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이라는 일에 몸담은 지 어느덧 19년차를 바라보고 있다. 중간에 일을 그만두고 심리상담을 공부했는데 심리상담은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는 분야이다. 인간의 심리를 공부하고, 수많은 심리적 문제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극복하도록 돕는 상담. 그러나 이 일이 공부하기는 재미있으나 내가 일로서 잘해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석사, 좀 더 멀리 본다면 박사까지 공부를 하지 않고는 하기 힘든 일임을 일찍 깨달았다. 자격증을 땄지만 이 일로 다시 경제활동을 본격적으로 하지 못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상담을 공부하며 인간의 모든 심리적 문제는 두 가지 문제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불안’이고 다른 하나는 ‘적응’이다. 작년부터 필자가 회사라는 조직에서 나와 홀홀 단신 마케팅 컨설팅을 하면서 나에게 있는 여러 가지 심리적 문제가 ‘불안’에서 온 것을 얼마전 멘토링을 받으며 알게 됐다. 처음으로 혼자서 만들고 해 나가는 것이 어찌 보면 불안한 것이 당연하다.
오랫동안 마케팅이라는 일을 해오고 이 일이 나랑 가장 잘 맞고 내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그 기간안에서 생각해보면 다양한 불안을 하나씩 해소해 나가야 했던 것 같다. 오늘은 그래서 마케터로 잘 살아남아서 롱런하기 위해서 자기 안에 있는 불안해 제거(?)해 나가는 나만의 방법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지금 주니어 마케터로 또는 리더로서 일을 하면서 고민을 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다양한 불안의 종류
(네이버 사전: 불안의 정의)
‘불안’이라고 검색했을 때 네이버 사전에서는 위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 마음이 편치 않고 조마조마하고, 뒤숭숭하고, 몸이 편안하지 않고. 모두 불안이라는 감정을 느낄 때 나타나는 증상일 것이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의 성격을 원초아(본능), 자아(현실적인 것), 초자아(도덕적인 것)로 나누고 이런 3가지 성격의 충돌에 의해 불안이 나타난다고 했다.
❖ 현실적 불안
외부 대상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을 의미한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 로부터 오는 불안으로 지진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에 대한 불안이나, 시험, 맹수의 공격 등에 대해 걱정하는 불안이다.
❖ 신경증적 불안
현실적인 자아와 본능의 충돌사이에서 오는 불안이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본능과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면 안되는 자아 사이에서 갈등으로 일어난다. 회사에서 상사가 너무 싫어서 욕을 하고 싶은 본능과 현실적으로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오는 갈등에서 오는 불안이다.
❖ 도덕적 불안
양심으로 인해서 생기는 불안입니다. 자신의 도덕적 초자아가 자아(현실)나 원초아(본능)과 충돌하면서 생기는 불안이다. 규칙이나 내 안에 신념 같은 것이 현재의 나와 충돌할 때 우리는 불안을 느끼게 된다. 수치심, 죄책감, 자기 저주 같은 감정이 일어날 때 오는 불안이다.
이러한 불안에 대해서 우리는 매일 다양한 심리적 방어기제를 사용해서 불안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반복되는 불안에 대해서 비슷한 패턴의 방어기제를 사용한다.
승화, 유머, 억압, 투사, 부정, 퇴행, 반동형성 등의 방어기제가 무의식 중에 나오게 되는데 이는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회사 생활에서도 내 안에 지속적으로 올라오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 이런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있는데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을 오랫동안 하려면 이런 불안에 대해서 먼저 인지하고 극복하는 방법을 만들 필요가 있다.
주니어의 불안
처음 회사를 들어와서 대행사에서 일을 하든지, 인하우스에서 마케터가 되든지 처음을 떠올려 보자. 그리고 지금 주니어라면 현재의 불안이 무엇인지 자신을 들여다보자.
주니어는 일을 막 배우는 단계이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일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아직 전문성이 없는 상태이다. 무엇인가 만들어 나가야만 하는 현실 속에서 내가 지금 하는 일에 대해서 확신이 없는 것에서 오는 불안이 높다.
특히 스타트업이나 작은 회사에서 주니어는 혼자서 기획하고 실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내가 기획을 하고 보고를 하면서도 불안하다. 기획한 캠페인이나 프로모션이 오픈하는 날은 밤잠을 못 자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매일 매일의 성과에 따라서 일희일비하게 된다.
스타트업이 아니라 대기업의 주니어라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수가 시킨 리서치나 기획안에 대해서 이번주까지 초안을 완성해야 하는데, 이 기획안에 대한 피드백이 어떻게 될지 그 자체로 불안하다.
