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잠을 깨우고, 차는 나를 깨운다?
‘출근 전 카페인 수혈’은 여전히 직장인의 출근 동반자입니다. 정신을 차리기에 진하게 내린 샷추가 아메리카노만 한 게 없죠.
그런데 말입니다. 요즘 커피 뒤에서 조용히 존재감을 키우는 음료가 있습니다. 바로 ‘차’입니다.
나 사실 커피 못 마시는데…
커피 마시는 사람들 사이에서 차를 시키는 건 뭔가 달라보이는 구석이 있어요. 커피가 ‘나 이렇게 열심히 살아’라는 보여준다면, 차는 ‘내가 얼마나 나다운가’를 보여줍니다. 커피로 시작하는 하루 대신 차를 마시며 마음을 정돈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또는 마무리하는) 하루는 왠지 더 멋져보이거든요. 커피는 나를 일터로 밀어넣지만, 차는 왠지 나 자신에게 데려다 줄 것만 같고요.
이쯤되면 궁금해 집니다. 차는 어떻게 ‘남들과 다른’ 자기다움의 상징이 됐을까요? 차 소비 트렌드를 진하게 우려봤어요.
간편하고 즐겁게 마셔요, 헬시플레저
차 시장을 깨운 건 코로나19였습니다. 팬데믹 상황에서 외출이 감소하면서 타인의 방해 없이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니즈가 차 소비를 이끌었죠. 이후 엔데믹으로 접어들며, 즐겁게 건강을 관리한다는 뜻의 ‘헬시플레저’ 열풍으로 국내 차 시장 규모는 2023년 기준 1조 4175억원으로, 3년 전보다 약 30%가 성장했습니다.
출처: 머니투데이 < 탄산 빠진 자리에 들어온 차(茶)…시장 규모 30% 커졌다>
특히 2020년 이래로 액상차(병에 든 차)는 출고액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볼 수 있어요. 제로콜라나 탄산류 음료가 아니라 액상차가 편의점 냉장 차류 매대를 채워 나가기 시작한 거죠.
1억 잔 팔린 논커피 음료?
편의점에서 액상차 판매량이 늘었다면 커피 프랜차이즈점에서는 차 활용 메뉴가 다양해졌습니다.
출처: 스타벅스 코리아
스타벅스의 제조음료 실적 판매량의 상위 10위 중 논커피류가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며 판매량 상위 10종 중 3종을 차지했어요. 2016년 출시된 ‘자몽 허니 블랙티’는 차 음료 최초로 누적 판매량 1억잔을 돌파하고 있고요.이디야나 메가커피, 빽다방 같은 저가 프랜차이즈 커피 업계에서도 차를 활용한 프로모션 음료 메뉴의 개발도 지속적으로 늘려오고 있습니다.
커피 업계 관계자는 최근 차 시장 규모와 메뉴의 확산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커피 프랜차이즈가 자신들의 명확한 정체성을 어필할 수 있는 것은 커피 보다는 논커피 메뉴고, 커피 메뉴 대비 가격도 높아 저가 커피 브랜드일수록 중요한 캐시카우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요.
차는 마시는 게 아니라 경험하는 거야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 차 활용 메뉴를 다양화 하는 것으로 차별화 했다면, 호텔들은 티타임을 경험할 수 있는 스몰 럭셔리 트렌드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JW메리어트호텔서울은 차와 딤섬을 먹는 홍콩의 티타임 문화인 ‘얌차문화’를 접목해 티타임 메뉴를 출시했고요. 부산롯데호텔은 인도의 홍차 브랜드 ‘압끼빠산드 산차’ 등 4종의 홍차와 페어링 푸드를 제공하면서 홍차에 대한 스토리를 읊어주는 경험을 팝니다. 르메르디앙 서울 명동은 차와 디저트 등으로 구성된 ‘티 오마카세’, <아트 드 티>를 선보입니다. 1인 5만원이 넘는 ‘티 오마카세’는 불티나게 팔립니다.
