 영리한 스낵, 산업이 되다
편의점은 식문화 변화의 바로미터로 건강하고 간편한 식사 수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과일, 채소, 견과류, 컵샐러드, 삶은 달걀, 저당 요구르트, 단백질 쉐이크 등 스낵형 건강식품이 핵심 상품으로 떠올랐다. CU는 ‘더건강식단’ 시리즈를 통해 채식·저염·저지방·고단백 간편식을 선보이며, 세븐일레븐은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교수와 협업해 ‘저속 노화 간편식’을 출시했다. GS25는 생과일 스무디 제조 기기, 단백질 빵, 마녀 수프 등을 통해 헬시 플레저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이런 제품들은 허기를 채우는 용도를 넘어 스스로를 돌보는 라이프케어 수단으로 여겨진다.
식사빵 시장도 식사의 간식화와 함께 주목할 만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 빵은 간식이나 디저트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식습관의 변화에 따라 혼자 먹기에도 부담 없고 다양한 맛과 옵션이 등장하면서 이제는 밥을 대신하는 주식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 특히 웰니스 트렌드에 맞춰 정제 탄수화물 중심의 밀가루를 통곡물 등으로 대체한 글루텐프리 빵이나 천연 발효종을 활용한 건강 식사빵은 점점 더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고령층을 위한 저당 빵, 소화 용이한 식사빵, 유당불내증 대비 비건빵 등의 제품도 확대되고 있다.

2 식사빵 시장이 성장하면서 몸에 이로운 빵을 찾는 수요도 늘고 있다. ©파리바게뜨
외식업계도 ‘포터블 푸드’와 같은 빠르고 자극적이지 않은 소용량 건강식에 주목하고 있다. 샐러드, 단백질 컵밥, 키토김밥 등이 대표적이다. 대체육, 곤약, 저탄수화물 재료로 만든 푸드도 인기다. 단체 급식 또한 변화 중이다. 대량 제공 중심에서 벗어나 개인 맞춤형 식단, 균형 잡힌 구성으로 진화하고 있다. 예컨대 CJ프레시웨이는 ‘스낵픽Snackpick’ 코너를 통해 소용량 테이크아웃 간편식을 제공하고, 삼성웰스토리는 건강 데이터를 기반으로 식단과 운동을 추천하는 ‘웰핏라운지’와 맞춤형 간편식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2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 맞춤형 헬스케어 솔루션을 제공하는 웰핏라운지 ©삼성웰스토리
이제 스낵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다. 현대인의 건강을 관리하고, 삶의 흐름을 조절하며, 소비 태도까지 반영하는 작은 전략이 되었다. 편의점부터 외식, 단체 급식에 이르기까지 식품 산업 전반이 ‘작고 똑똑한 한 끼’에 반응하고 있다. 저당·고단백·식물성·소용량 등 스낵의 언어는 점점 더 정교해지고, 그 쓰임은 더 넓어지고 있다.
식사는 더 이상 정해진 자리에 앉아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삶의 어느 순간이든, 누구에게든 유연하고 균형 잡힌 식사가 가능해진 시대. 스낵키피케이션은 우리에게 ‘어떻게 먹을 것인가’를 다시 묻는다. 그것은 단지 식문화의 변화가 아니라 시간을 쓰는 방식, 나를 돌보는 방식, 그리고 하루를 살아내는 방식까지도 바꾸고 있다. 지금 우리는 작은 한 끼를 통해 더 나은 하루를 설계한다. 그 한 끼가 당신의 리듬을 바꾸고, 삶의 속도를 새롭게 조율하고 있다.
글. 김성화(<대한민국을 이끄는 외식트렌드> 공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