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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내공

일 못하는 사람의 유형

스테르담

2020.11.30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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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내공] 5장: 일로 인정받는 사람들의 업무 내공

솔직해져 보자.

나는, 당신은 일을 잘하는 사람일까?


앞에서 살펴본 ‘일 잘하는 사람의 유형’ 중 자신에게 해당하는 게 얼마나 되나? 

때로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내가 일을 잘하기 위해서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그 반대를 돌아보는 것, 즉 버려야 하거나 피해야 하는 것을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일까?’라는 질문에 대부분은 스스로에게 관대한 점수를 줄 것이다. 

잘한다는 말까진 안 하더라도 최소한, ‘에이, 나는 일을 못하지는 않아’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일을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일을 못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상대방이 더 잘 안다.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데 인색한 우리네 문화에서, 만약 일 잘한다는 평판을 얻었다면 그 사람은 일을 정말 잘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평판이 좋지 않다면 억울한 마음은 잠시 누르고 겸허하게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니라고 부정만 하다가는 스스로 침잠할 가능성만 커진다. 다른 사람 말에 너무 휘둘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나를 시기하고 질투하여 망가뜨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타인의 평가는 어느 정도 객관성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에게 관대한 나 자신의 평가와 객관성을 가진 다른 사람의 평가를 조합하여 나를 돌아보면 된다.


직장에도 좋은 사람은 매우 많다. 

형, 누나, 오빠, 언니의 호칭도 불사할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 있다. 그렇게 편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직장생활의 작은 낙이다. 하지만 장소가 ‘직장’이란 데 문제가 있다. 일로 엮인 사람들에게 ‘일’은 기본 전제여야 한다. 아무리 호형호제를 하며 술잔을 기울이고 간밤의 숙취를 이른 아침 같이 푸는 의리로 엮인 사람이라 해도, 함께 일하다가 서로 실망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어쩌면 친할수록 일을 잘하는 게 더 중요할지 모른다. 그 친분을 더욱더 공고히 하려면 말이다. 나는 친한 사람과 일 잘하는 사람은 구분해서 보는 편이다. 


쉬운 설명을 위해 표로 요약해보겠다. 

아마 표를 보면 바로 느낌이 올 것이다. 



다른 사람을 판단해 보는 것도 좋고, 자신도 어디 있을지 돌아보면 좋다.



이보다 더 재치 있게 설명해놓은 표도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공유되며 큰 호응을 얻었던 일명 ‘호사분면’이라는 표다.



호X새끼는 정말 되지 말자.



상사와의 관계에 좀 더 초점을 뒀는데, 중요한 것은 상사나 동료, 후배 모두에게 ‘호로XX’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앞에서 일 잘하는 사람들의 유형에 대해 정리해본 것처럼 이번엔 일 못하는 사람들의 유형에 대해 열거해보고자 한다. 


공자는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스승의 존재 여부를 떠나, 누구를 만나도 배울 것이 있으니 내가 깨달아야 한다는 가르침일 것이다.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라는 것을 느끼면서도 우리는 배울 수 있다. 정리된 유형을 보며 자신에게도 혹시 이런 모습이 있진 않은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1) 싸움왕 (vs. 협상왕)

결론부터 말하겠다. 이들은 ‘협상왕’에 반대되는 사람들로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 즉, 하나를 쟁취하기 위해 싸움도 불사하지만 실제로 얻는 것은 거의 없다. 열 개를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하나 이하를 얻는다. 목소리가 크고, 다른 사람들의 요청을 모두 ‘공격’으로 간주한다. 회의에 참석하고 나올 때면 씩씩거리며 타부서 누군가의 이름에 온갖 저주를 퍼붓는다. 역지사지란 없다. 그저 내가 당장 불편하고 내가 손해 봤다고 생각하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들이받는 유형이다. 유관부서나, 팀 내 사람까지 갈무리하고 편을 나누어 팀워크를 확실히 망가뜨리는 역할에 능수능란하다.


보통 이러한 사람들은 뒤에 언급할 ‘무지(無知)왕’의 성격도 함께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싸움왕인 A차장은 평소에 부서 업무에 관심이 없다. 어쩌다 팀 대 팀 회의에 들어갔다가 높은 분이 있는 공개석상에서 상대팀의 B과장에게 질문을 받았다. 업무에 관심이 없으니 답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A차장은 회의가 끝나고 자신이 업무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을까? 천만에. 자신의 부족함은 생각지 않고 질문한 사람을 공격자로 간주, 다음 회의에서 B과장을 어떻게 짓밟을지 고민한다. 