출처: 스포츠한국, <코스로 즐기는 차… 르메르디앙 명동, 티 오마카세 ‘아트 드 티’>
2024년 3월 중국의 밀크티 브랜드 헤이티가 서울 압구정에 상륙하고요.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아예 도심지의 스타벅스 옆에 티를 전문으로 하는 스타벅스가 하나 더 생기고 있어요.

출처: 일경트렌드 <スタバはなぜ「ティー特化店」を増やすのか 出店戦略と3つの相乗効果>
코로나로 억눌렸던 소비 심리가 폭발하고, SNS가 우리 안에 깊숙이 들어온 것도 스몰럭셔리 트렌드를 이끈 이유였습니다. 차 소비 트렌드는 팬데믹 시기에는 집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는 집밖으로 뛰쳐나와 집 이외의 공간을 소비하는 형태로 바뀌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올해 차 소비 트렌드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요?
공간이 아니라 시간을 가진 사람이 진짜 럭셔리
올해의 차 소비 트렌드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의 축에서 파악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12.3 계엄은 서울의 럭셔리한 차 소비 공간의 접근성을 무력화 시켰습니다. 경제 침체 여파로 가성비에 대한 의문이 슬슬 들기 시작했다는 점도 한 몫합니다.
이제 MZ세대는 차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차를 우리는 ‘시간’을 소비합니다. 럭셔리 호텔이나 고급스러운 티룸이 아니라, 가장 편안한 집에서 좋아하는 다구들로 나를 만나는 여유를 가지는거죠. 편의점 매대에서 병에 든 차가운 차를 소비하는 이유가 몸 건강이라면, 집에서 우리는 차는 마음 건강을 위한 것이라는 점도 달라졌습니다.
“네가 무엇을 마시는지 말해봐. 그러면 네가 누군지 말해줄게.”
내가 먹는 음식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은 아닙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샤바랭은 무려 1826년에 자신의 저서 <미식의 생리학>에서 “Tell me what you eat, and I will tell you what you are.”이라는 명제를 선언했거든요.
"나는 보이차로 명상을 하는 것이 나만의 리추얼이야"라는 말 한마디에, 차를 마시는 행위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드러내는 효과적인 수단이 됩니다. 음식뿐만 아니라 내가 소비하는 모든 것은 취향을 드러냅니다. 잠깐만요. 남들과 다른 나만의 취향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취향은 돈을 주고 산 것이었네요? SNS에서는 비싼 것을 살 때 취향이 드러난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보이고요. 네. 확실한 건 차는.. 커피보다 비쌉니다.
시장에서 자기다움을 샀습니다
주목할 만한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자기다움’의 트렌드입니다. 이상한 점은 모두들 여행작가를 꿈꾸고, 모두들 인디음악을 듣고, 모두들 필름카메라를 사고, 모두들 차를 마신다는 겁니다. 힙한 것, 췰한 것은 타인이 보기에 이상하지 않는 선에서 나를 찾는 방식이었네요.
나를 찾는 방법은 언제나 SNS에서 핫한 주제입니다. 다이어트처럼 끊임없이 생산되고 반복되고 재생됩니다. 그렇게 많은 방법들이 우려져 있는데, 자기다움을 찾는 건 다이어트만큼 어려운 건가 봅니다. 자기다움을 갖추려는 욕망을 타인의 시선에 맞춰 소비해버려서 그렇습니다.
심리학자 칼 융은 페르소나는 필요하지만, 거기에 과하게 동일시될 경우, 진짜 자기를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어요. 그래서 ‘진정한 자기다움’이란, 사회 속에서 가면을 쓰되, 그 가면이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내면의 중심을 지켜내는 것이에요. 차를 마시는 행위가 남들과는 뭔가 다르다는 점을 과시하거나 ‘자기다움’을 찾는 사람으로 비춰지길 원하는 거라면, 그 행위는 빠르게 다른 행위로 대체됩니다. 러닝이나 독서나 또 다른 힙&췰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를 통해 자기다움을 우려보고 싶으시다고요? 명인과 차담에서 나눴던 대화 일부를 발췌해 소개합니다.
