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을 뜨겁게 달군 디저트, 두바이 초콜릿을 모르시는 분은 없겠죠? 틱톡, 유튜브 쇼츠, 인스타 릴스를 점령하며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는데요. 두바이 초콜릿은 초콜릿의 익숙함과 피스타치오 크림의 세련됨, 카다이프면이라는 호기심, 이 세 지점 중 어딘가를 자극하며 F&B 시장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그렇다면 넥스트 두바이 초콜릿은 무엇인가에 대해 여기저기 추측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수건케이크와 쫀득쿠키가 잠깐 등장했다가 바클라바(튀르키예 전통 페이스트리 디저트)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나 모두 두바이초콜릿만큼의 파급력은 아닌 듯합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두바이초콜릿이 왜 이렇게 인기가 있었는지 짚어볼까요? 과거를 배우는 건 언제나 미래를 알 수 있는 힌트를 주니까요.
마리아 베하라의 두바이 초콜릿 먹방
아랍에미리트(UAE)의 유명 인플루언서 마리아 베하라(@mariavehera257)는 2023년 12월, 두바이의 디저트 브랜드 '픽스 디저트 쇼콜라티에(Fix Dessert Chocolatier)'와 협업하여 두바이 초콜릿을 먹는 ASMR 스타일의 영상을 틱톡에 게시했습니다. 이 영상은 약 6,5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요. 영상에서 초콜릿을 반으로 쪼개는 장면, 바삭한 소리와 찐득한 식감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였고, 이는 두바이 초콜릿에 대한 관심과 수요를 급격히 증가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출처: 마리아 베하라 틱톡 영상 캡처
두바이 도시 브랜드의 럭셔리 이미지
무엇보다 두바이 초콜릿은 대한항공 직항 기준 약 10시간 55분이 걸리는 두바이를 내 방구석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기적의 논리가 작용합니다. 두바이는 세계적으로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럭셔리한 라이프스타일로 유명한 도시입니다.

이러한 도시 브랜드는 두바이 초콜릿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화했죠. 두바이 초콜릿은 고급 재료인 피스타치오와 다소 낯선 카다이프를 사용하여 독특한 맛과 식감을 선보입니다. 이는 ‘두바이’라는 고급스러운 도시 이미지와 맞물려 '럭셔리 디저트'로 인식되었고,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했죠.
두바이 내에서도 구하기 힘든 희소성 마케팅
픽스쇼콜라티에의 두바이 초콜릿은 현지에서도 한정된 시간에만 판매되며, 유통기한이 3~4일로 짧아 구하기 어려운 제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희소성은 소비자들의 소유 욕구를 자극했고, 국내에서도 두바이 초콜릿을 구매하려는 수요가 급증했죠. 이에 따라 국내 편의점인 CU는 '두바이 스타일 초콜릿'을 출시하였고, 출시 하루 만에 초도 물량 20만 개가 모두 소진되는 등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디토 현상으로 인한 나만의 레시피 양산
두바이 초콜릿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국내에서는 이를 직접 만들어보고 따라하려는 '디토 현상'이 확산되었습니다. 구하기 어려운 희소성과 호기심이 ‘그렇다면 직접 만들어 버리겠다’는 욕망을 자극한 거죠. 유튜버 '이상한 과자가게', '지뻔뻔', '아누누' 등은 두바이 초콜릿을 직접 만들어보는 영상을 게시했는데요. 이러한 콘텐츠는 수백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소비자들은 조금씩 자기만의 방식을 더해 다이어터 버전, 쿠키나 케이크, 찹쌀떡 버전으로 이어져 갔고요. 이러한 현상은 소비자들이 단순히 제품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직접 만들어보는 경험을 통해 제품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되었죠.
📌대유행 체크리스트
✔ 복합적인 플레이버(초콜릿+피스타치오)와 식감(쫀득+바삭)
✔ 익숙함(초콜릿)과 세련됨(피스타치오), 호기심(카다이프면), 럭셔리함(두바이)을 겸비
✔ 희소성, 한정판 마케팅
✔ 먹방으로 호기심을 자극해 바이럴, 나만의 레시피로 이어지고 변형(디토)
달도 차면 기운다
두바이초콜릿의 검색량은 2024년 7월 정점을 찍었다가 그 이후로 점차 줄어드는 모습입니다.

