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잇값 좀 해라!"
이런 말,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네 나이면 이제 ~해야지" 라던가, "네가 몇 살인데 아직도 ~해?"나, "~할 나이는 지나지 않았어?" 같은 말들이요. 듣기만 해도 서러워지는 나이 타령! 우리 사회에서는 개인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유독 '나이’에 많은 의미를 부여해요. 특히 '나잇값’이라는 말을 필두로 '제 나이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라는 은근한 압박이 사회 전반에 깔려있죠.
하지만, 김연자 선생님은 노래했습니다.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무릇 <아모르파티>의 인기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한국 사회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고 하는데요. 대세는 ‘에이지리스’! 지금부터 함께 알아볼까요?
"그래서 에이지리스가 뭔데?"
에이지리스(ageless)란 말 그대로 연령대를 초월한 일종의 컨셉이자,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새로운 소비계층을 뜻해요. 2020년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개념으로, 연령대별 인기 품목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면서 쇼핑계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죠. 이런 에이지리스 마케팅의 방안으로 '크로스 타깃 마케팅’이 각광받고 있답니다. 주 타깃이 시니어층인 브랜드는 MZ세대를 겨냥해 젊은 감성을 더하고 반대로 영 타깃 브랜드는 4060세대의 감수성을 더해 소비 심리를 잡는거죠! 시장에서 꽤나 먹힌다는 이 마케팅, 본격적으로 살펴봅시다!
1. 소비를 이끄는 영(Young)한 어르신들에게 주목!
활동적인 중장년층, 즉 '액티브 시니어’란 베이비붐 세대를 중심으로 한 5060세대, 그중에서도 경제활동 은퇴 후 자신을 위한 소비 패턴을 보이는 집단이에요. 경우에 따라 오팔(OPAL-Old People with Active Lives)이라고 불리기도 하죠. 이들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으므로, 최신 전자기기 구매에 거리낌이 없고 과감한 패션에도 거부감이 적습니다. 빵빵한 지갑도 열린 마음도 준비 완료인 셈이죠.
출처 (왼) 인스타그램 @songgain_ / (우) KBS
지난 몇 년간 뜨거웠던 트로트 열풍으로 인해 어린 세대의 특징이라 여겨졌던 '덕질 문화’가 중장년층으로 확대되었던 것, 기억하시나요? 셀럽을 향한 열렬한 팬심과 비교적 큰 구매 비용이 더해지니 이는 곧 중장년층의 팬덤 화력으로 이어졌어요. 그 여파인지 지난 1월, KBS에서는 중장년 덕질 문화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팬심자랑대회 주접이 풍년'이라는 예능까지 생겼죠. 보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우후죽순으로 파생되던 트로트 관련 프로그램 개수만 떠올려봐도 문화·경제의 소비 주체로 액티브 시니어들이 얼마나 주목받는지 알 수 있어요.
출처 틱톡 @thenewgrey_
셀럽을 덕질하는 것 뿐만 아니라, 본인이 셀럽이 되기를 택한 '핫’한 중년들이 있는데요. 바로 '아저씨즈’입니다. 이들은 5060세대 모델 8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인스타그램과 틱톡 계정 팔로워가 각각 10만 명이 넘을 정도로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 그룹이에요. 일명 '시니어 BTS’라고 불릴 정도라고 하니,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느낄 수 있겠죠?
출처 틱톡 @thenewgrey_
작년 5월, 신촌 현대백화점에서 이 '아저씨즈’를 전면에 내세운 마케팅을 펼쳤습니다. 멤버 8명과 각 층에 입점해 있는 남성 패션 브랜드 8곳을 1대1로 매칭해서, 각 멤버가 해당 브랜드의 옷을 입고 찍은 콘텐츠를 활용해 온·오프라인 마케팅을 진행했어요. 이 콜라보를 통해 SNS 이용이 활발한 2030 고객들을 잡고, 젊고 개성 있는 스타일링을 원하는 시니어 세대까지 잡는 일거양득의 전술을 펼쳤죠. 결과적으로 20대부터 60대까지를 타깃으로 설정한 셈이라 가정의 달과 잘 맞아떨어지기도 한 기획이었어요.
출처 레이지나잇
최근(5월 9일) 정식 오픈한 패션 플랫폼, '레이지나잇’도 주목할만합니다. 무신사에서 새로운 고객 확보를 위해 런칭한 서비스인데요. 액티브 시니어층이 주목받는 이유와 유사하게, '충분한 구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모바일 쇼핑에도 능숙한' X세대 여성을 주 타깃으로 삼고 있죠. 라이프 스타일 편집숍 서비스를 제공하며 이외에도 무신사에서의 경험과 노하우를 담은 브랜드 스냅, 코디맵 등 전용 패션 콘텐츠도 제공할 예정이라고 해요. MZ세대의 사용률이 압도적인 무신사에서 운영하는 서비스인만큼, X세대 여성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젊은 감성으로 풀어낼지가 기대되네요!
2. 트렌드를 이끄는 할매/할배st MZ세대에 주목!
트렌드를 논하는데 MZ세대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죠. 이미 알고 계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보다 확실한 구분을 위해 이들의 연령대를 짚고 넘어가자면, MZ세대는 대략 1980~1995년도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대략 1996~2010년대 초-후반에 태어난 Z세대를 아울러 부르는 명칭이에요. 이들은 인구의 1/3을 차지하는 젊은 세대인 만큼 경제·사회·문화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죠. 그런 MZ세대들이 요즘 꽂힌 것들이 제법 '애' 답지 않다고 합니다.
“할매니얼?”
