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1인 가구 비중, 혼인율과 출생률의 저하 등 얼핏 우리 사회는 더욱 외로워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혼밥’에서 시작된 ‘혼○’ 키워드는 이제 ‘혼영혼자 보는 영화’, ‘혼콘혼자 보는 콘서트’ 등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겨온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었다. ‘함께’가 필수가 아닌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변화된 시대상에 맞춰 사람들은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함께 하려 할까?
가족은 화목하지 않을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시대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그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점은 특히 2030 세대를 중심으로 가족에 대한 인식과 관념이 변했다는 점이다. 소셜 빅데이터를 통해 2014년과 2024년의 2030 세대가 말하는 가족의 연관어를 비교해본 결과,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차이점은 부정적 감성어의 출현이다.
2014년에는 ‘눈물’, ‘따뜻한’ 같은 애틋한 감성을 가족과 연관 지어 말한 반면, 2024년에는 긍정적 감성어도 존재하지만 ‘눈치’, ‘불편함’, ‘어려움’ 같은 부정적 감성어가 종종 언급되고 있다. 2014년에도 가족에 대한 부정적 감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현재의 2030 세대는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들이 말하기 시작한 가족에 대한 부정적 감성은 크게 두 가지 맥락으로 나뉜다. 첫째는 가족 내에서 화목을 강요받는 데서 오는 불편함, 둘째는 부양 부담에 대한 눈치다. 특히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부모를 부양하는 것 자체가 아니다. 부양 부담이 언제 시작될지 모른다는 예측 불가능성이 이들에게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들이 느끼는 불안과 불편함을 잘못된 것이라 부정하고, 때론 외면하며 가족의 테두리에 가두려 하는 것이 진정한 가족의 모습일까? 어쩌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지금의 가족을 더 깊게 들여다보고, 편하게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는 아닐까?
데이트할 수 있는 가족의 탄생
지금의 가족을 이야기해보자. 가족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만 변화한 것은 아니다. 2024년에 언급된 ‘데이트’라는 키워드는 주목할 만하다. 2030 세대가 말하는 가족과의 데이트는 ‘산책’과 ‘인생 네 컷’ 같은 키워드가 등장한다. 퇴근 후 가족과 함께 하는 동네 산책, 산책 후 들르는 무인 아이스크림 매장과 붕어빵 가판대 등 소소한 일상적 경험이 가족과의 데이트로 자리 잡았다. 또 부모와 함께 찍는 인생 네 컷도 이들의 데이트 문화 속에 포함된다.

2014년의 가족 콘텐츠에는 ‘가족사진’이라는 키워드가 있었다. 당시의 가족사진은 주로 부모의 요구에 의해 찍는 경우가 많았다.
가족의 화목함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고, 단조로운 가족 유형만큼이나 일관된 포즈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형태였다. 이러한 가족사진은 거실 한가운데에 걸려 있는 전형적 모습이었다.
지금 사진관으로 가족을 이끄는 사람은 자식들이다. 아이들 손에 이끌려 가발을 쓰고, 아이들이 잡아주는 대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은 거실 한쪽 벽이 아니라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스티커로 냉장고에, 지갑 속에, 휴대폰 뒤에 자리 잡는다. 과거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 국한되던 모습에서 평일의 일상 속 가족 데이트로 변모했다. 의무로서의 가족은 사라지고 호혜互惠적 관계로서의 가족이 남았다.
스스로를 키우는 시대, 케어의 아웃소싱
가족 외에는 누구와 함께할까? 그 중심에는 ‘선생님’이 있다. ‘선생님? 학생 때나 만나는 거 아닌가?’라고 의아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삶 속에는 다양한 역할을 하는 수많은 선생님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소셜 데이터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선생님은 단연 ‘트레이너 선생님’이다. 일대일로 배정된 트레이너에게 PTPersonal Training를 받으면 운동뿐 아니라 매 끼니 식단과 생활 습관까지 선생님과 카톡으로 공유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야식 먹으면 안 된다’, ‘운동이 부족하다’, ‘채소를 더 먹어라’, ‘바른 자세를 유지해라’ 등 건강을 위한 다양한 피드백을 받는다. 잘 생각해보면 이런 코칭은 우리에게 익숙한 엄마의 잔소리와 닮아 있다.
다른 점이라면 엄마의 잔소리는 무료이나, 트레이너 선생님의 잔소리는 유료 서비스라는 점이다. 이를 케어의 아웃소싱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를 케어하며 키우는 시대에 살고 있다. 더 나아가 자신을 잘 키우기 위해 사람들은 선생님이라는 서비스를 스스로에게 제공한다.

이 시대의 새로운 이웃, 크루선생님 외에 이 시대 사람들이 찾는 또 다른 관계가 있다. 바로 ‘크루’다. 최근 러닝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러닝 크루가 주목받고 있다. 소셜 데이터에서도 ‘○○ 크루’라는 언급 중 러닝 크루가 가장 많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크루를 찾는 동기는 단순히 친목에만 있지 않다. 이는 러닝의 목적 변화와도 연결되어 있다. 러닝과 관련한 키워드에서 증감률이 높은 단어로는 ‘속도’, ‘기록’, ‘목표’ 등이 있다. 반면 언급량이 줄어드는 키워드로는 ‘체중’, ‘감량’, ‘다이어트’가 있다. 이제 러닝은 단순히 체중 감량이나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하기보다 자신의 속도와 페이스를 기록하고,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활동으로 더 많이 이야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크루는 성장을 돕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혼자서는 깨지 못할 기록을 크루와 함께여서 깰 수 있으며, 경쟁이 아닌 격려의 공동체를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또 1인 가구의 이사는 혈혈단신으로 새로운 지역을 헤쳐나가는 개척민의 삶과도 같다. 이 과정에서 크루는 나의 성장을 돕는 동시에 이 시대 새로운 형태의 이웃이 되고 있다. 과거의 이웃과 오늘날 크루의 공통점은 동네 기반의 관계성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 역할은 달라졌다. 과거의 이웃이 음식 나눔이나 공동육아 같은 안전과 돌봄의 영역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오늘날 크루로 대변되는 이웃은 성장의 기회를 공유한다.

‘가장=아버지’로 인식되던 시대는 꽤 오래 지속되어 왔다. 현재도 그 시대가 종식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가족 형태는 다양해졌지만 자식들은 여전히 부모를 잘 봉양하고자 고민하고,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시대 가족은 삶의 방식이 달라진 새로운 가족일 뿐 본질은 같다. 다만 각자 삶의 영역이 가족에만 국한되지 않고 이전보다 더욱 확장되었고, 그로부터 얻는 경험과 가치를 공유하며 함께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서로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끄는 가장 친밀한 동행의 모습으로.
글. 신예은(바이브컴퍼니 생활변화관측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