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중순, 멜론 음악 차트에서 특이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다수의 아이돌 그룹을 제치고,인디뮤지션의 곡이 1위에 올라섰기 때문입니다. 바로 '선물'이라는 곡으로 1위에 오른 멜로망스였습니다. 멜로망스는 보컬 김민석, 피아노 정동환으로 구성된 데뷔 2년차에 접어든 2인조 인디뮤지션입니다. 멜론 음악차트 148위에 있던 '선물'은 10월 13일 12위로 껑충 뛰어오르더니, 지난 주에는 멜론/벅스/지니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는 기록을 만들어냈습니다. 아이돌 그룹도 아닌 인디뮤지션이 다수의 쟁쟁한 아이돌 그룹보다 좋은 '차트 성적표'를 받아들자, 모두가 의아했습니다. '멜로망스가 누구길래 1위에 올라왔어?'
▲ 올해 음악차트 역주행 사례에 1개의 사례를 더 추가한 멜로망스 (출처 : 민트페이퍼)
음악 차트에서 일어나는 역주행은 이제 '놀랄 일'이 아닙니다. 올해 만해도 역주행의 케이스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윤종신의 '좋니'죠. '좋니'는 'Listen' 프로젝트를 통해 나온 노래로서 발매된지 몇 달이 지나서야 역주행을 하며 당당하게 1위로 올라섰습니다. 그 밖에도 신현희와 김루트의 '오빠야', 폴킴의 '길', 한동근 '이 소설의 끝을 다시 써보려고 해' 등이 모두 발매된 지 수 개월, 수 년이 지나서야 주목을 받은 역주행 노래들입니다.
몇 년전만 하더라도 이런 '역주행'은 상상하기 힘들었습니다. 음악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한 정식 코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TV에서 진행하는 음악 방송에 매주 출연하고, TV예능을 통해 신곡을 많이 홍보할 수 수록 음악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 확률이 컸습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음악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루트가 달라졌고 다양해졌습니다. 어떻게 마이너 뮤지션들이 '역주행' 기록을 만들게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 온라인과 입소문의 파워가 '음악방송'을 넘다
우선은, 역주행 기록의 주인공들이 "어떻게" 역주행을 할 수 있었는지 그 시작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윤종신의 '좋니' 노래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 노래가 인기를 얻게된 계기를 찾아보면 페이스북 페이지 '딩고뮤직'을 통해 공개된 '세로라이브' 영상에 있습니다.
▲ 윤종신 '좋니' 세로 라이브 영상 (출처 : 딩고뮤직)
이 영상을 본 유저들은 이 좋은 노래를 주변 지인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어했습니다. 페이스북 특성상 바로 친구를 소환하거나 메신저로 보낼 수 있는 기능이 있었죠. 이에 친구들을 댓글로 소환하고 해당 게시글을 내 타임으로 공유하며 유저들 각자가 '자발적인 마케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영상 조회수는 1,400만회에 육박했고 이후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좋니' 노래를 열창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뒤 드디어 음악 차트 1위를 하게 됩니다. 역주행의 시작은 SNS(딩고뮤직)이었습니다.
멜로망스의 '선물'은 어디서부터 역주행이 되었을까요? 멜로망스의 경우는 보컬 김민석군이 자신이 다니고 있는 서울예술대학교 축제에서 소주잔을 들며 '선물' 노래를 부른 직캠이 SNS에서 바이럴 되며 역주행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석 요구에 따른 라이브임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가창력을 보여주고, 주변 선후배들이 노래를 떼창하는 모습이 알려져며 페이스북의 여러 음악 페이지들이 이 게시글을 올렸죠. 아래에 있는 게시글이 페이스북 내에서 가장 크게 바이럴 되며 조회수 100만을 훌쩍 넘었습니다.