편의점에서 두바이초콜릿을 출시한 시점이 7월인 것이 단순히 우연의 일치는 아닙니다. 편의점은 다수의 대중이 이용하는 특성 상 재료나 맛, 가격 부분에서 다운 그레이드해 출시합니다. 소비자들은 처음에는 편의점 재고 앱까지 사용해 구매하지만, 다운 그레이드 된 맛으로는 ‘먹어봤’고, ‘이제 됐고’, ‘(참나)이게 뭐라고’라는 감정선으로 전개됩니다. 편의점은 호기심이라는 열망을 너무 쉽게 충족시켜버리죠. 위 체크리스트 중 희소성의 가치가 무너지게 되는 겁니다.

넥스트 두바이 초콜릿 예측은 심하게 빗나가고 엇나가는 양상입니다. 식품외식계는 중동 디저트(바클라바) 쪽으로 방향을 틀거나, 식감과 달콤함에만 초점을 맞추거나(쫀득쿠키) 디토현상(수건케이크)에만 주목하기도 했는데요. 두바이 초콜릿이 남긴 것은 두바이도, 카다이프면도 아닌 ‘피스타치오’입니다.
2024년 8월부터 식품외식업계는 피스타치오를 활용한 신제품을 연이어 출시하고요. 단종시켰던 것을 부활시키는 사례도 생겨났습니다.
출처: 두바이 초콜릿이 쏘아올린 트렌드…'피스타치오 디저트' 맛집을 찾아라! [솔드아웃]
그렇다면 피스타치오는 반짝하고 사라지는 트렌드가 아니라 10년 이상 지속되는 메가 트렌드가 될 수 있을까요? 대유행 체크리스트를 통해 살펴볼게요.
피스타치오 트렌드 될 수 있나?
✔ 복합적인 플레이버와 식감
피스타치오는 민트나 바질 같은 허브향과 꿀, 아몬드와 버터 풍미가 복합적인 견과류입니다. 무난하고 부드러운 식감의 캐슈넛이나 고소한 향미의 아몬드보다 훨씬 더 복합적인 향을 갖고 있죠. 개성이 강하지만 다른 식재료들과 조합했을 때 독보적인 맛을 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생과 자체로 또는 페이스트로도 좋은데, 둘을 같이 사용하면 훨씬 재밌고 훌륭한 식감이 됩니다.

✔ 익숙함+ 세련됨+호기심+럭셔리함
피스타치오는 특히 디저트류에서 앞다투어 러브콜을 보내는 식재료입니다. 기존에 익숙하게 먹었던 초콜릿, 아이스크림, 파이나 케이크와 조합해 굉장한 시너지를 내죠. 색 또한 초록색으로 봄이나 여름의 계절감을 드러내면서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붉은색 열매인 딸기나 체리 등과의 색 조합도 좋아서 세련된 비주얼을 연출하고요.

✔ 희소성, 한정판 마케팅
피스타치오는 건조하고 더운 기후에서 자랍니다. 심은 후 수확까지 최소 5~7년이 걸리는 나무로, 생산 가능 국가도 제한 적이죠. 미국(캘리포니아), 이란, 터키 등이 주요 생산국인데요. 수확 후 껍질을 벗기고 건조·선별하는 과정이 복잡하며, 고급 품질은 대부분 수작업에 의존합니다. 특히 껍질 벗긴 피스타치오는 가공비와 인건비가 더해져 가격이 비싼 편이죠.

안그래도 비싼데, 두바이 초콜릿 열풍으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면서 전세계적인 품귀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여기에 기후변화까지 겹쳐 사실상 세계적인 고갈 상태에 이르고 있어요. 그야말로 ‘녹색 황금’이 되었습니다.
✔ 바이럴, 디토
아이브의 장원영 님이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에 나왔었는데요. 아니, 장원영님 냉장고에서 피스타치오 페이스트가 나왔어요. 바이럴에 필수조건인 인플루언서 마케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됩니다.

