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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의 패러다임이 '미(美)'에서 '생존'으로 바뀐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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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눈에 보는 핵심요약
  • 기후 위기 속에서 건축은 에너지 효율 중심에서 재난 대응과 지속성을 고려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세계 각국에서는 각자의 위기를 거울 삼아 건축의 미래를 새롭게 그리고 있다.

도시는 지금 기후 위기라는 시험대에 올라 있다. 유리 빌딩의 화려한 외피는 더 이상 시원함을 보장하지 못하고, 재건축은 막대한 자원 낭비로 이어진다. 건축의 역할이 재편돼야 할 때. 공간 설계는 에너지 절약과 회복력 그리고 지속 가능성을 담아내야 한다. 기후 회복력 건축이 미래 도시의 비전을 열고 있다.

 

 

기후 위기와 건축의 새로운 과제

 

지난여름은 유난히 길고 뜨거웠다. 예전에는 며칠에 그치던 30℃ 이상의 날씨가 이제는 일상이 되었고, 35~36℃ 폭염은 도심의 공기를  숨 막히게 만든다. 견디다 못해 가까운 빌딩 로비로 들어서면 시원한 듯 보이지만, 이곳 또한 모순을 품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풍경은 유리 상자처럼 투명한 빌딩으로 가득하다. 높고 널찍한 로비는 시각적으로는 시원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에너지 먹는 하마’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여름에는 냉방 부하, 겨울에는 난방 부하가 과도하게 크기 때문이다. 이른바 ‘글라스 커튼월 빌딩 Glass Curtain Wall Building ’은 여름철 뜨거운 햇빛이 그대로 실내를 달구고, 겨울에는 대류 현상 탓에 바닥층은 좀처럼 따뜻해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에어컨 실외기의 열기와 자동차 배기가스가 뒤엉켜 도시는 점점 뜨거워지고, 이는 평균기온을 시골보다 1~2℃ 높이는 ‘도심 열섬 현상’으로 이어진다. 기후 위기가 심화되는 시대,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건물은 짓고 허무는 과정에서도 막대한 자원과 탄소를 소비한다. 철강과 시멘트 제조 공정은 산업 부문에서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며 철거 시 생기는 폐콘크리트·폐철근은 재활용이 쉽지 않아 그대로 버려지곤 한다. 콘크리트의 내구연한은 약 50년으로 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20~30년 된 아파트도 ‘노후 아파트’라 부르며 재건축 논의를 시작한다. 내구연한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철거되는 현실은  큰 사회적 낭비다. 이러한 상황은 자원과 생존을 좌우하는 중대한 과제가 되었다.

 

 

 

현대 도시의 상징이자, 에너지 효율 문제를 안은 건축양식인 글라스 커튼월 빌딩 ©Sergio Grazia

 

 

 

기후 회복력 건축의 대두


해답은 냉난방 부하를 최소화하는 설계에서 시작된다. 남향 배치를 통해 겨울에는 햇볕을 충분히 들이고, 북향에는 창을 최소화해 찬 바람을 막는다. 벽은 이중 구조에 단열재를 넣고, 창문은 이중·삼중 유리창을 설치한다. 최근에는 유리 사이에 아르곤가스를 주입해 단열 효과를 높이는 방식도 활용된다. 여름에는 처마 같은 차양 구조가 햇빛을 막아준다. 이는 남향 배치와 깊은 처마로 지혜를 담아낸 우리나라 전통 가옥의 설계와도 맞닿아 있다. 이처럼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한 건축을 ‘패시브 하우스’라 부른다. 반대로 태양광·풍력·지열 같은 재생에너지를 직접 생산하는 건축은 ‘액티브 하우스’다. 만약 두 요소가 결합된다면, 외부 에너지에 의존하지 않는 ‘제로 에너지 빌딩’이 가능하다. 


여기에 더해 최근 주목받는 개념이 ‘ 회복력 Resilience  건축 ’이다. 이는 단순히 건물이 재난을 견디는 데 그치지 않고, 위기 속에서 기능을 유지하며 재난 이후에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태풍이 몰아쳐도 지붕이 날아가지 않고, 홍수가 덮쳐도 물 위에 가볍게 떠오르며, 지진으로 흔들려도 균열이 최소화되는 건축. 바로 생존을 전제로 한 새로운 시대의 공간이다. 이를 위해서는 재료와 구조의 근본적 혁신이 필요하다. 내구성이 높은 친환경 소재와 충격 흡수형 구조 설계, 방수·방염 기능을 강화한 외장재가 적용된다. 에너지 측면에서는 태양열·풍력·지열 등 다양한 신재생 에너지를 통합하고, 빗물 재활용과 자연 환기 시스템을 더해 단전·단수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자급 체계를 갖춘다. 또 내부 공간은 평상시에는 주거와 업무에 쓰이다 재난이 발생하면 곧바로 대피소로 전환될 수 있도록 유연하게 설계한다. 가변형 칸막이나 다목적 홀, 비상 물품 저장 공간은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두 번째 생명 줄’이 된다. 공동체 전체를 지탱하는 작은 방파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회복력 건축은 에너지 절약과 친환경을 넘어선다. 그것은 인간의 생존과 안전을 보장하는 새로운 건축 패러다임이자, 기후 위기 시대에 도시가 버티고 살아남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이다.