주니어일 때의 이런 불안은 어쩌면 당연하다. 얼마전 리멤버 커뮤니티에 신입사원이 너무 잘하고 싶은 마음에 팀장이나 위 상사의 피드백에 대해서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이것이 정상적인지 질문을 올렸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오는 이런 신경증적인 불안은 지극히 정상적이지만 그 불안이 자신을 압도해 버릴 경우 심리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주니어 일 때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그러나 이런 자신의 심리상태에 대해서 과도하게 불안해하지 말아야 한다. 사수가 있다면 데드라인 전에 사수에게 초안에 대한 피드백을 먼저 받아보고 수정해야할 부분이나 추가해야 할 것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수정을 하면 된다. 그런 피드백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성장은 없다.
사수가 없다면 요즘 랜선 사수 형태의 다양한 콘텐츠 서비스를 통해서 자신의 기획안에 대해서 리뷰를 스스로 해볼 수 있다. 그렇다고 불안이 아예 없어지지 않지만 다양한 시도와 경험이 자신을 성장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불안이 줄어들게 든다.
주니어일 때 불안을 없애려면 열심히 여러 가지 케이스에 대해서 찾아보고 모르는 부분은 적극적으로 배울 필요가 있다. 필자는 주니어 일 때 여러 가지 모임이나 세미나를 찾아 다녔다. 지금처럼 온라인 교육이 활성화 되어있지 않았기에 오프라인 모임을 찾아다니며 배우고 네트워크를 쌓아간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
주니어 때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바로 개인의 성장이다. 그때 쌓아가는 시간들이 퍼스널 스토리가 되는 것이다. 지금은 퍼즐의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가는 시간들이라고 생각하자.
리더의 불안
10년 한 분야의 일을 하게 되면 리더가 된다. 물론 스타트업에서는 5년차만 되어도 리더로서 실무와 매니저의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리더가 되었을 때 찾아오는 불안은 주니어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먼저 팀을 이끌어야 하는 부담감에서 오는데, 이는 매우 현실적 불안과 신경증적 불안이 동시에 찾아오는 것이다. 혼자서 기획하고 하던 것과는 달리 팀의 성과를 만들어야 하고 이것을 보고해야 하며 팀원들까지 케어 해야 한다.
MBTI의 I 성향의 리더라면 더욱 힘든 것이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많아 짐에 따라서 오는 불안이 클 것이다. 필자는 E성향이었지만 팀원이 10명즘 되자 업무적인 부분과 개인적인 부분 커뮤니케이션에서 힘들어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마케터 중에 의외로 I성향들이 많다. 우리 조직에도 10명 중에서 6명은 I성향이었다. 이럴 때 리더는 단체 커뮤니케이션보다 일대일 커뮤니케이션으로 조금씩 불안을 줄여갈 필요가 있다.
마케팅 리더가 되었을 때 성과에 대한 불안이 주니어때보다 더 크게 다가 온다. 주니어때는 내게 맡겨진 것만 잘하면 된다. 그러나 리더가 되면 디테일한 업무 단위가 아니라 브랜드 전체 또는 회사 전체의 성과를 책임지는 의사결정들을 많이 하게 된다.
캠페인의 방향, 크리에이티브 전략, 광고 운영 등 비용과 매출에 직접 연결된 많은 일에 대해서 리더가 해당 업무의 책임을 지고 실행을 하게 된다. 이런 불안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불안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온다. 이번 퍼포먼스가 망하면 어쩌지, 이번 광고 반응이 나쁘면? 이벤트 매출이 목표 달성을 못하면? 행사 신청자가 저조하면? 등등 이런 실패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하는 것 때문에 두렵다. 그래서 불안하다.
모든 마케팅 활동이 기대나 예측대로 달성된다면 좋겠지만 대부분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달성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런 가운데 실패했을 때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프로젝트나 캠페인에 대해서 사전에 함께 의사 결정하는 조직원들이나 상사들과 더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
흔히 사전에 기획안 보고를 하고 진행하기로 결정이 되면 이후 중간에 여러 상황에 대해서 커뮤니케이션 하지 않고 일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오픈을 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모든 책임을 해당 리더가 맡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간에 다양한 변수나 상황을 함께 공유할 때 실패에 대한 불안을 나누게 된다. 설령 생각한 만큼의 기대치가 나오지 않더라도 함께 그동안 과정을 공유했기 때문에 그 책임 또한 나눌 수 있기에 불안을 줄일 수 있다.
조직과 성과에 대해서 리더가 갖는 불안은 어쩌면 당연하지만 그것을 줄여 나가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생각한다.