맛피아 권성준 셰프는 피스타치오를 활용해 샐러드 드레싱과 파스타소스에 활용하는데요. 그는 베이커리에 머물러 있던 피스타치오를 레스토랑으로 데려옵니다. 유튜버 ‘나니까’, 우런니 샌드위치의 ‘크렘팍’님은 피스타치오 스프레드를 활용한 샌드위치를 선보이고요. 크리에이터들은 스프레드를 만드는 노하우부터 응용과 활용을 더해 다양한 전개를 합니다.
호모 피스타치엔스를 위한 로컬 미식 가이드
두바이 초콜릿은 사람들에게 피스타치오를 아몬드나 호두, 땅콩 만큼이나 친숙한 대중적인 견과류로 레벨업하게 했죠. 이제 우리는 피스타치오가 어떤 맛인지, 무엇과 잘 어울리는지 알고 즐기는 미식 인류, 호모 피스타치엔스로 진화했습니다.

호모 피스타치엔스들을 위해 로컬 맛집들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부안에 슬지제빵소는 2024년 9월 에이블리 팝업에서 피스타치오 찐빵을 선보인 이후 지금까지 매장에 꾸준히 내고 있고요.

땅콩 수확과 탈곡기를 개발하는 기업에서 견과류 관련 식품 기업으로 성장을 이어가는 <옳곡>에서는 피스타치오 웨하스를 선보였어요.

출처: 옳곡 스마트스토어
디저트뿐만 아니라 요리나 가공식품에서도 피스타치오는 독특한 개성을 발휘합니다. 지리산의 버크셔-K 흑돼지로 유명한 박화춘 농장에 두 아들이 함께하며 흑돼지 전문 샤퀴테리아 농장 ‘더찹샵’을 열었는데요. 간단한 술안주나 샌드위치용으로 좋은 페퍼드 살라미에 피스타치오가 콕콕 박혀있는 걸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로컬은 유행이 한발 늦게 찾아오지만, 그만큼 충분히 숙고할 시간이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두바이초콜릿이 아니라 피스타치오에 주목해 출시한 상품들은 살아남았지만, 두바이 초콜릿의 타이틀이 붙으면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로컬에서는 트렌드를 좇는 방식이 아니라 트렌드를 내 것과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를 충분히 고민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피스타치오 품귀 현상
두바이초콜릿과 그 바통을 이어간 피스타치오 열풍 덕분에, 피스타치오 가격은 2023년 대비 73~90% 폭등했다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로 수확량이 줄었고, 주요 피스타치오 생산국인 미국, 이란, 터키 등은 수출량 조절에 나선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해요. 이에 따라 대체 트렌드를 탐색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데요. 마카다미아나 헤이즐넛, 피칸 등의 메뉴로 피스타치오를 대체하며 조금씩 트렌드가 이동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녹색 황금 피스타치오, 마이다스의 손인가?
피스타치오는 마치 식음료 계의 마이더스의 손 같습니다. 맛과 풍미, 다재다능한 식재료 조합으로 이미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피스타치오. 단 하나의 재료로 이렇게 다양한 맛의 세계를 열 수 있다는 점에서, 피스타치오는 '작은 사치' 이상의 가치를 갖게 될 것 같아요.
대유행 체크리스트에 나온 것처럼 식음료 산업계는 건강과 프리미엄을 앞세우고, 바이럴은 ‘만들어 먹는 재미’와 ‘풍미의 조합’을 연료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무분별하고 단순한 조합(두바이 스타일 OO)만으로는 마이더스의 어리석음을 번복할 겁니다. 전 세계 피스타치오를 다 먹어치우고자 한다면 호모 피스타치엔스는 멸망할 거고요.
피스타치오는 익을 때에 껍질이 저절로 벌어지면서 쪼개지는 소리가 납니다. 이 소리를 들으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전설이 있어 피스타치오 나무 밑은 연인들의 밀월 장소가 되었대요. 중동에서는 피스타치오가 왕에게 받치는 음식이어서, 손님이 오실 때 내주는 환대의 의미를 나타내기도 하고요. 지금 이 순간 당신이 맛보는 피스타치오 한 알은 기후와 생산자, 셰프와 아티장 그리고 나를 이어주는 사랑과 환대의 손길이 되겠네요.
그렇다면 이 고소한 녹색 황금은 또 한 번의 ‘대유행’을 이끌 수 있을까요? 아차차, 질문이 잘못됐네요. 피스타치오가 내미는 사랑과 환대의 손길을 우리가 어떻게 지속가능한 트렌드로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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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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