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합류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 스톡옵션보다 값진 것
- 한눈에 보는 핵심요약
- 국내 스타트업 IPO 가능성은 0.21%, 500개 중 1개입니다. 스톡옵션만 보고 합류하는 건 말이 안 돼요. 그럼에도 스타트업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 직접 겪은 기록을 살펴보세요.
스타트업을 첫 회사로, 혹은 커리어 초반의 선택지로 고민한다면 꼭 계산해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대체 연봉은 얼마나 낮은지, 스톡옵션은 몇 주나 받게 되는지, 상장하면 얼마쯤이 될는지. 스프레드시트를 켜거나,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거나 하게 되죠.
실제로 스타트업의 연봉은 낮은 경우가 많습니다. 중소기업 수준이면 다행이고, 태생부터 거대한 스타트업이 아니라면 대기업은 애초에 비교 대상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보통 이러한 연봉 격차를 상쇄해 주는 장치로 스톡옵션을 부여합니다.
그렇다면 스톡옵션의 현실은 어떨까요?
중소벤처기업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스타트업의 IPO 가능성은 0.21%입니다. (5년(2018~2022년) 평균 기술기반 법인 창업 기업 수 43,556개 대비, 코스피·코스닥 연평균 상장 성공 기업 92개를 나눈 것.) 500개의 회사 중 1개 회사만 상장에 성공한다는 이야기예요. 설령 상장이 된다 해도, 락업 기간이나 주식 시장의 흐름에 따라 실제로 손에 쥐는 금액은 계산과 크게 다를 수 있어요.
그렇기에 스톡옵션만 바라보고 합류하는 건, 사실 말이 안 됩니다.
저도 그 계산을 해봤어요. 그래도 합류했습니다. 스톡옵션을 없는 것으로 취급하지는 않았어요. 이미 합류한 구성원들, 그리고 사업 아이템을 보면서 희망을 가질 수 있었거든요. 이 사람들과 이 기술이라면 잘 될 거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꽤 낙관적인 판단이었지만, 일을 하며 점점 가시화되는 걸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불가능한 꿈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건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상장은 극히 희박한 확률이에요. 스톡만 바라보고 버티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중간에 나간 사람들이 더러 있었어요. 각자 이 회사에서 기대하던 것들이 달랐으니까요. 더 높은 연봉, 더 빠른 성장을 위한 환경. 그걸 찾아 나간 거예요. 틀린 선택이 아닙니다. 각자 선택하는 거죠.
그렇다면 저는 왜 남았을까요?
✓ 스톡옵션은 보너스다 — 합류의 이유는 따로 있어야 한다 스톡이 의미 있으려면 회사가 성장해야 하고, 회사가 성장하려면 내가 기여해야 합니다. 합류의 이유가 스톡이면 버티기 어려워요. "여기서 내가 처음으로 만들어볼 수 있는 게 뭐지?"가 더 좋은 질문입니다.
비교는 했습니다. 그래도 남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합류 초기엔 많이 비교가 됐습니다.
대기업에 간 친구들은 연봉이 달랐어요. 다루는 일의 스케일도 달랐고요. 수억짜리 캠페인, 이미 수백만 명이 쓰는 제품, 글로벌 기업, 좋은 복지. 전문직은 말할 것도 없고요.
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서비스를 알리고 있었죠. 번듯한 회사가 생각보다 많은 걸 해줄 수 있다는 걸, 그때 주위를 보며 느꼈습니다.
그래도 나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선택한 길이었으니까요. 여기서 만들 수 있는 최선의 경험을 쌓아가자고 했어요. 이게 내 길이라는 걸 확인해 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비교는 어쩔 수 없이 된다 — 남다른 내 경험을 찾자 비교 자체를 막을 순 없어요. 근데 비교 대상이 맞는지는 생각해봐야 합니다. 대기업 친구들은 이미 돌아가는 시스템 안에 들어간 거예요. 스타트업은 그 시스템을 처음부터 만드는 곳이고요. 같은 출발선이 아닌 겁니다. 내가 여기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 뭔지를 찾는 게 더 좋은 질문이에요.
처음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
7년이나 되는 시간을 이곳에서 보낼 수 있었던 건, 사실 일이 재미있었기 때문이에요.
수십 번의 시도 끝에 콜드 이메일 마케팅에서 처음으로 파트너십 계약이 발생했을 때. 첫 뉴스레터 오픈율이 시장 벤치마크를 넘겼을 때. 첫 웨비나에서 양질의 ICP 리드가 모였을 때. Salesforce 육성 자동화가 작동하는 걸 확인했을 때.