태도가 실력이다
시간이 지나서 업무적인 스킬이 늘어나고 뭔가 자동화가 되어 있다 싶은 정도로 숙달이 되면 불안이 줄어들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내 안에 불안은 어쩌면 평생 적당히 함께 가야하는 것일 수 있다. 다만 그 불안이 나를 너무 불편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마케팅이라는 일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실행하고 그것을 리뷰하면서 다시 또 새로운 것을 만드는 과정이다. 이번에 잘했다고 해도 시장내에 새로운 것이 나오면 반영을 해야 하고, 다음에 똑 같은 방법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즐거운가요?”
지난번 멘토링때 멘토가 필자에게 물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늘 이 일이 즐거웠다. 성과가 너무 좋을 때도 있었고, 때로는 상사에게 깨질만큼 나쁜 때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에 상관없이 그냥 새롭게 고민하고 만들어 내는 일이 즐거웠던 것 같다.
마케터로 오래 롱런하고 싶다면 일에 대한 나의 태도가 중요하다. 또한 수많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계속되는 커뮤니케이션에서 일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주니어이거나 리더이거나 상관이 없다. 나의 태도가 곧 나의 실력이 되고 무기가 된다. 무기가 잘 장착되어 있다면 성과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오래 일을 할 수 있다.
심지어 경력 단절이 되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태도라는 실력이 갖춰져 있다면 다시 경력을 빌드업 할 수 있다.
성공과 실패가 오롯이 나의 콘텐츠
수많은 불안은 결국 성공과 실패에 대한 것 때문에 찾아온다. 업무에 있어서는 특히 그렇다. 한 커뮤니티에서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다가 출산 후 몇 년을 쉬면서 MBA공부를 시작했고 다시 일을 하려고 하는데 ‘과연 다시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자문을 구하는 글을 봤다.
수많은 분들이 얼마든지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는 지지의 댓글을 달았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출산으로 인해서 잠시 쉬게 되었을 때 당연히 불안하다. 다시 예전처럼 잘할 수 있을지. 물론 양육을 하며 일을 하는 것이 이전과 다른 부분이 있지만 일을 함에 있어서는 이전처럼 잘할 수 있다. 단, 내가 일을 즐기면서 한다면.
마케팅은 늘 성과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오픈을 하고서도 오픈전에도 힘들고 고된 일이다. 그러나 내 일의 성공과 실패 모두가 나만의 히스토리로 쌓이고 나의 콘텐츠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기에 불안을 너무 두려워 말고 조금은 즐기면서 간다면 아주 길게 롱런하며 마케팅이라는 일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상담을 공부하며 그림책으로 하는 독서전문 상담에 대한 자격증을 따고 그림책으로 상담을 하기도 했는데 그때 알게 된 멋진 책 하나가 코리나 루켄의 ‘아름다운 실수’라는 책이다. 처음에 그림을 그리다 실수를 하게 되는데 나중에 그 실수가 아주 멋진 그림을 만드는 책이다.
사람 얼굴을 그리다 실수를 하게 되고 그 실수는 점점 더 멋진 그림으로 발전을 한다. 처음의 실수는 마지막 그림을 보면 어떤 부분이 실수인지 알 수가 없는 멋진 그림이 되어 있다.

(동화책 아름다운 실수 중)
내가 했던 프로젝트의 실수로 인해서 뼈아픈 경험을 했다면 그것이 그때는 ‘완벽해야한다’는 나의 기대치와 기준에 맞지 않아서 과도한 불안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계기로 더 나은 방법으로 시도하고 더 좋은 성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한 그 실패의 과정과 결과가 다른 후배들에게 가이드해줄 수 있는 콘텐츠가 될 수 있다.
반드시 성공한 이야기만이 콘텐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현재 나의 과정 자체가 나중에 나만의 이야기로 어쩌면 퍼스널 브랜딩을 위한 하나의 챕터가 될 수 있다.
멘토링을 받으면서 지금 내가 불안했던 것은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하고, 한번도 해보지 않은 커뮤니케이션이 늘었기 때문임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의 시간 또한 새로운 발자취를 쌓아가는 시간이다.
마케팅이라는 일이 재미있고 또 이 분야로 오래 일을 하고 싶은 마케터라면 내 안에 존재하는 어느 정도의 불안을 인지하면서 그 불안과 공존 또는 무시하며 자신의 콘텐츠를 쌓아가며 즐겁게 일을 하길 바란다. 오늘의 성과가 미래의 나를 결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의 태도가 미래의 나를 결정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일과 사람에 대한 태도가 실력이 되고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