또 다른 유형의 싸움왕도 존재한다.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하는 ‘키스를 책으로 배운’ 유형이다. 목소리가 크거나 전화로 상대팀과 고성을 내며 싸우는 것을 ‘일을 잘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다. 실제로 3년 정도 입사가 늦은 한 후배가 그랬다. 업무 전화의 80%는 고성이 오간다. 같은 층 사무실 거의 모든 사람이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고 놀란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또 시작이구나’라고 생각한다. 씩씩거리며 전화기를 부술 듯 끊은 그 후배는 가끔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저 잘했죠?’라는 눈빛을 보내곤 했다. 편들어 주기가 참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듯, 싸움왕은 멀리 보지 못하고 당장의 이익이나 손해에만 혈안이 되어 전체적인 팀워크를 저해한다. 

일의 효율은 물론, 유관 부서와의 사이도 좋지 않기 때문에 개인뿐만 아니라 팀 전체에 손해를 끼칠 가능성이 크다. 그 싸움왕이 파트 리더나 팀장 자리에 앉으면 더 골치 아픈 상황이 발생하는 건 뻔한 일이다. 

 

(2) 불통왕 (vs. 소통왕)

‘소통왕’과 반대되는 사람들로, ‘모든 소통에 답이 없는 사람’과 ‘자신의 고집에 싸여 인정할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전자는 일 못하는 사람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성실성’과 ‘빠른 응답’은 일 잘하는 사람의 기본 요소다. 즉, 성실성과 빠른 응답만 해도 반은 먹고 들어갈 수 있다. 모든 소통에 답이 없는 사람은 일에 대한 열정이 없거나, 업무를 잘 모르거나, 게으른 경우가 많다.


나보다 2년 앞선 한 선배는 위 세 가지 외에 하나를 더 갖고 있었다. 

그는 효과적인 소통 방법을 몰랐다. 항상 유관부서로부터 클레임이 날아온다. 업무에 대한 클레임을 넘어 담당자 교체를 원하는 치명적인 클레임이다. 일은 해결 못 하더라도 언제까지 지원하겠다는 귀띔만 해줘도 상황이 이 정도로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답도 없는 데다, 대면, 서면, 전화, 이메일, 보고 등의 사용법을 제대로 모르니 치명적인 클레임을 받은 것은 자승자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불통왕의 두 번째 유형은 자신의 고집과 아집에 둘러싸여 당최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

만약, 그 사람의 의견이 맞다면 문제가 없다. 오히려 뚝심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이 늘 옳지는 않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다른 것’과 ‘틀린 것’도 구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유형은 상사든, 동료든 후배든 간에 만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 자신을 돌아볼 때, 내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불통왕의 면모를 보이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되는 부분도 있다. 불통을 넘어 남을 바꾸려 하는 위험한 시도를 한 건 아닌지에 대한 성찰도 함께. 


(3) 권력왕 (vs. 리더십왕)

관료주의의 사전적 뜻은 “관료 사회에 만연해 있는 독선적, 형식적, 획일적, 억압적, 비민주적인 행동양식이나 사고방식”이다.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는 ‘관료주의 문화’가 있다. 정치제도, 교육 환경, 군대라는 계급 문화까지……,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아우른 합이 직장의 관료주의에 못 미친다고 생각한다. ‘관료주의’를 설명하는 위의 단어 전부가 우리 직장에서 흔히들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관료주의’를 ‘직장생활’로 바꾸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소름 끼치게 잘 묘사했다는 생각이 든다.


관료주의는 ‘권력’이 득세할 때 생겨난다.

리더가 아닌 권력자 아래서는 위와 같은 것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앞서 우리는 리더란 “영향력을 발휘하여 구성원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권력왕’은 이와 다르다.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구성원이 성과를 내는 게 아니라 자신을 보필하길 원한다. 구성원은 자신의 성과를 빛내고 닦아줄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


권력을 잘못 활용한 예가 있다. 

한 후배는 1년 전에 최연소 팀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모든 사람이 그 후배의 고속승진 비결을 궁금해했다. 팀에 그 후배보다 열 살이나 많은 부장 팀원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최연소 팀장의 신화가 깨지는 데는 채 1년도 걸리지 않았다. 팀원들을 권력으로 다스리고 불화를 일삼더니, 결국 협력업체와의 금전문제 및 부도덕한 일에 연루되어 권고사직을 받았다. 주어진 ‘권한’을 ‘권력’으로 오용하면 이런 일이 일어난다. “그 사람의 성품을 알고 싶다면, 그에게 권력을 줘보라”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명언이 생각나는 사례였다. 


