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와 '라이프스타일'은 만능 치트키가 아니다.
레트로와 아웃도어 유행의 뒤에 숨은 것
거리마다 다소간의 패션 특성이 있으나 홍대 거리에는 유난히 헤드폰을 목에 건 젊은이들이 많이 보입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일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요. 꽤나 많이 보이는 특정 헤드폰이 있습니다. 애플의 에어팟 맥스를 상상하실지 모르겠는데, 소니의 MDR-7506이라는 모델입니다. 꽤나 구식의 헤드폰이죠. 실제로 91년에 발매된 오래된 모델입니다. 만일 이 젊은이들이 이 헤드폰을 목에 걸고 있는 이유가 패션 때문이라면 레트로한 디자인이 패션의 완성에 일조하리라 예상합니다. 레트로 유행을 대놓고 티내지는 않지만 음악에 진심인듯한 진정성이 구현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실제 이 헤드폰은 스튜디오 모니터링 헤드폰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모델 중에 하나입니다. 많은 뮤지션들의 녹음실 영상에서 보셨을 수도 있습니다. 음악에 진지하건 적당하건 관심없건, 기왕 착장한 (요즘 시대에)줄까지 치렁한 헤드폰이라면 오리지널리티가 중요했던 거죠. 단지 레트로 '디자인'의 헤드폰을 목에 걸었다간 위신이 떨어질지도요.
소니 MDR-7506. 레퍼런스 모니터링 헤드폰이자 녹음 입문으로 많이 사용된다고 합니다. 단종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재고들이 판매되고 있으며 여전히 인기가 많습니다.<출처 - rtings.com>
고프코어 패션의 중심에 있는 아크테릭스는 어떤가요? 불티나게 팔린다는 아크테릭스의 아웃도어를 입는 사람들은 캐나다의 마운트 로건(캐나다 최고봉이자 단독 등반이 금지된 산)을 등반하거나 미국의 존 무어 트레일 코스를 준비하기 위해서일까요? 겉으로 표현 가능한 아웃도어 디자인과 단순히 재질의 느낌, 디테일들을 흉내 낸, 몇 배는 저렴한 브랜드의 윈드브레이커를 입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네, 안 입을 겁니다. 그걸 입고 일절 아웃도어 활동을 하든 말든 상관 없습니다. 그 아웃도어를 첨단의 패션으로 믹스매치 하기 위해서 그 아웃도어는 '진짜의' 것이어야 완성이 될 겁니다. 아래 바지는 커다랗고 무거운 진을 입지만 상의에 걸치는 그 윈드브레이커가 1g 더 나가고 덜 나가고는 중요한 문제가 되죠.
2019년 파리 패션위크. 프랭크 오션은 지금 패션쇼를 관람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마못 패딩에 아크테릭스 비니 착용.
그들에게는 단지 '짭'을 입거나 걸치지 않는 것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진짜의 것을 추구할 때의 의미적 완성도가 중요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니 그 헤드폰은 실제 뮤지션들이 사용하기에도 모자람이 없는 그것이어야 하고, 그 윈드브레이커는 하드코어 등반가들이 현장에서 사용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것이어야 합니다. 바로, 레트로와 아웃도어 유행의 뒤에 숨어있는 매력적인 제품의 핵심, 오리지널리티의 충실함입니다.
도심을 걷는 워킹화의 한계
아직도 저희 집에는 30년도 전에 가족이 야외 나들이 갈 때면 썼던 '솟솟' 마크가 새겨진 돗자리가 있습니다. 코오롱스포츠는 대한민국 최초의 아웃도어 브랜드입니다. 1973년 정식으로 런칭되었고 등산 의류와 용품을 국내에 선보였습니다. 외산 브랜드가 국내에 들어오기 전에 첨단 소재와 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하여, 7,80년대에 국내 소위 '캠핑 레저' 시장에서 군림하였습니다.
하지만 90년대와 2000년대에 막강한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국내에 상륙했고 코오롱스포츠는 어느새 올드한 등산용품 브랜드로 인식되기 시작했죠.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이와 비슷한 형국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이에 선택하는 전략이 있습니다. 바로 대중화입니다. 대중화에는 전문성을 상쇄해야 하는 조건이 따르죠. 그래도 더 광휘한 용도와 저렴한 가격을 적용해 더 넓은 시장의 유혹을 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코오롱스포츠도 2010년 초중반 '컨템포러리 아웃도어'를 내세우며 다시 한번 부활을 노려 봅니다. 중장년층들이 단지 외출복으로도 많이 입던 바로 그 등산복(인지 일상웨어인지) 시장을 가리키죠. 아웃도어의 유행이 그 방향으로 가던 시기라고 해석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브랜드가 존속되긴 했으나 엄청난 기술력을 갖춘 아웃도어 브랜드로서의 가치는 빛이 바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