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직장인 대다수가 앓고 있다는 ‘넵’병, 들어보셨나요? 거절을 하고 싶어도 결국 대답은 ‘넵’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직장인의 애환을 표현한 말입니다. 성격상 원래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직장에서의 거절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습니다.
왜 힘든 걸까요? 대부분의 경우가 상대와 관계가 껄끄러워지는 것이 싫어서일 것입니다. 상대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거절 안 하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일을 ‘잘’ 수행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무리해서 해내려고 애쓰다 번아웃 되거나, 마감을 지키지 못해 더 곤란한 상황에 처하지 않으려면 '거절'이 꼭 필요합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상대방과의 관계를 망치지 않는 3S 거절 방법을 소개해 드릴게요.
우선 회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을 함께 살펴볼까요?
전자기기 제조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당신. 당신은 오늘 아침 생산팀에서 전화를 한 통 받는다.
생산팀: 이번에 바뀐 디스플레이 화면에서 잔상이 남는 현상이 있는데요, 원인을 빨리 파악해 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이번 주까지 가능하실까요?
당신: 네? 이번 주까지요?😱
생산팀: 부사장님이 요즘 생산 속도까지 신경 쓰셔서요ㅠ. 문제 해결 안 되면 생산이 지연될 수도 있어서..가급적 빨리 부탁드릴게요. 가능하시죠?
당신: 아, 그게...😥
당신은 당장 원인 파악을 해 줄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신규 프로젝트팀의 PL을 맡고 있는데, 프로젝트 막바지라 매일 야근을 해야 겨우 일을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이 거절하면 생산팀도 난감한 상황을 맞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STEP#1 Sympathize (공감하기)
인지심리학에 따르면 사람은 어떤 판단을 내릴 때 상대방 말의 사실 여부보다는 상대방이 내 편인지 아닌지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절을 어려워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죠. 거절을 하면 상대방과 ‘적’이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하지만 거절하면서도 ‘나는 상대방의 편’임을 느끼게 해 주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공감'입니다. 공감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그 사람의 감정이나 의견을 똑같이 느끼는 것을 말하는데요, 거절하기 전에 먼저 공감을 해 주면 적어도 거절을 부정적으로만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네요.
그럼 무엇에 대해 공감해 줘야 할까요?
여기서 커뮤니케이션의 기본 개념인 Position과 Needs가 필요합니다. 상대방이 표면적으로 하는 요구 (Position)가 아니라 그 요구가 나오게 된 배경, 상대방이 원하는 것 (Needs)에 공감해 줘야 합니다.
앞의 상황에서 당신은 어떻게 공감을 해야 할까요? “디스플레이에 문제가 생겨서 많이 당황하셨겠어요. 부사장님 지시로 생산 쪽도 많이 바쁘실 텐데 급하게 원인 파악이 필요하신 건 충분히 이해합니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인 파악을 해 달라는 Position을 들어 주는 게 아닌 '부사장님 지시 사항을 지키지 못함에 대한 불안함과 문제 발생에 대한 당혹스러움'이라는 Needs에 대한 공감이죠.
STEP#2 Sorry (유감 표명하기)
다음으로는 요청을 수락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솔직한 사과를 해야 합니다. 사과가 있고 없고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사람은 큰 차이를 느낍니다.
위의 상황을 다시 예를 들어볼까요? Needs에 대해 실컷 공감을 해준 뒤에 “그런데 당장 원인 파악은 안 됩니다.”라고만 하는 것과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신규 프로젝트 막바지라 당장 원인 파악을 하는 건 어렵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작은 차이지만 듣는 사람의 판단과 감정은 많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과를 하면 내 잘못을 인정한다는 생각 때문에 꺼리는 분들 많으시죠? 하지만 여기에서의 사과는 '내 잘못'이 아니라 '이러저러한 사정 때문에 상대방의 요청을 받아 줄 수 없는 것'에 대한 사과입니다. 상대방도 요청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을 테니 상대방과의 관계를 해치지 않고 싶다면 사과의 말을 꼭 덧붙여보세요.
STEP#3 Suggest (대안 제시하기)
업무 요청을 받으면 보통 '이걸 받아들일까, 거절할까'를 생각하게 되는데요, 이 둘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요? <거절 잘해도 좋은 사람입니다>라는 책의 저자는 거절할 때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거절할까 받아들일까 2가지 선택만이 있는 게 아니라 ‘상황이 어떻게 바뀌면 거절하지 않을 수 있을지’, ‘어떻게 방법을 바꾸면 거절하지 않고 해낼 수 있을지’와 같이 프레임을 바꿔 생각해 보라는 거죠.
생각의 프레임을 바꾸면 나와 상대방 모두 선택지는 훨씬 많아집니다. 일정을 바꿔 볼 수도 있고, 다른 사람과 협업을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항상 상대방을 만족시킬 수 있을 만한 대안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상대에게 '당신의 요청을 들어 주기 위해서 내가 이만큼 고민하고 노력했다'라는 진심은 충분히 전달할 수 있습니다.
위의 상황에서 대안을 제시해 본다면? 생산팀과 얘기해 일정을 조정할 수도 있고, 신규 프로젝트 발주자에게 상황을 알리고 프로젝트 업무 대신 생산팀의 요청을 먼저 해결하는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한 대안들이 나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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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수 없는 약속보단 지금 거절하는 것이 낫다’는 덴마크 속담이 있습니다. 무작정 요청을 수락하는 것이 좋은 사람은 아닙니다. 나만의 거절 원칙을 세워 분명하게 거절 의사를 표현해 보세요. 모든 요청을 수락하는 사람은 못 될지라도 나에게 주어진 일을 잘 해내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남을 위한 수락’이 아닌 ‘나를 위한 거절’을 제대로 하는 법, 오늘부터 시도해 보면 어떨까요?
>> 글쓴이: HSG 휴먼솔루션그룹 김예슬 전문연구원