▲ 멜로망스 보컬 김민석님이 서울예대 축제 주점에서 선보인 라이브 (출처 : 노래 쫌 아나? 페이지)
이 밖에도 역주행 신화의 조상으로 불리는 EXID의 '위아래' 역시 직캠 영상이 SNS로 바이럴 되며 알려졌고, 여자친구의 '오늘부터 우리는'은 꽈당 영상으로 불리며 해외 외신(뉴욕타임스)에 보도되기도 했었죠. 비로 인해 무대가 젖어 자주 넘어짐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공연을 이어나가는 여자친구의 프로정신이 화제가 되며 역주행 되었습니다. 신현희와 김루트의 경우 아프리카의 유명 BJ인 '꽃님'님이 방송에서 '오빠야' 노래를 자주 부르며 인기를 얻게 되었고 국내외 커버 영상들이 만들어지면서 역주행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역주행 신화의 대부분은 SNS을 통한 바이럴입니다. 페이스북과 유튜브가 이들의 인기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음악방송을 통해 소개되지 않고서는 뮤지션이 자신을 소개하거나 또는 자신의 곡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엔터테인먼트가 'TV음악방송'을 잡기위해 애썼죠. 3대 소속사로 불리는 대형소속사는 쉽게 무대를 가질 수 있었지만 소형 소속사는 PD에게 로비 아닌 로비를 해가며 무대를 따내곤 했습니다. 그리고 소속사가 없는 개인 뮤지션의 경우에는 무대에 올라서는 게 '하늘에 별 따기' 보다 더 힘든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TV 음악방송'에 더이상 집중하지 않습니다. 요즘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 통용되는 언어로 '페북 퍼스트' 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음악방송이 우선이었다면, 이제는 음악방송을 보는 시청자가 줄어드며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죠. 하지만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는 상황이 다릅니다. 뮤지션이 타겟으로 하는 팬층(1020)이 모여있다고 '확신' 되는 서비스죠. 이 곳에서 '뮤지션'들을 알리기 위해 엔터테인먼트사들은 모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데뷔나 컴백을 앞두고 가장 먼저 연락하는 곳이 바로 '딩고'라고 합니다. 딩고는 페이스북에서 다수의 페이지를 보유하고 있는 모바일 콘텐츠 전문 제작사이자 유통사입니다. 딩고 뮤직의 경우는 팔로워가 무려 88만명에 육박하고 일소라(일반인들의 소름돋는 라이브)는 팔로워가 300만명에 육박하죠. 컴백의 경우는 딩고 뮤직을 통해서, 데뷔의 경우 일소라를 통해 흥행의 가능성을 점쳐보는 케이스가 점점 생겨나고 있다고 합니다. 팬층이 어느정도 있어 바이럴이 확실할 때는 제대로 된 SNS 콘텐츠를 만들어 알리는 것이 필요하고, 데뷔의 경우는 연습생을 일반인으로 소개한 뒤 음색이나 가창력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는 식입니다.
▲ 볼빨간 사춘기 '썸 탈거야' 세로 라이브 영상 (출처 : 딩고뮤직)
▲ 악동뮤지션 'DINOSOUR' 세로 라이브 영상 (출처 : 딩고뮤직)
전통적인 아이돌도 예외는 아닙니다. 데뷔 7년차 아이돌 B1A4는 딩고의 대표 콘텐츠 '이슬 라이브'를 통해 컴백을 알렸고 ZICO의 경우 딩고뮤직과 손 잡고 '지코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등 SNS을 통해 음악 콘텐츠를 마케팅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음악 방송보다 해당 타겟층에 더 직접적으로 다가갈 수 있고 바이럴에 유리할 수 있는 모바일 콘텐츠를 만들며 발견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고 그 영향력이 TV 음악방송을 넘어서면서 역주행 케이스들이 계속 나오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 소수의 아이돌 팬보다, 다수의 평범한 유저의 힘
롱테일의 법칙는 80%의 사소한 다수가 뭉치면 20%의 핵심 소수보다 뛰어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때 사용하는 법칙입니다. 개별 단위로 보면 결과가 크지는 않지만 긴 꼬리 영역이 뭉쳐지면 20%가 만들어내는 큰 영역에 비등할만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하는 법칙이죠. 음악 산업이 대표적인 롱테일 법칙의 적용 사례입니다. 멜론 차트 1위에서 100위까지가 멜론 내에서 단일 곡으로는 재생 수가 많겠지만, 전체적인 재생수로 봤을 때는 1위에서 100위를 합한 것보다 101위에서 하위 등수를 합친 것이 더 크죠. 이를 '롱테일 법칙'이라고 합니다.
