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타의 매거진

“Lifelong Green”

콘텐타

2022.01.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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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생각하는 기업 이미지를 담은 LG그룹의 캠페인 “우리가 그리는 내일의 그린”을 임의로 바꾸어 보았다. 그룹의 이니셜을 활용하여 네 단어를 두 단어로 줄이고 글로벌 기업임을 감안하여 우리말 대신 세계 공용어를 썼다. 녹색 충만한 풍광을 담은 고화질 자연 다큐멘터리 사진에 “Lifelong Green LG”를 한쪽 구석에 선명히 새겨 넣으면 더 단순하고 강렬하고 기억에 남지 않을까 싶다. 대기업들이 산업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그린피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소비자는 관심이 없다. 굳이 설명을 넣어야 한다면 QR코드 하나로 족하다.

 

소비자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려는 광고에서는 전달하려는 내용이 많아질수록 광고효과는 떨어진다. 광고에 담긴 정보의 양과 소비자에게 각인되는 인상의 강도는 반비례한다. 정확한 메시지를 하나만 전달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면 그만이다. 상세한 설명은 의류나 식료품,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기능성 제품 광고에 적절하다.

 

우리 기업들의 광고를 볼 때 아쉬운 점이 있다. 특히 신문에 실린 전면광고를 볼 때마다 느끼는 점인데 그중 하나는, 의욕은 넘치는 반면 임팩트가 없다. 개성이 부족하고 불필요한 설명과 미사여구가 많다. 대중의 뇌리에 각인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겠지만 소비자가 느끼는 효과는 그 반대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최신경향을 반영하는 용어들을 앞다투어 쏟아내는 모습에선 뒤쳐지면 안된다는 불안감도 느껴진다. 자신감과 여유, 절제 같은 선도적인 대기업의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 기업들의 많은 광고들이 그렇다.

 

 

 

국기 – 광고 역량의 유전자 샘플

 

뜬금없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한 나라 국민의 성정과 광고 역량의 DNA가 담겨 있는 것 중 하나가 그 나라의 국기다. 제한된 평면 안에 형태와 색을 써서 여타 국가들과는 구분되는 자기나라의 정체성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의 국기를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국가의 설립이념 혹은 지향점을 담았거나 나라의 지나온 역사를 담았거나 고유의 자연환경을 반영한 국기들이 대부분이다. 단순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우리의 국기에는 주역의 원리가 담겨있다. 삼라만상의 이치가 담겨있는 것이다. 현대적으로 바꾸어 보면 빅뱅이론이나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내지는 초끈이론 등을 담은 것이다. 왜 나라의 얼굴인 국기에 우주를 통일하는 원리가 담겨야 하나. 오해하지 마시라. 필자는 내 나라를 사랑하는 국민이고 태극기를 사랑하여 국경일마다 열심히 게양하는 시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우리의 국기를 디자인한 사람들이 어떤 연유와 무슨 생각으로 동양철학을 집대성한 ‘우주론’을 국기에 담았는지 그저 순수하게 궁금할 때가 있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결국 그러한 형태로 결정한 것은 구한말 우리 민족을 몰아치던 주변 강대국들을 의식하여 너무 고매한 이상을 추구하다가 욕심이 과했던 게 아닌가 하는 주관적인 추측을 할 뿐이다. 이웃한 나라가 ‘너희 국기도 원래 우리 거야’ 할까 봐 걱정도 된다.

 

필자의 추측이 맞는다면 우리 민족의 이러한 성향은 도처에서 나타나는데 특히 광고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광고는 제한된 화면과 시공간 안에 메시지를 담아 전달해야 한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글로벌 대기업들의 광고와 우리 기업들의 광고, 특히 우리 기업들이 내수시장에 뿌린 광고가 어떻게 다른가는 저들의 국기와 우리나라 국기의 차이점과 흡사한 점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가 구별되는 차별성에 초점을 맞추고 단순한 메시지로 강렬한 각인효과와 시인성을 추구하는 반면, 우리는 한정된 지면과 시간 안에 많은 것을 담고자 노력한 흔적이 확연하다. 주목하게 만들어야 하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하고 욕구를 불러일으켜야 하며 만족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의 뇌와 심장을 겨눈 조준점이 흐려지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임팩트가 떨어진다. 그리고 소비자는 기억하지 못한다.

 

 

 

MORE IS LESS

 

초점이 흐려지면 말이 길어진다. 조준점이 선명하면 한 단어로도 족하다. 후자가 당연히 강렬하다. 강요하지 않아도 뇌리에 각인된다. 소비자는 이 기업이 ‘스마트’하고 ‘쿨’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무의식적으로 따라하고 팔로우업(follow-up)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기업들도 따라할 수 있다. 카피라이팅의 정석에도 부합한다. ‘Less is More’는 광고계의 명언임에도 우리 귀에 잘 안 들린다. 뒤집어야 좀 들린다. “많이 담을수록 꽝이에요”, “최대한 줄여야 합니다”라고 해야 먹힌다. 그래도 광고주 되시는 사장님들 설득하기는 쉽지 않겠다. 우리의 유전자에 역행하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광고의 목적을 하나만 정하고 개념과 초점을 8K UHD로 선명하게 다듬은 후 거기에 가장 어울리는 그래픽과 단어 하나(내지는 두어 단어)를 찾아서 꽂아 넣어야 한다. 입에 착 붙는 단어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카피라이터의 역량은 우리말 어휘력과 언어적 감각, 그리고 약간의 인문학적 소양이다. 카피라이팅은 비즈니스를 위한 시(詩)다. 각기 다른 경험을 가진 소비자들을 한두 개의 단어와 이미지로 빨아들여야 한다. 그렇다고 카피라이터가 인문학 전공자일 필요는 없다. 전공과 직업, 재능은 별개인 경우도 많으니까.

 

물론 우리말의 언어적 특징에도 약간의 책임이 있다. 대부분의 서구 언어와 달리 우리말은 교착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광고에서 교착어는 다소 불리하다. 한 단어만 사용할 경우 조사나 어미를 붙여도 붙이지 않아도 어딘가 어색하기 때문이다. 영어는 명사와 형용사 하나만 써도 완결된 느낌이 든다. 분사는 소위 ‘간지’도 갖췄다. 웨슬리 스나입스가 출연한 <언디스퓨티드undisputed>란 영화가 있다. 그 제목이 수많은 광고에 써먹을 수 있는 단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저 말을 우리말로 옮기면 일단 어색하고 길어진다. 영어에는 저런 단어가 널렸다.

 

아름다운 말과 잘 쓰인 글은 미사여구가 아니라 말을 가장 적확하고 간결하게 하는 것이다. 고급언어 능력이란 국어와 외국어를 막론하고 그런 것이다.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고 많은 내용을 담은 긴 문서를 거침없이 작성해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장황하고 과장된 말을 늘어놓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광고는 더욱 그렇다. 기업이 다져온 역량과 비전을 명료하고 날카롭고 세련되게 표현하면 된다. 팬데믹 시대, 우리 기업들의 건투를 빈다.

  • #광고의 목적
  • #카피라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