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아는 일
제품과 세계를 보는 스티브 잡스의 안목은 시대를 뛰어넘는 것이었지만 그 비범함을 범상하게 해석하고는 실제 비즈니스에까지 적용하는 용감한 CEO나 마케터들을 보면 간담이 서늘하곤 합니다. 함부로 오해 해서는 안 될 대표적인 잡스의 유산이 이런 말이죠.
“사람들은 직접 보여주기 전까진 자신들이 원하는 게 뭔지 정확히 모른다.”
CEO라면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어야 하며, 마케터라면 소비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문제’가 ‘니즈(needs)’와 동의어가 될 때는 두 말할 나위도 없겠죠. 그것을 정확히 알고 모르고는 사업의 승패를 가르는 일이 됩니다. ‘내가 이건 불편하더라’, ‘내 주위 사람들은 다 그 아이디어가 좋다던데.’ 정도의 혜안을 가지고 상품을 시장에 내놓는 일은 그야말로 도박에 가깝죠.
스티브 잡스의 저 말은, 사람들은 자신의 니즈를 형상화해내거나 정확하게 언어로 정의 내리기 어렵다는 말이겠지요. 애플은 어느 회사보다도 주도면밀하게 사용자를 관찰, 조사하고 공부하는 기업입니다. CEO의 신내림으로 아이맥이나 아이폰 같은 걸 만든다는 뜻은 분명 아닐 것 입니다.
애플은 사용자 경험에 가장 집중했던 기업입니다. 사용자의 니즈를 간과 할리가 없지요.
다만, 사용자 니즈를 확인하기 위해서 “지금 사용하는 (당시)핸드폰의 불편한 점은 무엇입니까?” 류의 질문으로는 진짜의 문제와 니즈를 도출해내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 대답을 토대로 만들어진 게 기존 시장의 제품이었다면 애플은 그 이면의 문제에까지 집요하게 들어갔고 결국 기존 시장의 물건과 다르거나, 또는 다른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아웃스탠딩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자동차 산업은 해마다 모델을 바꿔 가며 고객의 요구사항을 최우선으로 수렴하는 산업 중 하나입니다. 매년 고객 조사에만 수 많은 비용을 지불하죠. 미국 시장에 소형차가 처음 등장한 첫 해, 소형차는 시장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렸습니다. 대부분의 제조사가 그 현상에 당황했습니다. 아무도 그 니즈를 사전에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이죠. 실제로 몇몇 제조사는 자신들이 생산하는 라인 중에 소비자가 더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만을 조사해 온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은 수많은 자원을 씀에도 불구하고 사용자의 니즈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매너리즘에 빠진 판매자는 구매 이유를 소비자가 아닌 제품으로부터 찾아내는 쪽으로 기울게 되며, 급기야 그것을 소비자의 ‘니즈’라고 정의내리기에 이릅니다.
당신을 이해하는 일
어딘가 마케팅이라는 단어가 개체로 존재하고 있다면 지난 반세기 동안 단지 온갖 공해로 오해 받은 그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싶습니다. 판매를 위한 수단으로만 간과된 그에게 사과를 하고 싶습니다. 제품을 생산하면 으레 시행하는 뒷단의 일로 치부한 것에 고개를 조아립니다.
마케팅 개론에 나올 법한 얘기를 하자면, 판매(selling)는 판매자의 요구에 초점을 맞추지만, 마케팅(marketing)은 구매자의 요구에 초점을 맞추는 일입니다. 즉, 마케팅이란 경쟁사와 비교해 고객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것을 뜻합니다. 판매 그 자체가 1차 목적이 아닌 행위라는 말이죠.
고객의 문제점을 아는 일이 첫번째라면, 그 문제점으로부터 니즈를 도출해내는 것이 두번째의 일이겠습니다. 마케팅 일의 반절은 바로 이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마케팅의 정의, 바로 그대로이죠. 당신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당신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일
상대를 충분히 이해했다면 그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는 활동을 해야합니다.