처음 만든 것들이 눈앞에서 작동하는 걸 볼 때마다, 만족감이 있었습니다.
회사가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 한다는 것. 마케팅 전략 하나도, 채널 하나도, 다 처음 시도해 보는 것들이었기에 잘 되면 우리가 맞은 거고, 안 되면 다시 짜는 거였죠. 틀려도 괜찮은 환경에서 정답을 함께 찾아가는 그 과정이 생각보다 즐거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도 같이 성장하고 있었어요. 처음엔 시키는 걸 해내는 게 전부였는데, 어느 순간 먼저 제안하고, 먼저 기획하고, 결과를 설명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기여도가 높아진다는 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요.
✓ 처음 만드는 경험이 쌓인다 — 그게 커리어 자산이 된다 이미 돌아가는 시스템 안에서 배우는 것과, 시스템을 처음부터 만들어보는 것은 결이 달라요. 스타트업에서 처음으로 만들어본 것들 — 그게 실패든 성공이든 — 은 어디서도 살 수 없는 경험이 됩니다. 합류 전에 이걸 알았더라면, 조금 더 확신을 갖고 들어올 수 있었을 것 같아요.
회사가 달라지면 나도 달라진다
전환점은 입사 4년차쯤이었어요.
처음으로 가시적인 매출 성장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4년차에 30억, 5년차에 50억, 6년차에 100억대. 마이너스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왔다는 게 실감이 됐어요. 그 매출 안에 마케팅 기여 고객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걸 직접 확인했을 때 — 내 선택에 따른 결과, 그 영향력이 크구나 싶었습니다.
흔히 한 회사에서 2-3년 넘게 있기 어렵다고 하지만, 이렇게 회사가 다이내믹하게 달라지는 환경이라면 또 다릅니다. 직원이 열 명 남짓이던 시절, 서른 명이 넘어가던 시절, 예순 명, 백 명. 숫자가 바뀔 때마다 회사는 달라져야 했어요. 시스템이 생기고, 역할이 세분화되고, 대화하는 방식도 바뀌었습니다.
저의 역할도 바뀌었어요. 마케팅 사원으로 시작해서 마케팅 리드가 됐습니다. 단순히 실행하는 사람에서, 방향을 잡고 팀을 이끄는 사람으로. 리드로 일했던 1-2년간은 그 확신이 더 깊어진 시간이었습니다.
✓ 스타트업은 한 회사에서 여러 회사를 경험하는 곳이다 직원 수가 두 배, 세 배가 될 때마다 회사는 달라져요. 그리고 그 변화에 맞춰 내 역할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 곳에 오래 있는 게 정체가 아니라 성장이 될 수 있는 구조, 이게 스타트업의 특성이에요. 역할이 커지는 속도도, 대기업과는 다릅니다.
결국 볼 수 있었던 0.21%의 확률
그렇게 결국 증권거래소까지 다녀왔습니다.
스톡옵션도 받았어요. 500개 중 1개 확률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을. 마냥 낙관적이었던 그 판단이, 감사하게도 현실이 됐습니다.
근데 솔직히,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상장 날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따로 있어요. 처음으로 계약이 발생하던 날, 매출 그래프가 처음으로 확 꺾이던 날, 직접 만든 시스템이 처음으로 돌아가던 날. 직원이 열 명이던 회사가 백 명이 넘어가던 날.
그 순간들이 스톡옵션보다 값진 과정이었습니다.
✓ 스톡옵션은 결과다 — 과정에서 쌓이는 것들이 더 오래간다 상장은 결과예요. 그 결과를 만든 건, 그 이전의 수많은 ‘처음’들이었습니다. 스톡옵션은 사라질 수 있어요. 그러나 내가 처음으로 만들어본 경험, 내 손으로 움직인 숫자들, 0에서부터 어딘가에 도달해본 감각 — 이건 어디에든 쓰일 수 있습니다.
마치며
지금 스타트업을 첫 선택지로 고민하고 있다면,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스톡이 의미 있으려면 회사가 성장해야 하고, 회사가 성장하려면 내가 기여해야 하고, 내가 기여하려면 여기서 뭔가를 만들어봐야 합니다.
그 과정을 상상해보세요. 혹시, 가슴이 두근거리나요?
무엇을 위해 결정하고자 하는지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봐요. 그 답이 있다면, 충분히 좋은 결정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