(4) 정치왕 (vs. 전략왕)

‘전략왕’에 반대되는 유형으로 분류했지만 사실 ‘정치왕’은 ‘전략왕’과 한 끗 차이다.


하지만 그 결과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전략왕은 자신은 물론 팀의 품격을 함께 상승시킨다. 이에 반해 정치왕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과 안위만을 목적으로 한다. 그 결과가 자신은 물론 팀에 기여하면 정치왕도 겉으로는 전략왕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함께 일하는 사람은 결과가 같더라도 그 사람이 전략왕인지, 정치왕인지 과정을 보면서 파악할 수 있다.


‘일 잘하는 사람의 유형’에서도 언급했지만 직장생활에서 ‘정치’는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정치라는 어휘가 주는 이미지 때문에 부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좋게 포장하면 ‘전략적인 접근이나 계획’으로 표현할 수 있다. 올바르지 않은 정치인들에게 하도 속아서 그렇지 ‘좋은 정치인’도 분명 있다. 전략왕은 큰 그림을 보고 목표와 목적, 그리고 수단을 조율하는 반면 정치왕은 그렇지 않다. 조급한 의사결정과 단기적인 업무 진행은 한계를 드러낸다. 회사나 공동의 목표는 안중에도 없다. ‘드러나는 사람’과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면 정치왕은 당연히 후자 쪽이다. 드러내야 할 때가 분명히 있지만, 정치왕 유형의 사람들은 이를 과하게 추구한다. 그래서 함께 일하면 팀워크에 문제가 생긴다. 이런 사람이 권력을 가지면 독재자가 되기 쉽다.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싸우고, 불통하며, 권력을 휘두를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5) 무지왕 (vs. 스킬왕)

이 ‘무지왕’이 상사로, 동료로 또는 후배로 있다고 생각해보자.


속이 터진다. 일 못하는 사람의 유형 제1순위가 바로 이 ‘무지왕’일 것이다.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마음가짐도 중요하지만, 업무 기술도 필요하다. 업무 기술이란 말 그대로 시스템을 잘 다루거나, 보고서를 잘 만들거나, 발표를 잘하거나, 관련 영역 및 업무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갖추는 것 등을 말한다. 웃픈 사실이지만, 상사나 동료 또는 후배 중에 이런 업무 기술을 전혀 갖추지 않은 사람이 하나쯤 꼭 있다.

 

무지왕을 만났을 때 속이 터지는 사람들은 ‘스킬왕’이다.

일이 몰릴 대로 몰린다. 무지왕은 게으르거나 무능력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들이 기술을 익히는 날을 기다리느니 차라리 내가 처리하는 게 나은 경우가 태반이다. 매일 다루는 시스템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팀에서 돌아가는 공통 이슈나 어젠다에도 관심이 없다. 전체 공지한 메일은 읽지 않고 나중에 뒷북을 치기 일쑤다. 어떻게 경쟁을 뚫고 입사해서 우리 주위에 앉아 있는지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이게 현실이다. 그나마 동료나 후배라면 조언을 하거나 가르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상사가 이 무지왕 유형에 해당하면 정말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사를 두었다면 팀의 존폐 위기까지 고려해야 한다. 상사가 잘돼야 나도 잘될 가능성이 높은 직장생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렇게 유형을 나열하고 돌아보니, 오히려 반성을 많이 하게 된다. 

일을 잘한다는 것, 그리고 일을 못한다는 것의 차이는 뭘까? 나는 일을 잘하고 있을까, 못하고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생각하는 나는 같을까? 다르다면 얼마나 다를까? 나의 업무에 몰입하면서 본의 아니게 팀워크에 피해를 주진 않았을까? 때로는 회사를 위하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맞다고 생각한 일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진 않았을까? 


어쩌면 우리 주위에 앉아 있는 상사와 동료, 그리고 후배는 저마다의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모른다. 나와 맞지 않다고 해서, 나의 의견에 손들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을 ‘일 못하는 사람’으로 멋대로 규정하진 않았을까? 


각자의 입장을 내세우다가 서로를 ‘불통왕’이라고 손가락질하진 않았을까?

내가 그 부서였다면, 그 팀이었다면 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을 게 뻔한데도 말이다. 나를 돌아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이 보는 나에 대해 귀 기울이고, 자기 성찰을 하는 것은 일을 잘하게 되는 것 이상의, 어쩌면 인생을 좀 더 잘 살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중요한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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