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

브랜드가 본질에 충실하면 생기는 일

브랜드컨설팅랩 AW

2023.08.31 08:30
  • 4754
  • 콘텐츠에 ‘좋아’해줘서 고마워요 -
    3
  • 4

 

 

 

'레트로'와 '라이프스타일'은 만능 치트키가 아니다.

 

 

 

레트로와 아웃도어 유행의 뒤에 숨은 것

 

거리마다 다소간의 패션 특성이 있으나 홍대 거리에는 유난히 헤드폰을 목에 건 젊은이들이 많이 보입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일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요. 꽤나 많이 보이는 특정 헤드폰이 있습니다. 애플의 에어팟 맥스를 상상하실지 모르겠는데, 소니의 MDR-7506이라는 모델입니다. 꽤나 구식의 헤드폰이죠. 실제로 91년에 발매된 오래된 모델입니다. 만일 이 젊은이들이 이 헤드폰을 목에 걸고 있는 이유가 패션 때문이라면 레트로한 디자인이 패션의 완성에 일조하리라 예상합니다. 레트로 유행을 대놓고 티내지는 않지만 음악에 진심인듯한 진정성이 구현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실제 이 헤드폰은 스튜디오 모니터링 헤드폰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모델 중에 하나입니다. 많은 뮤지션들의 녹음실 영상에서 보셨을 수도 있습니다. 음악에 진지하건 적당하건 관심없건, 기왕 착장한 (요즘 시대에)줄까지 치렁한 헤드폰이라면 오리지널리티가 중요했던 거죠. 단지 레트로 '디자인'의 헤드폰을 목에 걸었다간 위신이 떨어질지도요.

 

 소니 MDR-7506. 레퍼런스 모니터링 헤드폰이자 녹음 입문으로 많이 사용된다고 합니다. 단종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재고들이 판매되고 있으며 여전히 인기가 많습니다.<출처 - rtings.com>

 

고프코어 패션의 중심에 있는 아크테릭스는 어떤가요? 불티나게 팔린다는 아크테릭스의 아웃도어를 입는 사람들은 캐나다의 마운트 로건(캐나다 최고봉이자 단독 등반이 금지된 산)을 등반하거나 미국의 존 무어 트레일 코스를 준비하기 위해서일까요? 겉으로 표현 가능한 아웃도어 디자인과 단순히 재질의 느낌, 디테일들을 흉내 낸, 몇 배는 저렴한 브랜드의 윈드브레이커를 입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네, 안 입을 겁니다. 그걸 입고 일절 아웃도어 활동을 하든 말든 상관 없습니다. 그 아웃도어를 첨단의 패션으로 믹스매치 하기 위해서 그 아웃도어는 '진짜의' 것이어야 완성이 될 겁니다. 아래 바지는 커다랗고 무거운 진을 입지만 상의에 걸치는 그 윈드브레이커가 1g 더 나가고 덜 나가고는 중요한 문제가 되죠.

 

2019년 파리 패션위크. 프랭크 오션은 지금 패션쇼를 관람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마못 패딩에 아크테릭스 비니 착용.

 

그들에게는 단지 '짭'을 입거나 걸치지 않는 것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진짜의 것을 추구할 때의 의미적 완성도가 중요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니 그 헤드폰은 실제 뮤지션들이 사용하기에도 모자람이 없는 그것이어야 하고, 그 윈드브레이커는 하드코어 등반가들이 현장에서 사용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것이어야 합니다. 바로, 레트로와 아웃도어 유행의 뒤에 숨어있는 매력적인 제품의 핵심, 오리지널리티의 충실함입니다.

 

 

 

도심을 걷는 워킹화의 한계

 

아직도 저희 집에는 30년도 전에 가족이 야외 나들이 갈 때면 썼던 '솟솟' 마크가 새겨진 돗자리가 있습니다. 코오롱스포츠는 대한민국 최초의 아웃도어 브랜드입니다. 1973년 정식으로 런칭되었고 등산 의류와 용품을 국내에 선보였습니다. 외산 브랜드가 국내에 들어오기 전에 첨단 소재와 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하여, 7,80년대에 국내 소위 '캠핑 레저' 시장에서 군림하였습니다.

