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SNS 계정을 전면 폐쇄하다?
[러쉬 공식 홈페이지 이미지]
2021년 11월 28일 글로벌 화장품 기업 러쉬(LUSH)가 SNS 활동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공식 성명문을 발표했다. 많은 기업이 마케팅을 위해 공격적으로 SNS를 활용하는 마당에 정반대의 행보를 택한 셈이다. 이 방침은 영업 활동이 이뤄지는 48개국에 모두 적용되며, 그 이유로 소셜미디어의 역기능인 사이버 괴롭힘·가짜 뉴스 등이 불러일으키는 문제가 러쉬가 지향하는 진정한 휴식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행보를 두고 누리꾼들은 브랜드 가치에 걸맞은 결정이라며 박수를 보냈지만, 난 마케터 시점에서 봤을 때 러쉬가 스마트하고 빠른 전략을 구사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산업이 그렇지만 특히 뷰티 업계에서 마케팅은 생명이다. 화장품의 경우 원가가 낮아 수익이 많이 남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통과 마케팅에 비용을 쓰면 거의 남지 않거나 마이너스가 나는 경우도 잦다. 그만큼 마케팅으로 과열된 시장에서 ‘유별난’ 선택을 한 것이고, 오히려 이게 지금 시대와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과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급부상하며 고객과의 소통이라는 명분 아래 온 기업이 노출도 잘 안 되고 손도 많이 가는 소셜미디어 계정 운영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하기에 당연히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뷰스컴퍼니는 지난해부터 과감하게 SNS 관리를 하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러쉬의 전략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마케팅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하는 마케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의 자신감에는 분명 엄청난 노하우가 깔려있을 것. 러쉬의 성공방정식을 찬찬히 살펴봤다.
[러쉬 ‘2022 고 네이키드 캠페인’ 현장]
“마케팅을 하지 않는 캠페인을 마케팅하는 러쉬”
20% 팬덤의 힘
파레토법칙에 집중한다. 20%의 잠재고객이 80% 이상의 매출을 일으킨다고 보는 D2C의 근간이 되는 법칙이다. 이 법칙에 따르면 20%의 고객에게 마케팅 비용을 쓰는 것이 5배 이상의 마케팅 비용 절감효과를 일으킨다고 한다.
러쉬는 그들의 철학을 따르는 탄탄한 팬덤을 통한 유기적 바이럴양이 엄청난 브랜드다. 그간 핸드메이드, 친환경, 동물실험 반대, 인권향상, 공정무역, 차별 금지 등 확고한 철학을 기반으로 소비자를 설득했다. 요즘 유행하는 클린뷰티나 비건 역시 러쉬가 오랫동안 애써온 부분으로 제품도 제품이지만 이러한 가치관이 탄탄한 팬덤을 형성하며 성공적인 비즈니스로 거듭날 수 있었다.
[러쉬 공동 창립자]
브랜드와 유통의 상생
이 이야기는 러쉬의 창업자 마크 콘스탄틴이 더바디샵 창업자 애니타 로딕과 만나며 시작된다. 신문에서 더바디샵의 자연주의 철학이 담긴 기사를 읽게 된 콘스탄틴은 자신의 샘플과 함께 그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로딕이 단번에 제품의 가치를 알아보며 곧바로 1200파운드(한화로 약 205만 원)어치의 물량을 주문했다. 이걸 계기로 콘스탄틴의 제품은 단숨에 더바디샵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브랜드는 절대 혼자 클 수 없다. 브랜드의 레버리지가 중요하기에 이걸 알리기 위한 채널과 전략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러쉬와 더바디샵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마치 올리브영과 닥터자르트, 올리브영과 닥터지의 상생 관계를 떠올린다. 러쉬가 뜰 수 있었던 가장 큰 부분은 소비자와의 접점이었던 더바디샵의 영향이 크다. 더바디샵에 공급하던 페퍼민트 풋 로션과 코코아 보디 버터가 히트를 치며 브랜드 인지도가 크게 올라갔기 때문이다.
이후 더바디샵은 독점공급을 원했지만, 콘스탄틴은 미용실, 체육관, 두피 클리닉 등에 납품하며 판매 채널을 늘려나갔다. 그러다 둘 사이에 갈등이 조장됐고, 더바디샵이 러쉬를 인수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결국, PB 브랜드로 들어가며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이 같은 사안은 지금도 심각하게 다뤄지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올리브영에도 PB와 EB 제품에 존재하는데 공정거래위반법에 의해 오피셜하진 않지만, 은연중에 독점공급이 이뤄지고 있음은 명확하다. 카니발리즘으로 인한 유통채널과 브랜드 사이의 갈등이 과거에도 있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좌: 러쉬 빅 풋 배쓰 밤 ㅣ 우: 러쉬 슬리피 보디 로션]
원물마케팅의 원조
화장품 마케팅을 하기 위해서는 제품의 탄생 배경부터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 전 과정에 대한 이해와 통찰이 필요하다. 러쉬는 오감을 자극하는 브랜드로 식료품 마켓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와 접목시켰다. 신선한 식재료를 통해 요리한다는 콘셉트로 제품을 만드는 곳을 공장이라고 부르지 않고 ‘러쉬 키친’이라 명명했다. 좋은 성분, 좋은 화장품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콘셉트 원료에 대한 아이디에이션을 통해 비주얼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다. 인간의 오감을 자극해 구매하게 만드는 것이다.
러쉬의 주력제품 중 하나인 배쓰 밤도 오감 자극을 활용했다. 이름 그대로 물속에서 폭발하는 미사일을 모티브로 한 제품으로 아이들이 재미난 목욕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에 개발했다. 발포 비타민에서 영감을 받아 탄산이 발포돼 기포를 내며 제품이 물에 녹을 수 있도록 하는 성분과 피부에 잘 흡수되는 에센셜 오일이 함유돼 있다.
신뢰의 중요성
이젠 제품을 구매할 때 제품에 대한 단순한 필요성이나 목적성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에 대한 철학까지도 고려하는 가치 소비 시대다. 러쉬는 이를 위해 모든 제품에 스티커를 붙이는 방식을 택했다. 제조 일자와 유통기한 그리고 제조자의 캐리커처 및 이름까지 기재한다. 공장에서 찍어낸 제품이 아닌, 사람이 직접 만든 제품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무척이나 번거롭지만, 신뢰를 위해 이 번거로운 과정을 지속하는 게 러쉬의 마지막 성공방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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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쉬는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리지 않는다. 확고한 철학과 신념으로 소비자를 끌어당긴다. 그들의 메시지가 너무 강력한 나머지 SNS도 필요 없어진 것이다. 우리 또한 본질에 대한 집중이 필요한 시기다. 확실한 기준도 없이 유행만 따라가진 않았는지 고민하고, 부수적인 부분을 정리해야 한다. 이 과정이 결국 브랜드 파워를 강력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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