자기다움의 철학을 우려봅시다
얼마 전에 국가지정명인인 <도재명차>의 김원영 명인과 차담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명인에게 물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차를 어떻게 즐겼으면 하세요?’ 명인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티백도 좋고, 블렌딩 티도 좋고 다 좋은데, ‘차선’을 했으면 좋겠다’고요. 하루 한 시간씩 정성스럽게 나를 대접하고 자신과 마주해 대화하는 시간으로써 차를 우려보라는 얘기였습니다.
검도, 태권도, 유도처럼 다도에도 길 도(道)자가 붙습니다. 무도와 마찬가지로 다도도 단순한 기술이나 행위가 아니라 진리로 향하는 길, 삶을 대하는 방식, 수양의 길을 의미합니다. 차를 마신다는 것은 단순한 음료 소비가 아니라 자기 수양과 타인 존중이라는 길을 걷는 일입니다.
나는 무엇에서 즐거움을 얻는 사람인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가를 살펴보면 어떤 인간인지 알 수 있습니다.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는 나는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답하려면 내 즐거움의 원천인 놀이 시간을 들여다 보라고 조언합니다.
자기다움, 자기 이해는 타인의 욕망대로 돈을 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즐거움을 파고드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자기 이해는 자신에게로 가라앉거나 타인의 욕망을 대신 욕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들과 다른 행위를 하면서 우월함을 느끼는 감정은 더더욱 아니고요. 진정한 자기 이해는 나와 타인의 삶의 방식을 함께 존중하는 길입니다.
그저 즐거움을 파고들었더니 차를 우리고 있더라 하신다면, 차친자(차에 미친 자)가 틀림없습니다. 연하고 파릇파릇한 찻잎이 막 올라오기 시작한 계절, 깊은 무의식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진짜 자기다움을 발견하는 로컬로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예술 작가나 차 애호가와 함께 차를 마시거나 유기농 차밭을 지키는 활동, 그리고 나를 만나는 명상까지, 차친자를 위한 놀이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보안1942_다 함께 차차차茶 2025>
일시 : 2025. 5. 8. (목) - 5. 9. (금)
장소 : 전남 보성 일대
인원 : 20명
소개: 예술작가, 차 도구 공예작가, 차 문화 활동가, 차 애호가 등이 지역의 차 산지를 찾아 함께 찻잎을 따고 차를 만들어 나누는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그 일련의 결과를 다양한 형태로 발표하는 보안1942의 연례 프로젝트
<출처: 다함께차차차 인스타그램>
<파머투비_하동 차밭 지키기 2025 프로젝트>
일시: 4월 15일부터 5월 11일까지(27일간)
장소: 경남 하동 일대
소개: 지역 농가와 협업하여 친환경 차밭에서 찻잎을 따고 직접 녹차를 덖어보는 체험.
<출처: 파머투비 인스타그램>
<취다선_마인드풀 티클래스>
일시: 상시
장소: 취다선_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해맞이해안로 2688
소개: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차와 명상을 하는 올인클루시브 리조트 취다선의 티클래스
<출처: 취다선 홈페이지>
차 나무의 뿌리는 직근입니다. 옆으로 퍼지지 않고 땅속 깊숙하게 파고듭니다. 땅의 양분을 힘껏 끌어올려 잎을 틔우지요. 그만큼 땅의 양분이 찻잎에 응축됩니다. 차를 우리면, 덖고 말리고 발효됐던 찻잎이 따뜻한 물에 풀어집니다. 찻잎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품고 있던 향을 내어주는 시간이지요. 그 짧은 찰나는 무의식 속 자신에게 이미 갖춰져 있는 자양분을 끌어올리는 시간입니다. 그 자양분으로 세상에 어떤 향을 내어줄 지 상상하는 즐거움을 꼭 만나시길 바랍니다.
[참고]
https://www.foodtoday.or.kr/news/article.html?no=175644
**탄산 빠진 자리에 들어온 차(茶)…시장 규모 30%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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