 

 

 

하지만 90년대와 2000년대에 막강한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국내에 상륙했고 코오롱스포츠는 어느새 올드한 등산용품 브랜드로 인식되기 시작했죠.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이와 비슷한 형국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이에 선택하는 전략이 있습니다. 바로 대중화입니다. 대중화에는 전문성을 상쇄해야 하는 조건이 따르죠. 그래도 더 광휘한 용도와 저렴한 가격을 적용해 더 넓은 시장의 유혹을 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코오롱스포츠도 2010년 초중반 '컨템포러리 아웃도어'를 내세우며 다시 한번 부활을 노려 봅니다. 중장년층들이 단지 외출복으로도 많이 입던 바로 그 등산복(인지 일상웨어인지) 시장을 가리키죠. 아웃도어의 유행이 그 방향으로 가던 시기라고 해석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브랜드가 존속되긴 했으나 엄청난 기술력을 갖춘 아웃도어 브랜드로서의 가치는 빛이 바래고 있었습니다.

 

해발 8841m 에베레스트. 코오롱스포츠 챌린지팀은 8000m 히말라야 14좌 완등의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당 페이지에서 시원한 히말라야의 전경을 구경해보세요. <출처 - 코오롱스포츠>

 

그러다가 2019년, 대대적인 리브랜딩을 통해 본연의 '정통 아웃도어 브랜드'로 다시 재정비합니다. 당시 공효진과 류준열은 광고 속에서 워킹화를 신고 도심 속을 걷는 모습(당시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핵심 시장이라고 생각했던 이미지)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숲길을 걷고, 산에서 야영하는 모습을 보여줬죠. 이후 코오롱스포츠의 브랜딩은 이 브랜드의 오리지널리티, '진짜 아웃도어'에 집중합니다. 코오롱스포츠는 다시 한번 자신들의 슬로건 'Your Best Way to Nature.'를 현판에 걸었죠.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

 

혹자들은 코오롱스포츠가 리테일 샵이나 레트로 디자인을 잘 구현해 부활을 이루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코오롱스포츠는 현명하게도 이 변화에 있어 진짜 아웃도어에 집중하고 핵심 고객을 먼저 육성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솟솟618, 솟솟상회 등 타깃이 분명한 핵심 고객을 위한 경험 공간들을 풀어냈고, 솟솟클럽으로 대두되는 로드랩, 솟솟클래스, 그리고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등산학교까지 커뮤니티 활동에도 진심입니다. 몇만 켤레 등산화 팔아야 되는데 몇십 명 모아 놓고 마케팅 리소스를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몇십 명은 코오롱스포츠에게 오리지널리티를 투영하고 반증할 수 있는 더 없이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나이키나 룰루레몬 정도의 스포츠 브랜드가 아니고는 아웃도어 브랜드 중에는 파타고니아, 아크테릭스 같은 해외 브랜드를 포함해 현재 국내에서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브랜드는 아직 없습니다.

 

 솟솟클럽에서는 하이킹, 트레일러닝, 등반 등 다양한 아웃도어 활동을 전문가와 함께 참여해 볼 수 있습니다. <출처 - 코오롱스포츠>

 

코오롱스포츠는 한국의 산들을 잘 알고 있고, 아웃도어에 진입하는 한국의 젊은 층을 잘 알고 있습니다. 헤리티지를 가진 브랜드가 진짜의 경험을 제안하면 브랜드의 오리지널리티와 신뢰도는 높아질 수 밖에요. 브랜드의 홈페이지 어디에도 컨템포러리, 어반 뭐시기의 라이프스타일 류의 면모들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에베레스트를 오르고, 남극 기지를 보여주고, 기네스북에 오른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등산화 끈을 보여주고, 자연의 소중함을 보여줍니다. 오리지널리티에 입각하여 진성의 길로 걸어왔음을 표현합니다. 이런 식으로 헤리티지의 순결이 강화되지요. (링크 - 코오롱스포츠 히스토리) 이것은 결코 외부의 브랜딩, 마케팅 에이전시의 결과만은 아닙니다. 코오롱스포츠가 브랜드의 핵심 가치로 가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에 대한 각오를 결연히 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오픈런 연출된 '조선 나이키'