'할매니얼’은 할머니의 사투리인 '할매'와 밀레니얼 세대의 '밀레니얼'을 합성한 용어로, 주로 할머니들이 즐기는 음식과 패션 취향을 선호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뜻해요. (지난 고구마말랭이에서도 덤으로 소개해 드린 적이 있죠!) 온고지신의 미덕이 제대로 적중했는지, 개념이 점점 더 주목받으며 적용되는 분야도 넓어졌죠. 그중에서도 저는 오늘 크게 패션과 식품, 그리고 여행으로 분류해서 소개해 드릴게요.
1) 패션 - #할미룩(=그래니룩)
출처 네이버 포스트 현대백화점
할미룩은 보통 손으로 뜬 니트나 체크,꽃무늬로 이뤄진 펑퍼짐하고 편안한 실루엣의 옷 스타일을 말해요.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자아내죠. 편안함이나 안도감을 담은 Slow 패션의 일환으로 보기도 하고요. 인스타그램에 ‘#그래니룩’을 검색하면 게시물이 약 3.2만 개나 나올 정도로, 트렌드를 넘어 패션 스타일로 견고하게 자리 잡았어요. 지난 2월, 현대백화점 블로그에서는 '힙’함을 메인 키워드로 내걸며 그래니룩 추천템을 소개하기도 했죠.
이 '그래니룩’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게 된 배경을 보면 조금 더 재미있는데, 원래 1970년대 소녀들이 자신들의 할머니 세대인 1920~1930년대 여성 패션을 즐긴 데서 유래했다고 해요. 지금은 202n년대인데 말이죠! 이런 걸 보면 '유행은 20년 주기로 돌아온다.', '유행은 돌고 돈다.’라는 말이 진부하게 느껴지다가도, 그만큼 실제로 시장에 적용할 수 있는 유효한 법칙이라는 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2) 식품 - #할미 입맛 '꼬소하고… 달달하고… 하늘 땅 별 땅만큼 맛있다~!'
출처 (좌) 홈플러스 (중) 롯데푸드 (우) JAJU
지난 3월부터 홈플러스에서 판매 중인 막걸리, ‘설빙 인절미순희’가 굉장한 인기를 보이고 있는데, 홈플러스 막걸리 중 매출·판매량 모두 무려 1위라고 해요. 할미 아이스크림의 대표 주자인 '아맛나’도 대세에 탑승해 더욱 '할매’스러운 신제품을 예고했는데요. 출시 50주년을 맞아 잔칫집 떡을 모티브로 한 ‘아맛나 앙상블’을 한정 판매한다고 합니다.
인절미 맛 막걸리, 팥 맛 아이스크림처럼 고소하면서도 단 맛은 할매니얼 식품의 대표적인 공통점이에요. 맛도 좋을 뿐만 아니라 재료들이 자극적이지 않아 건강에도 좋죠. 이렇게나 좋은 걸 MZ세대들이 가만히 둘까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자주(JAJU)'에서 내놓은 통계 자료를 보면, 지난해 가장 많이 판매된 제품 1~10위 중 무려 9개가 전통 간식인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달고나', '발효 보리건빵', ‘누룽지과자’ 등이 순위에 올랐고, 이 밖에도 '연근부각’, '두부스낵', '약과' 등 국내산 재료로 만든 간식들도 덩달아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요.
앞서 언급했듯 '건강에도 좋고 맛도 좋다’는 이유기도 하겠지만, 이런 '복고' 식품이 다시금 주목받은 건 MZ세대의 특성이 더해졌기 때문인데요. 유년 시절부터 K-pop이나 한류 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모습을 보며 자랐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나 음식 또한 신선하고 '힙’한 것이라고 여깁니다. 전통 음식에 대한 접근법이, '서구 문화를 더욱 특별하게 여기는 기성세대’와는 다를 수밖에 없는거죠.
3) 여행 - #그래니트립(Granny Trip)
출처 유튜브
한창 코로나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려 실내 체육 시설 이용이 어려웠던 시기, MZ세대가 산으로 모였던 것도 기억하시나요? MZ세대는 과거, 어르신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등산까지 자신들의 문화로 녹여냈어요. 이제 이들은 ‘산’을 넘어, ‘촌’에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시골에서 바캉스, 일명 '촌캉스’라고 하죠. 촌스러운 것, 시골(=자연)스러운 것이 곧 트렌드라는 '러스틱 라이프’의 연장선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요. 자연을 그대로 누리고 만끽하는 MZ세대의 특성이 여행에서도 두드러집니다.
'시골 감성, 힐링 여행, 리틀 포레스트’와 같은 키워드로 국내 시골 여행지가 핫하게 떠오르고, '농캉스’와 같이 농촌 활동을 더 해 경운기를 타거나 바지락을 캐러 갯벌로 나서는 등 시골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을 '체험’하는 문화 역시 인기랍니다. 이너 뷰티를 중시하고 새로운 경험에 시간, 돈, 경험 자산을 아끼지 않는 MZ세대답죠?
이렇듯 많은 브랜드가 '에이지리스 마케팅’, 더 자세히 보자면 '크로스 타깃 마케팅’을 통해 브랜드 타깃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는데요! 이번 글을 통해 '이제 에이지 마케팅은 낡았다, 에이지리스 마케팅만이 유효하다!' 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에요. 통계학적으로 발견된 세대별 공통점도 중요하니! 기존의 에이지 마케팅을 적절히 활용하되,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맞춰 '나이다운' 것보다 '나다운'게 중요한 소비자 개개인의 삶과 취향에 좀 더 집중하자는 취지로 작성했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다음에 더 유용하고 재미있는 글로 찾아올게요! 다시 만나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