▲'롱테일의 법칙' 그래프. 80%의 일반적 다수가 20%의 핵심 소수보다 더 뛰어난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법칙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음악 차트에서 대부분 1위에서 100위까지에 위치해 있는 곡들은 '팬층'이 탄탄한 뮤지션인 경우가 많습니다. 즉, 아이돌인 경우가 많죠. 팬들이 스밍(스트리밍)을 통해서 아이돌 노래를 의도적으로 차트에 올리는 경우는 익히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숨스밍'(숨 쉬듯이 스트리밍)이라는 용어가 생길만큼 Top100차트 입성과 상위권 진입은 팬들의 '미션'입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재생수'가 엄청납니다. 단일 곡의 재생수로 따지면 다른 곡들과 비교할 수가 없죠. 하지만, 노래가 좋아서 하루에 1,2번 듣는 사람도 분명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뭉쳤을 때 아이돌 곡의 재생수보다 비슷해지거나 커지게 되는 겁니다. 즉, 80%를 차지하는 일반적 다수가 20%를 차지하고 있는 아이돌 팬을 이기게 되는 거죠. 이렇게 80%의 다수를 유혹할 수 있었던 건, 80% 가까이가 모두 페북과 유튜브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 곳에서 음악에 대한 정보를 습득한 뒤, 맘에 들 경우 음악 서비스로 넘어와 재생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음악 차트 역주행은 시작되고, 가속화될 경우 1위에 오르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대중성이 가진 힘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도 있겠네요.
# 가수의 브랜드보다는, 음악을 먼저 평가
예전에는 노래보다 브랜드가 우선일 때가 있었습니다. 아이돌이 컴백을 할 경우, 노래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인기로 평가받아 그들이 음악 방송 1위를 차지할 때가 있었죠. 결코 이런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찌됐든 그들은 '브랜드'를 가지고 된 거고 브랜드를 충성하는 팬들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뮤지션이 음악으로 판단은 받아야겠지만 연예인은 '스타성'이라는 다른 부분도 분명 인정 받을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속사들은 자사 소속의 뮤지션들이 '브랜드'를 가질 수 있도록 애썼습니다. 노래에 대한 투자보다도 '인기'를 받을 수 있는 다른 요소들을 갖추는데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브랜드'가 없어지고 있는 세상입니다. 똑똑한 소비자들은 브랜드라는 거품과 포장만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이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립니다. 예전이라면 아이돌의 경우라도 예쁘고 잘생기기만 하면 인기를 얻고 정상에 오를 수 있었겠지만 요즘 아이돌은 작사,작곡 등 음악적 역량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방탄소년단(BTS)의 전 멤버들이 작가, 작곡 능력이 있어 전 세계의 팬들에게 그리고 빌보드에게 '뮤지션'으로 인정받는 부분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제 똑똑한 소비자는 내가 모르는 가수라도 노래가 좋으면 찾아봅니다. 그리고 다수가 아는 노래가 아니라 나만이 좋은 명곡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이런 소비를 즐기기도 합니다. 한동근, 박원, 황치열, 신현희와 김루트와 같이 무명의 뮤지션들이 오직 '노래'만으로 승부를 봐 역주행 신화의 주인공이 된 것도 같은 결입니다.
# 마치며
이들이 뒤 늦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준비'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자신만의 음악적 색깔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비록 남들이 알아봐주지 않더라도 꿋꿋하게 나의 길을 간 뮤지션들이기 때문입니다. 윤종신의 경우 7년 간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매달 1곡을 작사, 작곡하는 성실함을 보여줬고 여자친구의 경우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대를 마쳐야겠다는 프로정신으로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무대를 끝냈습니다. 과연, 이들의 역주행에 누가 '운빨' '뽀록' 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대형 소속사와 TV 위주의 음악 활동에서 활동 커버리지를 넓혔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런 케이스에서 성공 사례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전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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