 

작년 5월, 프로스펙스의 200개 한정판 러닝화 '마라톤220'의 출시 팝업에 5,000여 명의 구매 희망자가 몰렸었습니다. 아직 살아남아 있었나 하는 프로스펙스의 멋진 부활 신호탄처럼 보였는데요.

 

 마라톤220. 데이브 맥길리브레이가 1978년 미국 횡단에 착용했던 러닝화를 복각한 모델로, 더현대 팝업스토어에서 완판을 기록했습니다.

<출처 - 프로스펙스>

 

80년대 프로스펙스는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거쳐오면서 국민 운동화로 칭송 받았지만 역시나 90년대 이후 외산 브랜드들에 시장이 잠식되며 지방 소도시 매장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브랜드의 부침도 유독 심했습니다. 국제상사에서 시작하여 2007년 LS그룹으로 주인이 두 차례나 바뀌었죠. 2007년 지금의 주인으로 바뀌고 나서도 이렇다할 활로를 찾지 못 하던 프로스펙스는 위에서 말한 대중화 모색의 일환으로 워킹화 시장에 주력합니다. 김연아를 모델로 내세우며 한 때 활기를 보이기도 했으나 이내 열기는 식고 말았죠.

 

 로고 변천사. 그야말로 시대의 트렌드가 고스란히 내비치는 로고 변천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말 한국은 '첨단'을 좋아하는 나라입니다.

지금의 '첨단'은 레트로고요.

 

기사회생으로 2019년 레트로 열풍에 잘 승선한 프로스펙스는 탑승 정도가 아니라 레트로의 가장 큰 수혜를 입은 브랜드 중 하나가 됩니다. 복각 모델 판매, 다양한 브랜드들과의 콜라보레이션, 연이어 오픈한 레트로 팝업 스토어. 어느새 무신사의 인기 브랜드가 되어 버렸죠.

 

 

 

'오리지널 스포츠'의 의미

 

자, 이것도 운 좋은 레트로 유행의 불꽃으로만 보이는가요? 레트로 열차에 탑승하기 위해 프로스펙스가 오래 전 F로고를 다시 끄집어 낸 것이 신의 한수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열차가 멈춰서기 전에 레트로 열차 위에서 프로스펙스는 브랜드의 대체 구동 연료를 잘 캐나가고 있습니다.

 

 

올해 초에 국내 스포츠 브랜드로서는 드물게 프로스펙스에서는 브랜드북, '우리의 레이스는 끝나지 않았다.'를 펴냈습니다. 제목에서 비장함마저 느껴지죠? 앞서 오픈런이 연출됐다는 팝업 스토어의 복각 러닝화 모델의 주인공인 마라토너 데이브 맥길리브레이가 1978년 미대륙 횡단 시의 모습을 재현한 브랜드 영상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이 영상에서 보여주듯이 브랜드의 오리지널리티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첫 번째 주자는 러닝화입니다. 지금 출시되는 프로스펙스의 러닝화는 합리적인 가격 뿐 아니라 성능에서도 러너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코오롱스포츠가 한국의 산을 잘 알고 있다면 프로스펙스는 한국인의 발을 가장 잘 알고 있었습니다.