제품과 서비스의 기능과 장점을 피력하는 것으로 순간적인 전환(판매)을 쟁취할 수도 있지만 장기적인 신뢰 관계의 고객을 얻는 일은 그보다 더 세심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콘텐츠 마케팅에서 얘기하는 가치 있는 콘텐츠란, 고객이 합리적인 구매 의사 결정을 하기 위해서 찾고 있는 정보 뿐 아니라, 잠재 고객이 즐기고 싶어하는 오락, 나아가 잠재 고객의 문제점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콘텐츠까지를 포함합니다. 후자로 갈수록 고도화된 콘텐츠 마케팅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콘텐츠 마케팅을 이야기할 때 타겟 고객이나 잠재 고객이 아닌 오디언스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신뢰는 한 순간 체결되지 않으며 상대방이 나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어줄 수 있을 만한 이야기가 전개되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마치 관객처럼 말이죠. 극장에서 재미있는 영화가 아니라 광고만 틀어준다면 관객은 당연히 자리에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2018년 스톤에서 진행한 Content Marketing Asia Forum>
오디언스로서 기꺼이 브랜드의 이야기(콘텐츠)를 들어왔던 사람들에게 제품이란 단순히 공장에서 만들어진 어떤 덩어리가 아니라 그 분야에 대한 실질적인 도움과 조언까지 뜻합니다. 실제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서비스까지 포함하지 않는 제품이란 지금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고객은 제품과 동시에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방법까지 구입하는 것입니다.
제품에 대해서만 잘 설명하고 피력해서 판매를 촉진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잠재 고객의 문제점까지 잘 알고 있고, 나아가 그 잠재 고객을 오디언스로 만들 수 있는 기업은 그것을 명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제품에만 집중하는 기업과는 완전히 다른 게임을 하게 되겠죠.
당신과 관계를 맺는 일
판매=판매, 마케팅=고객 창출 및 유지
매출 가도를 달리는 기업이 늘 오해하고 간과하는 일입니다. 판매가 체결됨으로써 마케팅의 목적이 달성된 것으로 오해하는 일이죠.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은 단지 ‘판매’가 되었을 뿐입니다. 판매자는 판매를 하면 끝이지만 구매자는 그때부터가 시작입니다.
판매자=판매, 고객=문제 해결
서로 다른 동기를 가진 두 개체의 이해관계가 온전히 성립이 될까요?
상이한 이 관계의 상호의존이 유지되려면, 관계가 맺어지기 전(판매가 이루어지기 전)에 서로가 충분히 이해를 해야하고 관계를 어떻게 관리할지를 계획해야 합니다. 이것이 판매 이전에 잠재 고객을 오디언스로 규정하고 콘텐츠 마케팅을 시행하는 이유입니다. 판매는 다른 어떠한 방법으로도 체결될 수 있지만 온전한 관계 맺기로 이루어지지 못한 판매자와 고객과의 관계는 불투명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불투명하고 견고하지 못한 고객 창출이 결국 ‘마케팅’의 실패를 불러오고, 마케팅의 실패는 말 그대로 비즈니스의 몰락을 초래하게 됩니다.
콘텐츠 마케팅의 궁극적인 목표는 로열 오디언스를 만드는 일입니다.
문제 발생 또는 인지 > 니즈 > 문제를 해결하는 콘텐츠 소비 > 신뢰 > 문제 해결 및 요구 충족의 구매 > 관계에서의 충족 > 재구매 > 인플루언서 > 로열 오디언스
왜 로열 오디언스가 중요한지는 로열 오디언스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의 과정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마케팅에서 추구하는 고객 창출의 고도화된 버전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본시 마케팅의 기본적인 목적은 바로 이러했습니다.
어떠한 비즈니스 용어 하나를 제대로 정의 내리자고 일의 중요도를 바꾸어 보자는 게 아닙니다. 그동안 마케팅은 원래의 목표와 방향대로 시장에서 소구되지 않았을 때도 많았습니다. 눈 앞의 이윤 앞에 매출과 고객을 분리해서 생각한 적도 많았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케팅이 본래의 기능을 하지 않고서는 비즈니스는 성립이 되지 않는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단지 본래의 역할과 정의를 회복하고 있을 뿐입니다.
“고객 만족”을 현판으로 걸어놓은 수 많은 기업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바로 진심으로 당신을 알아가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김해경
Content Marketing Lab Director
hara@stoneb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