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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식당에서 찾은 서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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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스토리의 본질은 무엇인가

가장 간단하게 설명해 보라

거기서부터 시작하라

픽사의 스토리텔링 법칙

서사의 힘을 알고 싶은 분을 위한 김딴짓의 글 요약 

1. 이야기의 내용은 what일 뿐, 자기만의 방식으로 창의적으로 서술해서 이야기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2. 서사는 화려한 달변과 글 솜씨가 아닌 진정성입니다.

3. 나만의 서사는 완전히 새로운 게 아닙니다. 이미 있던 것을 나만의 관점을 넣어 풀어내는 겁니다.

골목 식당에서 발견한 서사의 힘

때는 늦은 점심시간이었죠. 중요한 일을 정리하고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1시 가까이 됐는데도 백반집에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어딜 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을 때, 동료가 가보진 않았지만 왠지 맛있을 거 같다는 말과 함께 백반집 근처 라멘집을 추천해 줬습니다. 추운 날씨에 따뜻한 국물을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라멘집으로 갔습니다. 라멘과 우동 세트를 주문한 뒤, 함께 간 분과 새로운 일과 관련된 네이밍 고민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때 제 등 뒤로 적힌 글자를 보고 같이 간 분이 툭 하고 말을 내뱉었습니다. ‘眞心’이란 한자였습니다. 그분이 툭 내뱉은 말이 뭐였냐면 ‘진심’이었습니다. ‘진심과 사심 어때요?’라고 물으셨고 저도 느낌이 딱 왔습니다. ‘괜찮은데요? 직관적이면서도 의미도 좋고요’ 서로 고민을 한시름 덜어냈다며 웃고 있을 때 제 뒤로 식사를 마친 어떤 분이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眞心(진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라멘집 사장님이셨죠. 그리고 저는 사장님 이야기를 집중하며 듣게 됐습니다. 진심이라고 쓰인 글씨에 푹 빠지게 됐고, 라멘집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라멘집 사장님은 서사를 들려주신 겁니다. 이제 우리에게 왜 서사(narrative)가 중요한지 정리해 보려 합니다. 담백하고 심심하지만 깊은 라멘 국물 맛처럼 정리된 서사의 힘을 떠먹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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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心(진심) : 서사의 시작 


요즘 서사, 서사하는데 서사가 과연 뭘까요?

요즘 서사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서사란 무엇일까요? 영어로는 Narrative(내러티브)라고 합니다. 사전적 의미는 소설 속 사건들에 대한 묘사라고 나옵니다. 라멘집 벽에 걸린 ‘眞心(진심)’을 단순히 읽고 끝나면 내용(what)일 뿐입니다. 근데 라멘집 사장님처럼 진심이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 누구에게 글씨를 받았는지, 왜 식당에 걸어놨는지 이야기를 하게 되면 서사가 됩니다. 진심이라는 단어에 귀를 기울이고 듣게 되는 서사가 탄생하게 됩니다. 서가가 있는 사람은 내용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만의 방식으로 창의적으로 서술하고 이야기하는 데 집중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삼성전자 해외영업부에서 일했는데요. 일본 출장을 자주 갔어요. 그중 단골로 찾던 라멘집이 있는데, 거기 사장님이 써주신 글씨에요. (손가락을 가리키며) 저쪽에 있는 글씨도 사장님이 써주신 글씨에요. 무슨 내용이냐면 ‘최고의 맛을 당신에게, 손주에게도 먹이고 싶은’이라는 내용이에요. 철학이 정말 좋아서 꼭 적어달라고 했죠.” 

라멘집 사장님이 진심이란 글씨의 서사를 전달했습니다.

라멘집 사장님은 진심이란 글씨를 자신의 방식으로 창의적으로 서술하고 이야기했습니다. 즉 서사를 전달한 것이죠. ‘글씨가 멋지다’라는 말에 ‘그렇죠’하고 끝난다면 내용만 말하는 사람이 되지만, 글씨가 탄생한 배경을 말할 수 있다면 서사를 전달하는 사람이 됩니다. 

 

 

 

일본 라멘집 사장님께 직접 받은 글씨

"최고의 맛을 당신에게, 손주에게도 먹이고 싶은"

나만의 서사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서사가 중요한 걸 알았고, 변화의 시대에 나만의 서사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나오게 됩니다. ‘진정성’이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유퀴즈 온더 블록>에 설악산의 마지막 지게꾼 임기종 님이 출연했습니다. 65세란 나이에도 수많은 짐을 지게에 싣고 설악산을 오르내리며 일을 하고 계십니다. 이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임기종 님의 언변이 훌륭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탁월하게 전달해서 감동을 받은 게 아닙니다. 유퀴즈를 보면 알겠지만 많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달변가는 아닙니다. 근데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진정성이 있습니다. 그는 지게꾼으로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데도 1억 원을 기부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기부의 시작은 자신의 아들을 보기 위해서 시작한 것입니다. 장애가 있는 아들을 어쩔 수 없이 요양 시설에 보낸 뒤 얼굴을 보기 위해 간식을 사 갖고 갔다고 합니다.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며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도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시작한 기부가 독거노인에게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임기종 님의 인터뷰를 보며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서사는 화려한 달변, 글 솜씨에서 생겨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알맹이가 없을수록 외부를 치장하는 데 힘을 쏟습니다. 마치 사기꾼이 화려한 언변으로 남을 속이는 것처럼요. 앞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창의적으로 서술하고 이야기하는 데 집중하는 사람이 서사를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임기종 님은 달변가는 아니셨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데 집중하는 사람이셨던 겁니다.