 

스포츠 브랜드로서 프로스펙스의 또 다른 오리지널리티는 '스포츠 육성'입니다. 1983년 최초로 스포츠 제품 과학연구센터를 설립,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 공식후원사라는 역사에서 알 수 있지만 스포츠 산업의 성장과 발전에 이바지 해왔고 이는 소비자들에게 크게 어필되어 왔습니다. 부침이 심했던 지난 역사를 뒤로 하고 몇 년 전부터 프로스펙스는 국내 프로스포츠 후원에 본격적으로 다시 팔을 걷어 부쳤습니다. 이 외에도 대한민국 야구/소프트볼, 레슬링, 럭비 국가대표팀, BMX 자전거 국가대표팀과 생활 스포츠, 익스트림 스포츠에까지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스포츠'에 대한 철학은 단지 디자인이나 말 뿐이 아니었던 거죠.

 

 프로야구 LG트윈스, 프로농구 창원LG세이커스, 프로축구 FC서울, 프로배구 GS칼텍스까지 4대 종목의 명문 구단을 모두 후원하는 스포츠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출처 - 프로스펙스>

 

 

 

브랜드가 본질을 잃으면 생기는 일

 

한때 변두리 시내에 출몰하는 '초롱이 패션'으로 인식되던 휠라는 프로스펙스와 마찬가지로 2010년대 후반 레트로 열풍과 함께 어글리 슈즈를 필두로 화려하게 부활에 성공했습니다. 2020년에는 무려 BTS를 모델로 내세우는 등 청소년을 대상으로 중저가 모델 판매에 주력했죠. 휠라 운영사인 휠라홀딩스는 골프 사업의 호조로 전체 매출이 증가했으나 본업인 휠라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영업이익이 모두 감소했고 2022년 중반 주가는 전년 대비 55.4%나 폭락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휠라는 2022년부터 글로벌 브랜드로 다시 태어나기위해 리브랜딩을 진행해오고 있습니다만 브랜드의 방향은 뭉툭해지고만 있는 것 같습니다. <출처 - 조선일보>

 

코로나19가 휠라의 성장 발목을 잡았다는 의견도 있고, 성공했던 레트로 디자인의 제품인 어글리 슈즈를 대체할 또다른 레트로 제품을 내야 한다는 의견도 분분했습니다.(실제로 휠라는 계속해서 레트로 스타일의 제품을 출시하고 있습니다.) 레트로로 부활했으니 레트로로 연명해야 할까요? 코로나 이후 휠라의 브랜드 개조는 여전히 진행 중에 있는 것 같습니다만 기본적으로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스포츠 브랜드' 기조를 굳혀 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브랜드의 변신은 무죄라지만 본질과 핵심 가치를 잃은 변신은 유죄를 선고 받을 확률이 높습니다. 스포츠 브랜드라고 하지만 더 이상 휠라에 '스포츠'라는 아이덴티티를 부여하기란 어려울 것 같거든요. 그렇게 브랜드 방향을 정한 것 같습니다. 소재와 기능의 진화 보다 패션쇼 런웨이에 제품을 세우는 쪽으로, 광고 모델에 스포츠 스타 보다 래퍼를 세우는 쪽으로 말이죠.

 

브랜드에 '레트로'를 만능 치트키로 쓰고, '라이프스타일' 컨셉을 시장 확대의 숏컷으로 남용하는 것은 심사숙고하길 바랍니다. 레트로로 대중의 시선을 다시 사로잡고 부활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브랜드의 존폐는 오리지널리티에 있습니다. "암벽등반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된다고, 라이프스타일 패션 아이템으로 고프코어 룩을 완성하고 싶은 대상에게 팔아야지." 라는 생각이 결국 패착에 이릅니다. 성수동 골목길을 활보하는 그 대상은 암벽 등반에 필요한 재킷을 입고 싶다니까요? 진짜의 것을 경험하고 소유하고 싶은 겁니다. 소비자가 요세미티를 오르는 등반가든 성수동 패피든 브랜드는 진짜의 것에 집중하고, 만드는 곳이어야 합니다.

 

 

 

앤드류와이어스 김해경

 “리브랜딩이 필요한 당신에게 보내는 브랜드 컨설턴트의 편지”

W. LETTER 뉴스레터 구독하기

 

 

  • #브랜딩
  • #브랜드 마케팅
  • #마케팅전략
  • #마케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