 

 

 

뉴욕 하이 라인High Line은 버려진 고가철도를 공원으로 재생해 도시 열섬과 폭우 문제에 대응하는 회복력 공공 건축의 대표 사례다. ©Field Operations and SOM


 

 

기후와 공존하는 글로벌 도시 실험

 

세계 곳곳의 도시는 이미 ‘기후와 공존하는 건축’이라는 전환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네덜란드는 해수면보다 낮은 국토라는 태생적 한계를 오히려 가능성으로 바꿔내고 있다. 로테르담 인근의 수상 주택단지는 강물이 불어나도 물 위에 가볍게 부양하며 안전을 지켜낸다. 이미 건축물은 해수면 상승 시대를 대비하는 실험실이자 미리 도착한 미래 도시의 축소판이다. 중동의 사막 도시는 또다른 길을 찾았다. 기온이 40℃를 훌쩍 넘는 곳에서 건축가들은 수천 년 전 전통 지혜를 불러냈다. 두꺼운 벽, 깊은 그늘, 바람길을 고려한 골목 구조는 첨단 재료와 결합해 새로운 ‘패시브 디자인’으로 재탄생했다. 여기에 최신 기술을 더한 스마트 셸터는 냉방·수분 공급·응급 의료까지 갖춘 ‘오아시스 같은 인프라’로 진화했다.

싱가포르는 도시 전체를 ‘정원’으로 설계한다는 야심찬 비전을 실행하고 있다. 초고층 빌딩 외벽에 수직 정원이 펼쳐지고, 옥상에는 태양광 패널과 빗물 저장 시스템이 설치된다. 이 도시는 이제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니라, 스스로 숨 쉬고 순환하는 생태계의 일부다. 서울 역시 기후 대응 건축 실험의 최전선에 서 있다. 제로 에너지 빌딩 의무화를 추진하며 건물 외피를 에너지 절약의 ‘방패막’이자 스마트한 ‘생존 장치’로 재해석하고 있다. 더불어 기존 건축물의 리모델링을 통해 탄소 배출을 줄이고, 도심 곳곳에 녹지와 친환경 인프라를 결합해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에코 시스템’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회복력 건축을 ‘재난의 현장’에서 검증한다.



건물 외벽을 덮은 수직 정원으로 유명한 싱가포르의 파크로열 온 피커링 호텔. 에너지 절감과 자연 환기 기능을 갖추고 있다.

 

 

허리케인에 견디는 내풍 설계, 산불을 버티는 내화 소재, 전력망이 끊겨도 자체적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자급형 주택이 더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일본은 지진과 쓰나미라는 반복된 재해 경험을 통해 회복력 건축을 생활의 일부로 내재화했다. 학교와 공공건물은 재난 시 곧바로 대피소로 전환되고, 비상 전력과 식수 저장 시스템은 설계의 기본값이 되었다. 이렇듯 세계의 도시는 각자의 위기를 거울 삼아 건축의 미래를 새롭게 그리고 있다. 그곳에서 건축은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라, 공동체의 안심과 생존 그리고 기후와 함께 살아갈 지혜를 품은 하나의 ‘문화적 해답’이 되고 있다. 


기후 회복력 건축은 기후와 공존하는 도시 비전으로서 새로운 생활 방식을 제시한다.  앞으로의 도시는 이동을 줄이고 자원을 순환시키며, 위기 상황에서도 공동체를 보호하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것은 공동체의 안전망이자 기후 시대의 지혜이며 ‘지속성 속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새로운 미학이다.  기후 위기 속에서 건축은 우리 삶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문화적 해답이 될 것이다.

 

 

  

글. 서윤영(건축공학자, <미래 세대를 위한 건축과 기후 위기 이야기> 저자)

 

 

 

 

 

 

#회복력 건축 #기후 공존 건축 #기후 위기 #패시브 하우스 #액티브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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