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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눈에 보는 핵심요약
- 글로벌 기업들은 이제 ‘어디에서 만들까’보다 ‘누구와 연결될까’를 먼저 고민한다. 프렌드쇼어링의 확산 속에 공급망은 효율 중심 구조에서 안정성과 회복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재설계되고 있다.

효율을 향해 촘촘하게 짜여 있던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팬데믹과 전쟁, 그리고 기술 패권 경쟁은 ‘가장 싸고 빠른 연결’이 얼마나 쉽게 끊길 수 있는지를 드러냈다. 비용이 아닌 신뢰를 기준으로 세계경제의 연결 방식이 다시 설계되고 있다. 이제 기업과 국가는 어디에서 만들 것인가 보다 누구와 연결될 것인가를 먼저 묻는다.
효율에서 신뢰, 공급 안정성이 곧 국력
한동안 글로벌 공급망은 효율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움직였다. 기업은 더 낮은 비용과 더 빠른 물류, 더 큰 생산 규모를 찾아 국경을 넘었고, 세계경제는 이를 가장 합리적 질서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2018년 말 시작된 팬데믹은 이 정교한 분업 체계가 생각보다 쉽게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여기에 전쟁과 미·중 전략 경쟁이 겹치면서 공급망은 더 이상 기업 내부의 운영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산업 경쟁력과 안보를 함께 좌우하는 변수로 떠올랐다. 반도체, 배터리, 에너지, 핵심 광물 등의 공급 안정성이 곧 국가의 전략적 힘으로 이어지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변화의 중심에 있는 개념이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이다. 본국으로 생산을 되돌리는 리쇼어링Reshoring이나 인접 지역으로 생산 거점을 옮기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이 지리적 이동에 초점을 맞춘 전략이라면, 프렌드쇼어링은 ‘어디에서 만들 것인가’보다 ‘누구와 연결될 것인가’를 먼저 묻는다. 비용뿐 아니라 제도와 규범, 안보 이해관계, 기술 협력의 지속 가능성까지 함께 고려해 공급망을 다시 설계하자는 발상이다. 과거의 세계화가 효율을 위해 국경의 의미를 재정의했다면, 지금의 세계화는 신뢰할 수 있는 연결을 위해 국경의 의미를 다시 설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과거에는 공장을 어느 나라에 둘 것인가가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원재료 조달부터 설계와 생산, 물류와 판매, 데이터 관리와 규제 대응까지 가치 사슬 전체를 어떻게 다시 짤 것인가가 더 중요해졌다. 이는 생산 기지의 이동을 넘어 산업구조 자체의 재배치에 가까운 변화다.
공급망 전략의 범위도 훨씬 넓어졌다. 완제품 생산만이 아니라 핵심 광물 확보와 첨단 부품·장비 조달, 데이터와 기술 표준, 환경 규제와 통상 질서에 대한 대응까지 모두 공급망 전략에 포함된다. 공급망은 더 이상 후방의 관리 영역이 아니라, 기업 전략의 전면으로 올라왔다. 가격이 조금 높더라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구조,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일 수 있는 구조, 위기 상황에서 빠르게 대체할 수 있는 구조가 새로운 경쟁력으로 평가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효율만을 극대화하던 시대에서 회복력까지 함께 계산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셈이다.한동안 글로벌 공급망은 효율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움직였다. 기업은 더 낮은 비용과 더 빠른 물류, 더 큰 생산 규모를 찾아 국경을 넘었고, 세계경제는 이를 가장 합리적 질서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2018년 말 시작된 팬데믹은 이 정교한 분업 체계가 생각보다 쉽게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여기에 전쟁과 미·중 전략 경쟁이 겹치면서 공급망은 더 이상 기업 내부의 운영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산업 경쟁력과 안보를 함께 좌우하는 변수로 떠올랐다. 반도체, 배터리, 에너지, 핵심 광물 등의 공급 안정성이 곧 국가의 전략적 힘으로 이어지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변화의 중심에 있는 개념이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이다. 본국으로 생산을 되돌리는 리쇼어링Reshoring이나 인접 지역으로 생산 거점을 옮기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이 지리적 이동에 초점을 맞춘 전략이라면, 프렌드쇼어링은 ‘어디에서 만들 것인가’보다 ‘누구와 연결될 것인가’를 먼저 묻는다. 비용뿐 아니라 제도와 규범, 안보 이해관계, 기술 협력의 지속 가능성까지 함께 고려해 공급망을 다시 설계하자는 발상이다. 과거의 세계화가 효율을 위해 국경의 의미를 재정의했다면, 지금의 세계화는 신뢰할 수 있는 연결을 위해 국경의 의미를 다시 설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과거에는 공장을 어느 나라에 둘 것인가가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원재료 조달부터 설계와 생산, 물류와 판매, 데이터 관리와 규제 대응까지 가치 사슬 전체를 어떻게 다시 짤 것인가가 더 중요해졌다. 이는 생산 기지의 이동을 넘어 산업구조 자체의 재배치에 가까운 변화다.