변화의 시대 나만의 서사를 만들고 싶다면 두 가지를 기억해 주세요. 첫째 알맹이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둘째 진정성이 생길 때까지 알맹이를 꾸준히 이야기하고 전해야 합니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알맹이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작년 21년 Mnet이 방영한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가 대단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댄서들은 보통 가수를 서포트 하는 역할입니다. 스포트라이트는 댄서보다 가수에게 쏠리게 됩니다. 근데 스우파에 출연한 댄서들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알맹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우파에 출연한 댄서들은 스포트라이트에 상관없이 댄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떤 위치든 상관없이 자신만의 알맹이를 만들어 온 사람들입니다. 프리드우먼을 이끈 모니카의 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미파이널에서 탈락한 뒤 “저는 오늘 집에 가지 않습니다. 제가 있던 곳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대중이 더 많은 댄서를 알게 되는 목적을 이뤘습니다. 댄서라는 직업은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할 수 있는 것이길 바랍니다” 수년간 가수를 서포트했다고 우리는 생각했지만 사실 그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이미 빛나고 있던 겁니다.

둘째 진정성이 생길 때까지 꾸준히 이야기하고 전해야 합니다. SBS TV가 방영한 <골 때리는 그녀들>도 인기가 있습니다. 배우, 개그우먼, 아나운서, 모델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여자들이 모여 팀을 만들고 풋살 경기를 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왜 인기를 끌었을까요? 진정성이 생길 때까지 꾸준히 이야기하고 전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하는 진정성은 참여자들이 축구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처음에는 공을 무서워하고 제대로 뛰지도 못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바뀌기 시작합니다. 드리블을 하고 패스를 하고 공을 강하게 찰 수 있게 됩니다. 시즌 1에서 꼴찌 그룹이었던 개벤저스는 시즌 2에서는 가장 강력한 팀이 됐습니다. 단순히 예능으로 대하는 게 아니라는 걸 프로그램을 보며 알 수 있습니다. 부딪히고 넘어지고 다치면서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대단한 승부욕을 보여줍니다.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몇 번 했다고 해서 진정성을 느끼는 게 아닙니다. 꾸준하게 이야기하고 전해야 합니다. 단번에 사람들이 나에게서 진정성을 느낄 거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느냐, 내가 어떤 태도로 지내왔느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느냐의 총량이 쌓여 진정성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제 나의 서사를 만들어야 합니다

해 아래 새로울 게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 엄청난 충격과 혁신을 안겨준 아이폰도 완전히 새로운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존재했던 인터넷, 아이팟, 핸드폰을 하나로 합친 겁니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는 발표 현장에서 인터넷, 아이팟, 핸드폰 아이콘을 보여주면 몇 차례에 걸쳐 반복해서 말합니다) 나만의 서사가 세상에 전혀 없던 완전히 새로운 것일 필요는 없습니다. 또 완전히 새로울 수도 없습니다. 발명이 아니라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스티브 잡스는 인터넷, 아이팟, 핸드폰을 연결해 아이폰이라는 걸 발견한 겁니다. 나의 서사를 만드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라멘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글씨와 라멘은 어디서 왔나요? 일본 단골 라멘집에서 왔습니다. 여기에 라멘집 사장님은 자신만의 관점을 넣어 서사를 만든 겁니다. 새롭게 다가옵니다. ‘이렇게 자신의 가게를 설명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 가게 왠지 매력적인데?’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사장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가게를 다시 살펴보게 됐습니다. 투명 유리창 너머로 직접 면을 만들고 뽑아내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투명 유리창에는 시마네현 관광 캐릭터 <시마넷코>라는 고양이 스티커를 붙여놨습니다. ‘3가지가 없는 송강제면소, 조미료, 통조림, 튀김이 없는 송강 제면소입니다.’라는 문구도 눈에 띕니다. 튀김류를 시켰는데 정말 튀김옷이 없습니다. 대신 오븐에 구워 나온다고 합니다. 이후로 가게의 모든 곳이 서사가 됐습니다. 일반 라멘집이 아니라 서사가 있고 남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라멘집이 됐습니다.

 

 

 


 

위에서부터 투명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면 만드는 작업, 

시마네현 관광 캐릭터 <시마넷코>

조미료, 통조림, 튀김이 없는 송강제면소 

이제 내게 서사가 있는  라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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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순간이 옵니다

누구든 남이 자신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 순간이 언제가 될지 모르나 그때를 위해 우리는 서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지난번 글에서 배틀 그라운드를 만든 크래프톤이 펍지 유니버스를 구축(글 보러가기)하는 이유를 정리했습니다. 오늘 글을 적으며 어쩌면 크래프톤도 자신만의 서사를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게임을 넘어 크래프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인 거죠. 지금 당장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서사를 만드는 작업을 멈추지 않길 바랍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당신의 이야기를 누군가 듣게 되는 그 순간을 위해 지금 서사를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저도 언제가는 다가올 그 순간을 위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나중에 서사가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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