공급망 전략의 범위도 훨씬 넓어졌다. 완제품 생산만이 아니라 핵심 광물 확보와 첨단 부품·장비 조달, 데이터와 기술 표준, 환경 규제와 통상 질서에 대한 대응까지 모두 공급망 전략에 포함된다. 공급망은 더 이상 후방의 관리 영역이 아니라, 기업 전략의 전면으로 올라왔다. 가격이 조금 높더라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구조,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일 수 있는 구조, 위기 상황에서 빠르게 대체할 수 있는 구조가 새로운 경쟁력으로 평가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효율만을 극대화하던 시대에서 회복력까지 함께 계산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셈이다.

호르무즈 해협 인근 케슘섬 일대 항공 전경. 에너지 공급망이 특정 지역에 집중될 때의 구조적 리스크를 보여주는 대표적 해역이다.
©한경DB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 동맹이 바꾼 지도
이 변화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분야는 반도체다. 미국은 CHIPS 전략을 통해 첨단 반도체 생산 역량을 자국 안으로 복원하는 동시에 동맹국 기업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반도체 생태계를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려 하고 있다. 이는 설계와 제조, 패키징과 장비, 연구 개발과 인재까지 하나의 전략권 안에 묶으려는 시도에 가깝다. 반도체가 더 이상 특정 기업의 투자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안보의 언어로 해석되는 산업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배터리와 핵심 광물 분야도 다르지 않다. 전기차와 에너지 전환이 본격화되면서 리튬, 니켈, 코발트, 흑연, 희토류 같은 자원의 확보는 제조업 경쟁력의 전제가 되었다. 문제는 이들 자원의 채굴과 제련, 가공이 일부 지역에 편중돼 있다는 점이다. 결국 앞으로의 경쟁은 배터리 공장을 얼마나 많이 짓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광물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지, 이를 가공하고 재활용할 역량이 있는지, 관련 규제와 공급 충격에 얼마나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지가 함께 중요해진다. 산업 경쟁의 무게중심이 완제품 생산에서 자원과 기술, 제도와 네트워크를 아우르는 종합 역량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 애리조나에 건설 중인 TSMC 반도체 공장. 반도체 생산을 자국으로 끌어들이려는 CHIPS 전략은 산업을 넘어 국가 안보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위키피디아
China+1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제조 허브로 떠오르는 국가들도 분명해지고 있다. 인도와 베트남, 멕시코는 이제 저임금 생산 기지로만 읽히지 않는다.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과정에서 현실적인 대안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각국 정부 역시 산업 육성과 투자 유치를 통해 제조 기반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멕시코는 북미 공급망과의 지리적 연결성 덕분에 직접적 수혜지로 평가받고 있으며, 베트남은 전자·조립 산업에서 중요한 연결 거점으로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인도는 내수 시장에 생산 역량이 더해지면서 시장이자 제조 기지라는 이중의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것이 곧 중국의 시대가 끝났다는 뜻은 아니다. 중국은 여전히 압도적인 제조 인프라와 부품 생태계, 물류 경쟁력을 갖춘 거대한 산업 축이다. 다만 분명히 달라진 점은 과거처럼 모든 공정과 조달을 중국 한곳에 집중하는 방식이 더 이상 가장 자연스럽고 합리적 선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제 기업은 집중의 효율만이 아니라 분산의 안정성도 함께 계산한다. 공급망 재편의 핵심이 단지 ‘탈중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다층적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는 뜻이다.
기업 현장에서 자주 거론되는 표현이 ‘China+1’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중국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중국 외에 최소 하나 이상의 대체 거점을 확보하겠다는 현실적 전략이다. 지정학적 긴장이 길어지고 각국의 산업 정책과 보조금, 통상 규제가 촘촘해질수록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곧 기업의 리스크가 된다. 예측 가능한 비용보다 예측하기 어려운 충격이 더 큰 손실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전략도 한 단계 진화하고 있다. 단순히 생산 거점 하나를 추가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연구 개발과 고급 인력, 협력 업체 네트워크까지 함께 옮기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현지 생산만으로는 보조금 요건이나 규제 기준, 고객 대응 속도를 충족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공급망 재편은 제조의 이동이면서 동시에 기술의 이동이고, 생산 기지의 분산이면서 동시에 기업 역량의 재배치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시장이 주목하는 것도 개별 공장 하나가 아니라, 그 공장을 둘러싼 부품 업체와 물류망, 에너지 인프라와 인재 풀, 제도적 안정성이 함께 형성되는지 여부다.
세계화 2.0, 연결의 질이 달라진다
결국 최근 프렌드쇼어링이 보여주는 것은 세계화의 종말이 아니다. 오히려 세계화가 더 선별적이고 더 전략적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연결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연결 기준이 달라진다. 과거에는 누가 더 싸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누가 더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지, 누가 더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인지가 더 큰 판단 기준이 된다.
이 같은 변화는 자본의 흐름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돈은 단지 생산비가 낮은 곳으로만 이동하지 않는다. 기술과 자원, 인프라와 제도, 시장 접근성과 정책 수혜가 함께 축적되는 곳으로 이동한다. 그런 점에서 프렌드쇼어링은 산업과 자본, 국가 전략이 맞물리며 만들어내는 새로운 질서의 이름에 가깝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공장 몇 곳의 이동이 아닌, 세계경제의 연결 방식 자체가 다시 설계되는 모습이다. 세계화는 끝나지 않았다. 다만 더 신중해졌고, 더 전략적이 되었으며, 무엇보다 더 정치적인 질서로 바뀌고 있다.
글. 한형민(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
ℹ️ 이 글은 미래에셋증권 매거진에서 발행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